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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 블러드-101화 (102/226)

1화

정상 회담이 끝난 직후, 전시영과 루시아는 곧장 블라드 유진의 저택으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아크웰 페리티노도 함께였다.

녀석은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저 멀리 보이는 저택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가 천공의 성으로 떠났음을 직접 확인하고 싶은 것 같았다.

궁금증에 휩싸인 채 오솔길을 걷고 있는데, 문득 옆에서 전시영과 루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항공기로 실어 나른다는데, 낙하산이 걱정이야."

"떨어지자마자 바로 편다 치면, 충격이 그리 크지 않을 것 같던데요. 충분히 일리 있는 작전이에요."

"문제는 변수가 좀 크다는 거지. 자칫 바람이 세게 불기라도 하면,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고 그대로 내려가야 할걸?"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요. 급하게 배운다고 해도, 단기간에는 낙하산을 잘 다루지 못할 테니까요."

"스카이다이버들과 함께 내려보낸다던데,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

"어쩌면 공략대의 일부는 천공의 성으로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겠네요."

"몇 번이고 시도하면 되긴 할 테지만, 그럴 시간이 있을까 싶군. 그나저나 이미 유진은 진입 중이라며?"

"네, 얼른 따라붙어야죠."

"어휴! 꼭 드라코 도무스 때 같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크웰은 블라드 유진과의 통화를 떠올렸다.

날카로운 바람 소리와 함께 희미하게 들리던 몬스터의 괴성.

생생한 현장감 때문에, 그가 천공의 성으로 먼저 갔다는 말이 진실인 것 같았다.

잠깐 생각에 잠긴 동안, 세 사람은 유진의 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곳에는 검은 머리칼을 흩날리는 작달막한 소녀가 있었다.

암청색 기운으로 된 무기를 휘둘러서 콥스 크리처들을 도륙하는 자는 다크 엘프 레니였다.

콰직―! 푸확!

콥스 오크의 목을 잘라 낸 그녀는 한 손으로 사체를 붙잡고 어딘가로 휙 던져 버렸다.

후우웅! 철퍽!

그러자 마치 산처럼 쌓인 시커먼 더미 위에 마지막 녀석의 사체가 날아들었다.

레니는 무표정한 얼굴로 녹색 액체가 뚝뚝 떨어지는 콥스 오크의 머리를 사체 더미의 꼭대기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암청색 낫을 어깨에 척 걸치며 뒤를 돌아보았다.

마기에 뒤덮여 어두컴컴한 하늘을 배경으로, 사체 더미에 올라가 서 있는 소녀의 모습은 무시무시하기 그지없었다.

주변 상황과 귀여운 얼굴이 대비되어 보여서 더욱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레니?"

선두에 서 있던 아크웰은 상대의 존재를 알아채고 조심스럽게 이름을 불러 보았다.

그러자 사체를 발로 쿡쿡 밟던 레니가 무심하게 시선을 돌렸다.

살벌한 공기를 느낀 아크웰은 살짝 멈칫했지만, 질문을 멈추지는 않았다.

"……역시 유진 님은 저기?"

아크웰이 어두컴컴한 하늘을 콕콕 찌르며 묻자, 레니의 시선이 위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웅.

그제야 아크웰 페리티노는 폰시아노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드라코 도무스를 공략하던 대략 1년 전의 그때처럼 블라드 유진은 혼자서 적진으로 쳐들어간 것이다.

"Holy S……."

"어어? 교황청 소속이신 분이 그런 말씀을?"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던 아크웰은 루시아의 지적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녀석에게는 참 여러모로 잘 안 풀리는 날이었다.

* * *

각국의 헌터계가 힘을 모아 공략대를 구성하는 동안, 블라드 유진은 천공의 성에 접근하는 중이었다.

자꾸만 저택에 피해를 주는 마족 놈들의 행태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올라온 것이었다.

하지만 천공의 성에 접근하기도 전에 그는 상당한 난관에 부딪혀야만 했다.

"캬아아아악!"

쐐애애애액!

