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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 블러드-11화 (12/226)

11화

똬리를 틀었음에도 보스 트롤보다 커다란 덩치, 몸길이가 족히 30m는 넘어 보이는 기다란 뱀.

이마에 달린 보랏빛 구체에서는 요사스러운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미궁의 파편으로 몸을 들이밀자마자 보게 된 보스 몬스터의 위용은 대단했다.

‘방금 막 떨어진 미궁의 파편이 아닌데도, 바로 보스가 나오는군. 인터넷에서 봤던 정보와는 달라.’

일반적으로 지면에 안착한 지 오래된 미궁은 내부가 계속 넓어지게 되어 있었다.

더불어 수많은 몬스터가 생성되며 마기를 먹고 무럭무럭 자라났다.

하지만 이번 미궁은 시작부터 그런 상식을 깨부수는 모습이었다.

하긴 실제로 인간이 정복한 미궁은 그리 많지 않으니, 이런 형태가 있는지 모를 가능성도 존재했다.

‘알을 낳는 건가.’

거대한 뱀 주변으로는 엄청난 양의 알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아마 저 알에서 래틀 스네이크가 태어나, 미궁 밖으로 기어 나오는 모양이었다.

"츠르르르르!"

똬리를 튼 거대한 뱀은 보랏빛 구체를 빛내며 머리를 들었다.

블라드 유진이 미궁 내부로 들어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녀석의 이마에서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터져 나오는 게 아닌가.

푸화아아아아!

[이무기의 위엄이 발동합니다. 일정 수준 이하의 생명체는 공포에 질려 1분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거대한 회색 뱀의 정체는 이무기였다.

녀석에게서 터져 나온 충격파는 정신을 옭아매고, 속박하는 힘이 있었다.

스윽!

하지만 그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오른팔을 움직였다.

봉인되었기에 고작 B급으로 표시될 뿐이지, 실제로 유진의 격은 EX급을 아득히 초월했다.

그런 존재에게 이런 얄팍한 정신 공격은 그저 같잖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쉽게 봐선 안 되지. 이무기라고 했나? 존재감이 대단하군.’

기운을 터트려 정신 피해를 주는 능력은 통하지 않았으나, 놈을 경시할 수는 없었다.

고위 뱀파이어로서의 감각이 계속 경종을 울려 대고 있었으니까.

이무기는 지금껏 봐 왔던 그 어떤 보스 몬스터보다 강할 터였다.

드드드드드!

정신 공격이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자, 녀석은 똬리를 풀고 몸을 꼿꼿이 세우기 시작했다.

잠시간의 대치는 이무기의 이마에 박힌 보랏빛 구슬이 빛나면서 끝나 버렸다.

번―쩍! 쏴아아아아!

그곳에서 분홍빛 광선이 쏘아지더니, 바닥을 그야말로 녹여 버리는 게 아닌가.

바닥의 암석과 흙은 순식간에 용암으로 변해 부글부글 끓었다.

쏴아아아! 쏴아아아!

이무기는 미궁이 무너지지 않을까 싶을 만큼 광선을 마구 쏘아 댔다.

"쿠오오오오!"

게다가 녀석은 고작 그 정도로 끝낼 마음이 없는 듯했다.

"곤란하군."

이리저리 움직이며 여유롭게 광선을 피하는 중이었는데, 점점 용암 지대가 번져서 발 디딜 틈이 없어졌다.

도무지 공간이 나오지 않자, 그는 불쑥 이무기의 몸 위로 올라가 버렸다.

그러자 무자비하게 쏟아지던 분홍빛 광선이 별안간 뚝 멈췄다.

이무기도 저 광선에 면역은 아닌 모양이었다.

일단 놈의 공격을 막기는 했으나, 앞으로가 문제였다.

스르륵!

광선을 자신의 몸에 쏠 수는 없었지만, 녀석은 용암 지대에서 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단단한 비늘이 고온에서 손쉽게 버틸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었다.

후우웅! 쿠화아아앙!

이무기는 꼬리를 번쩍 들더니, 유진을 향해서 힘껏 내리쳤다.

그러자 지축이 뒤흔들리는 듯한 진동과 함께 용암이 사방팔방으로 마구 튀었다.

"챠르르르?"

