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삽시다.2017.07.03.
“그럼 그러든가.”
그는 그러자고 했다.
너무도 순순히 흘러나온 대답.
어이가 없었다.
커피를 마시자고 한 것도 아니고, 영화를 보자고 한 것도 아닌데.
어떤 일상적인 제안보다도 훨씬 쉬운 수락이었다.
고민의 흔적은커녕 망설임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마주 앉은 소현의 입술 사이로 허탈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용건은 다 끝났어?”
그가 허벅지를 덮었던 새하얀 천을 들어 입가를 꾹 누르며 물었다.
가만히 움직이는 손가락이 우아하다 못해 한없이 고귀하게 보였다.
저만치 선 웨이트리스가 넋을 잃고 바라보는 시선까지 느껴졌다.
“방금 내가 뭘 하자고 했는지 제대로 알아들은 거야?”
소현의 절망 어린 표정. 가늘게 떨리는 음성.
“물론.”
그는 전혀 관여치 않는 얼굴이었다.
싸늘함이 뚝뚝 떨어지는 표정으로 나지막이 이어 말했다.
“파혼하자며.”
그는 정확히 알아들었고, 정확히 대답한 것이다.
“네 뜻대로 해.”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친절하게도.
그리고 잔인하게도.
“절차는 비서하고 상의해. 먼저 일어난다.”
마지막까지 예의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어느새 비어버린 맞은편 자리는 스산함만이 가득했다.
그렇게.
길었던 약혼이 끝나버렸다.
식어버린 스테이크 접시 위로 소현의 눈물이 투두둑 떨어졌다.
많이도 외로웠던 시간에,
차갑고도 쓸쓸히 안녕을 고했다.
◇ ◆ ◇
세 달 후.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
“와아! 대애박!”
애주의 입이 하늘을 향해 위아래로 딱 벌어졌다.
“구름 좀 봐요! 손에 잡힐 것 같아! 너무 예뻐! 이래서 우리 신부님들이 하와이, 하와이, 하는구나!”
밖으로 나오자마자 하늘에 낮게 떠 있는 구름을 보고 애주는 몹시 열광했다.
물론 애주 못지않게 소현 역시 기분이 격하게 들뜨고 설렜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아름다운 하늘을 보자, 비로소 하와이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어후, 세상에. 이렇게 좋은 곳을 그 싸가지랑 신혼여행으로 올 뻔했었다니. 나 정말 큰일 날 뻔했네!”
소현의 말에 돌연 애주의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언니, 일부러 괜찮은 척 안 해도 돼요.”
애주가 이럴 때마다 소현은 당황스러웠다.
“일부러가 아니라니까. 나 진짜 괜찮다니까.”
“언니가 그럴수록 마음만 더 아파져요. 내 앞에선 그러지 마요, 안 그래도 된다니까, 흐흑!”
감수성 과잉의 애주가 아예 캐리어 손잡이까지 놓아버리고 소현의 어깨를 와락 잡아당겼다.
“불쌍한 울 언니, 조실부모하고, 실직하고, 시집가서 좀 편하게 사려나 싶었더니 파혼이나 당하고……. 흐흑……!”
“님아, 팩트 체크 좀요, 실직이 아니라 내가 사표 낸 거고, 파혼도 당한 게 아니라, 내가 하자고 했지…….”
“아, 맞다, 그랬죠. 그런데 느낌적으로는 꼭 언니가 당한 것 같아서 생각할수록 자꾸만 슬퍼지잖아요, 흑……!”
“으으, 인정. 그 느낌은 차마 내가 부인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괜히 명랑한 척 목소리 꾸미지 말라구요…….”
애주는 그럴수록 소현이 안쓰러운 듯 더욱 힘주어 끌어안았다.
하지만 ‘척’하는 것이 아니었다.
기분 탓인가.
소현은 제게 드리운 삶의 무게가 지금 눈앞에 펼쳐진 푸른 하늘만큼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차라리 혼자가 된 것이 잘되었다 느껴질 정도로 홀가분했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애주에게 안긴 채 소현은 이국의 하늘을 가만히 올려보았다.
파혼.
벌써 세 달이나 지난 일이다.
류재언과의 결혼 준비는 모두 중단하거나 취소해야만 했다.
「절차는 비서하고 상의해.」
파혼 때만 들은 말은 아니다.
본격적으로 결혼 준비를 시작하기로 했을 때도 그는 그렇게 말했었다.
「내가 네 비서랑 결혼하니?」
투명인간도 아닌 투명신랑을 두고 준비를 진행하던 소현이 불만을 터뜨렸을 때 돌아온 대답은 역시 성의 없었다.
「바쁘다, 이따 얘기해.」
내가 말을 말지, 하고 돌아서던 날이 하루 이틀이었던가.
