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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 블러드-214화 (215/226)

14화

―마지막 한 톨의 힘까지 쏟아 내는 한이 있더라도 놈을 죽여라.

미카엘의 명령에 가브리엘과 라파엘의 눈빛이 돌변했다.

그저 말로만 지시한 게 아니라, 위에서 막대한 신성력이 전해져 내려왔기 때문이었다.

무지막지한 수준의 힘을 전달받게 된 두 대천사는 신비로운 빛에 휩싸였다.

[천사장 미카엘이 천주의 권능을 빌려 옵니다.]

[일시적으로 가브리엘과 라파엘의 능력치가 한계를 돌파합니다.]

[현재 적용된 레벨 ???]

―이런 미친……!

상상을 초월하는 압력을 느낀 모양인지, 엔세데스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아무래도 남은 마나를 디멘션 디바이드 쉘터에 깡그리 쏟아붓고도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만큼 상대의 기세는 살인적이었으니까.

하지만 블라드 유진의 반응은 담담했다.

“마나 없다고 골골대던 드래곤은 어디 갔나? 아주 그냥 펑펑 써 대는군.”

―이 상황에서 아끼겠냐 그럼?

“일단 넣어 둬. 저건 내가 처리할 테니까.”

스윽. 화르륵!

소수혈인을 흩어 버린 그는 눈을 빛내며 피의 권능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검은 기운이 전신을 감싸더니, 웅혼한 공명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오오!

유진이 발산하는 에너지의 정순함을 느낀 화룡왕은 감탄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카엘의 힘을 전달받은 두 대천사의 신성력 못지않게 강력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파멸의 권능’이 발동되었습니다.]

[마왕의 권능에 의하여 스킬이 강화됩니다.]

[모든 스킬의 제한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무한히 생성되는 마기로 인해, 능력치 한계를 돌파합니다.]

[현재 적용된 레벨 6,000(???).]

눈앞에 뜬 홀로그램 메시지를 읽은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1시간 동안 레벨 6천, 측정 불가의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된 거니까.

이제 가브리엘과 라파엘 정도는 가소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블라드 유진의 시선은 그들 너머에서 태양처럼 빛나고 있는 미카엘을 향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짓쳐 드는 두 대천사를 완전히 무시한 건 아니었다.

그저 대충 상대해도 될 만큼 강해졌을 뿐.

스핏―!

가볍게 일어난 암자색 불꽃이 횡으로 가볍게 그어졌다.

천계도살검이 마치 숨 쉬듯 자연스럽게 전개된 것이다.

대충 휘두른 것처럼 보였지만, 그 위력은 결단코 만만하지 않았다.

투둥!

―커헉!

―으어억!

호기롭게 달려들었던 가브리엘과 라파엘은 비명을 지르며 튕겨 나갔다.

그들은 유진이 내지른 일격에 작살 맞은 물고기처럼 파닥거렸다.

상극의 에너지가 체내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심혼에 직접적인 타격을 준 것이다.

―이, 이럴 수가! 으읏!

쉬이이익!

황당한 표정으로 블라드 유진을 힐끔 바라본 라파엘은 흠칫 놀라며 급강하했다.

천계도살검에 가장 먼저 직격당했던 가브리엘이 날개를 찌그러뜨린 채, 추락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턱!

지면에 처박히는 불상사는 면했지만, 가브리엘의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다.

―대천사가 단 일격에 이 지경이 되다니, 직접 겪어 보고도 믿을 수가 없군.

라파엘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의념을 발하더니, 위쪽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미카엘이 팔짱을 낀 채, 징벌의 검을 까딱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개입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중인 듯했다.

만약 천사장이 직접 나서게 된다면, 이기더라도 큰 문책이 따를 것이다.

천상계의 계획은 가브리엘과 라파엘의 힘만으로 블라드 유진 일당을 정리하는 거였으니까.

아니, 미카엘이 몸소 이곳까지 온 이상 책임은 피할 수는 없었다.

그저 징벌의 강도에서 차이가 날 뿐.

―이봐. 정신 좀 차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으, 으으!

―이러다가 강등당하겠다!

―뭐? 가, 강등? 절대로 그럴 수는 없지.

