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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 블러드-170화 (171/226)

20화

폭주마인 팔란스에게서 뿜어져 나온 마기는 드라코 도무스의 삼두마룡에 필적하는 수준이었다.

마족들이 공을 들인 미궁답게 성장률이 다른 곳보다 훨씬 높은 듯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트리 페 디타스에 버금가는 괴물이 중간 보스로 나올 리는 없을 테니까.

“엄청난 놈인 것 같은데…….”

“미친, 저걸 대체 무슨 수로 이기냐?”

헌터들은 팔란스가 대성체급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블라드 유진처럼 마기를 섬세하게 다룰 수는 없었지만, 직감적으로 수준을 파악한 것이다.

그만큼 폭주마인에게서 느껴지는 압박감은 무시무시했다.

‘마음에 드는군.’

공략대는 살짝 공포에 질린 듯했으나, 그는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삼두마룡보다 강한 몬스터의 등장은 유진의 성장 가능성이 커졌다는 걸 의미하니까.

대성체급 최종 보스 몇 마리를 잡느니, 저거 하나가 훨씬 나을 것 같았다.

“녹턴.”

이름을 부르자, 화염 갈기를 휘날리는 유령 군마가 그의 곁에 나타났다.

폭주마인의 덩치가 워낙 거대한 만큼, 지면에 발을 붙이고 상대할 수는 없었다.

녹턴에 탄 블라드 유진은 다이애나 로즈를 돌아보았다.

“적당히 시선만 끌어. 아까처럼만 하면 돼.”

“아, 네.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공략대 지휘 경험이 일천한 콜 해리스가 적극적인 공세를 펼칠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씩씩하게 대답하며 발길을 돌렸다.

그러자 엔세데스는 구시렁거리며 그런 다이애나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말 안 해도 다 아는 얘기를 뭘 그렇게 떠드나?”

“제대로 도와주지도 않을 거면서 훈수 두지 마시죠?”

“어허! 내가 제공한 대자연의 비약은 왜 빼는 거지? 엄청난 도움이 됐잖아.”

“그거야 영지로 보상한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비약 더 있어요? 없죠?”

“글쎄, 있을까? 없을까?”

“흥! 수작 부리지 마세요. 블러핑하는 거 다 보이거든요?”

화룡왕을 향해서 새침하게 쏘아붙인 그녀는 얼른 공략대의 뒤쪽으로 이동하려 했다.

전투 보조를 위해서 후방에 포지션을 잡은 것이다.

유진과 다이애나 로즈가 휙휙 가 버리자, 홀로 남은 엔세데스는 약간의 공허함을 느꼈다.

“와아. 이런 게 따돌림이라는 건가? 생소한 경험이로군.”

화룡왕의 중얼거림을 들은 모양인지, 다이애나가 어이없는 눈빛으로 돌아보았다.

엔세데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지? 진짜 진짜 처음이라니까?”

“누가 뭐래요?”

그녀의 대답에 화룡왕은 왠지 시무룩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진짜 이상한 차원이야. 하나같이 날 전혀 두려워하지 않잖아. 로드만 아니면, 기강 한번 제대로 잡는 건데.”

아마도 레드 드래곤 엔세데스가 위용을 뽐내는 일은 거의 없을 듯했다.

그랬다가는 무시무시한 자신의 상관이 차원을 넘어서 쫓아올 테니까.

이윽고 술상을 소환한 화룡왕은 싸움을 구경하며 버번위스키나 들이켜기 시작했다.

“크으! 역시 미국은 옥수수 테크트리지.”

* * *

푸우우우우!

녹턴을 탄 블라드 유진이 머리 쪽으로 접근하자, 폭주마인은 입에서 시뻘건 액체를 뿜어냈다.

검붉은 액체는 흰 연기와 기괴한 냄새를 온 사방에 뿌렸다.

‘유황?’

팔란스가 그를 향해 쏘아 낸 건 고온으로 용융된 마그마였다.

투두두둑! 치이이익!

마치 혈우(血雨)가 내리는 것처럼 시뻘건 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그 중심에서 거대한 흐름을 만들고 있던 불줄기는 유진의 뒤에 계속 따라붙었다.

