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르고 웨딩-2화 (2/52)

2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거예요.2017.07.07.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삽시다, 우리.”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남자는 여유롭게 웃었다.

“아……, 강사님이세요? 저랑 오늘 같이 뛰실?”

“네에. 한(Han)입니다.”

하와이 하늘만큼이나 티 없이 맑은 미소.

그의 얼굴에 걱정이나 근심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였다.

이런 곳에서 바다와 하늘과 벗삼아 살면 저리 되는 걸까.

그를 올려다보고 있자니 멍해질 정도였다.

“아, 한국 분이시구나. 사실 제가 오늘 처음이라……, 긴장을 조금 해서.”

“다들 그래요. 처음인데 익숙하면 그게 이상한 거죠.”

별거 아니라는 듯 그는 아무렇지 않게 낙하산을 준비했다.

소현은 그를 다시 만난 것이 내심 신기했다.

이곳이 작은 섬도 아닌데 이틀 연속으로 그를 보다니 이 무슨 우연인지.

그것도 같은 장소도 아닌, 와이키키와 노스 쇼어 끝에서 끝이라니.

아, 물론 어제 봤다는 건 자신만 아는 사실이지만.

그러니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

한이라는 이 남자에게 자신은 서핑이나 스카이다이빙 등의 일을 하며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일 테니, 그다지 특별하게 여기지도 않을 것이다.

「근데 저 남자 진짜 잘생기지 않았어요?」

단지 낯선 땅에서 만난 지나치게 잘생긴 한국 남자에 대한 자연스러운 호기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소현에게도 그뿐이었다.

“뭐해요? 와요.”

한은 손짓했다.

파도 위에 서 있기만 해도 그림 같던 그가 지금은 여기 있다.

나쁠 것 없었다.

죽기 전에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스카이다이빙.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삽시다, 우리.」

이렇게 운명을 함께하자고 한 사람이 저 남자라면, 설령 이게 마지막이라고 해도 억울할 것도 없지 싶었다.

“긴장 풀어요. 곧 최고의 순간을 보게 될 테니까.”

아마도,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겠지.

“저 하늘 위에선 아주 잠깐이지만,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거예요.”

소현의 머릿속 생각을 읽은 듯 같은 말을 해주는 남자.

안심이 되면서 기대까지 피어올랐다.

두두두두.

밀려오는 경비행기 소리.

그의 한없이 맑은 미소.

엄지를 들어 뒤로 훅 가리키며, 타자고 하는 산뜻한 손짓.

오늘 하루.

한시적 운명공동체.

그와 함께 이제, 하늘로 오를 시간이었다.

“와아…….”

이륙 후 바다와 평원의 경계가 아래로 점점 멀어지며 하늘로 올라갈수록 가슴도 점차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창밖을 보며 소현은 심호흡을 했다.

대체 어디까지 올라갈 건지, 과연 나를 어디서 떨어뜨릴 건지, 더욱더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제야 소현의 시야에 한이 신은 신발이 들어왔다.

……그가 신고 있는 건 운동화가 아니었다.

일명 ‘쪼리’라고 부르는, 엄지발가락을 걸어 신는 슬리퍼형 신발이었다.

설마.

저걸 신고 뛰어내리려는 건 아니겠지.

에이, 다이빙 전에 갈아 신겠지.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소현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외람된 질문이지만, 우리가 이제 운명을 함께할 입장이니 여쭤보겠습니다만…….”

“네.”

한의 입술에 친절한 미소가 배어 있었다. 이에 힘입어 소현은 질문을 이었다.

“그 쓰레빠는 안 갈아 신으시나요.”

“이걸? 왜요?”

“아니……, 뛰면 슬리퍼나 샌들은 벗겨진다고, 반드시 운동화를 신어야 한다고 규정에 있잖아요. 여기 분들도 다 운동화 신고 있고…….”

“규정이야 다이빙 체험하러 오시는 분들 해당되는 사항이구요.”

굳이 내가 왜? 하는 표정으로 한은 눈을 감았다 뜰 뿐이었다.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다거나 의아해하는 얼굴도 아니었다.

