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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 블러드-20화 (21/226)

20화

"쿠아아아아!"

쉬익―! 쿠후우우웅!

자신의 브레스가 간단히 막히자, 마룡 카제르시안은 괴성을 지르며 앞발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러자 소수혈인으로 흘려보낸 브레스가 지면에 남긴 것보다 더욱 거대한 상흔이 아로새겨졌다.

엄청난 힘과 속도에다가 발톱의 날카로움까지 더해지자, 단순한 할퀴기 공격이 웬만한 미궁 보스는 일격에 끝장내 버릴 만큼 강해 보였다.

‘육체적으로 당할 수는 없겠군.’

드래곤은 간단히 내지른 포효만으로도 웬만한 수준의 생명체를 즉사시킬 수 있었다.

목소리에 깃든 강력한 힘이 심신을 옥죄고 단숨에 찢어발겨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드래곤의 최강 기술 중 하나인 브레스가 막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간단한 건 압도적인 신체 능력으로 상대를 깔아뭉개는 거였다.

후우웅! 퍼―벙! 콰콰콰콰!

녀석이 앞발을 연속으로 휘두르며 다가오자, 지면이 마치 두부처럼 쪼개지며 사방으로 돌가루를 흩날렸다.

대규모 미궁을 떠받치는 지반이라, 어마어마하게 단단한 물질인데도 맥없이 박살 나고 있었다.

하지만 놈의 공격은 블라드 유진의 몸에 전혀 닿지 못했다.

스슥―! 척!

순간적으로 육신을 암흑화한 그는 마룡의 공격 범위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카제르시안은 무작정 돌격하여 유진이 서 있던 지면을 마구 할퀴고, 분한 듯 긴 포효를 내질렀다.

"콰우우우우우!"

앞발에 걸리는 게 없으니, 유진을 놓쳤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 녀석의 눈에서는 시뻘건 광망이 줄기줄기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법 사납구나."

홱!

중얼거림을 들은 모양인지, 멀찍이 떨어져 있음에도 마룡은 길쭉한 목을 재빨리 틀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길쭉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한쪽 입꼬리만 길게 올리는 게 아닌가.

드래곤에게 표정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브레스를 막아 낸 직후의 그와 마찬가지로 마치 도발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생각보다 유쾌한 놈이로구나.’

그 모습을 본 블라드 유진은 눈에 이채를 띠며 양손에 소수혈인을 길게 뽑아냈다.

스이이잉―!

그러자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커다란 무언가가 생성되더니, 그의 머리 위로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슈우우웅! 콰아앙! 후두두둑!

마치 바위로 만든 송곳이 날카로운 끝을 조준한 채, 무수히 내리꽂히는 것 같았다.

유진은 잽싸게 발을 놀리며 암흑화를 시전했다.

물리적인 공격을 피하는 데는 암흑화만 한 게 없었다.

웬만큼 공격 면적이 넓지 않다면, 검은 안개를 통째로 때려 낼 수 없었으니까.

마치 연기처럼 흩어지는 그의 신형을 의식한 모양인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던 바위 송곳의 방향이 바뀌었다.

후우웅! 쿠우우웅! 쿠구구궁!

도무지 피할 공간이 없도록 옆으로 낙하하여 공격 면적을 넓힌 것이다.

"호오."

놀랍도록 빠르게 암흑화의 허실을 파악하고 공격 방식을 바꾼 모습에 블라드 유진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마기에 물들기는 했지만, 원래도 엄청난 수준의 몬스터였음이 틀림없었다.

콰칭―! 서걱! 쿠궁!

그는 자신을 노리고 날아드는 바위를 소수혈인으로 쳐 낸 다음, 재차 암흑화를 시전하며 고속으로 이동했다.

마치 지면을 따라 질주하는 검은 구름에서 간헐적으로 시뻘건 섬광이 쏟아져 나오는 듯한 모습이었다.

무수히 떨어지던 바위 송곳 공격도 이윽고 끝을 보였다.

문득 유진은 마구 내리꽂힌 바윗덩이가 지면과 똑같은 재질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건 어디서 생긴……. 그랬군."

소수혈인으로 흘려보낸 브레스가 바닥에 남긴 거대한 상처 자국.

마치 소멸하는 것처럼 그곳의 바위는 감쪽같이 사라진 상태였다.

추측하건대 마룡 카제르시안은 물질을 잠깐 다른 공간에 가두어 놓았다가, 원하는 곳에 쏟아 내는 게 가능한 모양이었다.

