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르고 웨딩-32화 (32/52)

32화– 설렘으로 부푼 꽃빛 입술을 열어2017.10.20.

너 어떡할래? 그 집에 침실은 하난데, 침대가 딱 하나밖에 없는데.

그렇게 앤드류는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생글생글 웃었다.

다른 문제가 아니다.

정한과 자신은 성인 남녀. 게다가 서로에 대한 마음이 활활 타올라버린, 이제 막 시작하는 연인이 아니던가.

‘위험해.’

자신이 위험한 게 아니다.

소현 자신 때문에 정한이 위험했다. 신선 같고 선비 같은 저 남자를 혹시 자신이 섣부르게 건드리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하……, 제가 아직 몸이 안 좋아서요. 아, 알죠? 나 여기서 쓰러졌잖아요.”

“누가 뭐래?”

앤드류가 어깨를 들썩했다. 아픈데 어쩌라고, 하는 얼굴로.

자신은 그냥 소현의 질문에 답을 해준 것뿐이고, 집에 대한 정보를 있는 그대로 말해준 것뿐이라는 당당함이 배어 있었다.

그 덕분에 소현의 볼이 더더욱 붉어졌다.

“아, 덥다.”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저쪽에서 환한 얼굴로 정한이 오고 있었다.

“열쇠 받았어요. 여긴 한국처럼 도어록이 잘되어 있질 않아서 좀 번거롭게 됐죠. 여기서 가까워요, 얼른 가요.”

가잔다.

침실은 하나고 침대도 딱 하나뿐인 그 집으로 어서 가잔다.

“네…….”

조용히 대답하며 일어서는데 순간 정한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어, 소현 씨 열나요?”

벌게진 볼을 보고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다.

그러면 내가 더 당황스러운데요……. 소현은 마른침을 겨우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여기가 살짝 더워서.”

“아직 회복된 것도 아닌데 너무 무리했나 봐요.”

그는 미안한 표정으로 소현을 부축하듯 붙들었다. 정한이 가까워지자 그녀의 심장은 더욱 큰 소리를 내며 쿵쿵 울렸다.

“몸이 너무 뜨거운 것 같은데. 어서 가서 쉬어야겠어요. 앤디, 우리 갈게.”

심각한 얼굴로 정한은 소현과 짐을 동시에 챙겼다.

떠나는 정한을 배웅하러 나온 앤드류가 그의 어깨를 손으로 툭툭 두드렸다.

몸조심하게, 친구.

결연한 눈빛으로 정한을 다독이며 택시를 잡아주었다.

소현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사실 갤러리에 간 김에 라르고의 작품들을 다시 한 번 감상하고 싶었는데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나오게 되었다.

침실은 하나요, 침대도 하나라네.

오직 그 말만이 소현의 머릿속에 가득했다.

새벽녘 아무도 밟지 않은 흰 눈처럼 순백으로 빛나는 정한이 그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금방 도착해요. 가서 쉬면 되니까 조금만 참아요.”

쉬는 게 문제가 아니라, 곧 도착하는 게 문제거든, 이 사람아.

소현은 이러다 심장이 과부하로 고장이라도 나는 게 아닐까 두렵기만 했다.

물론 침대가 하나뿐인 집에서 둘 중 한 사람은 소파나 바닥에서 잘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다. 눈에 뵈는 게 없을 때라면 장소를 어찌 가릴 수 있겠는가.

차라리 방이 두 개라 문이라도 걸고 자면 안전할 텐데.

물론 안전한 쪽은 정한이다.

‘난 이미 틀렸어.’

사실 별소리도 아닌데 침대가 하나라는 말이 왜 그리 들렸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소현은 가슴이 터질 듯 두근거리기만 했다.

‘가운 차림으로 안겨서 그런가?’

평소 입는 옷보다도 두꺼운 타월 재질의 가운이었다. 안기는 감촉이 그리 생생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현은 완전히 벗고 있던 몸에 단 하나 걸친 가운 때문이었는지, 그렇게 안기고 났더니 정한의 모든 게 새로웠다.

