41화– 메리 포핀스의 가방2017.11.20.
“언니는요?”
“잠들었어요. 안채에서.”
탐미재.
애주가 도착했을 때 정한은 오픈 준비를 하는 듯 책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일어나려면 시간 좀 걸릴 텐데, 깨어나면 전화해줄까요?”
“아니요. 여기에 서정한 씨도 볼 겸해서 온 거니까요.”
아직 영업시간 전임을 알면서도 애주는 일부러 찾아왔다.
“앉으세요. 커피, 아니면 차?”
“커피 마실게요.”
애주는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탐미재 안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소박하고 고아한 느낌의 책방.
공간을 가득 채운 책 내음에 마음까지 편안해졌다.
소현은 여기에서 라르고의 화집을 구했고, 결혼식 장소로 섭외하기 위해 잡일까지 했었다. 하태랑의 결혼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던 날들의 기억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곳.
결국 모든 건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소현은 지금 이곳에 지친 몸을 뉘여 쉬는 중이다.
상처와 위안은 한자리에 있었다. 어느 인생이나 그러하듯이.
“커피 드세요.”
“아, 네. 감사해요.”
그가 내준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긴장했던 몸이 따뜻하게 풀어졌다. 직접 갈아서 내린 커피라 풍미가 훌륭했다.
애주는 언젠가부터 소현이 아이스커피를 마시지 않던 걸 떠올렸다.
늘 바쁜 일상 속에서 단숨에 들이켜 마실 수 있는 아이스커피를 입에 달고 살았었는데, 그런 소현의 커피 취향이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따뜻한 커피를 호 불어가며 천천히 마시던 소현의 모습을 무심코 넘겼었는데, 지금 보니 앞에 앉은 이 남자로 인한 변화임을 알 수 있었다.
단순한 커피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몰아치던 삶에 여유가 생긴 건 모두 사랑이 바탕이었던 것이다.
애주는 짧은 시간이지만 소현에게 서정한이 꽤 깊이 스며들었다는 걸 느꼈다.
“너무 뜨겁지는 않아요?”
“아뇨, 딱 좋아요.”
정한은 하나하나 세심하게 배려하고 챙기는 스타일이었다. 불편하지 않을 만큼만 가볍고 조용하게.
일전에 소현과 함께 만났을 때 내내 보이던 달콤한 눈빛은 그녀가 없는 지금에야 당연히 찾아볼 수 없지만, 확실히 사람에 대한 존중이 깊이 배어 있는 시선이다.
애주는 역시 서정한이 류재언 대표와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남자라 생각했다.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어쩌면 지금 소현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쪽은 류재언일지도 모른다.
“네, 말씀하세요.”
눈앞의 정한은 성숙하긴 해도 아직 어리다 싶을 만큼 젊고, 사회경험도 많지 않을 것이고, 소현에게 닥친 일을 함께 감당하기에 버거움을 느낄 수도 있다.
“……언니가 힘든 상황이에요. 아마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그리고 앞으로도 더 그렇게 될 것 같고.”
“네, 자세히 얘기해주세요.”
“그러니까 그게, 마크 윤이 지금…….”
애주는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갔다.
이 사태를 막기 위해 류재언이 고생을 하고 있다는 부분도.
그건 전적으로 소현을 위한 일이었다. 그는 소현에게 외면을 받은 상황에서도 도움을 주려 하고 있었다. 류재언은 그럴 능력이 충분히 있는 사람이었다.
두 남자가 소현에게 마음이 향해 있으니 둘 중 어느 한 명은 아플 것이 분명하다.
이미 소현은 선택을 끝냈다. 애주는 흐르는 물길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류재언이 그녀의 인생에 있어 더 유리함을 제공할 수 있다고 해도, 소현이 서정한을 택했다면 서정한인 것이다.
사랑에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그런데 류 대표님한테 그러실 필요 없다는 말 안 했어요. 저는 그렇게 말…… 못 하겠어요.”
소현의 마음이 서정한에게 가 있지만, 정작 도움은 류재언이 주는 상황.
애주는 난처했지만 류재언을 말리지 못했다. 내심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류재언에게도 서정한에게도 미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소현을 위해서라면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애주는 그렇게 생각했다.
“애주 씨가 그럴 필요 없다고 얘기했어도, 그 사람은 아마 그대로 진행할 거예요.”
“네, 상관 안 할 것 같아요. ……언니 도와주려고.”
