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화 : 마지막 퍼즐-02 -->
수학에선 1+1은 2가 정답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상식적인 선에서의 일이고, 현실에서는 1+1은 4가 될 때도 있고, 10이 될 때도 있다.
차원의 관리자들과 중화기의 결합이 그러한 예다.
중화기는 평범한 사람이 사용을 해도 어지간한 테스터들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하물며 강력한 능력을 가진 차원의 관리자들이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여기에 능력을 업그레이드시켜 주는 아이템까지 착용을 했으니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괴수 종족의 테스터들은 숨을 죽인 채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차원의 관리자들이 아이템 말고 중화기로 무장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차원의 관리자들은 자부심이 대단했다.
모든 이계 종족을 압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 중화기로 무장까지 한다면 이는 반칙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건 전사의 자부심을 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한데, 그런 그들이 중화기로 무장까지 하고 왔다?
그건 그만큼 현재의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는 뜻이었다.
물론 지금 이 상황이 두렵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그들의 걱정은 단순한 기우에 불과했다.
차원의 관리자들은 처음부터 괴수 종족을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불의 원소를 찾기 위해 밀림 깊숙한 곳에 들어가고 거대한 폭포수 밑을 찾아 헤맸다.
중화기만 해도 그랬다.
애초에 차원의 관리자들은 동하와 마주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만반의 대비를 하기 위해 중화기를 준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다.
그들이 온갖 무장으로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해도 과연 동하를 이길 수 있을지는 그들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했다.
그래서였다.
레온 행성에서 동하를 만나는 것은 극히 희박한 일이지만, 만에 하나 동하를 만나면 그들은 과감하게 불의 원소를 파괴할 생각이었다.
지난 며칠 동안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차원의 관리자들은 란테가 찾아낸 단서를 따라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고 몇 가지 수확도 있었다.
“여기가 붕조의 날개가 떨어져서 생겼다는 파라얀 폭포인가?”
“그러고 보니 폭포의 모습이 거대한 새의 날개처럼 보이는군.”
란테는 네 개의 태양을 화산이라 생각했다.
화산이 한꺼번에 네 개나 폭발을 하면 천하가 도탄에 빠지는 것도 당연하다. 어쩌면 대재앙이 도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붕조가 태양을 집어 삼켰다고 했으니 화산이 폭발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이 대목이 가장 중요했다.
괴수 종족들조차 붕조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그건 그야말로 신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전설의 괴수일 뿐이었다.
아무튼, 좋다. 그렇다는 건 결국 붕조는 당시 괴수 종족의 영웅 중 한 명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화산이 폭발하는 것을 막았다.
어쩌면 붕조의 능력이 극고해서 가능했을지도 몰랐지만, 란테는 붕조가 생명의 씨앗인 불의 원소를 이용해서 화산의 폭발을 막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둘 다 맞는 얘기일 수도 있었다.
만약 모든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붕조의 몸이 폭발했다는 말도 없어야 했다.
아마 화산의 폭발을 막았으니 세상의 인심이 온통 그에게 쏠린 것은 당연지사.
당시 권력을 가진 자들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붕조를 죽이려 했던 것 같았다.
한마디로 토사구팽.
붕조는 가장 믿었던 친구와 동료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죽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운명을 예견한 것일까?
붕조는 죽기 전에 불의 원소를 어딘가에 숨겨둘 수 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란테의 추측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
문제는 불의 원소를 숨겨놓은 장소가 몇 군데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신화 속에서는 붕조의 몸이 폭발한 직후 엄청난 열기가 흘러나왔다는 것으로 표현한 것 같았다.
그리고 란테의 추측들은 서서히 현실로 나타나고 있었다.
불의 원소는 네 조각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차원의 관리자들은 이미 불의 원소라 의심되는 조각을 두 개나 찾아냈고, 며칠 동안 고생한 끝에 세 번째 조각이 있을 만한 장소를 찾아냈던 것이다.
“대장님, 이쪽으로 와 보십시오. 폭포 안쪽으로 동굴이 있습니다.”
“좋아. 두 개조로 나누어서 한쪽은 동굴을 살피고 다른 한쪽은 물속을 확인한다.”
대장의 지시에 차원의 관리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세 번째 조각이 발견된 곳은 물속이었다.
지난 며칠 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조각들은 현무암처럼 돌멩이처럼 보였지만, 세 개의 조각을 가져다 대는 순간 자석처럼 딱 달라붙었고, 거친 표면도 매끄럽게 변했다.