그런데 뭐, 이번에도?
심지어…….
「그만하자, 우리.」
「뭘.」
「결혼도, 연애도, 친구도, 다 그만해. 파혼하자고.」
그 상황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럼, 그러든가.」
류재언이 가장 잘하는 말,
그럼 그러든가, 비서하고 상의해, 먼저 일어난다,
세 가지를 파혼 선언하던 날 한꺼번에 다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잔인하고 치욕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류재언의 비서와 파혼 절차를 진행하는 건, 결과만 놓고 봤을 때 차라리 다행이었다.
그녀 자신도 퇴사 전 직업이 웨딩플래너였기에 마치 업무를 보듯 사무적인 느낌이었으니까.
파혼 절차를 모두 마무리한 후에 가장 마지막에 한 일은 바로 이것이었다.
취소한 하와이 신혼여행을 다시 예약하는 일.
물론 신랑 류재언이 아닌, 친한 동생이자 웨딩플래너 동료인 차애주와 함께 떠나는 것으로 말이다.
「하와이? 신혼여행으로 가려고 했던 그 하와이를? 언니 혼자 가겠다고요?」
「응. 애주야, 아무래도 가야겠어.」
「그래도…… 신혼여행으로 가려고 했던 곳인데 언니 혼자 가면 좀 그렇지 않아요?」
「상관없어. 걔는 어차피 신경도 안 썼었고, 내가 가고 싶어서 선택한 곳이었으니까. 결혼 파투났다고 안 갈 이유 없지. 그리고 자유여행으로 갈 거고.」
「하긴, 언니 지금 아니면 언제 가겠어요. 곧 창업까지 준비하려면 어휴…….」
「응, 이제 정리도 끝났으니 여행 갔다 와서 나, 정신 바짝 차리고 새 삶을 시작할 거야.」
「그래요, 가요! 그럼 저도 같이 가도 돼요?」
「너도? 같이 가면 나야 너무 좋은데, 너 그때 날짜 괜찮아?」
「괜찮아요, 저 휴가 쓸 거 남았어요. 하와이 완전 가고 싶었는데 언제 가보나 했거든요!」
「어, 정말? 잘됐네, 힐링도 하고, 갔다 오자, 우리.」
「좋아요!」
어떤 순간에든 함께해주었던 든든한 애주가 이번에도 흔쾌히 나서주었다.
다친 사람은 아픈 곳이 없다는데도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 눈에만 눈물바람이 부는, 묘한 동행의 시작이었다.
“호텔로 가자, 택시 어디서 잡는다고 했지?”
“저쪽 건너가서요. 이쪽으로.”
캐리어 손잡이를 잡고 씩씩하게 걸음을 옮길 때였다.
“저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돌아보니 건강하게 그을린 얼굴빛의 중년 여인이 있었다.
“이거 떨어뜨렸는데. 아가씨 거 맞죠?”
애주의 여권이었다.
“어엇, 감사해요!”
입국심사하고 나오면서 크로스백 앞주머니에 대충 꽂아놓았던 것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안에 잘 넣는다는 걸 또, 아이고, 난 왜 이렇게 덜렁거리지…….”
애주가 자책하며 여권을 받아 챙겼다.
“한국 분이신가 봐요.”
여권을 주워준 여인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공항에서 흔히 만나는 여행객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잠깐 외출한 듯한 가벼운 차림새였다.
“아, 네. 저희는 한국에서 여행 왔어요.”
“여행 좋죠. 재미있게 놀다 가세요.”
여유가 가득한 미소를 짓는 여인을 보니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고맙습니다. 여기 교민이신가 봐요.”
자고로 여행에는 현지인 찬스가 제일인 법.
친절한 하와이 교민 아주머니에게 점심식사 할 레스토랑을 추천받는 것도 좋겠다 싶어 말을 좀 더 붙여보았다.
“네, 맞아요. 온 지 2, 3년쯤 됐나.”
포스로는 30년쯤 되어 보이긴 했지만.
“우리 애인이 잠깐 본토 들어갔다가 돌아오는 날이라 공항에 마중 나온 거예요.”
남편도 아닌 애인이란 말에 처음에는 조금 놀랐다.
그러나 오십 대는 되어 보이는 여인이 곧 만날 애인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어찌나 소녀 같고 사랑스러운지.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몰라도 눈빛 하나는 무척이나 달달해 보여 소현의 마음까지 덩달아 설렐 정도였다.
“와이키키로 간다고 했죠?”
그녀는 두 사람이 묵는 호텔 위치를 듣더니 근처의 맛있는 레스토랑까지 소개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숨겨진 다른 맛집들까지도 줄줄이 알려주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첫 번째 타인.
느낌이 좋았다.