하지만 방금까지 놈의 몸 위에 서 있었던 유진의 모습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꼬리가 들쳐 올려질 때, 이미 공중으로 몸을 날린 뒤였다.

"나와라. 녹턴."

푸화아아악! 두두두두두!

블라드 유진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림자 속에서 유령 군마가 튀어나와 허공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녹턴은 잽싸게 달려와 낙하하던 그의 몸을 받아 냈다.

턱!

그러고는 이무기의 머리통을 향해서 그대로 날아갔다.

유진의 의지를 읽고 용맹하게 돌진해 나아간 것이다.

"소수혈인."

스이잉!

어느새 그의 손톱은 피의 권능을 실체화하여 1m 길이로 자라난 상태였다.

블라드 유진은 상대를 향해 시뻘건 다섯 줄기의 손톱을 강하게 휘둘렀다.

그러자 고작 1m에 불과했던 손톱이 수백 배로 확대되며 허공을 마구 할퀴었다.

쿠콰콰콰콰콰!

"챠르르르르!"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위력의 공격이었으나, 이무기는 놀라운 방법으로 소수혈인을 막아 냈다.

쿠화아앙!

꼬리로 용암을 쳐서 솟구치게 한 다음, 입에서 시퍼런 광선을 쏴 버린 것이다.

극빙의 기운이 쏟아지자, 마치 벽처럼 솟구쳤던 용암은 그대로 굳어 단단한 암석이 되었다.

콰가가가가각!

그 위를 소수혈인이 긁고 지나가니 급조한 석벽은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지만, 이무기는 무사할 수 있었다.

한데, 궤도가 바뀐 소수혈인은 녀석이 낳아 둔 알을 왕창 깨부숴 버렸다.

"츠리릿! 츠리릿!"

자신의 알이 부서져 나가자, 놈은 불쾌하다는 듯 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주변을 용암 지대로 만들 때도 저곳만은 안전하게 지켰는데, 단 한 방에 그간의 수고가 물거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공격은 실패했으나, 그 모습을 본 유진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평정을 잃었군.’

알이 박살 나자 이무기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이전에는 블라드 유진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최대한 안전한 선을 지켰지만, 지금은 무차별적으로 퍼붓고 있었다.

이마의 여의주와 입에서 두 종류 색상의 광선이 한꺼번에 뿜어졌다.

쩌저저저정!

상극의 속성이 허공에서 만나자, 마치 수십 개의 종이 한꺼번에 울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새하얀 연무가 사방을 자욱하게 물들였다.

"독?"

유진은 자신의 몸이 시커멓게 변하는 것을 확인하고, 연무의 정체를 곧장 알아차렸다.

고위 뱀파이어의 육신을 중독시킬 정도로 엄청난 맹독.

하지만 그저 피부만 까맣게 변했을 뿐, 그가 움직이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었다.

‘가자. 녹턴.’

블라드 유진의 의지가 일자, 유령 군마는 울음소리를 내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허공을 질주했다.

"이히히힝!"

두두두두두!

그뿐이랴, 녹턴의 갈기와 꼬리털은 새빨간 화염을 뿜어 내고 있었다.

커다란 불덩어리가 떨어지는 모습은 마치 유성을 연상케 했다.

화르르르륵! 타다다닥!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욱했던 독무는 녹턴의 화염에 밀려 사그라졌다.

그러자 완벽하게 가려졌던 이무기의 모습이 일순간 드러났다.

놈은 독무를 만들어 내던 걸 멈추고, 입에서 시퍼런 광선을 쏘아 내 유진을 노렸다.

화 속성의 분홍빛 광선을 발출하면, 독무가 흩어져 버리기 때문이었다.

쏴아아아! 쏴아아아!

하지만 녹턴은 믿을 수 없는 몸놀림으로 푸른 광선을 피해 내며 이무기에게 접근했다.

‘소수혈인.’

쿠콰콰콰콰콰!

광선을 발출하느라, 이번에는 놈이 막을 만한 틈은 전혀 없었다.

피의 권능을 가득 머금은 다섯 줄기의 소수혈인은 이무기의 몸통을 무자비하게 썰어 버렸다.

"치리리릿! 치릿!"

몸이 동강 났으나, 녀석은 끝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이 정도 피해로는 자신이 죽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진도 고작 한 번의 공격으로 끝낼 생각은 전혀 없었다.