그와 동시에 세 개의 조각들 속에서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흐흐, 이제 마지막 한 조각 남았다.”
☆ ☆ ☆
바닥에 땅거미가 짙게 깔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밀림의 저녁은 다른 곳보다 더 빨리 찾아왔다.
하지만, 하늘에 둥근 달이 세상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어서 그리 어둡지는 않았다.
“여기에도 없습니다.”
“으음. 그렇다면 놈들이 이미 다녀간 모양이군요.”
이번이 벌써 두 번째였다.
동하와 곤륜노자, 그리고 루한의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그들은 번번이 허탕을 치고 있었다.
이래서는 계속 차원의 관리자들의 뒤꽁무니만 쫓다가 결국 불의 원소를 모두 빼앗길 것 같았다.
“놈들의 손에 적어도 두 개의 조각이 있겠군.”
“혹시 네 개의 조각을 모두 얻고 돌아간 것은 아닐까요?”
“흐음. 시간상으로는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만, 그리 넉넉한 시간도 아닐세.”
“그렇다면 세 번째 조각까지는 확실하게 손에 넣을 수 있겠군요.”
“그렇다고 봐야겠지.”
비관적인 상황이었다.
동하는 그저 놈들이 세 개의 조각만 찾아냈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었다.
마지막 네 번째 조각마저 놈들의 손에 들어가는 날엔 동하가 다섯 개의 원소를 이용해 완성체로 각성하는 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런 사실을 일찍 알게 되어서 천만다행이었다.
그들이 레온 행성에 차원 이동을 해서 건너온 것은 어제였다.
단서를 중심으로 이곳저곳을 찾으러 가려던 찰나 루한을 알아본 테스터들이 차원의 관리자들이 중화기로 무장을 하고 나타난 것을 설명해 주었던 것이다.
처음 사람들에게 들었을 때만 해도 혹시나 싶었다.
하지만, 동하 일행이 인근에서 가장 가까운 장소를 찾았을 때는 이미 주변에는 놈들이 다녀간 흔적들로 가득할 뿐이었다.
그제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놈들도 불의 원소를 찾기 위해 레온 행성에 왔다는 것을.
그리고 두 번째 장소까지 놈들에게 선수를 빼앗기자 동하의 마음은 크게 초조해졌다.
“루한, 다른 방법은 없겠습니까?”
이래저래 루한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었다.
애초에 루한이 없었다면 이번 일은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으음.”
루한은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레온 행성의 지리는 아무래도 차원의 관리자들 보다는 루한이 더 자세히 알고 있었다.
루한은 그 점을 최대한 이용하려 했다.
“어르신께서 놈들이 세 번째 조각까지 찾았을 거라고 하셨으니 우린 네 번째 장소로 곧장 가죠.”
곤륜노자가 놀란 표정으로 루한을 쳐다보았다.
“세 번째 조각이 어디에 있고, 네 번째 조각은 또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단 말인가?”
붕조가 쪼갠 네 개의 조각에 각기 번호가 있을 리 없었다.
한데 루한이 자신 있게 번호를 언급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남서쪽으로 300킬로미터 정도 가면 파라얀 폭포가 나옵니다. 그리고 북쪽으로 1천키로 이상 가면 붕조의 발톱을 닮았다는 세타봉이 있습니다.”
“그렇군.”
그제야 동하와 곤륜노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랬다.
북쪽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남쪽으로 내려오면 그만큼 시간이 두 배 이상 걸리게 된다.
하지만, 반대로 남쪽에 갔다가 북쪽으로 올라가면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으니 루한이 세 번째와 네 번째 번호를 매길 법도 했다.
“좋습니다. 우린 곧장 세타봉으로 공간이동으로 움직이지요.”
☆ ☆ ☆
달무리가 아름다운 밤이었다.
세타봉은 멀리서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거대한 암벽이 새의 발톱을 닮아 있어서 대자연의 신비함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장님, 여기 찾았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대장이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달려갔다.
조각 하나가 발톱 모양의 바위 안쪽 깊숙한 곳에 감추어져 있었다.
정신을 집중하고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결코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었다.
차원의 관리자들의 얼굴에 기쁨의 미소가 떠올랐다.
세타봉 일대를 샅샅이 훑어본 지 5시간만의 쾌거였다.
“우하핫!
