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그우워어어……."
블라드 유진의 집 지붕에 떨어진 거뭇거뭇한 물체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꿈틀거렸다.
상황을 지켜 보고 있던 그는 눈에서 스산한 기운을 줄기줄기 뿜어냈다.
"지붕 얼마 전에 교체했는데……."
"부서진 거야 다시 고치면 되죠. 문제는 저놈들이 저대로 물러나지는 않을 것 같다는 거 아닌가요?"
루시아가 말하는 동안, 시커먼 무언가는 지붕의 경사면을 따라서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퍽! 퍽! 콰직―!
그러는 바람에 저택의 지붕이 와르르 뭉개지고 말았다.
유진은 놈을 가만히 지켜보며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레니가 논다고 부순 것하고 같겠나."
"하긴 귀여운 레니하고 저 기괴한 괴물을 비교할 수는 없겠죠."
낙하물은 엄청나게 흉물스러운 외관을 하고 있었다.
온갖 생명체의 사체를 얼기설기 엮은 듯한 괴물.
외견만 보자면 오크와 상당히 닮았지만, 덩치는 훨씬 더 커 보였다.
신장만 2.5미터가 넘는 데다가, 큼지막한 가시가 박힌 살덩이로 된 몽둥이도 들고 있었다.
번쩍!
"쩝! 쩝!"
시커먼 오크의 퉁방울만 한 눈이 떠지더니, 주변을 둘러보며 입맛을 다셨다.
놀랍게도 녀석의 이빨은 여러 종류의 뼈를 합친 듯한 형태였다.
더불어 몸에서는 코를 찌를 듯한 엄청난 악취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으으……!"
다양한 몬스터를 경험해 본 루시아조차도 접근하기 어려운 외형과 냄새였다.
문제는 저런 괴생명체가 한둘이 아니라는 거였다.
휘이이잉! 철퍽! 퍼벅!
잠깐의 시간 동안 유진의 집 주변에 떨어진 시커먼 오크는 총 여섯.
처음보다는 수효가 줄긴 했지만, 천공의 성에서는 괴생명체가 계속 낙하하고 있었다.
콰직!
"으아아악!"
눈앞의 괴물에 시선이 쏠린 사이, 풀장 쪽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시커먼 오크 녀석이 가시 박힌 살덩이로 인부들을 공격한 모양이었다.
"저쪽을 먼저 맡아야겠군요.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뇌신의 흉장. 전투 모드 전개."
츠츠츠츠츠!
루시아는 순식간에 은빛 갑옷을 걸친 기사로 변신하더니, 깃발 창을 휘날리며 풀장 쪽으로 달려 나갔다.
이제 저택 주변의 숲에 떨어진 여섯 마리의 오크는 그의 몫이었다.
"마기가 느껴지는군."
유진은 눈앞의 괴생명체를 바라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사실 몬스터에게서 마기가 느껴지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몬스터는 사방 천지가 마기로 가득한 미궁에서 발생하는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그는 검은 오크와 살덩이로 된 무기에서 미묘하게 결이 다른 무언가를 감지할 수 있었다.
정상적으로 생성된 마기와 육신이 아니라 뭔가 조작된 듯한 기괴한 느낌.
블라드 유진은 시커먼 오크의 근처로 이동하며 소수혈인을 발동했다.
스이잉―!
"그우우? 그뤡!"
그의 기척이 느껴지자, 괴생명체는 눈알을 빙그르르 굴리며 큼지막한 가시 몽둥이를 움직였다.
마치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살덩이의 움직임이 혐오스러웠지만, 유진의 표정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그저 의외로 빠르게 다가온 가시를 다섯 줄기의 칼날로 단호하게 썰어 낼 뿐.
쉬이익! 스가가각!
"끼에에에!"
가시 몽둥이와 함께 상체 전반이 잘려 나가자, 검은 오크는 괴성을 지르며 몸을 심각하게 꿈틀거렸다.
이윽고 불쾌한 감각이 그의 뒷덜미를 알싸하게 간질였다.
바로 그 순간, 블라드 유진의 신형은 시커먼 안개가 되어 흩어져 버렸다.
퍼어어어엉!
암흑화 스킬을 사용하여 몸을 빼낸 직후, 고통스럽게 꿈틀거리던 오크가 몽둥이와 함께 폭발했다.
