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르고 웨딩-37화 (37/52)

37화– 아픔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오직2017.11.06.

“류 대표답지 않게 왜 이랬다저랬다 해? 뉴욕에서 보자던 사람이 갑자기 왜 이렇게 금방 들어온 건데?”

하태랑은 소파에 가방을 던지듯 놓으며 다리를 꼬고 앉았다.

화보 촬영차 뉴욕에 갔다가 귀국한 그녀는 류재언을 만나기 위해 사무실에 나온 참이다.

류재언은 집무테이블에 앉아 말없이 서류를 보고 있었다.

“은 대표님이랑 같이 보자고 했잖아. 뉴욕에 올 거라며. 안 왔었어?”

답답한 듯 하태랑이 재촉했다.

뉴욕에 있을 때 류재언의 지시로 라르고 특별전까지 다녀왔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관심도 없는 전시에 다녀오는 게 얼마나 성가신 일이었는지.

하태랑은 ‘화보 촬영 후 휴식’이라고 써서 그림을 보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SNS에 올렸고, 그 아래로는 언제나 기품 있고 예쁘다는 팬들의 찬사 댓글이 끊이질 않았다.

숙제하듯 해치운 일 후에 뉴욕에서 류재언과 은소현을 만나기로 했었다.

전시는 따로 보지만 하태랑의 예비 신랑과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었다.

「전시회에 은소현도 데려갈 거라 뉴욕 갈 거야. 난 싱가포르에서 바로 갈 테니 일정 체크하게 해둘게. 마크 윤한테도 미리 얘기해.」

「그래, 겸사겸사 잘됐네. 한국보다는 차라리 뉴욕에서 보는 게 안전하지.」

아직 은소현은 하태랑의 예비 신랑인 마크 윤을 만난 적은 없었다.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애초에 하태랑조차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며 만나왔었다. 그런데 웨딩플래너까지 동반하여 만나는 모습을 누군가의 눈에 띄게 할 수는 없었다.

한국과 홍콩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마크 윤은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면서도 톱스타인 하태랑과의 결혼은 절실히 원했다.

그는 대단한 성과를 내는 젊은 사업가였고 제 곁에 있는 하태랑으로 하여금 자신의 성공을 더욱 깊이 체감했다. 눈부시고 화려한 미모와 명성을 누리는 하태랑은 그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다.

하태랑도 마찬가지였다. 스스로의 힘으로도 많은 돈을 벌고 있지만 언제 밑바닥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이 내재해 있었다. 다시 가난해지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여기 올라왔는데, 하는 마음에 늘 어딘가 억눌려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 마크 윤은, 남은 인생을 안전하게 책임져줄 보증수표였다.

그러므로 하태랑과 마크 윤 두 사람 모두에게 이 결혼은 아무런 잡음 없이 조용히 치러야 할 중요한 행사였던 것이다.

여기엔 각자의 이익이 얽혀 있었다.

「결혼식이야 난 아무래도 상관없어. 당신이 원하는 대로 준비해.」

다행히 마크 윤은 결혼만 할 수 있다면 다른 건 따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하태랑이 원하는 건, 곧 류재언 대표가 만들어낸 방식이었다.

「네 결혼식은 회사에서 준비할 거야. 그대로 따르기만 해.」

「그렇게 해.」

하태랑과 마크 윤은 예술가 후원 모임에서 지인의 소개로 만난 것으로 설정하기로 했다. 마크 윤이 거액을 들여 하태랑과의 만남을 추진했었다는 건 물론 수면 아래 가라앉혔다.

또한 두 사람이 함께 후원과 기부를 하는 일도 미리부터 착착 준비해두었다.

아주 작고 소박한 결혼식도 이미지 메이킹의 일환이었다.

하태랑의 결혼마저 좋은 이미지를 연출하는 데에 활용을 해서 최대의 이익을 창출해낼 수 있었다. 추구하는 건 ‘작은 결혼식’이지만 이면에는 오고 가는 게 꽤 많았다. 모두의 이익이 딱 맞아떨어졌다.

