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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 블러드-30화 (31/226)

5화

쉬이이이익! 턱!

"읍!"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낚아채자, 전시영은 순간적으로 호흡을 멈추며 전신에 힘을 줬다.

꽤 강한 충격이 느껴졌지만, 적어도 사이클롭스 로드가 휘두른 육각 기둥은 아닌 듯했다.

신체에 가해지는 통증이 참을 만한 수준이었으니까.

아마 최종 보스의 공격에 정통으로 얻어맞았다면, 망치에 가격당한 못처럼 지면에 박혀 버렸으리라.

슬쩍 고개를 돌리자, 불타는 유령 군마에 올라탄 유진의 옆모습이 보였다.

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방어구를 붙잡은 채, 프라고르의 움직임만 주시하고 있었다.

"와! 날 구했어? 거들떠보지도 않을 줄 알았는데?"

"시끄럽다."

"쳇! 뭔 말을 못 하겠네."

쿵! 쿠구구궁!

공격에 실패한 프라고르는 괴성을 지르며 발을 마구 굴렀다.

"그와아아아아!"

프라고르의 외눈은 광선을 쏘아 낼 때처럼 시뻘겋게 보였다.

하지만 그건 그냥 충혈되었을 뿐, 공격의 징조는 아니었다.

"좋아! 이대로 가서 저놈도 썰어 버리라고!"

상대의 주변을 맴돌며 들끓는 마기를 가라앉히던 그의 귓가에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제야 최종 보스 하나가 쓰러졌다는 걸 알아챈 그녀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마 그녀는 프라고르도 블라드 유진이 가볍게 쓰러뜨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당연하겠지. 누구도 천계도살검이 완전한 상태가 아니라는 걸 모르니까.’

천계도살검은 지금을 기점으로 일주일 뒤에나 다시 쓸 수 있었다.

게다가 피의 권능을 왕창 끌어다가 EX급 스킬을 쓴 대가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유진은 당분간 전투에 가담하지 않고 체내에 들끓는 마기를 진정시켜야만 했다.

트리 페 디타스를 상대할 때는 최종 보스 하나를 잡으면 끝이었지만, 지금은 프라고르가 남은 상황.

게다가 형제를 잃은 녀석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불길한 느낌의 홀로그램 글귀가 그의 시야를 살짝 가렸다.

[성체 미궁의 최종 보스 ‘사이클롭스 로드 프라고르’가 형제의 죽음에 분노합니다.]

[제왕의 광분이 발동됩니다.]

[2시간 동안 최종 보스의 능력치가 향상됩니다.]

‘고작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그 전에 결판을 내야 해.’

대군주의 역병에 걸리지 않은 아라고르를 먼저 죽일 수 있었던 건 상당한 쾌거였다.

그러나 제왕의 광분이라는 최종 보스의 스킬 때문에, 디버프는 그리 큰 효과를 내지 못했다.

물론 온전한 상태의 프라고르가 제왕의 광분을 사용한 채로 싸우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대군주의 역병이 끝나기 전에 어떻게든 녀석의 숨통을 끊어야만 했다.

"내려가서 역할을 다해라."

두두두두두! 휙!

유진은 녹턴의 고도를 낮추더니, 적당한 높이에서 전시영을 붙잡고 있던 왼손을 놓았다.

슈우우우! 척!

그녀는 바닥에 가볍게 착지하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이내 블라드 유진에게서 힌트를 얻었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마음껏 쓸 수 있는 스킬이 아니겠네. 이거 골치 아프게 되었구나?"

"……."

전시영이 미완성 천계도살검의 약점을 알아챘지만, 그는 별다른 말 없이 그대로 고도를 올려 버렸다.

유진을 조금만 관찰한다면 금방 알게 될 내용이니,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때마침 사이클롭스 로드의 포효가 들려오자, 그녀는 앞으로 미친 듯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걸음을 늦췄다가는 조금 전처럼 육각 기둥에 직격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크롸아아아!"

쉬이익! 꾸우우웅!

묵직한 파공성이 들리자마자, 엄청난 충격이 지면을 강타했다.

놈이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육각 기둥을 휘둘러 전시영이 있던 곳을 후려갈겨 버린 결과였다.

미리 대비하고 있었기에 아무런 피해도 없었으나, 프라고르의 공격은 이제 시작이었다.

쉭―! 콰앙! 쉭―! 쿠화아앙!

