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르고 웨딩-7화 (7/52)

7화– 여기서 결혼식 하게 해줘요2017.07.24.

“……아아아악!”

사색이 된 은소현이 소리를 내질렀다.

맞은편에 앉은 재언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 어…… 어흐, 이, 이게 왜…….”

은소현은 젖어버린 화집에 손도 대지 못한 채 그저 어찌할 바 몰라 했다.

「나 이거 조심해서 봐야 해. 잘못해서 찢어지거나 오염되기라도 하면 나한테 덤터기를 씌워서 얼마나 비싼 가격에 물어내라고 할지 모른다고.」

은소현이 과연 저 화집을 배상해낼 수 있을까.

아니.

재언이 아는 한 그녀의 재정상태로는 절대 배상이 불가능하다.

당장 사무실 월세 내기도 빠듯해하는 은소현이 무슨 수로 저 화집 값을 물어낸단 말인가.

믿는 구석은 자신 하나뿐일 것이다.

지금껏 늘 그랬듯 말이다.

은소현은 화집을 배상하기 위해 결국 제게 돈을 빌려달라고 할 테지.

그깟 돈, 빌려주면 그만이다. 받지 않아도 상관없다.

재언이 은소현에게 얹어주고 싶은 것은 단순한 빚이 아니었으니까.

마음의 빚.

그녀의 곁에서 차곡차곡 빚을 쌓아주고 있는 중인 재언은 오늘도 이렇게 또 하나를 얹어주는 데 성공하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으아아아악, 하고 소리를 지르는 은소현으로부터 여유롭게 시선을 돌리던 재언은 순간, 저 멀리 서 있던 책방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

책방 주인은 이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고개가 미묘하게 기울어졌다.

마치 ‘난 다 봤는데.’라고 말하는 듯.

재언의 눈빛이 일순 사나워졌다.

뭐든 제 뜻대로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예상치 못했던 존재를 맞닥뜨린 기분.

한마디로, 더러웠다.

“어, 어떡해, 아으, 난 왜……. 내가 미쳤나 봐, 나 진짜……. 허어……!”

아무것도 모르는 은소현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발을 동동 굴렀다. 여전히 자신의 잘못이라고 알고 있는 듯했다.

재언은 이를 정정해주거나 사실을 알려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아, 서, 서정한 씨, 이거……, 이거요. 아후, 어떡하지. 이거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마우스를 꺼내다가, 커피가 노트북에, 아니, 화집에, 아, 잡으려고 했는데……. 아이고, 그만…….”

주인이 테이블 쪽으로 다가오자 은소현이 횡설수설하며 상황을 설명하려 했다.

책방 주인, 서정한이라는 남자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는 은소현을 한 번 보고, 다시 시선을 돌려 재언 쪽을 쳐다보았다.

재언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공기가 제법 싸늘해졌다.

마주 보는 눈빛 사이에 적의가 가득했지만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분위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하지만 재언은 책방 주인이 무엇을 보았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결과는 같을 테니까.

“화집, 어, 어쩌죠……. 배, 배상을……. 아니, 이게 배상한다고 될 수 있는 일인지도……. 여기에 하나뿐인……, 아, 어떡하지. ……정말 미안해요.”

알 수 없는 냉랭함 속에서 은소현은 결국 책방 주인에게 사과했다.

“미안해요, 진짜. 너무너무 미안해요.”

그러나 뜻밖의 대답이 주인놈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괜찮아요.”

은소현이 동그란 눈을 크게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재언의 포커페이스도 미약하게나마 무너졌다.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살짝 미간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뭐라는 거야, 지금.

괜찮다니?

“커피는 이미 엎질렀는데, 어쩔 수 없죠. 살다 보면 뭐, 그럴 수도 있는 거니까.”

싱그러운 미소였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그, 그럴 수도 있다는 건, 아니, 괜찮다는 건, 무, 무슨 뜻인지…….”

소현의 음성이 여리게 흔들렸다.

“말 그대로.”

이해와 용서.

그는 너그러운 얼굴로 은소현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당황한 그녀가 이를 받아들더니 젖은 치마나 손은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화집 위의 흥건한 커피 물기부터 얼른 닦았다.

“스커트, 젖었잖아요.”

“아, 괜찮아요. 일단 화집부터…….”

“이 종이는 물기를 그렇게 흡수하는 재질이 아니라서 잘 말리면 돼요.”

“말린다고요? 그래도 이렇게 되어버렸는데…….”

