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공략대원들이 혹시나 주변에 있을 변검귀를 경계하는 사이, 유진은 홀로 숲속으로 진입하는 중이었다.
그런 그의 움직임을 아무도 예상 못 했는지, 뒤늦게 도형욱의 목소리가 숲 밖에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어? 어디 가셨지?”
블라드 유진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변검귀가 제아무리 강력한 몬스터라고 해도 그의 앞에서는 한낱 조무래기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방금도 초월적인 감각으로 기습을 인지하고, 놈을 반으로 갈라 버리지 않았던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저쪽으로 가시는 것 같던데요?”
마침 유진의 뒷모습을 어렴풋이 본 듯한 대원의 증언이 있었다.
도형욱은 곧장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며 숲속으로 진입했다.
웬만한 몬스터는 그가 다 처리해 놓았겠거니 하고, 과감하게 들어온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블라드 유진은 몇 마리의 변검귀를 갈기갈기 찢어발겨 놓은 상태였다.
그러고는 큼지막한 나무 앞에 서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여기에 뭐가 있습니까?”
도형욱은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질문을 던졌다.
시선을 돌린 그는 아름드리나무 쪽으로 고갯짓했다.
“이상하지 않나? 영 눈썰미가 없군.”
“아……. 이 나무 말입니까?”
“그래.”
“되게 크고 웅장하네요. 하하.”
“정신 나간 대답이로군.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여기가 어디지?”
“그야……. 어? 그러고 보니, 이 주변의 나무는 왜 멀쩡한 거죠?”
유진이 짚어주고 나서야 도형욱은 이 숲의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마기에 물든 식물은 기괴한 모습으로 변하기 마련이었다.
총천연색의 아름다운 색감은 잃어버리고, 칙칙한 무채색으로 바뀌는 것이다.
게다가 형태 또한 방사능에 피폭된 것처럼 이상하게 변했다.
하지만 공략대와 마주한 숲속의 한정된 공간만은 복구가 시작된 남한처럼 푸르른 녹음이 우거져 있었다.
물론 시커먼 먼지 같은 것이 들러붙어서, 자세히 확인하지 않으면 주변과 구분하기 힘들었지만.
“마기로부터 자연이 복구되는 데는 최소한 5년이 걸린다고 들었습니다. 그마저도 절반 이상은 폐사한다더군요.”
“이제 막 마기가 걷힌 곳에 멀쩡한 숲이 있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지. 여긴 최소한 10년이 넘도록 오염 지대였던 곳인데 말이야.”
“안으로 들어가 보실 겁니까?”
“미지의 현상을 파헤쳐 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겠네. 내키지 않으면, 목표 지점까지 먼저 가도 좋아.”
“아, 아닙니다. 저희도 뒤따르겠습니다.”
하필이면 이 근방은 변검귀가 서식하는 장소였다.
그러니 도형욱의 눈에는 이 숲이 거대한 함정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숲 자체가 변검귀처럼 사람의 감각을 속일 가능성은 차고 넘쳤으니까.
그러나 블라드 유진이 간다고 하면, 그게 곧 법이고 진리였다.
공략대끼리만 경계 지역까지 가 봐야 뭘 할 수 있겠는가.
근처를 배회하는 몬스터나 몇 마리 잡는 게 다일 테고, 자칫 잘못하면 되레 큰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다.
그럴 바에야 그냥 그의 근처에 딱 붙어 있는 편이 훨씬 안전할 것이다.
“경계선이 있군.”
도형욱이 공략대의 안위를 위해서 머리를 굴리든 말든, 유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숲을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마기에 물든 나무와 푸른 녹음 사이에는 명확한 구분이 존재했다.
바닥의 균열에서 올라오는 희미한 백광을 중심으로 안팎의 환경이 완전히 달랐다.
스이잉! 쑤욱!
그는 경계선 너머로 소수혈인을 집어넣어 보았다.
강력한 피의 권능이 주변의 공간에 영향을 끼치자, 지면의 균열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치지직! 치직!
아니나 다를까, 돌연 시퍼런 스파크가 발생하더니 붉은 칼날을 강하게 밀쳐 내는 게 아닌가.