부드러운 이미지라고만 생각했는데 미간을 살짝 좁히며 걱정하는 저 표정마저 괜히 야해 보였다. 세심하게 깎은 듯 높고 반듯한 콧등도, 날카로운 턱선도, 커다랗고 따뜻한 손도.

야했다. 하여튼 다 야했다.

정한은 이전과 같은 모습인데 자신만 달라진 것 같았다.

‘내가 미쳤나 봐.’

찬물이라도 뒤집어써야 하는 건 아닐까. 그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정신 좀 차려야 할 텐데.

“미안해요.”

이마를 짚었다가 손을 잡았다가 하면서 연신 염려하는 정한에게 대뜸 소리 내어 사과했다.

“소현 씨가 왜 미안해요. 내가 미안하지.”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네?”

순수한 백지에 감히 먹을 뿌려대는 나를 용서해줘요.

“아무튼 미안해요.”

쉬면서 수양이나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사이 갤러리에서 가깝다던 집에 도착했다.

부촌으로 보이는 거리였다.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3층 정도의 건물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와. 무슨 미드 속에 들어온 기분이에요.”

뉴욕의 여러 주거형태 중에서도 돈이 좀 있는 등장인물이 건물 전체를 집으로 사용하는 식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좋은 집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협소한 아파트먼트가 아니었어?

도로로 뻗어 있는 계단을 밟고 올라가서야 현관이 나왔다.

정한이 열쇠로 열고는 현관문을 잡고 섰다. 먼저 들어가요, 하는 눈빛으로.

소현은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섰다.

“……와아.”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내부가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층고가 높아 시원스럽고, 현대적이지만 차갑지 않은 분위기로 꾸며져 있다. 세련되고 키치한 소품이 군데군데 포인트로 자리하고 있는 덕분이었다.

앤드류가 왜 뉴요커의 집이라고 했는지 바로 이해가 갔다.

“여기 진짜 예뻐요. 아니, 멋있어요.”

어떤 감탄사도 모자란 기분이었다. 호텔도 근사했고, 류재언의 집도 대단했지만 확실히 여긴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집 자체가 예술이고 여백조차 작품 같았다. 이 자체로 그냥 전시해도 좋을 정도였다.

탐미재라는 작은 공간도 완전히 꽉 찬 느낌이었는데 여긴 넓은 공간 그대로의 장점을 완벽히 살린 듯했다.

“공간을 다 터버려서 조금 휑하죠.”

“아, 다 튼 거였구나. 어쩐지 굉장히 넓다 했어요.”

일반적이지 않은 구조라 더 독특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한쪽에 있는 나선형의 계단이 조형물처럼 아름다웠다. 올라가면 2층이지만 실제로는 3층 높이에 가까울 것이다.

“소현 씨, 이제 좀 쉬어야죠.”

위쪽으로 시선을 두었던 소현은 정한을 돌아보았다.

“병원은 다시 안 가도 되겠어요? 의사 부를까요? 앤디한테 얘기하면 되는데.”

“아니, 괜찮아요.”

그 정도는 아닌데 너무 걱정을 하게 해서 민망하기까지 했다. 원래 튼튼하기로 유명한 몸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병원 신세를 자주 지게 되었는지 부끄럽기만 했다.

“침실은 이쪽이에요. 방을 하나밖에 안 남겨놔서.”

앤드류의 침실 하나 드립이 다시 떠올랐다. 허얼, 진짜였구나.

“아, 저…….”

침실로 안내하려던 정한을 불러 세웠다.

“나 진짜 여기서 자도 괜찮아요?”

“그럼 어디에 가서 자려구요.”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어디로도 보내지 않을 거라는 듯 정한이 바로 대답했다.

“아니, 그건 아닌데.”

누나가 좀 힘들 것 같아서 그래…….