신음과 함께 미적거리던 가브리엘은 라파엘의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거의 변동이 없는 천상계의 질서에서, 대천사 자리를 빼앗긴다는 건 엄청난 치욕이었다.

그러니 이토록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리라.

―젠장, 성전(聖戰)의 단창이 움직이지 않아.

―지독한 마기로군. 내 단멸신장(斷滅神杖)도 마찬가지다. 당분간은 쓸 수 없겠군.

놀랍게도 천계도살검은 대천사가 지닌 성물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

물론 완전히 파괴된 것은 아니라서 이내 회복되겠지만, 적어도 이 전투에서는 사용할 수 없을 터였다.

앞으로 두 대천사는 다른 무기를 들고 싸워야만 했다.

스르릉! 스릉!

다행히 그들에겐 차선책이 있었다.

허리춤에 걸려 있던 짤막한 검을 꺼낸 것이다.

번쩍이는 빛이 어른거리는 걸 보니, 이 또한 상당한 위력을 지닌 성물임이 틀림없었다.

―얼른 가세.

―복수의 시간이로군.

가브리엘과 라파엘은 검신에서 백광을 뿜어내며 고도를 높이려 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유진이 아니라, 거대한 붉은 드래곤이었다.

―아닛?

―사악한 종자는 어디 가고, 다른 차원의 도마뱀 녀석만 있는 거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유령 군마에 탄 블라드 유진은 보이지 않았다.

―아까는 급해서 제대로 못 펼쳤는데 말이야. 이것이 바로 진정한 마법 중첩이다. 헬 파이어 오브 슈퍼포지션!

대신에 레드 드래곤보다 훨씬 큰 새파란 화염구가 두 대천사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수도 없이 중첩된 9서클 마법의 위력은 그야말로 무지막지했다.

가히 드래곤이 지닌 궁극의 공격 마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으니까.

직경 수 킬로미터 크기의 화염구가 날아와 덮치자, 두 대천사는 혼비백산하여 몸을 날렸다.

―피, 피해!

―이 미친 도마뱀 자식이!

쿠콰콰콰콰!

중첩된 헬 파이어 마법의 덩치는 엄청났지만, 그렇다고 느리진 않았다.

엔세데스가 지금껏 펼쳤던 그 어떤 마법보다 빨랐다.

워낙 거대했으니 조금만 이동해도 킬로미터 단위가 좁혀졌으니 말이다.

당연히 가브리엘과 라파엘이 피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천계도살검에 당한 후유증으로 인해, 비행 속도가 대폭 저하되었기 때문이었다.

―막아야 한다.

―크아아압!

결국에 두 대천사는 힘을 합쳐 중첩 헬 파이어에 대항하기로 했다.

번득이는 신성력이 고도로 집약된 방어막을 만들어 냈다.

쿠후우우웅!

격돌의 순간, 묵직한 충격파와 함께 미궁을 환하게 비추는 빛무리가 터져 나왔다.

항성을 지척에 둔 것처럼 초월적인 빛과 열이 발생하여 주변 모든 것을 소멸시킨 것이다.

“끄, 끝났을까요?”

어느새 화룡왕의 등에 올라탄 다이애나 로즈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질문했다.

중첩 헬 파이어에 정통으로 피격당한다면, 드래곤조차도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마왕과 비견되는 천상계의 절대적인 존재.

엔세데스조차도 승부를 예측하기 힘들었다.

―모르지.

“그럼 잠깐만 지켜보다가 어디로든 가죠.”

―아니, 그럴 수는 없겠어.

“왜요?”

―마나가 다 떨어졌거든. 난 이제 비행도 못 해.

“아…….”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고도가 점차 낮아지는 중이었다.

힘차게 날갯짓을 하고는 있지만, 화룡왕은 점점 힘이 빠지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토록 마나를 마구 써 댔으니, 지칠 수밖에.

“유진 님을 지원하지는 못하겠군요.”

―저쪽이나 도와야지.

엔세데스가 가리킨 곳에는 일행들과 성스러운 군대가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래야겠어요.”

다이애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헬 파이어가 작렬한 곳을 찬찬히 살폈다.

꽤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대천사들의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화룡왕이 지면에 딱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쿠웅! 쉬이이익!

“헉!”

어디선가 백색 빛줄기가 날아들더니, 다이애나의 목을 노리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란 그녀가 몸을 굴려 피하자, 백광은 지면에 생성된 거대한 구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쯧! 아직 안 뒈진 모양이군.

