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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 블러드-116화 (117/226)

16화

메두사의 권능은 드래곤 피어보다 더욱 심한 디버프를 걸고 있었다.

이는 원래 메두사의 레벨이 고대룡보다 좀 더 높았기에 발생한 현상이었다.

능력치가 25%나 하락하는데, 무려 1시간 동안 지속되는 약화 효과.

그 말인즉, 블라드 유진은 레벨이 377이나 줄어든 상태로 메두사와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뜻했다.

적어도 1시간 안에는 전투가 끝나게 될 테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저 녀석에게 한번 실험해 볼 걸 그랬군. 대군주의 역병이 반신에게도 통하는지 말이야.’

만약 엔세데스한테 대군주의 역병이 통한다면, 메두사 역시 제대로 적용될 확률이 높으리라.

하지만 그는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상대는 반신에 해당하는 격 높은 존재였고, 최전성기의 자신 또한 대군주의 역병에 온전히 걸리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한번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 아니겠는가.

"샤아아아아!"

신전 입구까지 나와서 혀를 날름거리는 메두사의 모습은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머리카락은 수백 마리의 길고 굵은 뱀의 형상이었고, 번들거리는 녹색 비늘로 온몸이 뒤덮여 있었다.

상체는 사람과 닮은 모양새였지만, 하체는 무지막지한 굵기의 뱀이었다.

여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해서 몸집이 작거나 하지는 않았다.

메두사는 콥스 오거나 라바 골렘쯤은 가볍게 찢어발길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근육으로 뒤덮여 있었다.

비교하자면, 날개를 제외한 화룡왕의 덩치에 필적하는 수준이었다.

스스스스슥!

배판으로 사행 운동(蛇行 運動)을 하는 상대의 속도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메두사는 수십 미터 거리를 눈 깜짝할 사이에 좁히며 다가와 긴 혀를 날름거렸다.

무려 몸길이만 80m에 달하는 괴물이 그러고 있으니, 굉장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측면으로.’

스윽!

유진은 상대의 몸통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암흑화를 시전하며 옆으로 빠져나갔다.

어깨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공격에 대응하기 더 좋지만, 혹시라도 눈이 마주칠까 싶어서 복부 쪽을 바라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메두사가 팔을 휘둘러 기다란 손톱으로 긁어 올 때는 응수하기가 쉽지 않았다.

후우우웅!

소리만 듣고 공격 궤도를 짐작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메두사는 빠르게 그의 뒤를 따라붙으며 양손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자신의 장점을 잘 알고 있는 모양인지, 공격에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다.

스캉! 콰드드득!

3m가 넘게 자라난 손톱이 신전의 벽면과 바닥을 할퀴자, 다섯 줄기의 고랑이 쭉쭉 그어졌다.

긁으면 긁는 대로 쑥쑥 들어가는 걸 보니, 녀석의 손톱은 어마어마한 절삭력을 보유한 듯했다.

‘소수혈인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것 같군.’

신전에 깃든 기이한 힘을 생각하면, 절삭력과 강도 자체는 비슷할 것 같았다.

스이잉! 스이잉―!

블라드 유진은 6m 길이의 핏빛 칼날을 생성하여 양손에 나눠 쥐었다.

그러고는 지척까지 다가온 메두사의 손톱을 강하게 올려 쳐 보았다.

콰칭!

놀랍게도 시커먼 기류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상대의 손톱에는 조금의 손상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반면에 그는 손아귀에 상당한 충격을 느끼고 있었다.

만약 카이넬의 성검에 의한 화상이 아직 존재했다면, 대번에 손바닥이 찢어져 피가 철철 흘렀을 터였다.

다행히 그런 심각한 수준까지는 아니나, 무시 못 할 압력이 느껴진 건 사실이었다.

‘특별히 뭔가 기술을 쓴 것도 아닌데, 이 정도란 말이지.’

유진은 내심 메두사의 손톱 강도에 감탄하며 피의 권능을 끌어 올렸다.

상대가 강하다면, 약하게 만들면 그만이었다.

지금이 딱 반신에게도 디버프가 통하는지 확인할 적기였다.

[권능 폭발이 발동되었습니다.]

[1시간 동안 모든 스킬의 등급이 1단계 상승합니다.]

[‘권능 폭발’로 인해 ‘대군주의 역병’이 EX급으로 적용됩니다.]

[대군주의 역병이 범위 내의 모든 생명체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촤라라라락!

손톱을 튕겨 내며 생긴 틈을 타서 스킬을 발동하자, 시커먼 마기로 이루어진 박쥐들이 허공을 날아다녔다.