단지 소현의 당황스러움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매우 사려 깊은 눈빛으로 바라봐주었기에 더 기가 막혔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마, 만 사천 피트에서, 아니, 고공에서, 쓰, 쓰레빠가 웬말……, 날아가면 어쩔…….”

한국어로 하는 대화지만 소현의 표정이나 손짓을 보고 그 내용을 알아차렸는지, 비행기 안에 있던 인스트럭터들 중 외국인 두어 명이 웃음을 터뜨리며 끼어들었다.

『푸하하, 한, 지금 네 파트너, 신발 보고 불안해서 그러는 거 맞지?』

『한의 신발은 신경 쓰지 말아요, 이건 이 친구 시그니처인데 뭘.』

『저 신발로 뛰어서 벗겨진 적 한 번도 없잖아? 초보도 아니고, 한의 이번 비행이 삼천 번째쯤 되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동료 인스트럭터들을 보고 있자니 소현은 혼돈스러웠다.

내가 이상한 건가. 이 동네는 원래 이게 당연한 건가.

많은 후기들을 검색해보고 왔지만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이야기인데?

애주에게 얘기해줘도, ‘쓰레빠’를 신고 하늘에서 뛰어내린 다이버, 이거 실화냐며 절대 안 믿을 게 분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거금을 들여 고프로 동영상 촬영까지 신청한 건 신의 한 수였다.

모름지기 증거는 많이 남길수록 유리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지금 내 신발 걱정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경비행기 문이 열리고 엄청난 강풍이 밀려들었다.

쓰리, 투, 원!

꺄아아아아아아아!

경비행기에 함께 탑승했던 멤버 중 일부가 짝꿍인 인스트럭터와 함께 차례로 뛰어내렸다.

“허업!”

실제상황.

눈앞에서 처음 보는 광경이라 소현의 입이 딱 벌어졌다.

문제는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바로 자신의 차례가 다가온다는 것.

얼어버린 소현의 어깨를 한이 뒤에서 툭툭 쳤다.

“이제 우리도 준비해야죠.”

철컥, 철컥.

소현의 안전장비와 한의 장비가 단단히 연결되었다.

마치 아기띠처럼 착용한 장비 때문에 소현의 등은 한에게 찰싹 붙어버렸다. 아기 캥거루가 된 기분이었다.

차라리 낯선 외국인 인스트럭터라면 모를까, 이렇게 먼 타국에서 또래의 한국인 남자와 파트너가 되어 스카이다이빙 체험을 하게 되다니.

자신과 비슷한 나이, 혹은 약간 더 어린 나이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아닌가.

세상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을 할 때.

“아아, 자, 잠깐만요……!”

이제 뛰어내릴 지점이 되어 다시 문이 열렸고, 한이 성큼성큼 뒤에서 몸을 밀며 나오기 시작했다.

“어어어어……!”

소현은 떠밀렸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남자와 한몸이 되어 속절없이 밀려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밀려 함께 문 앞까지 나온 그녀는 마치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이 들었다.

이제 곧 아래로 낙하하려는지 강하게 미는 움직임이 등 뒤에서 느껴졌다.

소현은 필사적으로 온몸에 힘을 주었다.

그건 본능이었다.

제발 그만 좀 밀어요, 발 아래 바로 구름이 보인다고요!

“떠, 떨어지면, 즈, 즉사야!”

얼어버린 몸으론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입만 살아 있을 뿐.

고프로를 움켜쥔 영상 담당 다이버는 어느새 먼저 뛰어내려 위쪽으로 몸을 돌려 촬영 중이다.

중력을 이겨낸 한 마리 새처럼 날고 있었다. 비현실적이었다.

내가 지금 어디 와 있는 거지. 난 누구, 여긴 어디…….

“전 주, 죽기 싫어요……!”

소현과 한도 뛸 차례.

마침내 강풍을 가르며 커다란 음성이 뒤에서 들려왔다.

“그럼, 살아서 만나요!”

그걸로 끝.