하지만 중요한 건 힘든 상황 속에서도 견고해야 할 소현과 정한, 두 사람의 관계였다. 그것이 깨어져 소현이 또 상처받는 걸 애주는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는 말이었다.
“미리 말씀드리는 건, 혹시나 정한 씨가 언니를 오해하는 일이 절대 없었으면 해서예요.”
애주는 분명히 말했다.
“당장은 류 대표님이랑 엮여 있더라도, 언니한테는 정한 씨뿐일 거예요. 그러니까 류 대표님이 나서서 일을 해결해주고, 뭐 그런다고 해도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그리고 정한이 무력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자신은 소현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는 건가 자괴감도 느끼지 않았으면 하고.
혹시 이런 말도 자존심이 상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꼭 미리 전하고 싶었다.
그런 이유들로 서정한이 소현에게서 뒷걸음질하면, 오히려 상처받는 건 결국 소현일 테니.
조금만 단단하게 버텨달라고, 부탁을 하는 중이었다.
“……고마워요.”
이내 정한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퍼졌다.
애주의 고개가 살며시 기울었다. 정한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지 않을 상황인데, 개의치 않는다는 듯 번져가는 미소가 의아하기만 했다.
“아, 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요…….”
“네, 고마워요. 정말.”
속 깊은 얼굴로 말을 아끼며 정한은 또 고맙다고 했다.
“오해하지 않을게요. 걱정하지 말아요.”
서정한은 애주의 진심을 곡해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있었다.
진중하고도 담백한 어투로 하는 대답에 애주의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류재언의 도움만큼이나 서정한의 이해가 고맙고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 ◆ ◇
여론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재언은 이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개인의 과실로 돌리는 게 더 합리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소현이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예전이라면 이것도 기회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재언은 소현을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하고, 이를 빌미로 자신에게 돌아오게 만들 생각이었으니까.
어리석었다.
만신창이로 만들어 곁에 두려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판단도, 의뢰도, 결정도 모두 내가 했으니까. 책임도 모두 내가 져야 할 일입니다.」
바라는 건 없었다.
억지로 당길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금전적 손해는 크게 보겠지만 그걸로 끝이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라는 걸, 이제 재언은 알 것 같았다.
뉴욕에서 홀로 서울로 돌아와 보낸 시간들 속에서 느낄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자신의 모습을.
그게 끝이라는 사실을 더 이상은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대표님. 손님이 오셨는데요…….”
그때 노크를 하고 들어온 비서가 말끝을 흐렸다. 지금은 약속이 되어 있지 않아도 누구든 만났다. 관계자든 기자든 피하지 않았다.
그런 재언도 비서의 뒤를 따라 들어온 남자를 보고는 굳어졌다.
지금 벌어진 사태를 수습하는 데에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안녕하세요.”
서정한이었다.
재언의 나가보라는 손짓에 비서가 물러나 문을 닫았다. 둘만 남은 집무실 안에서 재언은 불편한 감정으로 소파 쪽을 권했다.
서정한이 여기까지 올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그의 방문만으로도 재언은 평정심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건 모두, 소현의 마음이 지금 그에게 가 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로 왔습니까?”
나직하게 묻는 말에 서정한은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했다.
“손실 보는 금액은 차후 저한테 청구해주세요.”
그 말에 재언은 더욱 머리가 복잡해졌다. 지금 이 자식 뭐라는 거야.
“그게 무슨 소리…….”
“말 그대로예요. 소현 씨에 관련한 소송으로 손해를 입으실 테니, 그 금액은 모두 제가 배상하겠다는 말입니다.”
“장난하자는 겁니까.”
재언의 음성이 더욱 낮아졌다. 날 선 신경의 끝이 서로에게 첨예하게 향했다.
말없이 응시하는 시간이 영원처럼 길었다.
장난이 아니라는 듯 서정한의 눈빛은 진지하기만 했다.
이내 재언은 비소를 머금었다. 장난이 아니라면 머리가 돈 게 분명했다.
“그쪽이 무슨 수로?”
차애주가 다녀갔으니 그녀에게 소송 얘기를 듣고 뛰어온 모양이다.
고작 수천, 수억 정도일 거라 생각하는 건가. 상상치도 못할 액수일 텐데. 그걸 어떻게 다 감당하겠다는 건지.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애송이였다.
서정한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자신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마주 앉은 시간마저 아깝게 느껴졌다.
“지금 이게 애들 장난인 줄 아나 본데.”
치기 어린 마음으로 여기까지 쫓아와 저딴 소리나 지껄이는 남자라.