짧게 혀를 찬 엔세데스는 대천사들과의 2차전을 준비했다.

턱! 척!

그런데 헬 파이어가 만든 구덩이에서 튀어나온 건 둘이 아니라 하나였다.

―크흐으으…….

새카맣게 탄 채로 연기를 뿜어내던 그자는 시뻘건 안광을 번득이며 신음을 흘렸다.

왠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듯한 느낌에 화룡왕과 다이애나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거 영 느낌이 안 좋은데?

“그러게요. 조심해야겠어요.”

* * *

한편, 가브리엘과 라파엘을 일행에게 맡긴 유진은 하늘 높은 곳으로 쭉쭉 솟구치는 중이었다.

그의 목표는 허공에서 전황을 지켜보던 미카엘.

천상계의 이인자라 할 수 있는 천사장을 꺾지 못하면, 이 싸움은 이길 수가 없었다.

그랬기에 가장 컨디션이 좋을 때, 이자를 노리려는 것이었다.

‘시간은 충분하다.’

아직 파멸의 권능은 54분이나 남은 상태였다.

이 정도면 한 번의 전투를 끝내는 데 충분하리라.

쏜살같이 접근했지만, 미카엘은 블라드 유진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저 느릿하게 시선을 돌리며 전황을 관망할 뿐.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스팟―! 쿠화우우우!

녹턴의 속도를 그대로 실어서 천계도살검을 휘두르자, 무지막지한 충격파가 일었다.

원래라면 은밀하고 날카로운 공격이겠지만, 워낙 빨라서 굉음을 동반하게 된 것이다.

상대는 검격이 지척까지 다가오고 나서야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다.

바로 그때, 블라드 유진은 미카엘과 눈이 마주쳤다.

찌릿―!

‘윽!’

강렬한 느낌이 가슴팍을 타고 흘렀으나, 그는 결단코 멈추지 않았다.

파멸의 권능이 깃든 천계도살검으로 천사장의 모가지를 날려 버릴 작정이었다.

하지만 유진의 시도는 실현되지 못했다.

파칭―! 쩌저저정!

가볍게 내리그어진 징벌의 검과 격돌하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충격이 전신을 강타했기 때문이었다.

“커헉!”

입에서 절로 신음이 터져 나올 만큼 무시무시한 고통이 팔을 타고 번져 나갔다.

확실히 미카엘은 다른 대천사들과 격이 다른 존재였다.

레벨 6천에 달하는 수준의 검격을 받아 내고도 아무렇지 않다니!

너무도 강한 반발력에 절로 몸이 뒤로 밀렸으나, 그는 어떻게든 공세를 이어 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EX급 스킬 ‘권능 폭발’이 시전되었습니다.]

[EX급 스킬 ‘마신강림(魔神降臨)’이 시전되었습니다.]

[마왕의 권능에 의하여 스킬이 강화됩니다.]

[30분간 모든 능력치와 이로운 효과가 두 배로 적용됩니다.]

[현재 적용된 레벨 12,000(???).]

권능 폭발과 마신강림의 시너지 효과는 그야말로 사기적이었다.

30분간 1만2천 레벨에 달하는 능력치를 얻게 된다니.

수천 년간 살면서 이런 미친 수치는 듣도 보도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놀라고만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대로 끝낸다.’

두두두두두! 츠츠츠츠츠!

용맹하게 속도를 올리는 녹턴과 한 몸이 된 블라드 유진은 천계도살검을 강하게 밀었다.

그러자 황금색으로 빛나던 징벌의 검이 조금씩 뒤로 밀리는 게 아닌가.

드디어 한계를 돌파한 결실이 맺히려는 순간이었다.

미카엘은 마구 뒤흔들리는 검신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시선도 주지 않고 막아 냈던 유진의 공격에 이제야 관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호오? 나름 괜찮구나. 저 덜떨어진 두 녀석이 고전할 만했어.

천사장은 지면에 처박힌 가브리엘과 라파엘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나직이 의념을 보냈다.

그러고는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래 봤자지.

미카엘의 말이 끝나는 순간, 징벌의 검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와 그를 한순간에 삼켜 버렸다.

기유우웅!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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