아무래도 액체를 분출하다 보니, 공격 방향을 틀어도 조금씩 늦을 수밖에 없었다.

녹턴의 속도는 눈으로 좇을 수도 없을 만큼 빨랐으니까.

‘어디 간 좀 볼까?’

스이잉―! 푸쉭!

피의 권능으로 이루어진 칼날이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와 폭주마인의 목을 그었다.

놈의 몸뚱이는 단단한 암석 같은 물질로 이루어졌지만, 소수혈인의 절삭력을 저지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목의 반 이상이 잘려 나갔음에도 팔란스는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은 듯했다.

스윽. 텁!

놈이 옆으로 넘어가려는 머리를 오른손으로 받치자, 쩍 벌어졌던 상처가 봉합되었다.

몸속에 있던 마그마가 솟구쳐 올라와 굳으면서 눈 깜짝할 새에 원상 복구 한 것이다.

방금 치유된 곳은 붉은 기가 돌고 있었지만, 움직임엔 전혀 무리가 없는 모양이었다.

“흠……. 일반적인 공격은 안 먹힌다는 건가.”

순간 놈의 정체를 관조 스킬로 꿰뚫어 보고 싶었지만, 일단은 잠깐 접어 두었다.

아직 최종 보스는 나오기도 전인데다가, 이제 고작 첫 번째 시도였으니까.

크게 선회한 유진은 곧장 권능 폭발과 대군주의 역병을 시전했다.

[‘권능 폭발’로 인해 ‘대군주의 역병’이 EX급으로 적용됩니다.]

[대군주의 역병이 범위 내의 모든 생명체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각각 30%의 스킬 효과 감소와 체력 감소의 저주가 적용됩니다.]

그러자 폭주마인의 신형이 움찔거리더니, 불줄기의 크기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움직임도 굼떠진 걸 보아하니, 대군주의 역병이 제대로 걸린 모양이었다.

돌덩이처럼 생겼지만, 놈은 의외로 골렘이 아니라 생명체였다.

‘재밌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스이잉―!

소수혈인을 하나 더 뽑아낸 그는 다리로만 녹턴을 조종하며 상대의 주변을 날아다녔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푸확―! 치이이익!

어디선가에서 날아온 청백색 구체가 팔란스의 어깨에 맞고 폭발하는 게 아닌가.

새하얀 연기가 터져 나옴과 동시에 폭주마인의 움직임이 한순간에 정지했다.

놈을 멈추게 한 것의 정체는 공략대의 원거리 딜러가 쏘아 낸 스킬이었다.

그로 인해 팔란스의 시선이 제대로 끌렸다.

냉각 효과가 있는 스킬로 인해 어깨의 외피가 단단하게 굳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녀석이 열기를 방출하자, 금방 원상태로 돌아오긴 했다.

그래도 그가 목을 자른 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공격이었다.

“데려오길 잘했네. 꽤 쓸모가 있어.”

블라드 유진이 보유한 스킬의 속성은 물리력과 마기에 의한 오염뿐이었다.

초열지옥 역풍과 악염도의 스킬은 전부 불 속성이라, 지금 상황에서는 별 쓸모가 없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공략대는 그의 부족한 부분을 제대로 채워 주고 있었다.

이윽고 물 속성이나 냉각 관련 스킬을 익힌 원거리 딜러들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들도 이게 잘 먹힌다는 사실을 금방 인지한 모양이었다.

물론 속성 공격 능력이 있는 헌터의 수효가 그리 많지 않았기에, 아직 효과는 미미했다.

“쿠우우우!”

화르륵! 쿠르르르!

팔란스가 마그마를 한 번 뿜어내기만 해도 얼어붙은 곳이 말끔하게 사라져 버렸으니까.

하지만 블라드 유진이 재차 달려들면서부터는 전투 국면이 급격하게 전환되기 시작했다.

스핏! 휘이이……. 쿠웅!

그는 헌터들이 얼려 놓은 곳만 골라서 소수혈인을 쑤시고 돌아다녔다.

얼어붙은 곳을 도려내자, 체내에서 마그마가 튀어나와도 금방 회복할 수가 없었다.

굳은 용암이 단단한 외피로 변하려면,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좋아. 점점 줄어든다.’