상품 가치가 전혀 없어진 화집.

“앞쪽은 커피 물이 약간 들긴 하겠지만 가장자리라서 그림 보는 데 지장은 없으니까. 커피 엎은 페이지 말고, 다음 장부터 여기, 커피색이 배지도 않았고 괜찮죠? 옆면 정도야 상관없어요.”

재언은 책방 주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단 하나뿐인 완전 소중한 화집이라면서.

그렇게 귀해서 차마 팔지도 못하는 화집이라면서.

그런데 가치가 전혀 없어진 화집을 두고, 뭐, 상관이 없어?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지 황당하기까지 했다.

사람의 모든 행동에는 의도가 있다.

재언은 이를 간파하는 일을 어렵다 느껴본 적이 없었다.

웬만하면 사람 속을 다 파악할 수 있다 자부했었고, 이런 능력은 사람을 상대로 한 사업을 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

‘설마.’

저 자식, 은소현이 마음에 들어서?

귀한 화집을 망친 것쯤은 그냥 넘어가줄 정도로?

저 책방 주인놈이 흑심을 품은 건가?

아니지, 커피를 쏟게끔 테이블을 발로 툭 친 것은 바로 재언 본인이었다. 책방 주인놈은 이를 다 보았다는 듯 미묘한 표정이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단순한 흑심을 넘어선 건데.

판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건 정말 설마 하는 예상이긴 하지만, 소현이 돈을 빌릴 수밖에 없게끔 자신이 일부러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까지 다 알고서 저러나? 애초에 그런 일을 막기 위해서?

‘말도 안 돼.’

책방 주인놈이 뭘 안다고.

재언은 자신이 너무 앞서 나간 것이라 생각했다. 그냥 도둑이 제 발 저릴 뿐이다. 속을 읽을 수 없는 의외의 사람을 만난 바람에.

“그, 그럼, 이걸 배상은…….”

은소현이 머뭇거리며 하는 말에 그놈은 웃으며 대답했다.

“배상할 필요 없어요.”

미쳤나.

“네? 아무리 그래도, 아니, 이걸 어떻게…….”

“이것도 결국 세월의 흔적이니까.”

“예에……?”

“흐르는 대로, 자연스럽게 두면 되죠.”

순간 은소현은 벅찬 듯 눈을 반짝거리며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구세주를 만났어도 저렇게까지 기뻐하진 못할 텐데.

라르고 화집에 커피를 엎은 상황이 꽤 아찔하긴 했었나 보다. 갑자기 은소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를 바라보고 있던 재언의 입가에 실소가 터졌다. 냉랭하기 그지없는 웃음이었다.

저 새끼, 대체 뭐 하는 새끼지.

“……이걸,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고?”

책방 주인놈은 그냥 뭘 모르는 놈이었을 뿐이다.

그림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겉멋만 잔뜩 들어 책방을 차려놓고 있는 작자.

화집의 가치도 모르는 주제에.

“이 화집을 손에 넣으려고 공을 들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잘 모르나 본데.”

재언은 제이 라르고의 그림이라면 모르는 게 없었고, 라르고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했다.

화가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전혀 없지만, 적어도 라르고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어떤 화풍을 가졌는지 재언은 상세히 알고 있었다.

그에게 라르고는 특별한 의미였다.

유일한 빛.

말없이 기댈 수 있는 어둠.

실체가 없기에 재언이 더욱 마음 놓고 의지할 수 있는, 삶 속 유有이기도 하고 무無이기도 한 그런 존재였다.

몽환적인 색채를 가득히 담아낸 밤하늘 화집.

재언은 서울 서촌 골목의 한 예술책방에 바로 이 밤하늘 화집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심지어 이 책방 주인이 절대로 팔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하태랑에게 ‘하필이면’ 라르고의 밤하늘 화집을 고집하도록 하였고, 결국 결혼식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은소현이 수없이 좌절하는 상황을 만들어갔다.

치밀하고 촘촘하게 짜놓은 판 위에서 소현이 스스로 느끼고 돌아오기를.

자신이 늦게 깨달았듯, 소현도 이제라도 깨닫기를.

서로가 서로의 인생에 어떤 존재인지를.

“주인이라면서, 뭘 알고나 책을 파는 건가.”

화집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놈은 라르고 화집을 보유하고 있을 자격도 없다.

재언은 이 판에 허락 없이 끼어든 책방 주인의 무자격을 논했다.