무기를 구성하고 있던 가시와 녀석의 살점, 불쾌한 녹색 피가 사방팔방으로 튕겨 나갔다.
마치 샤르마가 던져 대는 암녹색 구체처럼 파편을 비산시켜 살상력을 극대화하는 모양이었다.
치이이이익!
게다가 이 폭발에는 부가 효과도 있었다.
흩뿌려진 녹색 혈액에 닿은 물체가 엄청난 속도로 녹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급속도로 수분을 빼앗는 것이 마치 강력한 황산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흠."
그는 살짝 불쾌한 눈빛으로 녹색 액체와 저택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저 괴생명체가 터지면, 자신의 집이 녹아내리는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폭발하지 않게 하려면…….’
치잉!
유진은 다섯 줄기의 소수혈인을 합쳐서 하나의 거대한 핏빛 칼날을 만들어 손에 쥐었다.
그러고는 꿈틀거리며 상당히 빠른 속도로 다가온 오크를 향해서 맹렬하게 휘둘렀다.
촤하아아악!
"크뤠엑!"
일격에 몸통을 절반으로 갈라 버리자, 녀석은 녹색 체액을 줄줄 흘리며 힘없이 쓰러졌다.
"폭발하기 전에 죽여 버리면 되는군."
놀랍게도 그렇게 죽은 놈의 몸에서 나온 혈액은 물질을 엄청난 속도로 녹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 강산성 액체는 폭발과 함께 발동되는 스킬인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이놈의 근원이 궁금한데.’
츠츠츠츠츠!
블라드 유진은 반으로 쪼개진 오크의 곁으로 다가가더니, 투명하게 변한 손으로 미끄덩거리는 피부를 짚었다.
그러자 미처 다 빠져나오지 못한 혈액 중 일부가 그의 손을 통해서 체내로 흡수되었다.
이놈들과 맞닥뜨리자마자 감지됐던 조작된 느낌의 정체를 알아보기 위해 흡혈 스킬을 시전한 것이다.
하지만 유진은 금방 손을 떼고 뒤로 물러섰다.
피리릿!
그러고는 손끝을 통해서 녹색 혈액을 도로 토해 내는 게 아닌가.
"더럽게 맛없네."
평소에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그의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라면, 극도의 불쾌함을 느꼈을 때뿐이었다.
블라드 유진은 쓰고 떫은 맛을 참으며 기어코 혈액을 분석해 냈다.
녹색 혈액을 감별하고 나자, 어째서 부자연스러운 마기가 느껴졌는지 알 것만 같았다.
‘왠지 그놈들이 꾸민 짓 같군.’
살덩이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걸 알아낸 그는 불편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유진에게서 강력한 살기를 느꼈는지, 검은 오크들은 배회하기만 할 뿐 쉽사리 공격을 감행하지 못했다.
인조 몬스터라고 해도 공포를 느낄 수 있는 모양이었다.
문제는 저런 녀석이 천공의 성에서 계속 쏟아져 내리고 있다는 거였다.
오크뿐만 아니라, 각양각색으로 생겨먹은 검은 몬스터들이 서울 전역에 마치 비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중이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천공의 성을 바라보던 그는 스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걸리적거리지 말라니까, 자꾸 개입하게 만드는군. 이러면 약속을 지킬 수가 없잖아."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블라드 유진의 손에 걸리면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의 일조권을 방해한 대가는 그 무엇보다 컸으니까.
퍼어어어엉!
"으악! 지, 집이!"
그런데 문득 풀장 쪽에서 굉음이 들려오더니, 녹색 혈액이 유진의 집 현관으로 날아들었다.
루시아가 상대하던 녀석 중 하나가 자폭 공격을 가한 모양이었다.
치이이이익!
저택 일부가 녹아내리는 걸 본 그의 눈빛은 점점 살기를 더해 가고 있었다.
스윽!
―내가 가 볼게.
유진의 불쾌한 감정을 알아챘는지, 그림자에서 레니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녀는 암청색 기운으로 장창을 만들더니, 은밀하고 빠르게 루시아 쪽을 지원했다.
레니의 행동에 만족한 듯, 살짝 고개를 끄덕인 그는 정원을 어지럽히는 살덩이들을 돌아보았다.
붉은 빛무리를 쏟아 내는 소수혈인의 기운이 평소보다 더욱 흉포한 것처럼 느껴졌다.
"두려움에 떨어라. 살덩이들."
* * *
"크으으으!"