"폭사."

스―핑! 퍼벅!

그의 손에서 발출된 두 개의 송곳은 정확히 여의주의 아랫부분에 꽂혔다.

척 봐도 고작 폭사 스킬로 파괴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조금 다른 방법을 택한 것이다.

휙!

녹턴의 등을 박찬 블라드 유진은 그대로 이무기의 머리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콰직! 뚜드득!

낙하 속도와 체중을 가득 실어서 시커먼 송곳을 밟자, 놀랍게도 여의주가 위로 불쑥 튀어 나왔다.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하여 이마에 단단히 박혀 있던 보랏빛 구슬을 떼어 낸 것이다.

몸이 갈라졌음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던 이무기는 이제야 통증을 느끼는지 발광하기 시작했다.

"녹턴!"

두두두두두! 척!

녀석이 몸부림을 쳐 대자, 유진은 재빨리 허공으로 몸을 날리며 녹턴을 불렀다.

물론 이무기의 이마에서 떼어 낸 여의주는 손에 든 채였다.

‘크기는 상당한데, 무겁지는 않군.’

보랏빛 구체는 수박 정도의 크기였으나, 깃털처럼 가벼웠다.

마치 이 세상의 물질이 아닌 듯한 느낌이었다.

[미궁의 보스 이무기 처치!]

[보상이 주어집니다.]

그러는 동안, 이무기가 사망한 모양인지 반가운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문득 고개를 돌려 지면을 바라보니, 놈은 자신이 만든 용암 지대에 처박혀 서서히 녹아 가고 있었다.

이무기의 비늘은 화 속성에 면역이 있었으나, 죽으면서 그 능력을 상당 부분 잃은 모양이었다.

‘이게 보상 아이템인가.’

유진은 녀석의 알이 즐비하던 곳에서 무언가가 반짝이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홀로그램이 대놓고 그곳을 지목하니, 솔직히 못 찾을 수가 없었다.

두두두두! 슈우우우!

녹턴에서 내려 깨진 알 사이를 뒤져 보니, 한 쌍의 장갑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감정이 필요 없는 물건인 듯, 홀로그램을 통해 아이템 정보가 바로 표시되었다.

<아이템 정보>

명칭 : 이무기의 수투

등급 : A

방어력 : A

내구도 : 파괴 불가

효과 : 투명, 화염 내성(20%)

이무기의 비늘로 만든 장갑. 착용 시 타인의 눈에 보이지 않음. 파괴되지 않으나 방어력을 넘어서는 피해는 충격이 일부 전달됨.

‘보이지 않는다는 게 마음에 드는군.’

그는 손에 이무기의 수투를 착용해 보았다.

처음에는 다소 작은 것 같던 장갑은 저절로 늘어나더니, 유진의 손에 딱 맞게 변형되었다.

게다가 착용이 끝나자마자 회색빛이었던 표면이 투명하게 변했다.

재질도 어마어마하게 얇아서 마치 애초부터 장갑 같은 건 전혀 끼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블라드 유진은 흡족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푸르르르!"

한창 신기하다는 듯이 수투를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녹턴이 투레질하며 곁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등에 놔둔 여의주를 봐 달라는 의미였다.

"여의주도 있었지. 고맙다."

"이히히힝!"

그가 보라색 구체를 가지고 가자, 녀석은 마치 칭찬해 달라는 듯 머리를 들이밀었다.

유진은 잠깐 희미한 미소를 짓더니, 녹턴의 이마와 갈기를 부드럽게 쓸어 주었다.

그러고는 이내 여의주의 정보도 확인해 보았다.

<아이템 정보>

명칭 : 마기에 물든 여의주(봉인)

등급 : A+

내구도 : 일회용

효과 : 스킬 등급 1단계 향상(최대 A급)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서 영력을 담은 여의주. 마기에 물들었기에, 정화 과정을 거쳐야만 사용할 수 있음.

‘감정에 이어 이제 정화인가.’

둘 다 당장 아이템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명확했다.

그런데 그의 손에 들린 여의주에서 마기가 스르르 움직이는 게 아닌가.

그 흐름을 인지한 블라드 유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템 정보가 나오지 않았던 감정 때와 달리, 이번에는 아크웰의 도움이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이미 여의주를 정화할 방법을 알아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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