‘짧다.’

그는 자신의 양손에 맺힌 소수혈인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상대는 막강한 위력의 원거리 공격을 마음껏 쏟아 내는데, 유진은 마땅히 반격할 무기가 없었다.

프리클 플라워 보스를 잡고 얻은 폭사라는 스킬이 있었지만, 고작 C급에 불과했다.

그 정도로 저 무지막지한 괴물을 쓰러뜨리지는 못할 터였다.

하지만 블라드 유진의 얼굴에는 여유로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물론 언제나 똑같은 느낌의 냉막한 얼굴에서 표정을 구별해 내는 건 어려웠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그는 저 어마어마한 덩치의 마룡과 근접 박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내 소수혈인은 짧다. 하지만 네놈을 도륙할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롭지."

슬쩍 자세를 낮추자, 유진의 주변으로 시커먼 안개가 스멀스멀 번져 나갔다.

육신의 형체를 유지하면서 암흑화 능력을 극도로 끌어 올렸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소수혈인을 쫙 펼친 그의 모습은 마치 어둠에 휩싸인 악마와도 같았다.

"크롸아아아!"

쿠궁! 쿵! 스피잉―!

마룡 카제르시안이 뒷발을 강하게 박차며 앞으로 내달려 나오는 순간, 블라드 유진의 신형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조금 전과 비슷한 상황에 녀석은 섣불리 앞발을 휘두르지 않고, 눈알을 굴리며 간을 보았다.

그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난 뒤에 공격을 전개하기 위해서 한 박자를 기다린 것이다.

척!

바로 그때 놈의 뒤편에서 미세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캬아악!"

쉬이이익! 쿠콰콰콰콰!

그와 동시에 마룡은 기다란 꼬리를 휘둘러 자신의 뒤편을 강하게 후려쳤다.

꼬리의 끝부분에 달린 날카로운 가시가 대지를 찢어발기며 유진의 육신을 단번에 박살 낼 기세로 날아들었다.

후우우웅! 콰앙!

하지만 녀석은 꼬리를 관통하는 묵직하고 통쾌한 감각을 느끼지 못했다.

발소리를 내는 순간, 블라드 유진은 이미 카제르시안의 등에 올라탄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날카로운 가시로 뒤덮인 놈의 꼬리 곤봉은 애꿎은 바닥만 잔혹하게 갈아 버렸다.

"이쯤이 좋겠군."

스걱! 콰칭―! 푸우우우욱!

그는 엄청난 크기의 비늘을 왼손으로 뒤집더니, 곧장 마룡의 피부에 소수혈인을 쑤셔 박았다.

방어력이 대단한 듯, 손에서 느껴지는 저항감은 가공할 수준이었다.

하지만 유진은 기어코 피의 권능으로 이루어진 다섯 줄기의 칼날을 확실하게 박아 넣었다.

"내 힘도……. 네놈 못지않단다. 이 한낱 미물아."

푸확! 꿀렁! 꿀렁!

피부에 큼지막한 상처가 생기자, 끈적끈적한 느낌의 검붉은 혈액이 느릿하게 쏟아져 나왔다.

마치 이제 막 언데드가 된 시체의 피처럼 반쯤 굳은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는 눈을 빛내며 새하얀 자신의 손을 더욱 투명하게 만들었다.

‘흡혈.’

츠츠츠츠츠!

느리긴 했지만, 마룡의 피를 빨아들이는 건 불가능하지 않았다.

할짝!

그러나 혀로 입술을 핥은 유진은 얼마 흡혈하지도 못하고 잽싸게 몸을 날려야만 했다.

목덜미에 소수혈인이 박히자, 카제르시안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신형을 뒤집으며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쓰스스스스!

암흑화 스킬을 사용한 그는 멀찍이 떨어진 평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블라드 유진이 탈출하는 순간, 마룡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지면과 충돌하고 있었다.

쿠콰콰콰콰!

"대단하군. 패기와 결단력 하나만큼은 인정해 주지."

그는 일족의 권능을 모두 흡수한 피의 군주였지만, 상대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녀석은 불리하다는 판단이 서자마자 곧장 자신의 몸을 대지에 쑤셔 박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호전성을 지녔다.

문제는 그러고도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흔들며 일어난다는 거였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불리해진다.’

아직 카제르시안은 본격적으로 공중전을 펼치지도 않았다.