대장의 웃음소리가 세타봉에 가득 울려 퍼졌다.
이것으로 승부는 결정된 셈이었다.
최후의 승자는 바로 샤이언 종족이었다.
무엇보다 네 개의 조각을 모두 찾고 임무를 완성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중간에 동하를 만나지 않은 것도 무사히 임무를 완성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이었다.
“대장님, 이제 9성급 몬스터를 만들 수 있는 겁니까?”
“그렇겠지. 카일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구나.”
와카는 한때 카일과는 라이벌 관계였다.
그들은 샤이언 종족 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절대적인 실력자들이었다.
카일과 와카는 서로 자존심이 강해서 넘버원의 자리를 놓고 한 치의 양보 없는 대결을 펼쳐 왔었다.
하지만, 와카는 한번도 동하를 만난 적이 없는 반면 카일이 동하와의 싸움에서 연전연패를 거듭했다.
와카는 샤이언 종족의 치안을 담당했고, 카일은 대항 세력들을 쫓느라 외부로만 나돌아 다녔는데 그때만 해도 와카는 속으로 카일을 비웃었다.
결국 실력이 되지 않아서 카일이 동하에게 진 것이이라고.
넘버원의 자리는 카일 따위가 넘볼 수 없는,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나 카일은 끝내 복수를 다짐하며 스스로 9성급 몬스터가 되었을 때 와카가 받은 충격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평소 카일과 사사건건 충돌을 일으키며 지내온 와카였지만, 그렇다고 카일의 능력을 모두 부인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어느 면에서는 와카가 절대 카일을 능가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그런 와카의 입장에서는 카일이 몬스터가 되면서까지 복수를 하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그 최동하란 인간이 어떤 놈이기에 그 난리들이란 말인가?
하지만, 들려오는 소문은 하나같이 엄청난 것들이었다.
만물상점을 빼앗기고 기계 골렘을 잃고, 백 명도 넘는 차원의 관리자들이 동하의 손에 무너지고.
그제야 와카는 카일의 좌절과 절망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최동하.
그자는 소문보다 백배는 더 무서운 자였다.
와카는 한 번도 만나본 적도 없는 적에게 소름이 돋고 공포심이 들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였다.
와카는 네 개의 조각을 모두 찾아 불의 기운을 완성하는 것만이 카일의 복수를 도와주는 것이라 믿었다. 그것이 한때 자신과 라이벌이었던 카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모두 준비하라.”
“이제 복귀하는 것입니까?”
“임무를 완수했으니 이곳에 더 머물 이유가 있느냐?”
“헤헤. 다들 최동하 그놈을 무슨 신적인 존재로 떠들다 보니 한번쯤 놈에게 중력 중첩탄을 맛보여 주고 싶더군요.”
중력 중첩탄.
이것이 바로 상대의 능력을 무력화시키는 중화기였다.
살짝만 스쳐도 평소 느끼던 중력의 힘에 몇 배가 가해지기 때문에 제대로 능력을 펼치기 어려웠다.
그건 와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모두 샤이언 종족 내에서도 최정예 전사들이다.
거기에 최고의 아이템과 중화기로 무장을 해서 동하와 만나도 쉽게 질 것 같진 않았다.
하나 임무가 먼저였다.
시얀이 몇 번이고 신신당부한 것도 있고 불의 원소를 모두 찾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동하에게 타격을 줄 수 있었다.
“복수는 카일의 손으로 한다. 놈은 불의 원소를 얻지 못했으니 끝내 완전체로 각성하지 못한다.”
모두의 얼굴이 숙연해졌다.
그들 역시 카일과는 별다른 접전이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와카의 수하들로 카일과는 대척점에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래도 카일은 같은 동족이었다.
또한 한때 샤이언 종족 최고의 전사로 명성을 떨쳤었다.
그런 카일이 9성급 몬스터가 되면서까지 동하에게 복수하려던 마음을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와카는 마지막으로 품속에서 세 개의 조각을 꺼내들고 마지막 조각을 가져다 댔다.
순간 조각들 사이에서 불꽃이 일고 격렬한 전기가 튀었다. 그와 동시에 어두운 숲속에 번개가 번쩍번쩍 내려치기 시작했다.
“오오.”
차원의 관리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 탄성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들은 네 개의 조각이 뿜어내는 신기한 현상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무언가 자신들의 그림자 속으로 쑥 숨어 들어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