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만물상점-166화 (166/167)

<-- 166화 : 초월자-01 -->

상대의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명, 바로 동하였다.

동하 일행이 공간이동으로 세타봉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적들이 마지막 네 번째 조각을 찾은 뒤였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동하는 이대로 앉아서 불의 원소를 빼앗길 수는 없었다.

아직 기회는 남아 있었다.

와카는 임무를 완수했다는 생각에 잠시 방심했다.

만약 그들이 대화를 나누지 않고 네 번째 조각을 찾는 순간 바로 귀환을 했다면 동하에겐 가장 절망스러운 일이 벌어졌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설마 동하가 이곳에 나타났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고, 사소한 방심은 동하에게 마지막 기회를 제공한 셈이었다.

아니, 애초에 루한이 이곳으로 곧장 안내하지 않았다면 운명은 크게 엇갈렸을 터였다.

동하는 혼자 움직였다.

곤륜노자와 루한의 능력이 상당한 수준이었지만, 초 레어 아이템과 중화기로 무장한 차원의 관리자들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오히려 동하를 돕겠다며 나섰다가 동하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었다.

동하는 그림자 종족의 능력을 이용해 은밀하게 차원의 관리자들에게 접근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이목을 최대한 열어 와카와 수하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그렇군. 샤이언 종족도 불의 원소를 이용해 9성급 몬스터를 만들려는 것이었어.’

이는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어서 그리 놀라운 건 없었다.

하나 카일이 자청해서 9성급 몬스터가 되었다는 말에는 어지간한 동하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쩐지 그동안 아무리 나비효과로 인해 모든 것들이 앞당겨졌다고 해도 이건 너무 비상식적으로 빠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한 배경에는 카일이 자청해서 9성급 몬스터가 된 사정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을 알게 되자 이제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동하의 상태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동하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무서운 일이었다.

‘반드시 빼앗아야 한다.’

만약 놈들이 불의 원소를 가지고 샤이언 종족의 행성으로 돌아가는 날엔 모든 것이 다 끝장이었다.

스스슥!

동하는 나무의 그림자를 최대한 활용했다.

하늘이 돕고 있는 것인지 유난히 달이 밝은 날이었다.

밤에는 무적이나 낮에는 한없이 약하다는 맹점이 있는 것이 바로 그림자 종족의 능력이었다.

주변에는 온통 그림자 천지였다.

동하는 순식간에 수백 미터를 내달려 귀신처럼 차원의 관리자들의 그림자 속에 숨어들었다.

‘지금이닷.’

동하는 모두의 시선이 네 개의 조각이 합쳐지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파팟!

그림자 속에서 갑자기 동하가 튀어 나왔다.

누가 이런 상황을 예상이나 했겠는가?

귀신을 만나도 이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하물며 넋 놓고 네 개의 조각이 합쳐지는 모습을 지켜보던 와카와 그의 수하들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노, 놈이다.”

“어서 놈을 막아.”

여기저기서 고함이 터졌다.

반응이 빠른 자들은 눈깜짝 할 사이에 무기를 꺼내들었지만, 그때는 이미 동하가 그들의 품을 파고들어 네 개의 조각을 낚아챈 뒤였다.

하지만, 와카의 임기응변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어마어마한 동하의 힘에 중심을 잃고 주르륵 끌려오면서도 결코 네 개의 조각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와카는 잡고 있던 손에 더욱 힘을 주어 네 개의 조각을 움켜잡았다.

“누가 빼앗길 줄 아느냐?”

챙그랑.

둔탁한 소리와 함께 네 개의 조각이 두 개로 떨어져 나갔다.

스스슥!

어느새 동하는 그림자 속에 숨었다.

차원의 관리자들은 동하가 숨은 그림자를 향해 중화기를 난사했다.

붉은 색 레이저가 쏟아져 나왔고, 공기의 파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며 중력중첩탄이 발사되었다.

고요한 숲속에 때 아닌 태풍이 일었다.

순식간에 울창한 나무들이 사라지고 숲이 벌거숭이로 변했다.

엄청난 위력이었다.

하긴, 십여 개의 중화기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으니 그 위력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동하는 다른 자의 그림자 속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그림자의 주인은 체격이 장대한 자였다.

동하는 번개처럼 몸을 솟구쳐 밖으로 튀쳐 나왔다.