그 말인즉, 이제껏 유진을 자신의 호적수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저 먹잇감으로 느꼈기에 지면에서만 공격하기를 반복했다.

만약 천적처럼 두려운 상대가 나타났다면, 초장부터 공중에서 공격했을 터였다.

"불쾌하군."

얕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 유진의 눈빛은 한순간에 돌변했다.

그는 조용히 피의 권능을 끌어 올렸다.

‘날아오르기 전에 끝내야겠어. 권능 폭발.’

투우우웅!

주변의 공간이 일렁이는 듯한 착각이 드는 순간, 블라드 유진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이제껏 최고조로 전개하던 암흑화는 배제한 채, 마룡의 정면으로 냅다 달려든 것이다.

카제르시안은 반색하며 뒷발로 섰다가 주저앉으며 앞발을 내리찍었다.

목표가 범위 내로 들어오자, 곧장 내지른 깔끔한 공격이었다.

스팟―! 쿠우우웅!

하지만 그는 순간적으로 속도를 대폭 올려서 앞발을 간단하게 피해 버렸다.

공격이 빗나가자, 녀석은 방어 차원에서 몸을 웅크릴 수밖에 없었다.

블라드 유진이 복부 쪽으로 정확하게 짓쳐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의 힘은 마룡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강력했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체중.

무게 차이가 극심했기에 동등한 힘을 지니고 있어도 일반적으로는 밀릴 수밖에 없었다.

푸쉭―! 찌이이이이익!

그러나 유진은 놈이 대응하기도 전에 복부에 소수혈인을 박아 넣고 위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의 손에서 뻗어 나온 시뻘건 칼날은 3m까지 길어진 상태였다.

유효타를 먹이기 위해서 피의 권능을 한계까지 욱여넣어 소수혈인의 크기를 최대한 키운 것이다.

푸확!

카제르시안의 목 언저리까지 솟구친 블라드 유진은 다섯 줄기의 핏빛 칼날을 뽑아내며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고는 양손을 맞잡아 마치 양손 검을 든 듯한 자세를 잡았다.

치―잉!

그러자 극도로 커졌던 소수혈인이 하나로 합쳐지더니, 거대한 칼날처럼 변하는 게 아닌가.

"이것이 바로 소수혈인의 진정한 모습이다."

"크리야악!"

그가 자신의 눈앞으로 떠오르자, 마룡은 아가리를 쫙 벌리더니 그대로 물어 버리려 했다.

하지만 유진의 움직임은 그보다 훨씬 빨랐다.

슈화아아악! 쑤컹―!

족히 5m는 될 듯한 시뻘건 칼날이 허공에 원반을 만들어 내자, 그 단단하던 드래곤 스케일이 단번에 잘려 나갔다.

그뿐이랴, 뼈까지 단 일격에 몽땅 썰려 카제르시안의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고 말았다.

"크르르륵!"

쏴아아아아!

놈의 목에서 가래 끓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시커먼 혈액이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피부 쪽은 피가 꾸덕꾸덕한 느낌이었는데, 내부는 또 다른 모양이었다.

[대규모 미궁의 중간 보스 ‘고대의 마룡 카제르시안’ 처치!]

[보상이 주어집니다.]

치이이이이익!

유명을 달리한 중간 보스의 육신은 거뭇거뭇한 연기와 함께 빠르게 타들어 갔다.

블라드 유진은 그런 놈의 사체를 잠깐 응시하다가 자신의 손에 올려진 두 개의 아이템을 내려다보았다.

빛줄기로 이루어진 창에 아이템을 비추자, 정보가 주르륵 떠올랐다.

<아이템 정보>

명칭 : 잠재력 해방석

등급 : SS+

내구도 : 일회용

효과 : 봉인 해제

잠재력을 폭발시켜 새로운 재능을 해방함.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예상하기 어려움.

<아이템 정보>

명칭 : 미궁 열쇠 파편

등급 : ???

내구도 : 일회용

효과 : 문 개방(기능 잠금)

최종 보스 방으로 가는 문을 열 수 있음. 단, 파편을 모두 모아야 기능 잠금이 풀림.

[등급이 S급으로 상승함에 따라 ‘대군주의 역병’ 스킬이 해방됩니다.]

그는 눈을 살짝 크게 뜨며 아이템 정보와 마지막 글귀를 읽었다.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유진에게서 상당히 이례적인 반응이었다.

"이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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