소현과 애주는 마주 웃으며 그녀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그리고 이후 그녀의 애인이라는 남자를 어떤 식으로 만나게 될지, 물론 그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수없이 스쳐가는 인연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 ◆ ◇
그렇게 도착한 하와이에서 보내는 시간은 소현에게 말 그대로 휴식이었다.
천혜의 자연경관과 다양한 액티비티가 공존하는 여행지답게, 이곳에서 많은 이들이 꿈꾸는 ‘무엇이든 할 자유’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고루 누릴 수 있었다.
렌트한 오픈카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며 바람을 맞았고,
새벽녘 분홍빛으로 물들어 올라오는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보았다.
무지개가 뜬 바다를 하염없이 쳐다보고, 모래를 맨발로 밟으며 걷고,
붉게 타오르다 황금빛으로 번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차가운 맥주를 마시는 시간은 꿀처럼 달았다.
그러나 꿀도 계속 찍어 먹다 보면 때로 버겁다.
“……언니, 후회한 적은 없어요? 파혼.”
늦은 밤.
반짝거리는 불빛 너머, 아련하게 퍼지는 라이브 음악 사이로 애주가 물었다.
자기 이름이 괜히 애주가 아니라고, 사랑 애愛, 술 주酒,라고 배시시 웃으며 칵테일과 맥주를 연달아 계속 주문할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언니 약혼자요. ……정말 아깝지 않아요?”
취기가 오른 애주는 진심을 섞어 물었다.
소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까우면 그렇게 못 했지.”
“그래도 결혼만 하면 언니 평생 엄청 편하게 살 수 있고, 고생 같은 건 하나도 안 할 수 있잖아요. 게다가 연애라고는 그분하고만 해본 게 다면서.”
그건 사실이었다.
“언니 인생에, 그분이 전부잖아요.”
그것도 사실이었다.
“그분 빼면, 언니 인생에 남는 게…… 없는 것 같다면서요.”
아프지만, 그 역시 사실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큰 결심이었던가. 얼마나 대단한 결정이었던가.
소현은 아롱거리는 불빛을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
“걔는 나를 사랑한 적이 없더라.”
“…….”
“류재언은 날, 사랑하지 않아.”
“…….”
무거운 침묵의 공기.
“걔 인생에는 내가 없어. ……내가 없더라.”
“…….”
“그래서 내 인생에서도 비워냈어.”
알고 보면 비운 지 한참이었다.
깨닫기까지 오래 걸린 것뿐.
“비워야 새로 채우지.”
소현은 애주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공기의 무게는 단숨에 바뀌었다.
“그러니까 너도 그만 울어. 나 하나도 안 슬퍼. 얼마나 좋냐. 한 번뿐인 인생. You Only Live Once. 행복하자, 우리. 오케이?”
“오케이! YOLO(욜로)! 그럽시다, 우리! 한 번 사는데 언니도 사랑하는 남자랑 끝내주는 사랑 한번 하고 살아요!”
챙그랑, 부딪히는 잔 소리가 경쾌했다.
고민할 필요 없었다.
행복하면 그뿐.
소현은 지금 이 시간에 집중하기로 했다.
◇ ◆ ◇
소현이 하와이에서 하고 싶었던 일 중 또 하나는 서핑 배우기였다.
와이키키 해변에 있는 서핑샵 중 한 곳으로 미리 강습 예약을 했고, 유쾌한 성격의 서퍼에게 1대 2로 기초 강습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서핑을 가르쳐주는 외국인 강사는 내내 능글거리며 농담만 하면서 다소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
서핑이 완전히 처음이었던 소현과 애주는 결국 파도에 일어서는 시늉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강습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아우, 얄미워. 요령도 잘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보드 밀어버리기만 하고. 이게 뭐야, 제대로 일어나보지도 못하고 시간만 버렸어요.”
“그러게, 재미는 있었는데……, 패들링만 엄청 빡세게 해서 내일 팔 빠지는 거 아닌지 몰라.”
“그쵸. 아아, 한두 번 더 배우면 감 잡힐 것 같은데.”
내일 또 자신에게 와서 배우라며 생글생글 웃는 그 서퍼가 어찌나 얄밉던지.
“언니, 언니. 저쪽 샵 어딘지 저기로 예약할 걸 그랬나 봐요. 저 강사 엄청 잘 가르쳐주는 것 같은데.”
애주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쪽을 보니 해변에서 서너 명의 여성들에게 준비운동을 알려주고 있는 동양인 남자가 보였다.
구릿빛으로 그을린 탄탄한 몸이 한눈에 들어왔다.
건장한 체격의 서양인들 사이에서도 매우 돋보이는 장신의 남자였다.
“아까 그 일본인 여자애들 하는 소리 들어보니까요, 그쪽 커뮤니티에서 엄청 유명한가 봐요. 앉은뱅이도 일어나게 해준다는 전설의 서퍼 선생님이라고. 무지 스윗하대요.”