팔란스의 몸은 이곳저곳이 푹푹 파여서 제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

이를테면 머리를 너무 많이 떼어 줘서 힘을 잃은 호빵맨처럼 말이다.

“구오오! 구오!”

폭주마인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냉기 공격이야 별거 아니었지만, 언 부위가 유진에 의해서 속속 잘려 나가는 건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잘려 나간 신체 일부는 더 이상 통제할 수가 없었으니까.

공략대와 거리를 벌릴수록 압박감은 감소했다.

아무래도 원거리 딜러들이 따라오는 것보다 팔란스의 속도가 훨씬 빠른 덕분이었다.

냉기로부터 탈출하자, 놈의 몸체가 서서히 회복되었다.

‘주변의 마기를 끌어들여서 육신을 재생성하고 있다.’

폭주마인의 상태를 단박에 파악한 그는 지척까지 접근하여 공격을 퍼부으려 했다.

녀석이 약해진 틈을 이용하지 않으면 상당히 귀찮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블라드 유진이 다가와 칼날을 박아 넣으려던 바로 그 순간.

덥석!

몸체를 크게 펼친 팔란스가 그를 덮치는 게 아닌가.

마치 슬라임이 먹잇감을 집어삼킬 때처럼 전신을 이용한 기습이었다.

제아무리 녹턴의 속도가 빠르다고 해도 이런 공격까지 모두 피할 수는 없었다.

“허! 당했군.”

폭주마인의 몸속으로 끌려 들어온 유진은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렇게 괴상한 공격을 당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게다가 이 녀석은 슬라임과는 전혀 다르게 생기지 않았던가.

뜨거운 마그마로 이루어진 괴물의 체내에 갇혔지만,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체외로 발산되는 피의 권능에 의해 팔란스의 육신이 일정 거리 내로 접근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집어삼키기는 했으나, 그 이후로는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아마 폭주마인은 잠깐 황당한 표정을 지었던 블라드 유진보다 훨씬 당혹스러울 터였다.

체내에 가둬서 고열로 녹이려 했는데, 그가 멀쩡하게 버티고 있었으니까.

“푸르르!”

화르륵!

그뿐이랴, 녹턴 또한 열기를 뿜어내며 압박에 저항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보니, 팔란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유진은 녀석과 기싸움을 해 대고 있는 녹턴을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너지의 근원이 다르면, 같은 열기끼리도 힘겨루기가 되는 모양이로군. 그럼 이것도?”

그는 복주머니에서 불꽃 모양의 큼지막한 칼을 꺼냈다.

게일드 백작을 쓰러뜨리고 얻었던 무기 악염도였다.

거추장스러워서 별로 쓸 일이 없었지만, 지금은 꽤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화신(火神).’

쿠화아아아!

내장된 스킬을 발동하자, 블라드 유진의 전신에서 시뻘건 불길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자 놀랍게도 피의 권능에 저항하며 조금씩 다가오던 팔란스의 육신이 크게 후퇴했다.

마치 팽창하는 풍선처럼 내부 공간이 엄청나게 넓어진 것이다.

“크에에에!”

그와 동시에 놈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되게 잘 먹히네?”

같은 속성끼리의 싸움인데, 이런 결과가 나오다니.

눈에 이채를 띤 그는 악염도를 이리저리 휘둘러 보았다.

화르륵! 찌지직!

화신의 불길이 쏘아지자, 벽면이 세로로 갈라지며 외기(外氣)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블라드 유진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기의 흐름을 읽음으로써 이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악염도의 마기가 폭주마인의 것을 압도한다. 게일드 백작은 죽었지만, 권능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건가? 그러기에는 영향력이 너무 큰데. 만약 그게 아니라면…….’

그의 추론은 이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악염도를 만든 게 게일드 백작이 아니라, 더 상위의 존재라면 작금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었다.

팔란스에게는 직속상관의 기운이 담긴 물건이 되는 거니까.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유진은 칼질을 멈추지 않았다.

악염도를 휘둘러 폭주마인의 몸을 토막 치며 돌아다닌 것이다.

그러자 이윽고 놈의 육신이 급격하게 붕괴하기 시작했다.

“음?”

그런데 팔란스가 있던 곳에 십여 개의 괴이한 형체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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