큼지막한 무언가가 마기에 휩싸인 천공의 성 주변을 엄청난 속도로 날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피막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날개에 튼튼해 보이는 두 다리, 기다란 목에 붙은 드래곤을 닮은 머리.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로 무장한 비룡(飛龍), 와이번 무리가 경계하듯 마기의 구름 속을 배회했다.

녀석들은 어두컴컴한 먹구름 속에서도 부딪히지 않고 능숙하게 비행하는 중이었다.

녹턴을 타고 천공의 성으로 접근하던 유진은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잠시 멈춰 섰다.

"상당히 많군."

비공정을 호위하듯 편대를 이루며 이동하는 와이번들은 얼추 60마리쯤 되어 보였다.

몸길이가 20m나 되는 녀석들이 비행하는 모습은 이질적이기 그지없었다.

익룡조차도 와이번의 반이나 될 정도의 크기였으니까.

"콰우우우우!"

번들거리는 시커먼 비늘로 뒤덮인 녀석들은 이따금 녹색 액체를 분사하기도 했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찐득한 덩어리는 마치 유성처럼 도시에 떨어져 내렸다.

퍽! 치이이이익!

아니나 다를까, 강산성의 녹색 액체가 폭발하더니 집 한 채를 순식간에 녹여 버렸다.

공교롭게도 그곳은 블라드 유진의 집 근처인 삼성동이었다.

"이놈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던 그의 눈에 순간적으로 불똥이 튀었다.

"끼르르륵!"

"끼륵! 끼륵!"

마치 낄낄거리는 듯한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놈들이 자신의 집에도 저런 짓거리를 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이곳에 뭐가 있든 곧장 천공의 성으로 진입하려던 참이었다.

암흑화에 S+급으로 진화한 녹턴의 은신 능력이라면, 들키지 않고 잠입하는 게 가능할 테니까.

하지만 저 꼴을 보고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마침 권능 폭발이 발동 중이군."

세 마리의 콥스 오거를 처치하고 올라온 길이라, 권능 폭발의 지속 시간은 아직 30분이나 남은 상태였다.

스이잉―!

소수혈인으로 거대한 핏빛 칼날을 만들어 낸 블라드 유진은 곧장 와이번들을 향해서 짓쳐 들어갔다.

놀랍게도 녹턴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다니는 녀석들을 순식간에 따라잡았다.

쐐애애액!

"끼릐릑?"

난데없이 시커먼 무언가가 자신들의 옆으로 빠르게 접근하자, 와이번들은 고개를 까딱거렸다.

놈들은 긴 목을 이용하여 지척까지 다가온 물체를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무자비한 칼질은 녀석들에게 그런 여유 따위는 일절 주지 않았다.

쑤화아아앙! 퍼버버버벅!

녹턴이 순간적으로 더욱 가속하자, 허공에 한 줄기 붉은 선이 그어졌다.

편대를 가로지른 유진이 와이번 다섯 마리의 목을 동시에 잘라 버렸기 때문이었다.

푸화아아악!

녹색 혈액이 허공을 점점이 수놓는 순간, 이미 그와 녹턴은 다른 편대로 접근하고 있었다.

"끼이이이익!"

동족들이 한순간에 썰려 나가는 걸 확인한 와이번들은 괴성을 지르며 방향을 틀었다.

더 이상 편대를 유지하지 않고, 제각각 살길을 찾아 이동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유진을 향한 반격은 거의 즉각적으로 이루어졌다.

"쿠뤠에에엑!"

푸쉬이이이!

지면을 향해서 큼지막한 덩어리를 쏠 때와는 달리, 녀석들은 녹색 액체를 넓은 범위에 분사해 버렸다.

이러면 강산성의 물방울들이 화망을 형성하여 쇄도하던 목표의 몸에 닿을 테니까.

하지만 녹턴의 대응은 간결하고 매우 적절했다.

그가 갈기를 잡아당기며 의지를 발하자, 녹턴은 곧장 전방을 향해서 시뻘건 불길을 토해 냈다.

쿠화아아아!

그러자 마치 스프레이처럼 분사되었던 녹색 액체가 강력한 화염에 엄청난 속도로 증발해 버렸다.

푸휘이익―!

