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얄 블러드-128화 (129/226)

3화

"추, 추락이요?"

공수부대원의 말에 공략대의 표정이 일변했다.

이제 막 공략을 마친 상황인데, 더욱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 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는데도 우린 왜 몰랐죠?"

"지금은 하강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습니다. 여기서 대기하던 저희도 방금 알아차렸을 정도니까요."

"현재 고도는 얼마나 됩니까?"

"대략 3.5km가량입니다."

"10분에 500m라……."

"시간이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금방 추락하고 말 겁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강하 준비하죠."

"예."

안지홍은 비공정의 끄트머리로 가서 지상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강풍이 불고 있어 매우 위험해 보였지만, 한 번쯤은 상황을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아래쪽을 쳐다본 안지홍의 얼굴은 대번에 굳어 버렸다.

공수부대원의 말대로 천공의 성이 떨어지고 있었는데, 그 방향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거 재수 없으면 서울 한복판에 떨어질 수도 있겠는데."

비공정은 강한 난기류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고 수직으로 내려앉는 중이었다.

자체 부양력이 있어서 유성처럼 빠른 속도로 낙하하는 건 아니지만, 이대로 떨어지면 큰 피해를 면치 못할 터였다.

영토가 넓어지며 인구가 분산되었다고는 하나, 서울에는 아직 2천만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었으니까.

안지홍은 곧바로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인원을 수배했다.

한창 낙하산을 착용 중이던 헌터 몇 명이 다가오자, 안지홍은 심각한 표정으로 작전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낙하산에서 공격을 퍼부어 달라는 거지?"

강력한 폭발 스킬로 무장한 전시영도 당연히 이번 계획에 함께였다.

그녀의 질문에 안지홍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하게 파괴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지. 그럼 북쪽으로 떨어지도록 유도해야 해."

"좋아. 어디 한번 해 보자고."

안지홍은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공략대원들에게 다양한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근접 딜러들이 천공의 성에 온갖 스킬을 때려 박기 시작했다.

공격을 가해서 비공정의 크기를 좀 줄여 보려는 심산이었다.

콰광! 퍼어엉!

스킬을 모두 사용한 헌터들은 곧장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이 작전에 필요 없는 인원들은 빠져 있는 게 나으니까.

자칫 잘못하면 천공의 성에 깔릴 수도 있으니, 미리 낙하산을 펴서 천천히 떨어지려는 의도였다.

"초열지옥(焦熱地獄) 십지폭쇄(十指爆鎖)!"

삐이이! 쿠콰콰콰콰쾅!

전시영이 저 멀리 몸을 날리면서 스킬을 사용하자, 비공정이 휘청하며 한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그러자 그녀를 따라 낙하산을 펴던 원거리 딜러들이 일제히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사전에 약속한 대로 천공의 성을 서울 북쪽 멀리 날려 보낼 작정이었다.

아직 동두천 북부는 미궁 정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곳이라, 사람이 살지 않았으니까.

"초열지옥 연쇄역풍(連鎖逆風)!"

"스파이럴 거스트(Spiral Gust)!"

"일성추(一星錘)!"

콰과과과광!

원거리 딜러들의 스킬이 연속으로 쑤셔 박히자, 비공정은 점점 북쪽을 향해 밀려나는 모습을 보였다.

가장 마지막까지 기다리다가 딜러들과 함께 뛰어내린 안지홍은 주먹을 불끈 쥐며 쾌재를 불렀다.

"됐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그들의 얼굴은 사색으로 변하고 말았다.

크게 흔들리며 북쪽으로 나아가던 천공의 성이 한 차례 꿈틀거리더니 방향 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어떻게든 부양력을 만들려는 모양인지, 비공정은 아래쪽에서 시퍼런 빛을 토해 냈다.

그러나 잠시 속도가 늦춰졌을 뿐, 낙하는 계속되었다.

문제는 이 빌어먹을 놈의 공중 구조물이 원래 자리로 회귀하려 한다는 거였다.

쿠후우우우!

"이런 미친!"

"아니, 왜 되돌아오냐고!"

딜러들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재차 스킬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력한 스킬은 다 써 버린 상태.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천공의 성이 지면에 처박힌 다음일 터였다.

