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이제껏 싸워 본 인물 중에 유진을 곤란하게 했던 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단순한 강함으로만 치면 안테리오르 타워의 게일드 백작이나, 비산의 암살자 페드로 등 마족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기둥의 그늘에 가려져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지녔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래. 당연히 이 정도는 되어야겠지. 한데, 누군지 전혀 모르겠군.’
상대의 얼굴을 식별할 수 없자, 블라드 유진은 단상의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올라갈 때와는 달리, 전신을 압박하던 카이넬의 신성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시련의 상대가 나타난 이후로 물러간 것 같았다.
당연히 공정한 전투를 위해서 신성력의 개입이 사라진 건 아닐 것이다.
이 시련이라는 것 자체가 공정할 수 없는 도전이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카이넬의 신성력이 갑작스럽게 사라진 모종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저건……?"
단상을 내려간 유진의 앞에 서 있는 건, 은하수 같은 은발에 차디찬 흑요석처럼 빛나는 눈을 지닌 자신이었으니까.
마치 거울을 보는 듯, 상대는 그와 완벽하게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공포의 대상이 존재치 않아, 최강자가 상대로 지정되었습니다.]
[당신은 최전성기 때의 자신을 적수로 마주하게 됩니다.]
[시련 결정체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쟁취하십시오.]
"허!"
블라드 유진은 순간적으로 헛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최전성기 때의 자신이란, EX급인 데다가 레벨이 1,775나 되는 괴물 중의 괴물이 아니었던가.
물론 저 때는 수코의 인장이 없다지만, 지금의 그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첫 번째 시련에서 사용한 마신강림은 적어도 일주일 뒤에나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수코의 인장 자체 효과는 이 싸움에서 큰 이득을 보기 어려웠다.
신성 저항과 신격 강화는 봉인되기 전의 블라드 유진에게 전혀 통하지 않는 옵션이니까.
스이잉―!
상대는 손끝에서 다섯 줄기의 시뻘건 칼날을 뽑아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피의 권능을 일으켜 소수혈인을 시전한 것이다.
섬뜩한 기운으로 이루어진 핏빛 칼날을 보자, 그는 순간적으로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현재 자신의 것보다 더욱 고농도의 권능이 놈의 소수혈인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탓이었다.
‘곤란하게 되었군. 이거……. 이길 수는 있나?’
현재 유진의 레벨은 976에 정체되어 있었다.
안테리오르 타워에서 게일드 백작을 쓰러뜨린 이후, 그와 비슷하거나 더 강한 적과 맞붙은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상대보다 799레벨이나 낮은 상황.
EX급과 SS급은 고작 한 단계일 뿐이지만, 레벨은 거의 두 배 가까운 격차를 보였다.
이 정도면 아예 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스윽!
"……."
시련의 결정체는 입도 벙끗하지 않고, 암흑화를 시전하며 빠르게 접근해왔다.
최전성기 유진의 능력치에 똑같은 스킬까지 갖췄지만, 말하는 기능 따위는 없는 모양이었다.
상대가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자, 그는 6m 길이의 핏빛 칼날을 뽑아내 횡으로 쭉 그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련의 결정체는 쭉 뻗었던 손가락을 확 움켜쥐며, 소수혈인을 하나로 합치는 게 아닌가.
허공에 거대한 붉은 도 한 자루를 만들어 내는 모습까지도 블라드 유진과 판박이였다.
콰칭―!
칼날이 열십자로 부딪치자, 시뻘건 파편이 마치 불똥처럼 튀었다.
서로의 막강한 위력을 감내하지 못하고, 날을 이루던 에너지가 조각조각 부서지며 흩날린 것이다.
하지만 튕겨 나가던 붉은 파편은 허공에 딱 멈추더니, 각자의 몸으로 되돌아가 자취를 감추었다.
혈액과 마기에 적용되는 강력한 권능의 흡입력에 에너지가 빨려 들어가듯 신속하게 복귀했다.
‘얼핏 우열이 없어 보이지만, 내가 극단적으로 불리하다.’
소수혈인은 둘 다 피의 권능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색상을 통해서 위력을 구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직접 맞붙는 당사자는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누구의 칼날이 더 많이 손상되었는지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고 희미해서 잘 보이지 않았으나, 블라드 유진은 상대보다 피부로 에너지를 더 많이 흡수했다.