“힘들면 업어줘요?”

“걸을 수 있어요!”

까딱하면 업힐세라 소현은 씩씩하게 걸어 침실로 향했다. 침대가 무척 크고 푹신해 보였다.

정말로 이 집에는 침실 하나, 침대도 딱 하나였다.

“욕실은 이쪽이에요.”

정한의 세심한 안내가 끝나자 소현의 관심은 소파에 집중되었다.

“와, 소파 진짜 크고 좋다. 여기서 자도 되겠어요. 무슨 소파가 굴러다녀도 충분하겠네. 나 여기서 잘게요.”

소현은 과장을 보태가며 소파에 대한 극찬을 늘어놓았다.

부디 그냥 소파에서 잘 수 있게 해줘요. 침대에서는 내가 좀 괴로울 것 같으니까.

하지만 정한은 그제야 깨달음이 온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 소현 씨 생각을 제대로 못 했어요. 미안해요. 여기 나랑 둘이 같이 있는 거 불안할 수도 있을 텐데.”

다른 뜻으로 이해한 게 분명했다.

보호받아야 할 쪽은 내가 아니라 그쪽이라니까.

“내가 앤디 집에 가서 잘게요, 소현 씨 여기 있는 동안에는.”

“아, 아니요!”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소현이 얼른 큰 소리로 부정했다.

“이 집 너무 큰데, 혼자 있으면 무서울 것 같아서요.”

그건 사실이다.

호텔방에서 혼자 자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아무도 없는 큰 집에 밤새 혼자 있는 건 생각만 해도 두려웠다.

“그게 또 그렇네. 어쩌죠. 그냥 호텔방을 두 개 잡을까요?”

배려심이 넘쳐도 너무 넘쳤다. 멀쩡한 집 놔두고 바로 호텔을 잡겠다는 얘기를 하다니.

“아니에요, 그럴 필요 없고, 괜찮아요. 여기 같이 있어요.”

결론은 하나였다.

자신만 조심하면 된다.

이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에 대한 걱정과 배려로 가득한 남자를 처음부터 놀라게 해서는 안 된다.

이제 시작하는 사이를 망칠 수는 없었다.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너무 서두르지 말자.

소현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고 보듬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내가 소파에서 자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믿어줘서 고맙다는 얼굴로 정한이 그녀의 속도 모르고 웃었다.

그린 듯 아름다운 미소였다.

◇ ◆ ◇

뉴욕에 두고 온 집이 예전 그대로라 정한은 조금 놀랐다. 떠나온 지가 벌써 몇 년인데.

혼자가 된 어머니의 곁에 잠시 머물기 위해 하와이로 돌아가기 전과 변함이 없었다.

어머니의 뜻하지 않은 병환이 시작되어 그는 하와이에서 계속 지내게 되었고 이어 한국까지 가게 되었기에 이곳으로는 돌아오지 못했다.

정한이 그림을 가장 많이 그렸던 곳이다.

정신없이 작업에만 몰두했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가장 열정적이고 가장 뜨거웠던 나날들.

앤드류가 그렇게 뉴욕으로 불러들여도, 잠깐이라도 오기 싫어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정한이 주로 작업했던 대형 사이즈의 캔버스는 환경을 제대로 갖춘 작업실이 아니면 다시 손대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하와이에서도, 한국에서도, 온전히 작업에 빠져들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었기에 정한에게 있어 작업실이란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공백이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기에 와 있다.

소현을 찾기 위해 아무 생각도 없이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는 것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이 공간에 소현이 들어와 있다는 것 역시 그랬다.

앤드류를 제외하고는 개인적으로 이곳에 부른 사람은 없었다. 소현이 처음이다.

「여기 진짜 예뻐요. 아니, 멋있어요.」

꾸미지 않은 언어로 감탄하며 눈을 반짝거리는 소현이 너무도 예뻤다.

그녀의 눈빛이 사랑스러웠다. 여기저기 바라보며 좋아하는 모습이, 탐미재에서와 꼭 같았다.