후우웅! 후웅!

그것들은 날카로운 손톱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메두사의 전신에 달라붙었다.

애초에 실체가 없는 기술이니, 물리력으로는 저지하지 못할 수밖에.

‘과연…….’

[상대가 대군주의 역병에 저항했습니다.]

[디버프 효과가 극도로 줄어듭니다.]

[각각 2%의 스킬 효과 감소와 체력 감소 저주가 적용됩니다.]

"그때와 똑같나."

아무래도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대상에게는 2%의 디버프 효과가 최대인 듯했다.

카이넬의 신전에서 만났던 최전성기의 자신 또한 고작 2%밖에 적용되지 않았으니까.

그때 마주쳤던 시련의 결정체보다 메두사는 레벨이 더 높을 게 분명하니, 사실상 이만한 효과도 감지덕지라고 할 수 있었다.

"츠릿?"

디버프의 존재를 알아차린 모양인지, 녀석은 상체를 곧추세우며 혀를 날름거렸다.

물론 상대의 복부만 쳐다보고 있던 그는 그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이내 디버프 효과가 별것 아님을 깨달은 메두사는 시커먼 기운을 뚝뚝 흘리며 블라드 유진을 향해 쇄도했다.

스르르르릇!

이번에는 적당히 거리를 좁혔지만, 손톱을 휘두르지 않고 상체를 크게 부풀렸다.

‘뭐지?’

상대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었던 그는 순간적으로 어떻게 대응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 정도 거리라면 당연히 시커먼 기운으로 이루어진 손톱이 날아들어야 하는데, 대신 머리 쪽에서 괴상한 소음이 들릴 뿐이었으니까.

그르륵! 촤하아아악!

그때 뭔가 내뿜어지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유진은 잽싸게 몸을 날렸다.

암흑화로 인해서 이동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지만, 메두사의 공격을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었다.

녀석이 입에서 쏟아 낸 보라색 액체는 신전의 절반 이상을 뒤덮을 만큼 광범위하게 퍼졌기 때문이었다.

쩌적―!

‘이건…….’

그는 발바닥에 달라붙는 찐득한 느낌에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메두사가 뿜어낸 보라색 액체는 마치 접착제처럼 끈적이며 움직임을 방해했다.

스르르르릇!

반면에 상대는 바닥에 뭐가 깔렸든 아무 상관 없다는 듯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주르륵 떠오른 홀로그램 글귀를 힐끔 살펴보니, 펼쳐진 기술의 이름은 ‘질주의 늪’이었다.

이 위에서는 본인만 빠르게 움직일 수 있으니, 그런 이름이 붙은 모양이었다.

블라드 유진은 시야를 방해하는 홀로그램을 옆으로 깡그리 치워 놓고, 메두사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느려진 발걸음 때문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상대의 공격을 맞받아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오른쪽? 왼쪽? ……위다!’

비늘로 뒤덮인 메두사의 매끈한 복부를 바라보던 그는 위에서 느껴지는 파공성에 소수혈인을 올려 쳤다.

쩌어어엉!

그러자 다섯 줄기의 손톱이 핏빛 칼날에 막혔다.

유진은 그 상태에서 피의 권능을 극도로 발휘하며 오른손을 빠르게 내질렀다.

소수혈인이 대략 1m가량 길어지며 메두사의 복부에 정확히 틀어박혔다.

제대로 된 반격이 들어간 것이다.

쩌어엉! 따다다다당!

하지만 그는 곧장 칼날을 회수하며 오른편에서 날아들던 다섯 줄기의 손톱을 튕겨 내야만 했다.

예상과는 달리, EX급으로 적용된 소수혈인 조차도 상대에게 타격을 줄 수가 없었다.

‘얕았나? 아니, 그건 아니야.’

파공성을 듣자마자 방향을 돌렸지만, 도첨은 확실히 힘을 받아 메두사의 복부에 쑤셔박혔다.

그저 녀석의 방어력이 워낙 높아서 큰 피해가 없었을 뿐이었다.

터더더더더덩!

속도가 느려져 제대로 회피할 수가 없었던 블라드 유진은 정신없이 상대의 공격을 튕겨 냈다.

소리와 살기만으로 공격 궤도를 알아채고, 소수혈인을 들이미는 건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오오! 저런 게 가능하다니, 대단한 실력인걸? 검술만 따지자면, 나 같은 건 절대로 못 이길 수준이로군."

멀찍이 떨어져서 전투 장면을 지켜보던 화룡왕마저도 감탄을 터트리는 중이었다.