육각 기둥을 마치 가벼운 몽둥이처럼 다루며 바닥을 내리치는데, 무시무시한 진동이 일어나 도무지 발을 딛고 서 있을 수도 없을 정도였다.

"이, 이런 미친!"

그녀는 육각 기둥이 떨어지는 타이밍에 맞춰서 마치 메뚜기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볼썽사나운 모습일지라도 그래야만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으니까.

"으으! 돌아버리겠네!"

꽤 팔팔한 듯한 전시영의 외침을 들어 보니, 아직은 버틸 수 있는 모양이었다.

스이잉!

‘됐다.’

그러는 동안 블라드 유진은 들끓던 마기를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오른손 끝에서 다섯 줄기의 소수혈인이 튀어나오자, 그는 녹턴을 몰고 프라고르의 목덜미로 빠르게 날아갔다.

그런데 문득 전시영을 향해 맹공을 퍼붓던 녀석의 움직임이 돌변했다.

시선은 아래쪽을 향하고 있었지만, 몸이 횡으로 빠르게 이동하며 왼쪽 어깨를 들이민 것이다.

그뿐이랴, 사이클롭스 로드의 피부가 꿈틀거리더니 어깨에서 큼지막한 가시가 불쑥 튀어나오기까지 했다.

놈은 그 상태로 블라드 유진이 있는 곳을 향해 숄더 차지를 날렸다.

쩌저적! 쿠후우웅!

순간적으로 녹턴의 방향을 꺾은 그는 무지막지한 어깨 공격을 회피할 수 있었다.

‘꽤 위험했다.’

유령 군마의 속도가 프라고르의 움직임보다 더 빠르지 않았다면, 난데없이 튀어나온 가시에 꿰뚫릴 뻔했다.

놈은 약삭빠르게도 전시영에게 집중하는 척하다가 한순간에 공격 방향을 바꾸었다.

유진을 속이기 위해서 시선 처리까지 해 가며 말이다.

그런데 사이클롭스 로드의 공격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왼쪽으로 미끄러지듯 이동하던 녀석이 급격한 방향 전환을 시도하는 게 아닌가.

쿠화아아앙!

육각 기둥을 바닥에 박아 넣는 반동으로 속도를 늦춘 다음, 지면을 박차며 전시영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헉!"

이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데 공격이 날아들 줄은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헛바람을 들이켜며 황급히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사이클롭스 로드의 발등은 지척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쉬이이익!

녀석의 발차기가 작렬하기 직전이었으나, 전시영은 포기하지 않았다.

붉은 머리칼을 흩날리며 도약한 그녀는 양손을 모으고 있었다.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의 두광(頭光)."

불현듯 원형의 노란빛이 터져 나오자, 곧장 거대한 발이 전시영의 몸을 강타했다.

이제껏 한 번도 쓰지 않았던 스킬이니, 아마 드라코 도무스를 공략하고 얻은 것인 모양이었다.

쩌어어어엉! 슈우우우!

강력한 발차기가 노란 구체를 후려갈기자, 어마어마한 진동이 전시영의 육신을 덮쳐 왔다.

"끄으윽!"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저절로 흘러나올 만큼 강력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닥친 위기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허공으로 빠르게 치솟았던 그녀는 이윽고 마치 유성처럼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그나마 완만한 각도로 떨어지긴 했지만, 전신에 가해진 충격은 엄청난 수준이었다.

전시영을 감싼 노란 구체는 지면에 커다란 부채꼴의 상흔을 남기고 나서야 움직임을 멈췄다.

채애앵!

"커헉!"

이윽고 나라연금강의 두광이 깨지며 그녀의 모습이 드러났다.

상당히 성능 좋은 방어 스킬 덕분에 죽지는 않았으나, 전시영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어찌나 강한 충격을 받았는지, 피부가 터져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공격을 받은 곳마다 그런 상태인 데다가, 골절된 부위도 있는 듯했다.

손을 덜덜 떨며 품속에서 약병을 꺼낸 그녀는 새파란 액체를 억지로 삼켰다.

꿀꺽! 꿀꺽!

그러자 시커멓게 죽었던 피부가 점차 돌아오기 시작했다.

"으으! 제, 젠장……."

하지만 충격이 강했던 탓인지,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시야가 흐려졌다.

뇌진탕 증상은 별로 걱정되지 않았다.

어차피 포션 효과가 돌면 금방 회복될 테니까.

그러나 여기서 쓰러진다면, 프라고르의 후속 공격을 받아 그대로 절명할 터.