쾅!

동하의 주먹이 장대한 자의 등을 강하게 후려갈겼다.

우드드득!

“크아악!”

뼈가 으스러지고 살이 찢겨지는 소리와 함께 체격이 장대한 자의 처절한 비명이 숲속에 메아리쳐 울려퍼져다.

“저기다.”

“놈이 그림자 속에 숨었다.”

차원의 관리자들이 또 다시 동하가 숨은 곳에 공격을 퍼부었지만, 이번에도 동하는 재빨리 다른 그림자 속으로 이동했다.

퍽!

“으아악!”

또다시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으으.”

“이, 이런 미친.”

동하의 신출귀몰함에 차원의 관리자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다.

최고의 아이템과 중화기로 무장을 한 그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동하를 만나도 쉽게 질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동하는 강해도 너무 강했다.

그들의 반응은 절대 느리지 않았다.

동하가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오면 순식간에 반응을 보이고 공격을 퍼부었다.

하나 동하는 그런 그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계속 한 박자 빠르게 움직였다.

“케엑!”

또 한 번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것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세 명이 피를 뿌리며 죽은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차원의 관리자들은 동하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니기에 급급했다.

‘이, 이럴 수가.’

와카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샤이언 종족의 최정예 전사들이 온갖 아이템과 중화기로 무장을 했는데도 속수무책이라니.

그제야 그는 시얀이 왜 동하를 만나면 싸울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복귀하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놈과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다.’

카일의 좌절과 절망도 이제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의 손에 세 개의 조각이 쥐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에 반해 동하가 가져간 것은 고작 한 조각.

그것으로는 불의 기운을 얻을 수 없었다.

와카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가 잠깐 생각에 잠긴 찰나의 시간에 또 한 명의 수하가 동하의 손에 피를 뿌리며 죽어간 것이었다.

더 이상 망설일 여유가 없었다.

수하들의 목숨도 소중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었다.

세 개의 조각을 부수는 것보다 시얀에게 가져가는 것이 더 도움이 되리라.

와카는 팔목에 있는 귀환 장치를 눌렀다.

수하들에게는 없고 오직 와카에게만 있는 것이었다.

때문에 수하들이 죽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혼자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순간 공간이 열리고 그의 몸이 공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누가 놓칠 줄 아느냐?”

동하는 모든 공격을 중단하고 와카의 뒤를 쫓았다.

샤이언 종족의 행성을 알아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동하는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남아 있던 차원의 관리자들이 결연한 표정으로 동하의 앞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모두 여섯 명이었다.

이 정도면 동하를 이길 수는 없어도 2, 3분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게 웬걸?

동하는 더 이상 그림자 속에 숨지 않았다.

오히려 동하는 공간이 닫히기 전에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극성까지 끌어 올렸다.

쾅!

콰르르릉!

동하의 손에서 번개가 일고 강기가 펼쳐졌다.

그건 마치 거대한 해일이 질풍노도의 기세로 밀려오는 것과도 같았다.

“크아악!”

“으아악!”

비명이 멈췄을 때는 바닥에 서 있는 자는 동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여섯 명의 차원의 관리자들은 동하의 일격을 막으려 했지만, 그 누구도 감당하지 못했던 것이다.

동하는 눈앞이 어지러웠다.

한순간에 과도하게 힘을 사용한 탓에 약간 현기증이 일었지만,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수준이었다.

동하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공간 앞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어느새 공간은 닫힌 상태였다.

여섯 명의 차원의 관리자가 동하를 막아선 건 고작 3초.

아쉽게도 그 3초의 차이로 동하는 눈앞에서 샤이언 종족의 행성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놓쳤던 것이다.

너무나도 아쉬운 일이었다.

여섯 명의 차원의 관리자들은 죽어가면서도 두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제길, 이 좋은 기회를 놓치…… 응?”

동하는 말을 하다 말고 두 눈을 크게 치떴다.

불의 원소 조각을 들고 있던 팔에서 강한 울림이 전해져 오고 있었다.

☆ ☆ ☆

“으으.”

와카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직도 그의 귓가에는 수하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공간의 문이 닫히기 전만 해도 그랬다.

그는 여섯 명의 수하가 동하의 앞을 가로막는 것을 보았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동하가 공간 안으로 뛰어들고도 남았을 상황.