한이 뒤에서 힘을 주어 몸을 밀면서 뛰어내렸고, 그 앞에 있던 소현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훅.

낙하.

……그렇게 하늘을 날았다.

두둥실.

비행기에서 뛰는 순간 사정없이 뚝 떨어지는 느낌일 거라 상상했었지만 그와는 완벽히 달랐다.

두둥실, 두둥실, 둥실둥실, 온몸이 풍선이 된 기분.

푸른 하늘에 안기는 기분.

구름 가득 너른 품으로 온전히 껴안아주는 기분.

말 그대로, 하늘을 나는 기분.

순식간에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저 하늘 위에선 아주 잠깐이지만,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거예요.」

소현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예전의 자신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모습.

……진정 새로운 세상이었다.

영상을 촬영하는 다이버는 본인 역시 하강을 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포즈를 요구했다.

소현은 소리를 지르면서도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으로 브이를 하고, 하트도 만들고, 하와이 공식 알로하 포즈를 해 보일 정도로 여유를 찾았다.

“이제 낙하산 펼칩니다!”

엎드린 자세로 내려오던 몇십 초간의 프리다이빙 구간이 끝나고 한이 낙하산 줄을 당기자, 두 사람의 몸이 위로 쑥 올라갔다.

롤러코스터의 짜릿함과 비할 수 없었다.

“어때요?”

“끝내줘요!”

경비행기를 타고 올라가면서 본 경치와, 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내려오면서 ‘쌩눈’으로 바라보는 경관은 차원이 달랐다.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바람의 저항이 덜 느껴질 만큼 고도가 낮아지자 한의 음성도 조금 더 잘 들렸다.

“지금은 어때요? 살 수 있을 것 같긴 해요? 아직도 죽을 것 같아요?”

“너무 좋아서 죽을 것 같아요!”

웃음소리가 들렸다.

언제 긴장하고 무서워했냐는 듯 소현은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경치를 바라보았다.

아득했다.

힘들었던 시간들도.

외롭고 아팠던 날들도.

기대와 그리움에 지쳐 울던 순간들도.

스치는 바람 한 줄기에 산산이 흩어졌다.

청명한 하늘 한가운데.

대나무 숲에 온 기분으로 소현은 크게 외쳤다.

“먼저 약혼하자던 나쁜 새끼가! 알고 보니 애초에 나랑 결혼할 마음, 털끝만큼도 없었고!”

둥실둥실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면서 시원하게 내뱉는 속말들.

“파혼하자니까 기다렸다는 듯 오케이를 하질 않나!”

예상치 못한 꿀 사이다 타임이었다.

하늘 위에서 영상을 촬영해주는 다이버는 저 아래 있다.

높이 차이가 꽤 벌어져 이쪽에서 뭐라 하는지 들리지도 않을 것이다.

자신과 딱 붙어 있는 한은 다 알아듣겠지만, 어차피 생판 모르는 남이고 다시 볼 사람도 아니지 않은가.

혼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소현의 목소리가 푸른 하늘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내가 기획한 프로젝트마다 자기 공으로 쏙쏙 빼가던 팀장! 이 마귀 같은 아줌마! 그렇게 살지 마! 내가 결혼 때문에 일 그만둔 게 아니야! 너 때문에 그만둔 거야!”

이후로도 소현은 한참이나 바람 소리를 비트 삼아 숨도 쉬지 않고 속사포 랩을 쏟아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소현의 응어리를 풀어버리기엔 충분했다.

지난했던 인생에의 미련을 진정으로 놓아주었다.

가슴 가득 시원한 바람이 흠뻑 밀려들었다.

어느새 땅이 점점 가까워져 있었다.

“준비 됐어요? 다치지 않게 다리 앞으로 쭉 뻗어요. 이제 내려갑니다!”

“네!”

미리 교육받은 자세를 기억하며 소현은 다리를 뻗었다.

다다다다다다.

마침내 땅으로 떨어졌고 한의 발이 바닥에 닿으며 부드럽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낙하산이 펄럭이며 내려앉았다.

소현의 심장이 덜컹였다.

