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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 블러드-100화 (101/226)

25화

[권능 폭발이 발동되었습니다.]

[1시간 동안 모든 스킬의 등급이 1단계 상승합니다.]

블라드 유진은 전투가 벌어진 초장부터 권능 폭발 스킬을 시전했다.

이전에는 천계도살검이나 대군주의 역병 등, 강력한 스킬이 필요할 때만 제한적으로 사용해 왔다.

이유는 재사용 대기가 무려 20시간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권능 폭발이 SS급에 오르면서 재사용 대기가 2시간으로 대폭 줄어들었으니까.

아직 좀 길다 싶은 감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이 정도면 필요할 때마다 쓸 만한 수준은 되었다.

스이잉―!

그는 길이만 6m에 달하는 붉은 칼날 하나를 뽑아 들었다.

일시적으로 소수혈인의 등급이 EX급으로 적용되면서, 이만큼 길어진 것이다.

피의 권능을 과도하게 주입하지 않은 기본적인 형태임에도 그랬다.

유진은 이제 막 한강을 건너 청담동으로 상륙하는 콥스 오거를 향해서 녹턴을 몰았다.

"푸르르르!"

두두두두두!

전투가 시작됨을 직감했는지, 유령군마는 위협적으로 투레질하며 맹렬하게 달려갔다.

그는 녹턴의 질주 속도를 이용하여 가볍게 콥스 오거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그러자 놀랍게도 마치 제주도에서 보았던 사이클롭스 만큼 두꺼운 목이 단번에 잘려 나가는 게 아닌가.

스팟―!

"크르르륵!"

제대로 반응하기도 전에 머리통이 날아간 콥스 오거는 산성 액체를 발동하지 못했다.

그저 녹색 혈액을 왈칵 쏟으며 앞으로 자빠질 뿐이었다.

슈우우우! 쿠우우우웅!

블라드 유진은 사이클롭스 형제를 상대했던 때보다 훨씬 강해졌지만, 혹시나 해서 권능 폭발을 사용했다.

자칫 일격에 놈을 죽이지 못하면, 아주 귀찮아질 수도 있었으니까.

땅바닥을 적시는 엄청난 양의 녹색 액체를 보고 있자니, 미리 권능 폭발을 시전하길 잘한 것 같았다.

"폭사."

투두두두두둥!

그는 곧장 뒤를 돌아보며 왼손을 내질렀는데, 시커먼 송곳 여섯 개가 묵직한 소리와 함께 발사되었다.

권능 폭발의 영향으로 A급이던 폭사 스킬 또한 S급으로 적용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공을 가르며 쏘아진 검은 송곳은 두 번째 콥스 오거의 안면에 우수수 박혀 들었다.

퍼버버버버벅!

"쿠오오오오!"

놀라운 적중률은 둘째치고, 고작 D급 스킬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강한 위력이었다.

두꺼운 콥스 오거의 얼굴을 꿰뚫고 목 뒤로 끄트머리가 튀어나올 정도였으니까.

신경이 끊겨 육신의 제어를 잃은 모양인지, 녀석은 크게 휘청거렸다.

그러나 콥스 오거의 폭발 스킬을 막을 수는 없었다.

꾸국! 꾸국! 퍼어어어엉!

놈의 육신이 불룩거리며 부풀어 오르더니, 이윽고 굉음과 함께 사방팔방으로 파편을 마구 흩날렸다.

뼈와 살점은 무시무시한 투사체가 되어 쏘아졌고, 몸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녹색 액체는 강산성 물질로 변했다.

퍼버버벅! 치이이이익!

다행히 콥스 오거가 아직 뭍을 밟기 전이라, 도시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저 튕겨 나온 파편에 건물이 조금 상하고, 올림픽 대로가 녹색 액체에 녹아내렸을 뿐.

대신에 놈이 한강 수온을 확인하러 물속에 처박힘으로써 극심한 수질 오염이 발생했다.

반쯤 썩은 무지막지한 크기의 살덩이가 산성 액체와 함께 조각조각 나뉘어 쏟아졌으니, 당분간은 접근할 엄두도 못 낼 터였다.

물론 그런 사소한 사실은 블라드 유진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는 그저 이 빌어먹을 것들이 새로 얻은 저택을 파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마지막이로군."