“아, 정말? 하긴 넌 일본어도 잘하니까 다 들렸겠구나.”
다시 한 번 눈길이 갔다.
그에게 강습을 받는 이들의 분위기는 무척 화기애애해 보였다.
“그럼 우리도 내일 강습 받아볼까?”
샵이 어딘지 물어보러 다가가려는데 마침 모두 바다로 들어가버렸다.
그때 다른 금발의 서퍼가 눈치를 채고는 소현과 애주에게 말을 건네왔다.
『저 친구는 강습 예약이 꽉 찼어, 아마 안 될걸?』
이렇게 아쉬울 데가!
『놀면서 해서 몇 타임 하지도 않거든.』
소현과 애주의 표정에 자신이 더욱 안타깝다는 듯 그는 고개를 저으며 보드를 밀고 바다로 쓱 들어갔다.
이런 경우가 종종 있는 모양이었다.
어쩐지 자존심이 상했다.
“에이, 그냥 가자. 어차피 내일 너는 수영장에서 쉬고 나는 스카이다이빙 가기로 했으니까.”
소현은 서핑 강습을 한 번 더 받고자 한 미련과 아쉬움을 툭툭 털어버리기로 했다.
“그래요. 근데 저 남자 진짜 잘생기지 않았어요?”
애주의 말에 소현은 다시 고개를 돌려 바다를 쳐다보았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빛나는 와이키키 해변.
누가 봐도 눈부신 남자가 싱그러운 미소까지 지으며 서핑 보드에 올라서 있었다.
◇ ◆ ◇
죽기 전에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낙하산을 메고 아래로 뛰어내리는 일.
스카이다이빙.
소현은 하와이에 올 때 스카이다이빙을 미리 예약했고, 고소공포증이 있는 애주는 극히 거부했었다.
결국 소현 혼자 아침 일찍 다이빙업체에서 온 픽업차량에 씩씩하게 몸을 실었다.
결전의 날이다.
「진짜 안 무서워요?」
「무섭긴 한데, 사진 보니까 너무 해보고 싶어서.」
「언니 전에 우리 단합대회 때 번지점프는 무섭다고 안 했잖아요.」
「응, 근데 그거랑은 다르대. 인터넷에서 누가 번지점프는 못 해도 이건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고 해서.」
「아……, 이해가 안 된다. 번지는 못 하는데 어떻게 스카이다이빙을 할 수 있지.」
「그래서 내가 한번 해보고 오려고.」
비행장에 도착한 소현은 새파란 하늘을 보며 콩닥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드디어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실현하는 날인가.
안내를 받고 영어가 빽빽하게 적힌 종이 몇 장을 받아들자 비로소 실감이 되었다.
안전과 사고에 관한 내용에 잔뜩 서명을 마치고서야 아, 내가 목숨을 건 일을 하는구나 싶었다.
『여기서 잠깐 대기하세요.』
낙하산과 안전장비를 관리하는 장소로 안내받아 온 소현은 자신과 함께 뛸 사람을 기다렸다.
혼자 뛰어내리는 건 아니었다.
숙련된 인스트럭터와 짝을 이루어 두 사람의 몸이 함께 연결된 장비를 착용하고 뛰게끔 되어 있었다.
이제 다이빙 인스트럭터가 오면 함께 경비행기를 타러 갈 것이다.
그리고 스카이다이빙을 하게 되겠지.
곧 시간이 다가온다는 말이다.
“후아. 뭐! 살면 살고, 죽으면 죽는 거지, 뭐!”
정신과 육체는 따로 놀았다.
괜찮다고 생각은 했지만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씩씩하게 말을 하면서도 손끝까지 가늘게 떨렸다.
바들바들.
“뭐, 그래, 괜찮아. 죽으면 나만 죽는 것도 아니고! 하늘에서 같이 뛰어내리는 다이버도 같이 죽는 건데! 괜찮아! 뭐, 할 수 있어!”
그때,
“사람 그렇게 쉽게 안 죽어요.”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웃음 섞인 목소리.
소현의 어깨가 그만 들썩했다.
그러나 돌아보았을 때의 놀라움은 배가되었다.
낯선 남자.
그런데 왠지 낯이 익다……?
“어……?”
어제 와이키키 해변에서 본 남자가 커다란 낙하산 백을 들어올리며 서 있었다.
분명 그였다.
스윗한 그 서퍼.
놀란 소현을 향해 남자는 싱긋 웃으며,
“우리 오늘,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삽시다.”
운명을 말했다.
그것도,
부서지는 파도보다 더 하얗고,
쏟아지는 햇살보다 더 환한,
……위험하리만치 아름다운 미소로.
단 하루에 불과한 운명의 순간을, 감히 미소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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