시선이 닿지도 않을 만큼 저 높은 하늘에서부터 땅까지 뚝 떨어져 내려온 지금.

‘……살았다.’

그것도 무척 멋지게.

살아냈다.

“이제 한국에 돌아가면 뭐든지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소현은 한을 향해 상기된 얼굴로 돌아섰다.

흥분이 아직 남아 있어 목소리가 한껏 높아졌다.

「그럼, 살아서 만나요!」

살아서 다시 만난 첫 번째 사람.

한시적 운명공동체가 소현의 시야 가득 들어왔다.

한이 웃으며 주먹을 쥐고 ‘YO, BRO.’라 말하듯 쭉 내밀었다.

소현은 저도 모르게 말아 쥔 주먹을 가져가 마주 부딪혔다. 얼떨결이었다.

“잘했어요.”

그가 허리를 약간 숙여 눈을 맞추며 말했다.

어린아이를 칭찬하듯.

잠깐의 순간이지만 정성을 다해, 진심을 다해, 그렇게 말했다.

아니, 그런 눈빛으로 보였다.

순간 소현의 가슴속이 전혀 모를 이유로 먹먹해졌다.

잘했어요, 한마디를 툭 던져놓고는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는 한의 시선이 하염없이 깊었다.

잔잔하고도 아릿한 눈빛이 호수 같았다.

투명하지만 너무도 깊어 그 안에 어떤 것들이 가라앉아 있는지 감히 알 수도 없을 듯했다.

‘그런 시간들을 견디고 살아온 것, 대견해요. 잘했어요. ……잘 살아냈어요.’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위안의 기운이 눈빛만으로도 전해졌다.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마음이 꽉 채워지는 느낌, 그걸로 알 수 있었다.

이건 위로였다.

동정 아닌 위로.

오늘 운명을 함께했던 이 남자에게, 위로를 받고 있었다.

◇ ◆ ◇

스카이다이빙 체험을 모두 마쳤다.

짜릿하고도 황홀했던 경험을 뒤로하고 가방을 챙긴 소현은 와이키키로 돌아가는 차 쪽으로 향했다.

그러다 문득 선득한 기분을 느끼고 멈추어 섰다.

“가만, 내가 지갑을…….”

소현은 중얼거리며 가방을 열어보았으나 안은 비어 있었다.

“어? ……아까 마지막으로 쓴 게…… 어디였…….”

“제 팁 박스 앞인 것 같죠, 아마.”

앞을 드리운 그림자에 고개를 올리니 한이 다가와 자신의 지갑을 들어 보였다.

하와이에 도착해서 ABC마트에서 산 무지개 문양의 작은 천 지갑이었다.

소현은 민망함에 웃어버렸다.

“아! 거기 놓고 왔네요, 제가. 하핫.”

스카이다이빙 체험이 끝난 후 인스트럭터들의 팁을 놓고 오는 게 관례였다.

그들의 이름과 사진들, 혹은 함께 체험했던 사람들의 메모들로 꾸며진 작은 개인 팁 박스들을 구경하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였다.

한 번 해도 이렇게 다리가 후들거리는 걸 하루에도 몇 번씩, 일생에 몇천 번이나 하는 사람들이라니.

하나같이 유쾌하고 여유로운 그들의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원해졌다.

그러고 보니 한의 ‘쓰레빠’는 벗겨지거나 날아가지도 않고 무사히 함께 착륙에 성공했던 것 같았다.

땅에 내려오는 순간에도 그저 가벼운 새처럼 안착했었는데.

사진 속에도 그의 ‘쓰레빠’가 보였다. 한의 시그니처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나 보다.

역시 베테랑 맞았네.

그렇게 정신을 쏙 빼놓고 구경한 것이 화근이었다.

“하하, 제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아직 긴장이 덜 풀렸나 봐요. 하핫, 평소에 그런 적 한 번도 없었는데 무슨 지갑을 다 놓고 오고…….”

한이 팔짱을 끼고 섰다.

소현의 과장된 웃음이 오히려 못 미더운 모양이었다.