백 드래프트(Back Draft) 현상과 같이 전방으로 쭉 쏘아져 나가던 불길을 뚫고 녹턴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다음 상황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쑤화아아앙! 퍼버버버벅!

피의 권능을 더 주입했는지, 8m까지 쭉 뻗은 시뻘건 칼날이 와이번들의 목을 우수수 잘라 버렸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학살극이었다.

목이 잘린 녀석들은 녹색 액체를 쏟아 내며 지면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낙하하는 지점이 얼추 한강 북쪽이라, 유진은 그대로 녹턴의 방향을 돌렸다.

쐐애애액!

허공을 꿰뚫는 녹턴의 기세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덩치는 와이번들이 훨씬 더 컸지만, 시뻘건 화염을 뿜어내는 유령 군마를 보자마자 놈들은 황급히 줄행랑을 놓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제어를 벗어날 만큼 콥스 와이번들은 심각한 공포에 질리고 만 것이다.

유진은 어느새 비공정 반대편으로 도망치는 중인 와이번 무리를 바라보았다.

이제 저놈들을 마무리 짓고 천공의 성을 공략할 차례였다.

"귀찮게 도주하지 말고, 얌전히 죽어라. 시체들아."

그는 한 줄기 붉은 섬광이 되어 와이번 무리를 꿰뚫고 지나갔다.

그러자 예리하게 잘린 놈들의 사체가 녹색 액체를 마구 내뿜으며 허망하게 낙하하기 시작했다.

콰지직! 쑤화아앙!

"퀘에엑!"

"크위에엑!"

블라드 유진의 손속에 자비란 존재치 않았다.

그의 소수혈인은 단단한 콥스 와이번의 외피를 마치 두부처럼 썰어 버렸다.

놈들이 강산성의 녹색 액체를 분사하며 대항해 보았으나,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미 한 번 이상 죽었던 놈이니, 생에 미련은 없겠지."

콥스 크리처들은 온갖 사체를 얼기설기 이어서 만든 인공 생명체라서 오로지 제작자의 명령에만 따랐다.

하지만 놀랍게도 녀석들은 유진에게서 지독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 * *

번―쩍!

"아아……."

천공의 성 바깥에서 시뻘건 섬광이 번득이자, 누군가가 낮은 탄식을 터트렸다.

녹턴을 타고 와이번들을 엄청난 속도로 도륙해 나가는 블라드 유진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세 마족은 순간적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엄청난 놈이로군. 도무지 믿을 수가 없을 정도야."

페드로는 대마초가 떨어지는 것도 인지하지 못할 만큼,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와이번 무리는 시체 애호가 퍼핏이 지구에서 준비할 수 있는 최상급 콥스 크리처였다.

만약 마족들이 본신의 능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다고 해도, 혼자 60마리를 압도적으로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

그 사실을 잘 알았기에 세 마족은 유진을 보며 경악을 감추지 못한 것이다.

특히 콥스 와이번을 직접 제작한 퍼핏이 받은 충격은 훨씬 더 큰 듯했다.

저도 모르게 실언을 내뱉는 걸 보면 말이다.

"……저 정도면 거의 공작 전하와 맞먹을 만한 무력이로군."

"그게 지금 무슨 소리지? 말 가려가며 해라. 퍼핏."

"미안하군. 실수였다."

샤르마가 으르렁거리듯 질책하자, 퍼핏은 황급히 입을 다물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마계 공작은 한낱 백작 따위가 감히 입에 올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만약 같은 진영의 동료끼리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면, 퍼핏은 죽음을 면치 못했으리라.

그러는 동안, 페드로는 심란한 눈빛으로 와이번 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자가 공략대에 섞여 있다면,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지도 모른다. 안테리오르 타워처럼 말이야."

그 와중에도 블라드 유진은 눈 깜짝할 사이에 녀석들을 무참하게 썰어 버리는 중이었다.

단 한 마리도 남겨 놓지 않고서 말이다.

저 압도적인 무력을 보고 있자니, 게일드 백작의 크나큰 실패가 절로 머릿속을 지배했다.

하지만 시체 애호가 퍼핏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걱정하지 마. 아무리 저자의 무력이 강력하다 해도, 저 안에서는 무리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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