“이건 단순한 화집이 아니라, 제이 라르고의 초기 스케치가 들어가 있어 의미가 있는 건데.”

재언은 차가운 얼굴로 화집을 펼쳐 뒷장으로 넘겼다.

“더군다나 이 사인은 인쇄가 아니라, 라르고의 실제 서명이라는 설이 있어.”

스케치 아래의 흘긴 서명이 친필일 경우 얼마나 대단한 의미를 가지는지.

라르고의 작품이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는 요즘,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는 화집인지.

“그런데 이런 걸 두고, 커피를 엎어 망쳤는데도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느니 하는 여유를 부리다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닌가. 제정신이면 그럴 수가 없겠지.”

재언의 말을 듣는 은소현의 얼굴이 점점 더 사색이 되어갔다.

그렇게까지 대단한 화집이라고?

책방 주인이 마음을 바꾸어, 바로 엄청난 금액으로 배상을 해내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불안한 표정이었다.

“실제 서명이라…….”

책방 주인놈은 조용히 읊조리다가 천천히 이어 물었다.

“라르고의 실제 서명으로 확인이 된다면, 무슨 의미가 있죠?”

“금액이 천정부지로 뛰겠지.”

당연한 소리.

두 남자 사이에서 소현의 마음만 쪼그라들었다.

류재언 네 이놈, 그 입 다물라 다물라, 외치고 싶은 얼굴. 그런 은소현을 가볍게 무시하며 재언은 유유히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니 이걸 구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지금 당신 하는 작태를 본다면, 얼마나 기가 차겠어. 최소한의 지식도 없이 책방이랍시고 열어놓고 가치도 제대로 모르는 귀한 책을…….”

“가치, 라고 했나요?”

재언의 말을 가볍게 끊으며 그가 무심히 뱉는 말.

서정한은 커피물이 배인 화집을 지그시 응시하며 말했다.

“화집의 가치.”

“…….”

“그림을 볼 수만 있다면, 화집의 존재 가치는 그걸로 충분한 거 아닌가.”

화집에서 시선을 뗀 서정한의 맑은 눈빛이 허공을 가르고 류재언에게 곧게 와서 닿았다.

“이 화집은 책방 서가에 꽂혀 여러 사람들을 만날 때 의미가 있지 않겠어요. 세상에 몇 권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도 잘 볼 수 없는 책이라는데, 숨겨두면 무슨 가치가 있어요. 누구 말대로 예술로 재테크하는 것도 아니고.”

부인할 수 없는 이유로 그는,

“있어야 할 자리에 그대로 존재할 때 의미가 있지 않겠나, 해서요.”

천천히, 그리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러니 은소현 씨, 배상할 필요까진 없어요. 앞쪽에 커피 좀 쏟았다고 해서 그림을 볼 수 없게 된 것도, 아예 화집이 사라진 것도 아니니까.”

아무렇지 않게 웃는 서정한의 모습.

아까보다 더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은소현.

재언은 심히 불쾌해졌다.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아는 사람은 이 중 자신뿐인 듯했다.

은소현을 곤란한 상황에 빠뜨리기 위해 ‘무려 제이 라르고의 화집’에, 일부러 커피를 쏟는 상황까지 만들었는데.

재언은 처음으로 무언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은소현을 되찾기 위해 돌아가는 길 중간에서, 돌연 수상쩍은 방해자와 맞닥뜨리고 말았다.

◇ ◆ ◇

“책방만 갔다 왔을 뿐인데, 10년은 늙겠다, 늙겠어.”

사무실 소파에 소현은 완전히 널브러졌다.

진이 다 빠져버려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그럼 화집 진짜 어떻게 해요? 정말 안 물어내도 된대요?”

“어. 그나마 그림을 아예 못 볼 정도는 아니더라고. 빨리 마르긴 했고. 앞장이랑 가장자리가 커피에 물들긴 했지만, 뭐, 그 정도는 주인이 괜찮다고 하니까.”

소현은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었다.

커피를 엎었을 때는 진짜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는데, 서정한의 입에서 괜찮다는 말이 나온 순간 그의 머리 뒤로 환한 빛까지 비치는 느낌이었다.

내가 지금 돈 없는 건 또 어떻게 알았대.

“혹시 책방 주인이 일부러 괜찮다고 한 거 아니에요?”

차애주가 또 시작이다.

“원래 배상해야 되는데, 언니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냥 괜찮다고 한 거 아니냐고요.”