“뭐 없어진 건 없는지 잘 봐요.”

“에이, 잠깐이었는데, 없어진 게 뭐 있겠어요.”

또 하하하, 입으로만 웃으며 소현이 주섬주섬 지갑을 열었다.

거봐요, 그럴 일이 뭐가 있어요, 하려던 소현이 순간 멈칫했다.

“……어? 어어어? ……어?”

이상하다.

분명히 안에 현금이……, 지폐 100달러짜리가 세 장 있었는데,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삼백……, 어……, 아……! 아아, 아.”

그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듯 소현의 눈이 번쩍 떠졌다.

앞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그녀를 바라보며 한은 그저 흥미로운 듯한 미소를 옅게 머금었다.

“왜요, 뭐가 없어졌어요?”

한의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소현은 “으아, 나 미쳤네.”라고 얼굴을 찡그린 채 중얼거렸다.

범인은 가장 가까이.

바로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헐……?”

팁으로 30달러를 넣으려고 미리 10달러 세 장을 가져왔었는데, 그 대신 100달러 세 장을 한의 팁 박스에 넣어버린 것이다.

지갑 안에 10달러 세 장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걸 보고 깨달아버렸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팁도 잘못 넣고 지갑까지 놓고 왔을까.

“뭐, 잘못됐어요?”

“아하하하하하하, 아아아아, 아니요? 아니요오오오!”

소현은 고개를 저으며 크게 외쳤다. 누가 봐도 잘못되었다는 얼굴로.

무려 300달러.

팁이 아니라 대충 따지면 영상 촬영을 포함한 다이빙까지 한 번 더 할 수도 있는 금액인데!

내가 무슨 재벌이라고 팁을 그렇게나 팍팍 넣고 왔단 말이냐.

그렇지만,

“혹시 돈 잃어버린 거 아니에요?”

“설마요!”

내가 실수로 너한테 팁을 너무 많이 줬으니까 다시 좀 내놔, 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누가 보면 통수나 눈탱이 심하게 맞은 얼굴인데.”

“아하하하하, 그런 거 없어요!”

‘셀프 통수’와 ‘셀프 눈탱이’를 쳤다면 쳤다고 할까.

“괜찮겠어요?”

조용히 물어보는 한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이쯤 되면 뭔가 알고 온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렇게 되니 오기가 뻗친다.

돌려달라면 줄 것도 같지만, 그게 왠지 더 기분이 나쁘다.

나 300달러 없어서 죽는 사람 아니야.

비록 실직도 했고, 파혼도 했고, 창업 준비할 일도 태산처럼 막막하지만!

괜찮아! 나 우는 거 아니다!

“하하하하, 괜찮죠! 다이빙 즐거웠어요! 와우, 진짜 멋진 경험이었어요! 하하하하! 평생 못 잊을 거예요! 하하핫,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놈의 자존심이 뭐라고.

소현은 하늘에서 소리지를 때보다 훨씬 더 씩씩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그래, 이 정도는 괜찮아.

돈으로 절대 살 수 없는 경험이었으니까.

소현은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합리화에 쏟아넣었다.

그리고 얼른 호텔로 돌아가는 차량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착석한 소현이 한숨을 푹 쉬었고, 차가 막 출발하려고 할 때였다.

문이 열리더니 한 남자가 뛰어올랐다.

외국인 몇 명 사이에 홀로 앉아 있는 소현에게 성큼성큼 다가온 남자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내일 마우이 섬으로 간다고 했죠.”

“네……? 아, 네…….”

또다시 갑작스러운 등장.

한이었다.

“그럼 내일 저녁에 뭐 해요?”

“밥을 먹겠죠……?”

소현은 눈을 깜빡거리며 올려보았다.

또 멍해진다.

한의 미소가 저렇게 눈이 부셨나…….

“마우이 섬에 가면, 키헤이 해변에 선셋이 정말 아름다운 레스토랑이 있어요.”

또다시 깜빡.

그리고 두근두근.

“거기서 내일 나랑 같이.”

“……?”

“저녁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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