"크르륵! 크륵!"
스팀펑크 느낌이 물씬 풍기는 거대한 비공정의 외부.
혐오스럽게 생긴 수많은 몬스터가 낙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괴생명체들을 바라보며 퍼핏은 외눈 안경을 만지작거렸다.
"후후후. 귀여운 녀석들."
대체 저 모습의 어디가 귀엽다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놈은 녀석들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거뭇거뭇한 몬스터들은 일명 콥스 크리처(Corpse Creature)라 불리는 존재.
그간 퍼핏이 수집한 온갖 종류의 사체를 마기로 이어 붙여서 만든 일종의 키메라였다.
"싸움꾼 녀석들이 창출해 준 시간을 헛되이 쓸 수는 없지. 내려가서 모든 것을 파괴하라. 나의 피조물들이여."
퍼핏이 가볍게 손짓하자, 비공정에 붙어 있던 놈들이 일제히 낙하하기 시작했다.
시체 애호가라는 이자의 별명에 가장 잘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지금은 콥스 오크뿐이지만, 앞으로 더욱 강력한 피조물들을 지상으로 내려보낼 작정이었다.
슈슈슈슈슈슈!
4천만의 인간들이 사는 도시를 까맣게 뒤덮은 콥스 크리처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천공의 성에서 빠져나와 연신 뛰어내리는 녀석들을 응시하던 퍼핏은 비공정의 위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척!
유려하게 몸을 날린 그자는 상승 기류를 타고 여유롭게 비공정의 꼭대기에 안착했다.
첫 번째 계획은 콥스 오크 무리를 내려보내는 거로 완성되었다.
이제는 두 번째 계획을 실행할 때였다.
드르륵! 번쩍!
퍼핏이 삐죽 튀어나온 손잡이를 잡아 돌리자, 천공의 성에서 시커먼 연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먹구름과 비슷한 형태의 연기는 주변을 서서히 잠식해 갔다.
퍼핏이 아래로 내려와 지상을 살필 무렵에는 서울 상공 전체가 검은 연기로 완벽하게 뒤덮여 있었다.
지상으로 내려가는 태양광이 조금도 없을 만큼, 천공의 성은 그야말로 완벽한 암흑을 선사했다.
"후후후! 멍청한 놈들. 고도로 응축된 마기가 쓸모없는 물건이라 생각하다니."
아수라장이 되어 가는 서울을 지켜보며 퍼핏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윽고 그자는 어딘가를 주시하며 손짓으로 비공정을 조종했다.
그러자 어떤 큰 건물에서 탈출하는 두 남녀가 퍼핏의 시야에 포착되었다.
헌터 협회를 공격하여 천공의 성을 띄울 시간을 벌어 준 페드로와 샤르마였다.
"오는군."
딱!
그들을 확인하고 손가락을 튕기자, 콥스 오크들의 움직임이 돌변했다.
무턱대고 지상으로 뛰어내리던 녀석들이 서로의 발목을 붙잡으며 기다란 줄을 만든 것이다.
이윽고 마지막 녀석의 발끝이 지면에 닿자, 페드로와 샤르마는 곧장 비공정에 오르기 시작했다.
콥스 오크들을 밟고 거침없이 손을 쑤셔 박으면서 엄청난 속도로 올라갔다.
잠시 후, 드디어 모이게 된 세 마족은 천공의 성 입구에서 서울을 내려다보았다.
"게일드 같은 아둔한 놈처럼 실패해서는 안 된다. 다들 잘 알고 있겠지?"
"당연하다. 마왕님과 공작 전하의 명성을 더럽힐 수는 없으니."
퍼핏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페드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실패는 안테리오르 타워 하나로 족했으니까.
"이제 뭘 하면 되지?"
샤르마는 입술을 핥으며 질문을 던졌다.
협회 대회의실을 급습하며 맛보았던 짜릿한 살육의 감각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했다.
그러자 퍼핏이 고개를 까딱이며 소강상태가 된 천공의 성 입구를 가리켰다.
"안에서 먹잇감을 기다린다."
그곳에서 기어 나오던 콥스 크리처들은 눈에 띄게 수효가 줄어든 상태였다.
작은 개체들은 모조리 빠져나오고, 이제 큰 놈들만 남아서 그런 모양이었다.
"출발하지."
잠시 후, 세 마족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비공정에는 원래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시커먼 연기만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