유진은 시뻘건 빛이 흉흉하게 쏟아져 나오는 눈으로 세 번째 콥스 오거를 쳐다보았다.

녀석은 동료들이 눈앞에서 우수수 박살 나는 모습을 보고도 거리낌 없이 한강을 건너고 있었다.

지성은 단편적인 전투에 필요한 만큼만 있고, 오로지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더욱 괘씸해지는군.’

그는 6m 길이의 소수혈인을 고쳐 잡으며 마지막 콥스 오거를 향해 접근했다.

하지만 세 번째 녀석의 대응은 의외로 꽤 민첩하고, 또 상당히 적절해 보였다.

스피이잉―! 뿌드득! 덜렁!

콥스 오거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휘둘러진 붉은 칼날을 기괴한 움직임으로 피해 냈다.

아예 목뼈를 박살 내며 고개를 완전히 뒤로 젖힘으로써 블라드 유진의 공격을 회피한 것이다.

허리까지 뒤로 젖히는 바람에, 그의 눈에는 순간적으로 녀석의 머리가 없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두두두두두! 쉬익―!

녹턴을 선회시킨 유진은 눈에 이채를 띠며 콥스 오거를 돌아보았다.

"신선한 회피술이로군."

놈은 양손으로 머리를 잡고 부러진 목뼈를 맞추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자폭하는 몬스터에게 회복력이 있을 리가 만무하니, 원래부터 저런 움직임이 가능하도록 제작된 모양이었다.

하긴 온갖 사체를 이어 붙여 만든 놈인데, 관절의 가동 범위를 넘어서는 것 정도야 그리 놀라울 일도 아니었다.

물론 그런 기예를 벌인다고 해서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그우욱?"

꾸국! 꾸국!

일격에 즉사하는 것을 면한 콥스 오거는 곧장 피부를 팽창시키며 기괴한 모습으로 변했다.

자폭과 함께 녹색 산성 용액을 왕창 퍼트려 버리려는 모양이었다.

애초에 모가지를 꺾어 가며 단 한 번의 공격을 회피한 것도 저 짓거리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부풀어 가던 녀석의 몸뚱이는 이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쉬이익! 스팟―!

어느새 녹턴을 탄 그의 신형이 콥스 오거의 지척까지 쇄도하여 모가지를 단번에 끊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크륵! 크르르륵!"

놈은 양손으로 목을 움켜쥔 채, 앞뒤로 휘청거리며 올림픽 대로 방향으로 넘어지려 했다.

폭발에는 실패했지만, 체내의 강산성 액체는 활성화된 상태.

마지막까지 도시에 최대한 피해를 주기 위해서 쓰러지는 방향을 신중히 택한 것이다.

그러나 녀석의 시도는 부지불식간에 날아든 유령 군마에 의하여 무산되고 말았다.

터어어엉! 화르르륵!

빠르게 쇄도하다가 허공에서 몸을 튼 녹턴이 뒷발차기를 날리자, 시뻘건 화염 발자국이 콥스 오거의 등판에 남았다.

청담동 방향으로 쓰러지려던 놈의 몸체는 앞으로 튕겨 나가 강물에 처박히고 말았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블라드 유진은 녹턴의 갈기를 슬슬 쓸어 주며 말했다.

"새로 얻은 스킬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구나."

"푸르르!"

콥스 오거의 피부에 찍힌 잉걸불 발자국은 물속에 들어갔음에도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녹턴과 거리가 멀어지자, 이내 힘을 잃고 천천히 사그라졌다.

세 마리의 콥스 오거를 모조리 쓰러뜨린 그는 잠깐 천공의 성을 올려다보았다.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군.’

무려 신장 20m짜리 괴물을 세 마리나 토해 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비공정에서는 새로운 콥스 크리처들이 생성되고 있었다.

마치 유진의 화를 돋우려는 것처럼 시커먼 사체 괴물들은 청담동 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쯧!"

미간을 살짝 찌푸린 그는 저택으로 되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천공의 성에서 쏟아지는 콥스 크리처들이 삼성동과 잠실 인근에도 낙하하는 게 아닌가.

그놈들은 하나같이 좀 더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애초부터 블라드 유진의 저택이 목표는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굳이 내 집을 공략할 필요는 없겠지."