그렇게 ‘비즈니스’ 그 자체인 결혼식에 오직 순수한 존재가 있다면 바로 은소현이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 채 하태랑의 행복한 결혼식을 위해 주야장천 뛰고 있었던 것이다.

온통 거짓이란 걸 누구도 알 수 없을 만큼 완벽한 꾸밈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일 있었어?”

하태랑은 심각해진 얼굴로 류재언을 보며 물었다.

“그 자리도 임 실장이 힘들게 겨우 만들었던데 아깝게 안 오고.”

평소 하태랑은 기자들이나 사람들을 피해 마크 윤과 만나는 방법이 치밀하고 복잡했었다.

비행기나 호텔을 다중으로 예약했다. 주변 스태프를 이용해 여러 경로로 돌고 돌아서 접선하듯 만날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볼 수 없도록.

한 명의 목격담은 파도를 타고 넘어 곧 수십 명, 수백 명, 곧 수만 명의 목격담으로 뒤바뀔 것이고 그 아래 수많은 루머가 양산될 것은 자명했다.

그런 이유로 하태랑의 지인들조차 아직 신랑이 누구인지 몰랐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가장 우선이 되는 건 ‘공식발표’여야 했다. 열애든 결혼이든.

그래야 불필요한 억측을 막고 깔끔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결혼 발표도 식 전에 빠듯하게 할 예정이었다.

게다가 마크 윤의 신원은 철저히 감출 생각이었다. 마크 윤이 그걸 원했다.

사업가이긴 해도 일반인이라는 점을 고려해 류재언도 최대한 그의 요구에 응할 생각이었다. 보도자료에도 ‘삼십 대 중반의 국제 사업가’ 정도로만 내보낼 예정이었다.

“근데 왜 우리도 안 보고 서울에 빨리 들어온 거냐고. 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됐어.”

연이어 몰아치는 하태랑의 말에 류재언이 그제야 겨우 착잡한 음성으로 답했다.

이제 보니 류재언의 얼굴이 무척이나 수척해져 있었다. 잠도 제대로 못 잔 듯 눈이 충혈되어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류 대표, 차였어?”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서류를 넘기던 류재언의 손이 멈추었다. 곧 한숨이 스러지듯 뒤덮였다.

“어휴, 진짜 차였나 봐. 무릎은 꿇었어? 울기는 했고? 제대로 매달려보기는 했어? 그러고도 진짜 차인 거야, 확실히?”

“그래.”

“뭐?”

“다 했어.”

류재언이 천천히 고개를 들며 하는 말에 하태랑은 살짝 놀랐다. 매달렸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자신에게 그걸 순순히 말해준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진짜 류재언 맞나 싶었다. 아무래도 멘탈이 정상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도 안 받아준대?”

“그만하자.”

펜을 탁 놓으며 류재언이 일어섰다.

괴로워 물 한 모금 넘기기 힘든 상태라도 일은 해야 했기에.

“사무실에서 노닥거릴 생각 말고, 가서 마사지를 받거나 운동이라도 해.”

하태랑의 손목을 붙들고 일으켰다.

“아니, 자세하게 얘기 좀 해봐. 어떻게 고백했는데? 뭐라고 했는데? 왜 실패했는지를 알아야 고칠 건 고치고 다시…….”

“가.”

사무실 문을 열고 하태랑을 내보냈다.

“야! 류재언!”

문을 두드리는 톱배우의 절규를 모른 척하고 류재언은 다시 집무테이블로 돌아왔다. 머리가 심하게 지끈거렸다.

◇ ◆ ◇

“언니한테 얘기 듣던 것보다 훨씬 더 멋진데요?”

애주의 눈이 별처럼 반짝거렸다.

서울에 돌아온 후, 정한은 소현과 함께 애주를 만나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같이 만난 자리에서 내내 소현을 향한 정한의 다정한 눈빛을 보며 애주는 무척 흡족했다.

애주는 정한이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자리를 비운 사이 소곤소곤 칭찬을 이어갔다.