그만큼 소수혈인을 복구하기 위해 소모되는 피의 권능이 더 많은 것이다.
이대로 치고받는 싸움이 끝까지 지속되기만 해도 지쳐 쓰러지는 건 그가 될 터였다.
하필이면 두려워하는 대상이 없어서 봉인되지 않은 과거의 자신이 상대로 걸릴 게 무엇인가.
이럴 줄 알았다면, 겁을 좀 키워 둘 걸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채웠다.
‘타개책을 찾아야 할 텐데. 슬슬 권능 폭발은 돌아왔군.’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권능 폭발의 재사용 대기가 끝난 상태였다.
하지만 문제는 상대도 유진과 똑같이 권능 폭발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시련의 결정체는 마신 강림을 제외한 뱀파이어 로드의 모든 스킬을 구사할 수 있었다.
그래도 눈치만 보느라 스킬을 쓰지 않을 수는 없었다.
‘승부수를 던져 보자.’
소수혈인을 다루는 버릇부터 오랫동안 사용해 온 검술까지, 시련의 결정체는 완벽하게 전성기의 자신과 똑같았다.
아무래도 그의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상대이기 때문인 듯했다.
그렇다는 건 스킬 연계까지도 전부 따라 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상대를 쓰러뜨릴 일말의 확률을 기대하고 스킬을 전개했다.
[권능 폭발이 발동되었습니다.]
[1시간 동안 모든 스킬의 등급이 1단계 상승합니다.]
[EX급 스킬 ‘천계도살검(天界屠殺劍)’이 시전되었습니다.]
[‘권능 폭발’로 인해 ‘천계도살검’이 EX급 최대치의 위력으로 적용됩니다.]
[‘피의 군주 블라드 유진’에게 공포 효과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공포 면역.]
츠팟―!
보랏빛 섬광이 시련의 결정체를 향해 휘둘러지려는 순간, 유진은 품속에서 시뻘건 무언가를 꺼내 왼손에 쥐었다.
게일드 백작을 처치하고 얻은 불꽃 모양의 거대한 칼, 악염도였다.
"화신(火神). 맹폭(猛爆)."
거추장스러운 도신(刀身)의 모양 때문에, 그는 웬만하면 악염도를 잘 꺼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자신만이 가진 무언가를 써야만 했다.
게일드 백작에게서 얻은 악염도 또한 그런 특별한 무기 중 하나였다.
그저 취향을 이유로 복주머니 속에 가만히 넣어 둘 수만은 없었다.
쿠르르르! 쿠화아아!
시뻘건 화염의 기운이 닿는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며 전방을 향해서 쏘아졌다.
어느새 신전의 바닥은 그가 뿜어내는 샛노란 빛줄기에 닿아 용암 지대로 변한 상태였다.
소멸의 불길과 마그마가 동시에 상대를 덮치는 순간, 블라드 유진은 보랏빛 섬광을 내질렀다.
천계도살검의 지속 시간은 고작 3초.
하지만 무지막지한 속도로 움직이는 그에겐 모든 공격을 다 마칠 정도로 충분한 시간이었다.
쩌어어어엉!
그러나 문제는 상대도 똑같은 스킬을 더욱 강한 위력으로 시전할 수 있다는 거였다.
악염도에 깃든 스킬인 화신과 맹폭이 시련의 결정체를 덮쳤지만, 암자색 섬광이 불쑥 튀어나와 화염을 잘라 내기 시작했다.
지독하게 불길하고 강력한 힘은 솟구쳐 오르던 마그마를 단숨에 썰어 버렸다.
게다가 마치 그 어떤 단단한 물질이라도 일격에 갈라 버릴 기세로 쏘아지던 천계도살검마저도 막아 냈다.
찌이이잉!
두 종류의 보랏빛 기운이 충돌하자, 귀청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소음이 신전을 가득 울렸다.
마치 내장을 후벼 파는 듯한 무시무시한 충격에 유진은 뒷걸음질을 쳐야만 했다.
그는 상상을 초월하는 완력을 지닌 악신황 크락시스에게서도 네 걸음밖에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치이이이익!
바닥에 발을 쑤셔 박아서 멈춰야 할 정도로 수십 미터나 튕겨 나왔다.
이게 다 시련의 결정체가 들고 있는 암자색 검 한 자루 때문이었다.
‘완성된 천계도살검.’
봉인으로 인하여 블라드 유진은 3초밖에 전개할 수 없지만, 상대는 달랐다.