소현의 곁에 있을 가치조차 없는 남자가 아닐까 싶자, 순간 분노가 일었다. 하지만 지금 더 중요한 건, 이러고 있을 시간도 전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게 현실이었다.
“헛소리 그만하고 가시죠. 바쁘니까.”
소파에서 탁 일어난 재언의 뒤로 서정한의 음성이 들려왔다.
“‘메리 포핀스’라는 영화가 있어요. 20세기 초 영국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 영화.”
멈칫했다.
영국 작가 파멜라 린던 트래버스의 동화를 원작으로 월트디즈니 사에서 만든, 그야말로 옛날 영화였다.
그런데 지금 그 영화 얘기가 나올 시점인가.
서늘한 표정으로 돌아보는 재언을 향해 서정한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린 남매의 보모를 구하는 광고를 보고 메리 포핀스는 커다란 보스턴백과 앵무새 손잡이의 우산을 가지고 왔어요.”
대체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건지.
“카펫으로 만들었다는 그 가방에서 메리 포핀스가 제일 먼저 꺼낸 건 모자를 걸 수 있는 기다란 행거였고.”
“…….”
“그리고 커다란 거울, 커다란 화분, 장스탠드를 차례로 꺼내죠. 남매는 그 모습에 놀라구요.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가방보다 훨씬 더 큰 물건들이었거든요. 물론 구두나 옷, 줄자 같은 것도 계속 꺼내요. 그렇게 가방에서는 물건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남자아이는 그게 너무 이상해서 가방이 놓인 테이블 아래까지 살피는데…….”
“서정한 씨.”
“‘뭐든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돼.’”
단호한 음성으로 서정한이 말했다. 이내 폭발하려던 재언을 가라앉히듯.
“‘아무리 보잘것없는 가방이라도 나는 안 그래.’”
“…….”
“계속 의심하는 그 귀여운 아이들에게, 그때 메리 포핀스가 했던 말이에요.”
재언은 할 말을 잃었다.
별다른 부연 없이 서정한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그걸로 끝이었다.
그는 재언에게로 걸어왔다. 가까이 선 서정한의 눈빛은 달라져 있었다.
날카롭고 강렬한 시선은 애송이의 것이 절대 아니었다.
서정한은 재언을 보며 천천히 말했다.
“메리 포핀스의 가방은 누구에게나 있고, 두려움 없이 판단해선 안 되죠.”
“…….”
의심도 예단(豫斷)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배상은 제가 하겠습니다.”
서정한은 분명한 어조로 뜻을 전했다.
◇ ◆ ◇
“애주야, 언제 왔어?”
안채에서 나온 소현이 그늘 아래 평상에 앉은 애주를 보고 놀라움 반, 반가움 반으로 물었다.
“어, 일어났어요? 좀 푹 잤어요?”
가만히 앉아 있던 애주가 활짝 웃으며 소현의 손을 맞잡았다.
“응, 푹 잤어. 해가 중천이네.”
“그러게요, 얼굴이 훨씬 나아졌네요.”
“언제 왔어, 지금?”
“아니, 좀 아까요. ……근데 여기 너무 좋아요. 아무것도 안 해도 시간이 잘 가네. 마음이 편해져서 그런가.”
애주는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다. 평상에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를 음악 삼아 듣고, 고즈넉한 탐미재 안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응, 좋지.”
소현은 애주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밖은 전쟁터. 그리고 인터넷 세상도 전쟁터.
탐미재 밖 모든 곳이 전쟁터였다.
사실 만물의 전부인 것처럼 떠들어대는 그곳이 얼마나 좁은 세계인지, 여기 가만히 앉아 있으니 알 것도 같았다.
한없이 너른 세상은 이 안에 있었다.
그건 바로 마음이다.
마음을 지옥으로 만드는 것도, 천국으로 만드는 것도, 모두 자신의 의지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말과 그로 인해 몰아가는 상황이 생의 전부는 아니니 자신이 먼저 중심을 잡아야 했다.
중심을 잃고 쓰러지기 전에 이곳에 온 게 얼마나 다행인지.
“정한 씨는?”
“방금 전에 잠깐 다녀올 곳이 있다고 나갔어요. 곧 온대요.”
소현은 웃으며 끄덕였다.
탐미재, 그리고 서정한. 그 품 안에서 끊임없이 채운 사랑이 그녀를 웃게 했다.
다친 마음이 아물고 새살이 돋았다.
누구에게나 미움받을 수 있고, 오해받을 수 있고, 상처도 받을 수 있는 게 삶이라면, 한없이 어루만지고 끝없이 빈틈을 채워주는 건 사랑이었다.