계속 이러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뚜득!

"끄으으!"

전시영은 부러진 발목을 억지로 맞추고 그대로 잠시 기다렸다.

그러자 포션의 효과가 발목까지 이어져 뼈가 빠르게 붙는 것이 느껴졌다.

"이, 일어나야 해."

상당한 통증이 느껴졌으나, 그녀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비틀거리던 육신은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르게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두두두두두!

‘다행히 멀쩡한 듯하군.’

허공을 선회하던 블라드 유진은 그런 전시영의 모습을 포착하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사이클롭스 로드가 걸었던 고도의 한 수에 허를 찔렸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녀가 공격당하는 순간 그는 프라고르의 목덜미로 접근하여 소수혈인을 마구 찔러 넣었다.

이번에는 녹턴을 타고 고속으로 이동하지 않았기에, 목뼈에 걸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푸쉭! 푸확―!

시뻘건 칼날을 쑤셔 박은 유진이 신중하게 방향을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길이가 3.5m에 달하는 소수혈인이 연골을 찢고 지나가자, 녀석의 몸이 순간적으로 휘청거렸다.

운 좋게도 칼날이 사이클롭스 로드의 신경을 끊은 모양이었다.

쿠웅!

"끄롸아아아!"

하지만 넘어지던 프라고르는 오른발을 강하게 구르며 버텼다.

중추 신경에 손상을 입었으나, 회복력을 집중하여 금세 복구한 듯했다.

그러나 상대의 약점을 파악한 그의 공격은 고작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콰―직! 찌지지지직!

기회를 제대로 포착한 블라드 유진은 방금 느꼈던 손끝의 감각을 기억하며 목덜미를 연신 찔러 댔다.

놈이 손을 휘저어 그를 쫓아내려 했지만, 중추 신경계가 반복적으로 손상되자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황급히 회복하여 손을 올리려 하면, 소수혈인이 연골을 뚫고 들어와 신경을 잘라 버렸기 때문이었다.

"크롹! 크와악!"

녀석이 괴성을 질러 댔으나, 유진의 잔혹한 손속은 멈추지 않았다.

감정 없는 칼날이 뚫고 들어와 기어코 목뼈 연골을 완벽하게 잘라 냈다.

소수혈인이 목뼈 사이에 제대로 박혀 들자, 그는 아예 녹턴의 등에서 내려 상처의 단면에 발을 밀어 넣었다.

"아예 틈을 만들어 뜯어낸다면, 더 이상 회복하지 못하겠지."

왼손에도 소수혈인을 전개한 그는 같은 방향으로 깊숙이 찔러 넣었다.

스이잉! 푸욱!

이윽고 칼날의 끝이 마주 닿자, 유진은 팔을 상하로 강하게 벌렸다.

그러자 목이 쫙 갈라지며 프라고르의 머리통이 반대편으로 툭 떨어지는 게 아닌가.

소수혈인의 반발력을 지렛대처럼 사용한 결과였다.

쿠우우웅!

[성체 미궁의 최종 보스 ‘사이클롭스 로드 프라고르’ 처치!]

[보상이 주어집니다.]

사이클롭스 로드의 목을 자른 그는 곧장 녹턴의 등으로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천천히 기절한 전시영을 향해서 날아갔다.

따라다니는 게 귀찮긴 했지만, 그녀의 능력은 상당히 쓸 만한 거였다.

오늘도 두 마리의 최종 보스를 상대로 시선을 제대로 끌어 주지 않았던가.

아마 전시영이 없었다면 조금 고전했을 것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쌍둥이 최종 보스에게 질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저 좀 더 수월하게 잡은 정도였다.

"회복을 도와주겠다."

포션을 마셔서 일시적으로 치료가 되었으나, 그녀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제대로 낫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움직임을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유진은 새하얗다 못해 투명하게 변한 손을 전시영의 몸에 댔다.

그러자 엉망진창이 되었던 육신이 빠르게 원상태로 돌아오는 게 아닌가.

이는 흡혈 스킬이 보유한 부가 능력 중 하나인 회복 전이였다.

그녀의 혈액을 빨아들여 뱀파이어의 회복 인자만 투여한 채 되돌려 보내는 방식이었다.

이러면 일시적이긴 해도 그와 마찬가지로 빠르게 상처를 복구할 수 있었다.

물론 엄청난 난이도의 수법이라, 최고위 뱀파이어가 아니면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그런데 문득 그의 감각에 흥미로운 무언가가 포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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