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이럴 거면 우리가 필요한가 싶기도 하네요. 안 그렇습니까?”
“허…….”
공략대원들은 차량을 멈춰 세운 채, 한쪽을 바라보며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빵빵!
“얼른 가야지, 대체 앞에서 뭐 하는 겁니까?”
차가 나아가지 않자, 아직 언덕을 넘어오지 못한 차량들이 경적을 마구 울려 댔다.
도형욱 대장은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고 앞차를 향해서 소리를 지르기까지 했다.
그만큼 마음이 급하고 답답하다는 증거였다.
그러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선두 차량이 길을 터 주기 시작했다.
부와아아앙! 카가각!
네 개의 바퀴가 맹렬하게 회전하는 소리와 함께 오프로드 차량이 꿀렁이며 언덕을 넘어갔다.
차들이 차례차례 통과하고 나서야 도형욱은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 말도 안 돼.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가…….”
공략대원들의 눈에 비추어진 블라드 유진의 모습은 그야말로 전신(戰神)이나 다름없었다.
연신 불길을 내뿜는 유령 군마를 탄 채, 수십 미터 길이의 거대한 칼을 휘두르며 날아다니는 전쟁의 신.
쿠콰콰콰콰!
지면을 긁으며 흙과 돌 조각을 마구 튀기던 소수혈인은 목표 지점에 도착해서야 불쑥 솟아올랐다.
마치 수면 아래에서 먹이를 노리다 솟구치는 백상아리처럼 거대한 에너지의 파동이 몬스터를 덮쳤다.
스피비비빅!
“크륵?”
“크뤡?”
자이언트 랫맨들은 영문도 모른 채 고개만 갸웃거리다가, 반으로 갈라져 차디찬 대지에 몸을 눕혔다.
이 녀석들은 이족 보행을 하는 거대 쥐 몬스터로, 길쭉하고 시커먼 꼬챙이를 창처럼 들고 다녔다.
래틀 스네이크의 독보다 더욱 강력한 상태 이상 ‘역병’을 걸기 때문에, 원래는 상대하기가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유진은 그런 놈들을, 중식도로 양파를 썰 듯 간단하게 도륙하고 지나갔다.
발굽에서 시뻘건 화염을 쏟아 내는 유령 군마에 타고서 말이다.
“푸르르르!”
투쾅!
때마침 우연히 근처에 접근했던 자이언트 랫맨 하나가 창을 찌르려 했다.
하지만 녀석은 유령 군마의 뒷발차기에 적중당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날아가 버렸다.
퍼석! 화르륵!
놈은 바닥에 널브러진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온몸이 불에 활활 타고 있음에도 그러는 걸 보니, 그 일격에 절명한 것이 확실했다.
두두두두두!
블라드 유진은 그런 자이언트 랫맨을 힐끔 돌아보더니, 유령 군마를 몰며 서쪽으로 이동해 버렸다.
쿠구구구구!
“미, 미궁이 붕괴하고 있습니다.”
“벌써 성체 미궁의 정화를 끝냈다는 건가? 미쳤군. 이제 1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실제로는 공략에 시간이 더 적게 걸렸을 수도 있습니다. 몬스터 웨이브마저도 저렇게 되었으니까요.”
유진종합건설 휘하 헌터의 말에 도형욱 대장은 느릿하게 주억거렸다.
원래라면 폭발적으로 몬스터가 터져 나와야 했거늘, 장단면 일대의 평지는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유진이 몬스터들을 학살하며 남서쪽으로 쭉 밀고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그냥 저 사람을 지원해 줄 보급 담당만 있어도 될 거 같은데요.”
이번에 계약한 헌터 중 하나가 문득 화두를 던졌다.
무려 공략대의 75%를 차지하는 헌터들은 단기 계약직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 외에 한 가지로 귀결되었다.
활약을 보여서 완전 고용 헌터로 전직하려는 것.
하지만 이제 그 꿈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고 말았다.
애초에 활약할 기회조차 없는데, 뭘 보여 주고 인정을 받는단 말인가.
도형욱도 그런 그들의 의중을 잘 알고 있었다.