하지만 블라드 유진은 강제로 소수혈인을 내리눌러서, 단숨에 반발력을 압도해 버렸다.
콰지지직!
그러자 번득이던 푸른빛이 극도로 커지며 경계 막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역시나 그냥은 들어갈 수 없도록 막혀 있었구나.’
하긴 이만한 방어 능력을 갖추지 않았다면, 연일 침투하는 마기와 몬스터를 막아 내지 못했을 터였다.
물론 이 현상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반투명한 막을 찢고 들어간 그는 소수혈인을 흩어 버리며 주변을 쭉 둘러보았다.
마기를 차단하는 막에 구멍이 뚫렸지만, 내부의 환경이 달라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성체 미궁을 정화하며 이 일대의 마기는 모조리 축출되었으니까.
“청정 구역이라…….”
“오염 지대에 이런 곳이 있다니, 믿을 수가 없군.”
청명한 공기와 외부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욱 선명한 녹색 수풀과 나뭇잎.
싱그러운 풀 내음에 공략대원들은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켜 보았다.
도시나 오염 지대 근처에서는 절대 접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고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이 자연을 만끽하고 있는 동안, 유진은 숲 안쪽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그곳에서 미약한 인기척이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데, 그가 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진 곳을 나서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쉬이익! 카앙!
시퍼런 무언가가 눈앞으로 짓쳐 들어오자, 블라드 유진은 반사적으로 소수혈인을 뽑아 들었다.
급하게 올려 친 거였지만, 그의 방어는 완벽했다.
거의 지척까지 다다랐던 시퍼런 섬광은 붉은 칼날에 맞고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충격을 받고 느려지자, 원판 같던 쇠붙이의 형태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 판 두 개를 겹쳐 놓은 모양이었다.
휘리리릭!
그런데 십자 형태의 쇠붙이가 돌연 회전 속도를 더하더니, 어디론가 휙 날아가는 게 아닌가.
이윽고 그 물체는 갈색 후드를 쓴 사람의 손아귀로 빨려들 듯 되돌아갔다.
턱!
마치 헬기 프로펠러 같은 모양의 무기를 손에 쥔 그자는 그늘진 후드의 안쪽에서 새파란 안광을 발했다.
“여긴 우리 땅입니다. 돌아가십시오.”
잘은 몰랐지만, 유진의 귓가에 들린 말은 북한 말이 확실했다.
이미 멸절한 상태인 북한의 지역 방언을 알아듣기란 쉽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상대의 말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드라마나 영화 등으로 북한말을 접해서, 조금은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간단한 일상 대화라 한국과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북한은 멸망한 거 아니었나?”
“그럴 리가요! 우리가 버티는 동안, 괴물들을 모두 처리해 주기로 약속했소. 당이 반드시 그렇게 해 줄 거요!”
“10년 넘게 이 꼴을 보고도 그 말을 아직 믿는 건가? 순진하기 그지없군.”
“…….”
블라드 유진의 냉혹한 한 마디에 갈색 후드의 남자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예상대로 이자는 미궁 사태 초기부터 지금까지 이곳에서 계속 버텼던 모양이었다.
고개를 꺾은 그는 슬쩍 발걸음을 옆으로 옮겼다.
그러자 바위 뒤에 숨은 사람들의 그림자가 살짝 보였다.
상대는 당황한 듯 고개를 돌리며 몸으로 유진의 시선을 차단했다.
“혼자가 아닌 모양이네. 정찰자가 한 말이 사실이었어. 녹색 넝마를 입은 자들이 개성 시내에 들락날락했다던데.”
“옷 보고 넝마라니! 무슨 그런 망발이 다 있소.”
“한국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 있지. 네가 입은 것도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만.”
“……이런 개간나 같은!”
쉬이이잉! 슈확!
상대는 십자 형태의 부메랑을 여러 개 꺼내서 냅다 집어 던지더니, 무시무시한 속도로 짓쳐들어왔다.
마치 미국의 S급 헌터 조나단 잭슨이 사용하던 차크람과 비슷해 보였다.