엔세데스는 술잔을 기울이는 것도 잊고, 메두사와 유진의 치열한 공방에 극도로 몰입한 채 바라보았다.

미리 정적의 결계를 펼쳐 둔 덕분에, 석화 저주에 걸릴 염려는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는 동안, 전투는 절정을 향해서 치달아 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질주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

메두사와 맹렬한 접전을 벌이는 동안에도 그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느리지만 끈질기게 이동한 결과, 벌써 보랏빛 액체가 퍼진 곳의 끄트머리까지 간 상태였다.

척! 스스스슥!

끝끝내 멀쩡한 지면에 발을 디딘 블라드 유진은 급속도로 빨라지며 상대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다.

암흑화의 효과로 질주하는 소리조차 거의 나지 않았지만, 속도 하나만큼은 메두사가 따라오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자 녀석은 한 번 더 뭔가가 들끓는 듯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르륵! 촤하아아악!

"녹턴!"

질주의 늪이 재차 시전될 기미가 보이자마자, 그는 곧장 녹턴을 불렀다.

그러자 그림자에서 검붉은 형상이 불쑥 치솟더니, 유진을 태우고 빠르게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두두두두두!

‘됐다. 여기까지!’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말갈기를 놓은 그는 곧장 지면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녹턴을 부른 이유는 질주의 늪에서 빠르게 벗어나기 위함일 뿐이었다.

혹시나 유령 군마를 타고 다니며 싸운다면, 운신의 폭이 넓어질 터였다.

하지만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만큼 메두사와 눈이 마주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석화 저주가 자신의 몸에는 어떻게 적용될지 모르나, 웬만하면 아예 안 걸리는 쪽이 나을 듯했다.

화룡왕이 경고했을 정도니까, 위험 부담이 꽤 컸다.

‘이제 승부수를 띄우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 스킬을 좀 더 소모하도록 유도하는 게 나을까?’

상대가 반신인 이상, 온갖 기상천외한 스킬이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혹시나 블라드 유진의 궁극기들을 무력화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일단 지속 시간이 긴 스킬부터 차례로 시전해 보기로 했다.

어차피 권능 폭발의 지속 시간은 1시간이었으니, 그 안에 끝내기만 하면 될 테니까.

[‘권능 폭발’로 인해 ‘시공투절’이 EX급 최대치의 위력으로 적용됩니다.]

[EX급 스킬 ‘시공투절(時空透切)’이 시전되었습니다.]

[시공투절의 지속 시간이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원래 시공투절은 30분 지속에 재사용 대기 3시간인 스킬이었다.

하지만 권능 폭발의 효과로 지속 시간이 두 배가 되었으니, 미리 사용해 둬도 큰 무리가 없었다.

앞으로 유진은 1시간 동안 원하는 곳에 칼날이 간신히 통과할 법한 크기의 웜 홀을 만들 수 있었다.

"흡!"

피의 권능을 폭발적으로 운용한 그는 7m 길이까지 자라난 소수혈인을 강하게 쑤셔 박았다.

물론 메두사의 체내로 이어진 웜 홀을 향해서 말이다.

스슥―!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문득 기묘한 살기를 느낀 블라드 유진은 공격을 가함과 동시에 뒤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시커먼 무언가가 눈앞에 어른거리는 게 보였다.

콰칭!

반사적으로 왼손에 들고 있던 소수혈인을 휘두르니, 삐죽한 물체가 빙글빙글 돌며 튕겨 나갔다.

티잉! 팅! 팅!

문득 고개를 돌려 보니 시커먼 기류가 올라오는 메두사의 손톱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와 거리가 멀어지자, 녀석이 냅다 손톱을 뽑아서 던진 모양이었다.

‘시공투절은 어떻게 되었지?’

유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상대의 복부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외견상으로는 이렇다 할 표시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메두사의 꼬리 쪽에 붉은 칼날이 떨어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상대의 몸통이 드래곤보다는 훨씬 작았고, 쾌속한 움직임 탓에 제대로 맞히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시간과 쑤셔 박을 소수혈인은 많았으니까.

한데, 바로 그 순간 메두사가 괴성을 지르며 뭔가를 쏘아 보내는 게 아닌가.

이번에는 무려 아홉 개의 손톱이 동시에 날아들었다.

타다당!

블라드 유진은 소수혈인을 놀려 손톱 투척을 튕겨 내면서 뒤로 좀 더 물러났다.

어쨌든 간에 시야가 닿는 이상, 시공투절은 거리에 상관없이 쓸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메두사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가만히 선 채로 또 다른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음? 이거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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