처음으로 누군가와 공간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고, 마음을 나눈다는 사실에 가슴이 떨렸다.

앞으로 무얼 하든 모두 소현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어떤 것이든 함께 이야기하고, 같은 꿈을 꾸고 싶어졌다.

그녀가 보여줄 눈빛, 미소, 시선, 걱정, 감탄, 그 모든 것이 기대되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심하게 씩씩한 태도로 대답하고 움직이던 소현은 수프를 한 그릇 비우고는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나,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제 완전 괜찮아요.」

말과는 다르게 지쳐 있던 소현의 몸은 침대에 오르자마자 쏟아지는 잠을 주체하지 못했다.

자신이 걱정할까 봐 일부러 괜찮은 척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좀 아프다고, 좀 힘들다고, 이제는 투정도 좀 부려도 되는데.

그래야 더 많이 안아주고, 더 세게 붙들고 놓지 않을 텐데.

정한은 곤히 잠든 소현의 얼굴이 예뻐서 그저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꿈같네.”

믿기지 않는 현실.

이 순간을 절대 깨뜨리지 않고 싶었다.

어렵게 얻은 사랑, 귀하게 여기고 소중히 지키겠다고.

소현의 속마음과는 또 다른 쪽으로, 정한 역시 이 사랑을 망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 ◇

“……아아, 너무 많이 잤나 봐.”

어느새 밖은 어두워진 듯했다.

소현은 그 어느 때보다 달콤한 잠에 푹 빠졌다가 일어났다. 더 이상 몸이 무겁지 않다. 컨디션이 훨씬 좋아진 듯했다.

침대에서 가뿐하게 내려온 소현은 침실 밖으로 나갔다. 툭 터진 공간 한쪽에는 마치 요리방송을 위한 스튜디오처럼 잘 꾸며진 주방이 있었다.

잠들기 전에 정한이 그곳에서 수프를 끓여주었다. 의자에 앉아 정한을 마주 바라볼 수 있어 좋은 구조였다. 소현은 그쪽으로 다가갔다.

“일어났어요?”

“네, 뭐 하고 있어요?”

정한은 냄비에 무언가를 끓이고 있었다.

“아까는 해줄 게 레토르트 수프밖에 없어서, 죽이 좀 더 낫지 않을까 싶어 밖에 나갔다 왔어요.”

“나 이제 진짜 환자 아닌데.”

“다른 거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아, 그 얘긴 아니구요. 괜히 신경 쓰게 하는 것 같아서.”

음식투정이 아니라 정말 괜찮다는 얘기였다. 이런 대접을 받는 게 사실 익숙하지 않아서였다. 과로로 가볍게 쓰러졌다고 이렇게까지 극진하게 살핌 받고 챙김 받은 게 얼마 만이던가.

조금만 아프고 다쳐도 온갖 걱정을 하시던 부모님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나자, 소현은 엄청난 상실감에 세상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리고 홀로 서는 것에 익숙해지자 이제는 이런 챙김이 오히려 어색해졌다.

슬프지만 그랬다. 잃어버린 세상은 다시 채워지지 않았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냥, ……고마워서 그래요.”

자신이 자고 있는 동안, 먹을 것을 사와 냉장고를 채우고 요리하며 기다리는 남자.

게다가 자신을 이토록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남자.

좋았다. 좋아도 너무 좋았다.

이렇게까지 좋을 수 있을까 싶게 좋았다.

눈도 좋고, 코도 좋고, 입술도 좋았다. 웃는 얼굴도 좋고, 걱정하는 얼굴도 좋았다.

자신의 손을 잡아주던 커다란 손도 좋고, 품으로 꽉 끌어당기던 손도 좋고, 요리를 하는 손도 좋았다.

다정한 말투도 좋고, 애틋한 눈빛도 좋았다.

하나하나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그냥 다 좋았다. 너무 좋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울어요?”