“어쩜 언니가 닳을까, 깨질까, 아주 조심조심, 너무너무 이뻐하는 게 눈에 보여서 진짜 보기 좋아요.”

시작하는 연인의 예쁜 모습을 보며 애주는 이제야 소현이 제짝을 만났구나 싶어 마음이 흐뭇했다.

“하와이에서 볼 때보다 훨씬 더 잘생긴 것 같은데요? 진짜 얼굴이 꽃이네, 꽃이야. 저 얼굴이 마주 보고 좋아한다는 말 해주면 현실감이 있어요, 언니?”

“없엉.”

헤헤, 웃는 소현을 보며 애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만에 빙구가 다 되었구나, 우리 언니. 그럴 법도 하지, 암. 나라도 정신을 놓겠네, 하며.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서정한 씨가 나보다도 나이가 어리네요……. 근데 그게 무슨 상관. 형부는 형부니까.”

“형부는 무슨……. 아직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말과는 달리 소현의 볼에는 홍조가 가득했고, 애주는 방긋 웃으며 호칭을 정리했다.

“형부랑 꼭 백년해로해요, 언니.”

애주가 손을 꼭 잡으며 하는 말에 소현은 기시감을 느꼈다. 뉴욕에서도 분명 들었던 말이었는데.

「두 사람 끝까지 열심히 백년해로하는 거야. 그럼 돼. 알았지?」

요즘 누가 이런 말을 쓴다고, 짠 듯이 나란히 덕담을 해주는 두 사람 덕분에 소현은 괜히 부끄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앤드류나 애주처럼 좋은 사람들이 바로 곁에 있으면서 힘이 되어주니 마음이 꽉 차올랐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행복한 날들이었다.

애주와 헤어져 집으로 가는 차 안.

운전을 하는 동안에도 정한은 오른손으로 소현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신호에 걸려 이따금 눈이 마주치면 웃는 얼굴이 애주의 말처럼 현실감 없게 느껴졌다.

“탐미재, 너무 오래 닫아놔서 어떡해요? 내일부터 연다고 했죠? 모레인가?”

“책방 오시는 분들은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졌대요. 이렇게 닫고 자리 비우는 일이 좀 있어서, 헛걸음하지 않으시게 매일 탐미재 SNS에 오픈 여부 공지를 띄워요. 어머니 일 때문에도 그렇고, 혼자 여행을 가는 일도 종종 있었거든요.”

직원 하나 두지 않고 그가 책방을 운영할 수 있었던 건, 그나마 매여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책방에 오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비정기적인 휴일에 불만스러워했지만, 점차 여유로운 정한에게 동화되어 이제는 한결 편안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너무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게으른 것도 아닌.

딱 본인이 그 행복에 책임질 만큼만 누리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모레 열려구요. 내일은 어머니 뵈러 가고.”

정한의 말에 소현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나중에 혹시, 거기…….”

“얘기해요.”

“나도…… 같이 갈 수 있어요?”

소현의 동네에 도착했다. 놀이터 앞에 정차한 정한은 시동을 끄고 숨을 크게 쉰 후 소현을 보았다.

“병원에요?”

“안 될까요? 뭐, 난 언제든 상관없으니까 그럼 나중에 될 때 얘기해줘요.”

“괜찮겠어요?”

복잡한 눈빛이었다.

심연처럼 깊고 아득한 눈빛이었다.

그가 어떤 마음일지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소현은 최대한의 정성을 담아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데려가주면, 정말 고마울 것 같아요.”

한 번쯤 꼭 직접 뵙고 인사하고 싶었다.

자신을 알아보진 못하겠지만, 손을 잡고 눈을 마주 바라보고 싶었다.

정한은 소현의 진심 어린 음성을 들으며 잠시 침묵을 머금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내일, 같이 갈까요?”

◇ ◆ ◇

날이 맑고 환했다.

어떤 표정을 지어도 슬픔조차 고스란히 드러날 것만 같은 쨍한 날씨였다.

“선생님 애인 예쁘다. 너무 예뻐요.”