유진종합건설 같이 규모가 작은 기업에조차 고용 헌터 문의가 하루에도 몇 통씩 들어올 정도였으니까.
“그게 말이죠. 저희도 이렇게까지 될 줄은…….”
어딘가에서 대활약을 벌였다는 이야기만 분분하지, 블라드 유진의 무력을 가늠할 방법 따위는 없었다.
전투 장면을 실제로 본 사람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으니까.
도형욱 대장은 대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 변명을 늘어놓으려 했다.
하지만 단기 계약직 헌터들은 화를 내는 대신,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보였다.
“찍었어? 이야! 이거 각도가 예술이네.”
“좀 더 가까이서 찍을 수는 없나? 영상 올리면 대박 날 거 같은데.”
“블라드 유진 전투 영상이 얼마나 희귀하냐? 이 정도 수준만 올려도 아주 그냥 난리가 날 거다.”
헌터들은 각자 휴대 전화를 꺼내 들고 블라드 유진의 활약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공략대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새로운 스펙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상을 올려서 덩달아 유명해지는 건 부차적인 이득이고 말이다.
“대장님, 좀 더 앞으로 가 봐도 됩니까?”
“아, 네. 어차피 유진 님을 찾아가려 했으니, 함께 이동합시다.”
“알겠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DSLR을 가져오는 건데.”
되레 싱글벙글한 그들을 바라보며 도형욱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런 게 세대 차이인가. 나 같으면 뭐 하러 오라고 했냐며 화부터 냈을 텐데.”
그러다 문득 뒷좌석으로 고개를 돌린 도형욱 대장은 더욱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고 말았다.
유진종합건설의 고용 헌터들도 휴대 전화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 또한 하나같이 블라드 유진의 활약상을 촬영하는 중이었다.
“빨리 출발해 주세요. 이러다 늦겠습니다.”
그뿐이랴, 얼마 전에 입사한 막내 녀석은 얼른 따라가라며 운전기사를 닦달하기까지 했다.
도형욱이 그런 상황을 어이없게 쳐다보고 있자, 대원들은 뭐가 문제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부사장님은 안 찍으세요?”
왠지 혀를 차는 꼰대스러운 추임새가 튀어나와야 할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 * *
유진종합건설의 미궁 정화 사업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블라드 유진의 압도적인 활약에 힘입어 그들은 장단면 일대를 완벽하게 장악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북한 땅에 넘어가는 일만 남았으나, 공략대는 베이스캠프만 북진시키고 딱 멈춰 버렸다.
지금은 목표 지점을 향해서 속전속결로 길을 뚫는 게 아니라, 영토 확장 사업을 하는 중이었다.
이곳에 개발 인력과 물자들이 들어오려면, 안전 확보가 먼저인 법.
통일대교 앞에 머물러 있던 전선의 장벽을 이곳까지 끌어 올리는 게 최우선이었다.
쿠르르르르르! 쿵!
중장비가 반듯한 콘크리트 블록을 가져와서 쌓으면, 육군 장병들이 달려들어 걸쇠를 결속했다.
유닛 모듈러(Unit Modular) 공법으로 장벽을 세우는 것이다.
이러면 순식간에 몬스터를 차단할 벽과 포탑을 만들 수 있었다.
게다가 콘크리트 블록 또한 제작 각성자 즉, 생산직 헌터들이 만든 물건이라 방어력도 엄청났다.
미궁의 파편이 날아오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오염 지대를 이탈하는 몬스터는 없을 터였다.
“요격 미사일까지 배치되고 나면, 미궁의 파편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도형욱은 블라드 유진과 함께 한창 작업 중인 전선을 돌아보는 중이었다.
중심가와 외곽지를 구분하는 작업을 미리미리 해 둬야 나중에 잡음이 생기지 않을 테니까.
겸사겸사 그가 또다시 돌발 행동을 하지 않을까 감시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물론 상황을 전달받은 이후로는 혼자서 미궁을 공략할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
‘되게 당황했나 보군.’
유진은 이따금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도형욱을 보며 피식 미소 지었다.
도재한과 형제라더니, 전전긍긍하는 모습까지도 닮아 있었다.