비로소 숨을 쉬고, 높은 하늘을 멀리 바라볼 수 있는 건 모두 사랑 덕분이었다.
소현은 그렇게 다시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천천히 돌아볼 여유도 생기고 있었다.
“애주야,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이 있어.”
“뭐가요?”
“너무 당황스럽고 멍해서 그동안은 내가 잊고 있었는데. ……정말 어디 샵에서 내가 얘기하는 걸 누가 들었거나 아니면 다른 관계자 통해서 얘기가 흘렀거나 그럴 수도 있겠다고, 거기에 살이 붙어서 퍼지는 거라고 생각했었거든…….”
“그쵸, 아무래도.”
“그런데 있잖아.”
“네.”
애주는 눈을 크게 뜨고 집중했다.
터널을 헤치고 빠져나온 그녀가 뭔가 알아낸 것 같아서.
“마크 윤에 대해서는 내가 말한 적도 없지만, 밖에서 얘기할 필요도 없었거든. 실제로 미팅도 하기 전인 데다가 그 신랑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선 내가 진행하고 있는 게 지금까지는 아예 없어서.”
“어, 맞네요. 그러네!”
애주가 놀란 얼굴로 벌떡 일어섰다. 그래,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예비신랑에 대한 건 자신도 잊고 있었다.
“하태랑하고만 미팅했었고, 결혼식도 이쪽에서 알아서 다 진행하고 있던 거잖아요.”
“응. 마크 윤이라는 이름이랑 나이, 사업가라는 정보 말고는 내가 아는 것도 없었고.”
“가만있어봐, 그럼 언니 이거 진짜 이상하네요?”
애주의 심장이 쿵쿵거리며 심하게 뛰기 시작했다.
“결혼식이야 준비하다가 말이 새어나갈 수도 있다고 쳐도, 언니가 예비신랑이 누구인지까지 말하고 다닌 건 정말 아닌데.”
“응. 그럴 일이 아예 없었어.”
“그쵸. 같이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만난 적도 없고.”
“그런데 처음 올라온 글들에는, 되게 자연스럽게…… 언니가 신랑이 마크 윤이라는 것까지 얘기하고 다녔다고 나와 있었고요.”
소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만약 이게 하태랑 결혼처럼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 일반적이었다면 그 말이 통할 수도 있겠지.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게 진짜인지 알고 있는 거고. 그런데 이건 확실히 아니야. 난 마크 윤이라고 말한 적 없어.”
시작도 끝도 하나였다.
예비신랑이 마크 윤이라는 사실로 인해 일이 여기까지 왔다면, 그 사실로써 끝낼 수도 있었다.
거짓은 힘이 없었다.
“오히려 일반인이라 조심해야 한다고, 언니가 하태랑 결혼식에 대해 조심한 것보다 그쪽을 더 신경 썼잖아요.”
“그랬지. 예비신랑에 관한 자료도 이름, 나이, 직업 외에는 하나도 없었고. 내가 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어. 이건 퍼뜨린 사람이 예상하지도 못했겠지만, 결혼식 유출처럼 간단한 부분이 아니야.”
“신랑과 관해서는 관계자를 만난 적도 없고. 이쪽에서는 언니랑 저만 알고 있던 거구요.”
“그래, 딱 우리만 알고 있던 건데, 우린 마크 윤이 그렇게 엄청난 사람인지도 몰랐고.”
“알 필요도 없었구요.”
“그렇지.”
“누가 마크 윤에 대해 조사하고 어마어마한 재력가라는 걸 알기 전에는, 전혀 영양가 있는 정보도 아닌 거죠. 이렇게 문제를 만들 만큼.”
“그래, 맞아.”
애주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그 자료……, 언니 어디에 뒀죠?”
“출력도 한 적 없고, 사무실 데스크톱에만 있지. 내가 그건 너하고도 공유를 안 해서 파일은 내 컴퓨터에만 있을 거야.”
소현이 이어 말했다.
“찾을 거야. 누가 어떻게 퍼뜨린 이야기인지. 이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볼 거야. 일단 가장 먼저 글이 올라온 곳을 찾아서…….”
손 놓고 힘들어하기만 하는 건 이제 끝이다. 모호한 실마리라도 낚아챌 요량이었다.
그때 애주가 확신에 찬 눈빛으로 소현을 보며 말했다.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언니.”
“응?”
“그게 누군지, 시작이 어딘지, 찾을 수 있다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