"젠장! 이대로라면 정말이지 엄청난……."

안지홍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공략대가 진입하기 전부터 서울에는 대피 명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콥스 크리처들이 마구 떨어지고 있는데, 도시에 사람을 머물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인명 피해는 그리 크지 않을지도 모르나, 서울은 지도에서 지워질 것이다.

그런데 모두가 절망한 바로 그때,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 * *

휘이이이잉!

블라드 유진은 전시영을 비롯한 원거리 딜러들이 공격 스킬을 퍼붓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북쪽으로 날아가던 천공의 성이 방향을 바꾸자, 그는 불편한 표정으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좀 위험해 보이는군."

유진이 바라보는 곳은 청담동에 있는 저택이었다.

하필이면 비공정은 자신의 집과 주변의 공원을 향해서 낙하하고 있었다.

몸이 찌뿌듯하여 개입하지 않으려고 했건만, 이러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쯧. 어쩔 수 없지. 가자."

스이잉! 두두두두두!

짧게 혀를 찬 그는 소수혈인을 뽑아 들고 녹턴에 올라타, 천공의 성으로 접근했다.

비공정의 아래쪽으로 이동하니, 푸른 빛을 뿜어내는 장치 수십 개가 붙어 있는 게 보였다.

그중에 절반 정도는 시커멓게 변한 것이, 기능을 상실한 듯했다.

아무래도 저 괴상한 장치가 천공의 성을 서울 상공에 고정해 놓는 역할을 하는 모양이었다.

'당장 이걸 파괴했다간 지면까지 도달하는 시간만 줄어들겠지. 골치 아픈 상황이다.'

부양력을 일으키는 기관이 없다면, 비공정은 몇 초 지나지 않아 땅바닥에 처박히게 될 터였다.

그렇다고 파괴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저 장치가 존재하는 한, 천공의 성은 애써 잘 지어 놓은 스위트홈 위에 무참히 내려앉을지도 모르니.

잠깐 생각에 잠겼던 그는 조금 전, 원거리 딜러들이 시도했던 방식을 떠올렸다.

"시작하자."

"이히히힝!"

유진이 갈기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녹턴은 비공정의 상단으로 솟구치며 날아갔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던 녀석은 급격하게 몸을 틀더니, 천공의 성 상단에 뒷발차기를 날렸다.

지난번에 새로 얻은 잉걸불 발자국을 시전한 듯, 시뻘건 불꽃이 치솟아 올랐다.

터어어엉!

녹턴의 뒷발차기는 콥스 오거를 일격에 날려 버렸을 정도로 강력했다.

체중을 실어 후려갈기자, 놀랍게도 비공정이 아까와 마찬가지로 크게 기울었다.

둘의 무게는 1톤가량에 불과했으나, 음속을 넘어서는 속도가 더해지자 엄청난 힘을 발휘한 것이다.

'지금이다!'

두두두두두!

담담하게 충격을 버텨 낸 유진은 녹턴을 몰고 천공의 성 밑바닥을 향해서 쏜살같이 날아갔다.

스캉! 콰칭―!

그가 시뻘건 칼날을 휘두르며 지나가자, 부양 장치가 반으로 쩍 갈라지더니 이내 빛을 잃어 갔다.

이제 비공정이 서울 한복판에 고정되는 현상은 사라졌지만, 다른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야 말았다.

부양력을 잃은 천공의 성이 낙하 속도를 기하급수적으로 높여 가기 시작한 것이다.

쿠후우우우!

하지만 녹턴의 뒷발차기에 의해 저 멀리 밀려나던 상황이라, 낙하 방향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전시영을 비롯한 딜러들이 공격을 퍼부었을 때처럼 북쪽으로 날아가고 있었으니까.

쿠구구구구!

그런데 문득 비공정의 움직임이 우뚝 멈추더니, 또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오는 게 아닌가.

아무래도 밑바닥의 장치는 그저 부유하는 힘만 발휘할 뿐, 위치를 고정하는 기능과는 상관없는 듯했다.

"이런……."

낮은 신음을 내뱉은 블라드 유진은 미간을 좁히며 얼른 천공의 성으로 따라붙었다.