암흑에 휩싸인 도시를 보고 있자니, 그는 콥스 크리처들이 뭘 하려는지 순간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서울 상공은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지상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대낮임에도 마치 야경을 보는 것처럼 수많은 불빛이 밝혀져 있었던 것이었다.

아마 저 콥스 크리처들은 에너지 코어 발전소를 파괴하러 돌아다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저 꼴을 보고 있을 수는 없다. 네놈들은 선을 넘었어.’

마족들의 목표를 알아차렸으나, 저택에 닥친 위기가 해제된 건 아니었다.

유진은 스산한 눈빛을 뿌리며 레니가 혼자 지키고 있을 집으로 빠르게 되돌아갔다.

* * *

"그 말씀, 책임지실 수 있습니까?"

난데없는 폰시아노의 폭탄선언에 회담장이 침묵에 휩싸였을 무렵, 아크웰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일갈했다.

녀석은 어리숙한 처음의 모습과는 달리, 눈빛을 형형하게 빛내고 있었다.

아무리 젊다고 해도 아크웰 페리티노는 교황으로부터 직접 명령을 받는 교황청 외교관.

이번에는 답변받을 시간이 없었을 뿐이지, 녀석이 하는 말은 교황의 의지나 다름없었다.

골수까지 교황의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한데, 대뜸 한국에 파견된 기사대장에 불과한 자가 블라드 유진의 이름을 거론하다니.

이건 사실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놀랍게도 폰시아노는 아크웰을 직시하며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물론입니다."

"설마 그런 짓을 꾸미려고 제게 접근하신 겁니까?"

"어허! 언행이 과하십니다? 같은 식구끼리 무슨 말씀을?"

"……인정합니다. 그 부분은 사과드리죠."

폰시아노가 은근히 지적하자, 아크웰 페리티노는 표정을 굳히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교황청 내부의 세력 다툼은 대외비라는 사실을 불현듯 인지한 것이다.

기사대장의 월권행위에 눈이 멀어 이번에도 실언할 뻔했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아크웰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블라드 유진 님께서는 교황 성하의 명령에만 따르는 분입니다. 아직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했는데, 참전이라니요?"

"그야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요."

"대체 누가 그런 말을 했단 말입니까?"

"당연히 본인이시지요."

"그러니까 그 본인이 누구……. 어? 설마?"

격하게 따지던 아크웰이 고개를 갸웃하자, 폰시아노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답해 주었다.

"그렇습니다. 교황청 성기사단에서는 블라드 유진 님께 직접 확답을 받았습니다. 참전하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럴 리가요!"

"그럼 직접 확인해 보면 될 일 아닙니까?"

폰시아노가 좌중을 둘러보며 말하자, 가만히 듣고 있던 장진석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러는 게 좋겠군요. 당사자의 말이 가장 확실한 거 아니겠습니까?"

한국의 입장에서는 언제 답변이 올지 모르는 교황청의 편을 들 이유가 없었다.

장진석의 답변에 아크웰 페리티노는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 휴대 전화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시끄러운 소리가 수화기를 통해서 윙윙거리며 전해졌다.

쿠콰콰콰콰콰!

"혹시 지금 바쁘신가요?"

―좀 그런데 왜.

"폰시아노 기사대장이 이상한 말씀을 하셔서요. 교황청 성기사단의 이름으로 천공의 성 공략에 참전하신다고 들었는데……."

―바쁘니까 나중에 걸었으면 좋겠군.

"지금 되게 중요한 사안을 논의 중이라서요. 한 말씀만 해 주시죠. 그게 사실인가요?"

콰콰쾅!

수화기 너머에서 폭음이 들려오자, 아크웰은 순간적으로 유진의 목소리를 놓치고 말았다.

"예? 여보세요? 유진 님? 유진 님?"

뚝!

블라드 유진이 할 말만 하고 끊자, 아크웰 페리티노는 얼빠진 표정으로 휴대 전화를 내렸다.

소음이 발생하여 처음에는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뒤이어 전해진 선명한 음성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녀석의 얼굴은 어느새 새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그러자 회담장에 자리한 사람들이 기대 어린 표정으로 아크웰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뭐라고 하시던가요?"

궁금증을 참지 못한 장진석 대통령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녀석은 넋 나간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다가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1년 전, 드라코 도무스 앞에서 했던 말과 똑같은 내용이었다.

"이미 먼저 진입하셨다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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