맹렬하게 회전하는 쇠붙이를 던져 놓고, 시간 차로 들이닥쳐 스킬을 꽂아 넣는 수법.
하지만 놈은 유진과의 거리를 절반도 좁히지 못한 상태에서 속도를 늦추고 말았다.
카가가강!
소수혈인으로 네 개의 부메랑을 쳐 내는 동안, 상대는 그의 앞으로 걸어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새 블라드 유진의 안광은 시뻘겋게 빛나고 있었다.
[EX급 혈성쇄혼술을 A급 대상에 시전합니다.]
[등급 차이로 인해 대상의 저항이 무의미해집니다.]
[‘A급 비인가 헌터 림일국’의 정신이 완벽하게 제압되어 당신의 명령을 기다립니다.]
[현재 하수인 슬롯 21/30]
척. 척.
그의 지척까지 다가온 림일국은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고개를 살짝 까딱였다.
제대로 하수인이 되었다면, 그런 행동을 해 보라고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유진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림일국의 손목을 자연스럽게 붙잡았다.
투명하게 변한 피부에 붉은 기가 살짝 도는 순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손을 놓았다.
아주 짧은 찰나였으나, 그는 필요한 정보를 대부분 받아들인 상태였다.
EX급에 오른 흡혈 능력으로는 단 한 방울의 피만 있어도 기억의 상당 부분을 엿볼 수 있었으니까.
‘마기 축출?’
블라드 유진은 눈을 반짝이며 림일국을 다시금 쳐다보았다.
녀석의 신상 정보를 알아보던 도중에 이상한 단어를 포착했기 때문이었다.
림일국은 마기 축출이라는 독특한 스킬로 그간 오염 지역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 능력으로 방어막을 만들어, 마기와 몬스터를 몰아낸 것이다.
“저기 저자들은 가족인가?”
“예, 그렇습니다. 대부님.”
그는 녀석과 대화를 나누며 바위 뒤편의 인기척이 나는 곳으로 이동해 보았다.
어느새 림일국 또한 진 연합체의 비인가 헌터들처럼 대부님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었다.
가장 조직 폭력배 같지 않은 호칭이라, 미리 그렇게 부르도록 각인해 둔 것이다.
바위 뒤편에는 다양한 작물을 기르는 텃밭과 작은 통나무집 몇 채가 있었다.
개성 시내를 뒤져서 가져온 자재로 만든 모양인데, 사람 사는 느낌은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현대 문명의 이기를 마음껏 누리고 살던 유진의 눈에는 미개하기 짝이 없는 살림이었다.
‘9세기보다 더 못사는 느낌인데.’
갖가지 작물을 길러서 얼추 먹고살 수 있었겠지만, 이 좁은 땅에서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했다.
림일국의 기억을 뒤져 보니, 이들은 숲속에 아주 조금 서식하는 곤충으로 단백질을 보충하고 있었다.
뭐 거기까지는 자세히 알 필요가 없어서, 그는 잡다한 기억을 대충 날려 버렸다.
그러다가 개성 시내에서 포착되었던 녹색 옷의 정체가 문득 떠올랐다.
“정찰자가 보았던 녹색 넝마가 변검귀의 가죽이었나.”
“예. 그놈들의 껍질로 외투를 만들면, 몬스터가 우릴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위장 능력이 어느 정도 남아 있거든요.”
“그랬군. 그거 말고는 챙길 것도 없겠어.”
“그건 그렇습니다만…….”
“여긴 싹 밀어 버릴 거야. 자네들은 내가 거둬 주지.”
“감사합니다. 대부님!”
림일국은 텔레파시를 통해서 진 연합체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블라드 유진이 한국에서 상당한 지위에 있고, 재산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도 말이다.
고립된 개고생을 청산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자, 녀석의 가무잡잡한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유진은 그런 림일국 가족을 데리고 숲 밖으로 나가며 휴대 전화를 들었다.
하지만 이 근방에는 기지국이 없어서 통화권 이탈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물론 그는 휴대 전화가 아니더라도 하수인들에게 연락할 방법이 있었다.
―여기로 차 좀 보내. 쓸 만한 놈 하나 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