소현은 고민스러웠다.

이제라도 책방 주인의 정체가 하와이 개쓰레기라는 사실을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긴, 그 하와이에서 만난 개쓰레기 같은 인간이 아닌 이상, 처음부터 그렇게 막 들이대진 않겠죠!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런 류의 인간은 위험해요. 하여튼 개수작 부리는 인간들 걸리기만 해봐, 아주!”

말아야 한다.

암, 얘기하지 말아야 한다.

소현은 하와이 개쓰레기와 부딪히는 일을 최소화해서 이 고비를 무사히 넘겨야겠다고 다짐했다.

화집 배상을 안 해도 된다고 말해준 건 분명 고마운 일이지만, 뭔가 찜찜하니 말이다.

일단 하태랑 결혼식 기획안부터 서둘러 끝내고서 다시는 책방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지.

어차피 그럴 일도 없을 것이다.

책방에 다시 드나들 일이 뭐가 있겠어.

하지만 개쓰레빠와 엮인 이상, 소현의 생각대로 일이 순순히 흘러갈 리가 없지 않은가.

◇ ◆ ◇

탐미재.

선글라스 너머 하태랑의 눈빛이 반짝반짝.

책방 구석구석을 가만히 훑었다.

며칠째 탐미재로 출퇴근을 하며 기획안 작성에 매진했던 소현은 열심히 하태랑에게 설명하는 중이었다.

“저녁 예식인 만큼 조명이 중요한데요, 이 작품 ‘in the star-filled sky’를 보시면요, 그림 가득한 별들을 조명 형식으로 바꿔서 신부님 입장하시는 버진로드 주변으로 장식하는 걸로 하구요. 아무래도 이 작품이 하태랑 씨의 톱스타 이미지와도 가장…….”

이어지는 설명에 하태랑은 연신 밝은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처음 책방에 들어설 때와는 하태랑의 태도가 사뭇 달랐다.

아까까지만 해도 이렇게 평온한 분위기는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일단은 류재언에게도 다행인 상황이다.

「뭐어? 사무실이 아니라, 책방으로? 내가 거기까지 가야 한다고? 미쳤어? 나 오늘 귀국해서 시차적응도 안 됐는데 어딜 오라 가라야!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야?」

이놈의 화집을 밖으로 돌리지 않는다는 책방 주인놈 때문에 하태랑을 이곳까지 불러야만 했던 것이다.

어쩔 수가 없었다.

라르고를 미끼로 은소현을 옭아매고 있는 중이니 이제 와 돌이킬 수도 없는 상황 아닌가.

결국 하태랑을 설득해 탐미재까지 오게 했고, 그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로 직접 책방에 행차하시었다.

라르고에 대해 관심이라고는 콩알만큼도 없는 하태랑을 예술에 조예가 깊은 여배우로 둔갑시켜 앉혀두는 데까지 성공했다.

분명히 뜻대로 세팅해둔 상황인데도 류재언은 왠지 모르게 자신의 무덤을 파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매우 강렬하게.

이건 한 번도 틀려본 적 없는 촉이다.

상대에게 굽히고 들어가며 손해 보는 기분부터 상당히 좋지 않았다.

그때.

“설명, 다 끝난 거죠?”

선글라스를 벗은 하태랑이 온화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앞에서 잔뜩 긴장을 하고 있던 소현이 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콘셉트 너어무 마음에 들어요. 딱 내가 꿈꿨던 결혼식이야.”

길게 이어진 기획안 브리핑에 크게 만족한 하태랑을 보며 소현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근데 딱 한 가지, 바꾸었으면 하는 게 있는데.”

“네, 어떤?”

하태랑은 고개를 들고 다시 책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안 돼.”

시선에 담긴 그녀의 의중을 알겠다는 듯 류재언이 일언지하에 반대하였다. 하지만 이에 굴할 하태랑이 아니다.

“은소현 씨, 결혼식 장소로 그 서초동 레스토랑 말구요.”

“안 된다고 했어.”

뭔지 몰라도 일단 반대부터 하는 류재언을 유유히 무시하고, 하태랑은 소현을 향해 태연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난 여기가 좋은데.”

“……네?”

설마.

“여기, 책방.”

“네에?”

설마…….

“은소현 씨. 나, 장소 바꿀게요. 여기서 결혼식 하게 해줘요. 이 책방에서.”

설마가 기어이 사람을 잡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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