자신의 앞에서 정한의 어머니가 천진하고도 맑은 미소를 지었다. 마치 고운 인형을 바라보듯 꿈꾸는 눈동자로.

소현이 기억하는 아주머니 그대로였다.

살짝 더 야위고, 체구도 조금 더 작아진 느낌이었지만 환히 웃는 얼굴은 그대로였다.

“그림은 많이 그렸어?”

“네, 여기 보세요.”

그는 어머니에게 그림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이었다.

아들이었고, 남편이었고, 애인이었고, 타인이었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선생님이 되었다고 했다.

아들에게 존대를 하며 그림을 배우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옆에 있는 소현의 마음이 못내 미어졌지만 정작 정한은 고요하고 차분했다.

동요 없이 그저 담담하고 다정한 자세로 제자로 대했다. 분명 어머니라는 걸 인식하면서도, 어디 하나 아픈 구석 없다는 듯 마음을 꾹꾹 누른 채 그는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정한을 보는 소현의 마음에 존경이라 할 수 있을 만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꽃이 엄청 많네, 여기엔.”

어머니의 드로잉북 한 페이지에 온갖 꽃이 둥근 형태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어머니는 신이 나서 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정한에게 설명해주었다.

“이건 수국이구요, 이건 줄리엣로즈, 이건 작약, 이건 화이트 오하라로즈…….”

“지난번에 준 그림에도 작약이랑 오하라로즈가 있었지?”

“네.”

정한이 기억해준 것이 기분 좋은 듯 어머니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보고 있던 소현이 말했다.

“꼭 신부들이 드는 부케 같아요. 부케에 많이 쓰는 꽃이기도 하고.”

그 말에 어머니의 눈이 동그래졌다.

“맞아요. 이거 결혼식 부케.”

그리고 활짝 미소 지으며 이어 말했다.

“난 나중에 이런 예쁜 부케 들고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 거예요. 아기도 낳고, 강아지도 키우고.”

인생의 끝자락에 서서 꿈을 이야기하는 어머니.

어머니의 과거와 조우하는 것은 생각보다 아프고 어려운 일이었다.

뭐든 이해해주는 어머니 덕분에 평생을 자유롭게 바깥으로 돌았던 아버지.

아버지의 욕심으로 먼 타국에서 공부를 했던 아들.

그렇게 사랑하는 이들 모두 멀리 떠나보내놓고 어머니가 바라던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그것 또한 사랑이라 믿었을까.

외로움으로 멍들어가는 자신을 스스로 방치한 채, 어머니는 어떤 세월을 보냈을까.

추억으로 살았을까. 희망으로 살았을까.

행복을 미루지 말아야 했다.

사랑은 아무리 해도 닳는 것이 아니니.

채우고 채워도 퍼내면 자꾸 비어가는 우물과도 같아서, 생을 다하는 날까지 계속 퍼부어도 모자란 것이 사랑이었는데.

순간이 영원하리라 착각도 하지 말 것이고, 후회는 없을 거라 자만도 하지 말 것이었다.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을 다하는 일.

그리하여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바닥이 드러나지 않도록 생의 끝까지 사랑하는 것.

그뿐이었다.

“잠깐만요.”

자리에서 일어난 어머니는 미술치료실 내의 상주 교사에게 부탁해 가위를 받아 왔다.

그리고 꽃을 그린 페이지를 북 찢어냈다.

“어?”

소현이 놀라서 쳐다보는데, 걱정하지 말라는 듯 어머니는 생긋 웃으며 가위를 들었다. 유려하게 움직이는 가위 날이 꽃의 가장자리를 오려갔다.

사각사각.

마침내 형태를 갖춘 둥근 꽃묶음이 종이에서 깨끗이 갈라져 나왔다. 생기가 도는 듯 착각이 들 정도로 어여뻤다.

“됐다.” 하고 중얼거린 어머니는 종이꽃을 조심히 들고 소현에게 안기듯 주었다.

마치 예상 못 한 경로로 날아든 토스부케를 잡아 든 하객마냥 얼떨결에 종이부케를 받아든 소현을 보며 어머니는 환히 웃었다.