콰가가각! 스핑―!

그는 수십 미터 길이의 소수혈인을 휘둘러 비공정을 쪼개기 시작했다.

이 거대한 구조물을 한 번에 처리하지 못한다면,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피해를 줄일 작정이었다.

운이 좋으면 파편이 유진의 집을 비껴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천공의 성은 워낙 거대했고, 그가 원하는 만큼 잘게 부술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벌써 비공정은 서울 상공 1.5km 지점을 통과하는 중이었으니까.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나.'

끝까지 따라붙으며 핏빛 칼날을 휘두르고 있었지만, 결과는 회의적일 듯했다.

한데, 천공의 성 측면으로 빠져나오려던 블라드 유진의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당히 곤란한 모양이군."

문득 고개를 돌려 보니, 마치 해먹에 누운 듯한 자세로 공중에 둥둥 떠 있는 엔세데스의 모습이 보였다.

화룡왕의 말에 그는 살짝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곤란한 건 내가 아니지. 그저 조금 아쉬울 뿐."

"하긴 저 괴상한 건물로 가득한 곳에 사는 자들만 곤란하겠지. 흐음……. 이거 고민인데 말이야."

"무슨 고민?"

"이 땅에 사는 인간들이 날 어떻게 받아들일지 하는 것? 역시 초장부터 강력한 이미지를 각인해 두는 게 좋겠네."

"대체 뭔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유진이 의문을 표하자, 엔세데스는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드래곤이 왜 포효하는지 아나?"

"알 리가."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서지. 새로운 곳에 왔으니, 지금이 딱 그런 절차가 필요할 때야."

"……."

그가 황당한 눈빛으로 쳐다보든 말든 화룡왕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몸을 날렸다.

쉬이이이익!

아무런 준비 동작도 없이 속도를 올린 엔세데스는 비공정의 옆으로 이동하여 붉은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번―쩍!

"으읏!"

난데없이 터져 나온 적광(赤光)에 낙하산을 타고 떨어져 내리던 딜러들이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들은 광채의 중심을 전혀 볼 수 없었지만, 블라드 유진은 달랐다.

그는 번득이는 빛무리 사이에서 엄청난 속도로 증식하는 화룡왕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몸길이만 200m는 가뿐히 넘을 듯한 레드 드래곤의 모습이 허공에 나타났다.

엘칸 차원의 고대룡, 화룡왕 엔세데스가 서울 상공에서 진면모를 드러낸 것이다.

녀석은 시뻘건 기운이 충만한 눈을 번득이며 우렁찬 포효를 질러 댔다.

"쿠오오오오!"

그러자 무시무시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화룡왕의 포효는 사뭇 대단한 위력을 내포하고 있었다.

고작 소리 한 번 지른 거로 낙하하던 비공정이 출렁이며 튕겨 나가려 할 정도였다.

하지만 원래 자리로 회귀하는 기능이 발동한 천공의 성은 이내 휘청거림을 멈춰 버렸다.

―호오?

그런 비공정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본 엔세데스는 아래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앞으로 지면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재미있는 오뚜기지만, 이제 좀 꺼져 줘야겠다.

화룡왕은 천공의 성을 향해서 아가리를 쫙 벌렸다.

그러자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녀석의 목구멍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엔세데스가 거대한 에너지의 결정체를 토해 내고 있을 무렵.

서울 상공을 날고 있던 공략대원들의 눈앞에 홀로그램 글귀가 우르르 떠올랐다.

당연히 녹턴과 함께 유영하던 블라드 유진에게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화룡왕 엔세데스'의 드래곤 브레스가 전개됩니다.]

[드래곤 브레스는 주변의 마나는 물론이고, 모든 에너지를 일순간 동결합니다.]

[이 일대에서의 스킬 사용이 30초간 차단됩니다.]

고농축 에너지의 결정체에 직격당한 비공정은 시뻘건 불길에 휩싸인 상태로 튕겨 나갔다.

드래곤 브레스는 엄청난 물리력까지 동반하고 있었으니까.

한데, 불타는 천공의 성이 날아가는 방향이 좀 이상했다.

―엥? 아니, 이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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