전성기 때의 그는 꽤 넉넉하게 천계도살검을 뽑아낼 수 있었다.
물론 뱀파이어 로드의 궁극 스킬 중 하나라, 마음껏 펑펑 쓸 수는 없었지만.
"……."
휘리릭!
상대는 아무런 말도 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보랏빛 기운으로 이루어진 검을 휘돌렸다.
그러더니 문득 천계도살검으로 허공을 슬쩍 찌르는 게 아닌가.
"이건……!"
스핏!
"흡!"
블라드 유진은 순간적으로 몸을 날려 측면에서 튀어나온 보랏빛 섬광을 피해 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자마자 재빨리 회피했기에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천계도살검에 꿰뚫릴 뻔했다.
촤학―! 스윽!
바닥을 긁으며 자세를 제어한 그는 곧장 암흑화를 시전하며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지 않고 잠시라도 가만히 서 있었다간, 상대가 휘둘러대는 보랏빛 섬광에 적중되고 말 터였다.
제아무리 마기의 일종인 피의 권능을 다룬다지만, 천계도살검에 당한다면 유진조차도 위험할 수 있었다.
‘시공투절(時空透切). 참으로 오랜만이로군.’
시공투절은 뱀파이어 로드에게만 주어진 극강의 스킬로, 차원을 접어서 이동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일견 초열지옥 역풍과 비슷해 보이지만, 발동 방식이나 속도에서 극명한 차이점이 있었다.
공격을 시작한다는 것조차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에 적중된다고 해야 할 정도였다.
스핏! 스윽!
간발의 차이로 뒤에서 튀어나온 보랏빛 섬광을 피한 그는 상대를 힐끔 바라보았다.
벌써 천계도살검을 시전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아마 지금쯤이면 제아무리 최전성기의 자신이라고 해도 스킬이 끝날 때가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시련의 결정체가 든 암자색 칼날은 어느새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천계도살검이 해제되자, 곧장 소수혈인을 뽑아 든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시공투절은 계속되는 중이었다.
스피리리릿!
문제는 천계도살검 때보다 더 피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거였다.
소수혈인의 칼날은 무려 열 개나 되어서 그야말로 이곳저곳에서 마구 튀어나왔다.
아무래도 천계도살검을 운용하지 않으니, 시공투절을 더 많이 시전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소모되는 권능의 양이 줄어드니까 이는 당연히 예견된 결과였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시시때때로 시뻘건 칼날이 불쑥 모습을 드러내자, 유진은 결국 상대의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스핏! 콰직! 푹―!
"큭!"
소수혈인이 팔뚝과 옆구리에 박히자, 그는 급격히 몸을 틀며 측면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통증을 무시하며 강제로 칼날을 뽑지 않았다면, 그대로 수십 조각으로 쪼개져 버렸을 터였다.
방금까지 블라드 유진이 있던 장소는 시공투절에 힘입은 소수혈인의 위력에 난도질당하고 있었으니까.
‘회복이 거의 안 되는군.’
그는 팔뚝과 옆구리의 상처를 힐끔거리며 연신 몸을 날렸다.
피의 권능이 충분할 때의 뱀파이어는 트롤 못지않은 회복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물론 특별한 힘에 의한 부상은 복구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소수혈인이 남긴 상처에는 끈적한 피의 권능이 남아서 회복을 방해하고 있었다.
상대가 유진보다 레벨이 압도적으로 높아서, 권능에 담긴 의지를 배제하고 흡수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적어도 전투 중에는 시도조차 할 수가 없었다.
일단 내부에서 지혈을 시도하여 혈액의 유출은 막았으나, 상처 부위로 지독한 고통이 밀려 들어왔다.
하지만 그는 암흑화와 회피 기동을 멈추지 못했다.
아직도 엄청난 양의 소수혈인이 공간을 뛰어넘어서, 명줄을 끊으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핏! 촤학!
엄청난 속도로 불규칙하게 움직였지만, 무지막지한 물량 공세에는 도무지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어느새 블라드 유진의 육신에는 하나둘 소수혈인에 의한 상흔이 늘어가는 중이었다.
뱀파이어 로드의 신체가 제아무리 단단하다 하더라도 막강한 피의 권능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시련의 결정체는 뱀파이어 로드의 궁극 스킬마저 탑재하고 있었으니, 이만큼 버틴 것도 용한 일이었다.