한데, 그런 두 사람의 시야에 일단의 무리가 포착되었다.
그들은 전선 근처를 시찰하더니, 인근의 평지에 깃발 같은 것을 박아 넣기 시작했다.
“갑자기 저 사람들은 뭐죠?”
도형욱 대장의 질문에 그는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팔짱만 꼈다.
사실 블라드 유진은 장벽 근처를 기웃거리는 자들에 관해서 상당히 잘 알고 있었다.
저들은 경계 지역이 개척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올라온 비인가 헌터였다.
현재는 진 연합체가 전국 대부분을 꽉 잡고 있다시피 했으니, 새로운 파이를 찾으려고 혈안이 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원하는 바를 손에 넣지 못할 것이다.
이곳은 자연 생성된 경계 지역이 아니라, 미궁 개발 지원안에 의해서 공적으로 개척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내 비인가 헌터들의 정체를 알아본 도형욱 대장은 불쾌한 표정으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제재를 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러지.”
도형욱이 전화를 거는 동안, 블라드 유진은 혼자서 장벽 근처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어디선가 상당히 익숙한 기운과 함께 둔중한 충격파가 느껴지는 게 아닌가.
둥! 두웅!
그처럼 감각이 매우 예민하지 않다면, 감지할 수 없을 만큼 멀리서 시작된 진동이었다.
‘뭐지?’
유진은 휴대 전화를 붙잡고 열변을 토하는 도형욱 대장을 힐끔 돌아보았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찰싹 붙어 있는 중년 남성은 귀찮기 그지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행동할 생각은 없었다.
‘개발 시기에 맞춰서 정화만 잘해 주면 되는 거 아닌가.’
느릿한 작전 전개가 영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나, 계약은 계약이니 따라 줄 작정이었다.
그러나 계약서에 덩치 큰 중년 남자가 졸졸 따라다닐 거라는 내용은 없었다.
스윽!
그는 도형욱이 한창 통화하는 사이, 암흑화를 시전하며 채 완성되지 않은 장벽을 훌쩍 넘어갔다.
쿠웅! 쿠웅!
경계 지역을 지나 마기가 흐르는 오염 지대로 진입하자, 충격파는 좀 더 명확하게 느껴졌다.
“녹턴.”
흥미로운 눈빛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블라드 유진은 이내 유령 군마를 불러냈다.
진동이 약간 커지긴 했으나, 도보로 걸어갈 만한 거리가 아님을 깨달은 탓이었다.
물론 두 발로 달려가고자 하면 못할 건 없지만, 훌륭한 탈것을 보유하고서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림자에서 불쑥 튀어나온 녹턴은 형형한 눈빛으로 주변을 돌아보며 투레질했다.
“푸르르륵! 히히힝!”
최근 전투를 자주 겪다 보니, 녀석은 나오자마자 투기부터 발산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그런 녹턴의 목덜미를 슬슬 쓸어 주며 등에 몸을 실었다.
“아직 아니야. 가자.”
두두두두두!
이윽고 유령 군마는 희미한 말발굽 소리를 내며 허공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가공할 속도로 쏘아지고 있었으나, 공기를 가르는 파열음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녹턴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는 존재라, 물질의 영향에서 한발 벗어나 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유진은 충격파의 근원지에 도착했다.
그러자 강력한 마기를 뿜어내는 집채만 한 비석, 진서면 인근의 성체 미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도 군사 접경 지역이라, 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된 장소였다.
하지만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존재라면, 인간들이 만든 규칙 따위 깔끔하게 무시하고 들어올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덩치에, 미친 강도의 비늘로 전신이 뒤덮인 용 형상의 괴물이라면 말이다.
“엔세데스.”
놈의 이름을 나직이 읊조리자, 지면을 내리찍던 레드 드래곤이 시뻘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돌렸다.
―어? 뭐가 다가온다 했더니, 너였냐?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충남 논산에서 설치고 다닌다는 뉴스가 나왔는데, 대체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
그런 의문 가득한 눈빛을 읽은 모양인지, 엔세데스는 그에게 의념을 보내며 앞발을 내리찍었다.
쿠우웅!
―아, 이거? 극한의 효율을 뽑아내는 중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