등골이 오싹해지는 순간이었다. 무려 여섯 명이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공간이 닫히는 순간 들려온 비명소리는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세상에 그런 괴물이 있을 줄이야.”

이건 도저히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이런 마음이었을까?

카일도 이렇게 무기력한 마음이 들었으니 9성급 몬스터가 되어서라도 동하에게 복수하고 싶었을 것이었다.

그래도 최후의 승자는 바로 와카였다.

그는 끝내 불의 원소가 동하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의 손에는 네 개의 조각 중 무려 세 개가 있었다. 이 정도면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와카의 생각은 적중했다.

하나의 조각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지만, 세 개의 조각이라면 불의 기운을 50퍼센트 정도까지 사용할 수 있었다.

시얀은 아쉬워도 이 정도면 충분히 9성급 몬스터를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것은 동하의 손에 불의 원소가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는 점이었다.

이젠 자신을 넘어서 확신이 들었다.

동하가 완전체로 각성을 하지 않는다면 승패는 이미 정해진 셈이었다.

“시얀, 박사. 부탁이 있소이다.”

“흐흐, 와카 대장께서 목숨을 걸고 불의 원소를 가져왔는데 뭔들 못 들어주겠습니까? 무엇이든 말만 하십시오.”

“다음 침공에서 나를 선봉에 세워 주시오.”

“그건…… 와카 대장은 행성의 치안을 담당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놈의 손에 수하들을 버려두고 도망치듯 귀환해야 했소. 그 심정을 박사는 알기나 하시오?”

와카가 부드득 이를 갈았다.

자신의 손으로 동하를 죽이지는 못해도 동하가 죽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봐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시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며칠 안으로 9성급 몬스터가 완성될 겁니다. 와카 대장의 뜻이 정 그러시면 원로원에 간곡하게 부탁할 테니까 준비하고 계십시오.”

최후의 출사표였다.

인류와 샤이언 종족의 운명을 건 전쟁은 그렇게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 ☆

“동하 군. 그게 정말인가?”

“죄송합니다. 그때 그자의 뒤를 따라 공간 안으로만 들어갔어도 샤이언 종족의 행성을 알아낼 수 있었을 텐데…….”

동하는 아직도 그때만 떠올리면 크게 아쉬워했다.

무조건 공간 안으로 들어갔어야만 했었다.

그랬다면 최후의 전쟁을 지구가 아닌 샤이언 종족의 행성에서 치렀을 것이었다.

“그게 어디 자네 잘못인가?”

“그래도 그자들의 손에 불의 원소 조각이 전부 들어가는 것을 막지 않았나?”

“어쨌든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흐음. 아무래도 마지막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될 것 같군.”

동하는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동하의 사업적인 파트너인 서용훈 사장과 한석민 사장도 있었다.

동하는 이제 정말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9성급 몬스터가 거의 완성된 상태에서 불의 원소 조각도 세 개나 가지고 갔으니 아마 며칠 내로 괴수들의 침공이 시작될 게 뻔했다.

동하는 대통령들과 상의한 끝에 만물상점에서 한참 수련을 받던 신인류들을 모두 지구로 소환했다.

미국의 신인류는 미국으로 보냈고, 한국의 신인류는 모처에서 동하의 명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그와 동시에 동하는 만물상점에 머물던 이계 종족들을 모두 지구로 초청했다.

그들의 존재는 극비 사항으로 처리 되었다. 또한 적절히 인원을 분류해서 대한민국과 미국에 배치했다.

두 대통령과 서용훈 사장 그리고 한석민 사장은 이미 동하에게 충분히 설명을 들었지만, 막상 이계 종족을 두 눈으로 지켜보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서로 언어가 달라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들 모두 동하를 두려워하면서도 무척 따른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나저나 대단하군.’

사람들은 동하의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동하는 그렇게 이계 종족의 배치까지 완료한 뒤에 유경과 수정 등을 벙커로 불러 들였다.

유경과 수정은 벙커에서 만나고 한동안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는 해프닝이 발생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시선을 외면했다.

벙커에는 혜주와 그녀의 식구들도 들어왔다.

유경의 부탁도 있었지만, 동하 역시 혜주와 친분이 있어서 흔쾌히 허락했다.

그렇게 몇몇 사람들을 더 벙커로 데려오고 나서야 동하는 모든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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