사실 레벨 격차가 이토록 큰 데도 백중세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상대가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스킬과 심리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지, 다른 상대였다면 진작에 승부가 났을 터였다.
하지만 그것도 임기응변으로 승부가 기우는 것을 간신히 막아 놓았을 뿐, 매 순간이 위기의 연속이었다.
‘뭐든. 지금은 뭐라도 다 동원해야 한다.’
이대로 계속 간다면 그저 시련에 실패하는 게 아니라,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스핏! 스피리리릿!
날카로운 핏빛 칼날이 내는 미약한 파공성이 마치 아름다운 선율처럼 들려왔다.
듣기에는 톡톡 튀는 경쾌한 음악 같았지만, 사실 이건 죽음으로 직행하는 행진곡이었다.
암흑화의 효과로 공격을 가까스로 피해 낸 그는 눈을 시뻘겋게 빛내며 시커먼 무언가를 쏟아 냈다.
[‘권능 폭발’로 인해 ‘대군주의 역병’이 EX급으로 적용됩니다.]
[대군주의 역병이 범위 내의 모든 생명체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츠츠츠츠츠! 촤라라라락!
사방으로 퍼진 박쥐들은 시커먼 마기를 토해 내 시련의 결정체에게 강력한 디버프를 걸었다.
하지만 블라드 유진의 눈앞에 뜬 홀로그램 글귀는 실망스러운 내용을 품고 있었다.
[상대가 대군주의 역병에 저항했습니다.]
[디버프 효과가 극도로 줄어듭니다.]
[각각 2%의 스킬 효과 감소와 체력 감소 저주가 적용됩니다.]
2%의 효과라면 사실상 저주가 아예 적용되지 않은 거나 다름없었다.
역시나 강력한 마기를 지닌 존재에게는 대군주의 역병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몬스터라면 몰라도 마계 백작급 이상의 마족이나 뱀파이어 로드에게는 움직임을 방해하는 귀찮은 마기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그의 상처 근처에서 회복을 방해하고 있는 상대의 마기처럼 말이다.
‘시간이나 좀 벌어 보자. 폭사.’
투두두두두둥!
유진은 시련의 결정체를 향해서 몸을 틀며 왼손을 쭉 내밀었다.
그러자 시커먼 송곳 같은 무언가가 녀석에게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권능 폭발로 인하여 폭사가 S급 스킬로 적용되기는 했으나, 큰 기대는 걸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방위적으로 가해지던 상대의 압박이 다소 줄어드는 게 아닌가.
‘호오?’
그저 견제 용도로 쏘아붙인 것일 뿐인데, 이 정도로 효과가 좋다니.
그는 눈에 이채를 띠며 시련의 결정체를 돌아보았다.
놈은 여섯 개의 굵직한 송곳을 모조리 피하고는 또다시 허공에 소수혈인을 찔러 대고 있었다.
스핏! 콰칭!
블라드 유진은 측면에 발생한 웜홀에 시뻘건 칼날을 들이대서 공격을 막으며, 잽싸게 몸을 날렸다.
재차 상대의 시공투절을 통한 압박이 거세지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기회를 보다가 시련의 결정체를 향해서 다시 한번 폭사 스킬을 날려 보았다.
‘폭사.’
투두두두두둥!
그러자 녀석은 황급히 자리를 옮기며 여섯 개의 송곳을 피해 냈다.
"지금이다."
스윽!
유진은 암흑화를 전개하며 엄청난 속도로 상대를 향해서 쏘아지듯 나아갔다.
시련의 결정체가 몸을 피하며 잠시 공격을 멈춘 틈을 타서 반격을 가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시도는 허무하게 차단되고 말았다.
스피리리리릿!
시공투절을 전개한 녀석이 열 개의 시뻘건 칼날을 블라드 유진의 이동 경로에 흩뿌린 것이다.
고속으로 이동하던 그는 불길함을 감지하자마자 급격하게 방향을 틀며 옆으로 빠져나왔다.
육감을 믿고 과감하게 움직였기에, 심각한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하마터면 저 무시무시한 핏빛 칼날의 향연에 스스로 몸을 던질뻔했다.
‘답이 없군.’
유진은 아이템에 내장된 스킬을 활용하기 위해서 다시금 복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런데 문득 그는 자신의 품속에서 희미한 백광이 올라오는 걸 발견했다.
"이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