“꼭 행복하세요.”

“…….”

“사랑하고, 사랑받으면서.”

어머니의 먹먹해진 눈망울이 물기에 젖은 유리알처럼 빛났다.

내 아들, 잘 부탁해.

마치 그런 눈빛으로 어머니는 소현의 손 위로 살며시 두 손을 포개어 잡았다.

종이부케를 잡은 손 위를 가득히 덮은 어머니의 온기가 오롯이 느껴졌다.

따뜻하고 아릿했다.

어머니, 감사해요.

소현은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말을 속으로 삼키고, 눈물 또한 꾹 누르며 담담히 미소 지었다.

환한 햇살이 밀려들어 세 사람을 비추었다.

아픔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오직 사랑이었다.

◇ ◆ ◇

정한과 헤어져 집에 들어온 소현은 그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종이꽃 부케를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였다.

여기가 좋을까, 저기가 좋을까.

평면의 종이에 색연필로 그린 꽃이지만, 꽃잎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듯 생기가 넘쳤다.

직접 그리셨다니 더욱 애틋하게 느껴졌다.

행복을 빌며 주신 선물이기에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다.

그렇게 종이꽃 부케를 TV 옆 벽에 붙여두고, 집에 들어오면 가장 잘 보이는 위치임을 확인한 후 소현은 정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신을 데려다준 후 탐미재로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아직 가고 있는 중이에요?”

- 거의 도착했어요.

“……벌써 또 보고 싶다.”

소현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말을 놓칠 리 없는 정한이 바로 물었다.

- 차 돌릴까요?

“아니, 그게 아니라.”

- 가뜩이나 집에 내려주기 싫었는데, 나 괴롭히는 거죠?

“아니, 그건 또 아닌데.”

재고 따지는 것 없이, 달려들어도 너무 직진으로만 달려드는 남자였다.

이런 실랑이조차 가슴 설렌다는 걸 예전엔 모르고 살았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통화하며 밤을 새울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모든 게 처음처럼 낯설지만, 그래서 좋기도 했다.

- 도착했어요. 들어가서 씻고 다시 전화할게요.

“네, 안 자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복에 겨운 나머지 불안을 느끼며 기분 좋게 전화를 끊었을 때였다. 애주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밤중에 무슨 일이지?”

의아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을 때, 애주의 떨리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 ……언니, 인터넷 봤어요?

“인터넷? 무슨?”

- 놀라지 말구요. 일단, 너무 놀라지 말고…… 인터넷 한번 봐요. 포털사이트 메인페이지.

노트북을 켤 새도 없을 것 같아 소현은 통화를 계속 할 수 있게 스피커폰으로 전환하고는, 휴대전화 화면으로 인터넷을 열었다.

“무슨 일인데 그…….”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포털사이트에 접속했을 때, 간결한 모바일용 페이지에 낯익은 이름이 잔뜩 떠 있었다.

소현의 사고회로가 단숨에 멈추었다.

하태랑.

“이게 뭐야……?”

하태랑 결혼.

한류스타 하태랑, 비밀리에 올해 11월 결혼 준비 중.

걷잡을 수 없는 불길처럼 실시간 검색어와 온갖 기사에 하태랑의 이름이 가득했다.

“이거 어디서 나갔어? 알려지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어? 정식으로 발표한 거래?”

아직 때가 아닐 텐데, 그런 얘기는 나도 아직 못 들었는데, 하면서 이것저것 링크를 누르는 소현의 손이 덜덜 떨렸다.

- 언니, 그게…….

애주의 난감한 음성만 들어도 알 것 같았다.

지금 이게 무슨 일인지.

배회하던 소현의 손가락이 검색결과에 걸린 어느 커뮤니티 글 제목 위로 멈추었다.

[(펌)지금 난리 난 하태랑 결혼설 유출 배경.txt]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안 좋은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겨우 그 글을 클릭했을 때 쏟아져 나온 활자에 소현의 머릿속이 그만 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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