아, 또 눈물이 나버렸다.

놀란 그가 얼른 인덕션 전원을 끄고 가까이 다가왔다. 두 손으로 볼을 감싸고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정한을, 소현은 하염없이 올려보았다.

“울보였네, 소현 씨.”

원래 이렇게 잘 울지 않는데.

힘들어서 우는 거 아닌데.

좋아서, 고마워서, 사랑해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서, 그만 울고 있는 줄도 몰랐는데.

소현은 아니라며, 울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우는 게 왜 이렇게 예뻐요. ……미치겠네.”

가까이 다가서 있는 정한에게서 나직하게 터진 말에 소현의 심장이 다시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미치겠다는 말이 이렇게 달콤한 말이었던가.

“나, 그럼 매일 울 건데.”

예쁘다는 소리에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아무 말이나 중얼거리는데 정한이 손으로 부드럽게 눈 아래를 닦아주었다.

“그래, 울어요. 울고 싶으면 매일도 괜찮으니까.”

“…….”

“내 앞에서만.”

언제라도 닦아줄 수 있게.

꼭 내 앞에서만.

정한의 깊은 시선이 자신에게로 온전히 향해 있었다. 이 남자를 홀로 독차지해도 정말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소현은 까치발을 들었다. 도저히 정한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눈물이 스쳤던 입술을 그에게로 포갰다. 용기도 아닌 본능이었다.

미안하지만, 난 인내심이 별로 없어요.

마주 닿은 입술이 부드럽게 눌렸다.

이런 감촉이었다. 말랑말랑하고 뭉클한 느낌. 하와이에서 했던 키스 이후 입술이 닿은 건 처음이었다. 잊고 있던 기분 좋은 촉감에 숨이 차올랐다.

소현은 그렇게 먼저 그의 입술에 꾹 눌렀던 입술을 이내 떨어뜨렸다. 소현의 숨이 느리게 흩어졌다.

우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좋았다. 더 하고 싶었다. 조금 더 입술을 맞대고 조금 더 품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될까.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소현은 정한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제게 깊이 머물렀다.

“소현 씨.”

낮은 음성이 간질간질 제 이름을 머금었다.

정한은 손으로 소현의 눈 밑을 다시 쓸고, 볼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다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엄지가 귓불에 닿자 소현이 움찔 놀라며 눈을 꼭 감았다.

“내가 소현 씨 얼마나 안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면서.”

“…….”

“자꾸 위험하게 만드네.”

이보다 더 감미로운 노래가 어디 있던가. 눈을 꽉 감은 채로 정한의 목소리만 듣고 있으니 세상에 오직 둘뿐인 것만 같았다.

“이러면 나 나쁜 놈이라고 욕할 수도 있는데.”

순간, 나쁜 놈이라고 욕할 일이 생기길 바랐다. 나쁜 놈 아니라는 거 아니까. 내가 더 원하니까. 그만큼 애가 탔다.

“나 소현 씨 만지고 싶을 때 많거든요. 못 참을 수도 있으니까, 앞으로는 먼저 이렇게 입 맞추고 그러지 말아요.”

경고가 감사한 순간.

그의 마음이 어떤지 알았다. 위험한 건 피차일반이었다니.

눈을 감은 채로 소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말을 듣지 않을 거라는 신호였다. 나 또 먼저 이렇게 입 맞추고 그럴 거라고. 자극이 된다면 더 할 거라고. 미치게 할 거라고.

그러니 지금, 애써 참지 않아도 된다고.

터질 듯한 가슴을 달래며 소현은 제 뜻을 전한 채 잠시 기다렸다.

이내 느껴졌다.

설렘으로 부푼 꽃빛 입술을 열어 한껏 스며드는 숨결이.

깊게. 더 깊게.

가만히 파고드는 손길은 하염없이 간절했다.

서로에게 멈추지 않고 다가가는 순간, 섬광처럼 아찔한 빛이 쏟아지는 밤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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