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화 : 불의 기운-03 -->
‘으으.’
강룡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생각할수록 무서운 일이었다.
동하는 처음 보는 고수였다.
그것도 C등급 상위 랭커인 강룡이 감히 쳐다볼 수조차 없을 정도로 엄청난 능력을 지닌 초 고수였다.
‘으으, 도대체 얼마나 능력이 높으면 아무런 기운도 흘리지 않고 내 염력을 흔적도 없이 없앨 수 있단 말인가?’
주르륵!
추운 겨울이었다.
하지만, 강룡의 온몸에서 비 오듯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삼십육계 중 줄행랑이 상책이라 했던가?
지금은 도망치는 거 외엔 그 어떤 방법도 없었다.
동하는 그가 감당하기에는 터무니없이 강한 고수였고, 어차피 싸워봐야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일 테니 말이다.
“차앗!”
강룡이 발을 박차고 하늘높이 몸을 날렸다.
강룡은 자신이 가진 염력 중 하나인 부운술을 사용했다.
이는 주변의 공기를 밀거나 잡아당겨 몸을 하늘높이 띄울 수도 있고, 번개처럼 내달릴 수도 있는 절정의 절기였다.
슈슈슉!
강룡의 몸이 순식간에 까마득하게 멀어졌다.
그의 움직임이 어찌나 빠른지 음속의 속도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따돌렸다.”
그럼 그렇지.
부운술이야말로 강룡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능력이었다.
그렇게 강룡이 동하의 손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누군가 그의 뒷덜미를 콱 하고 움켜잡는 것이 아닌가?
“억?”
강룡의 입에서 헛바람이 터져 나왔다.
그의 신형이 더 이상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동하가 따라오는 기척을 느끼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순식간에 따라잡힌 것 같았다.
강룡은 자신의 뒷덜미를 잡고 있는 손을 뿌리치려고 염력을 일으켰지만, 뒤쪽에서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서, 설마!”
강룡이 고개를 돌렸다.
순간 강룡은 두 눈을 의심했다.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동하는 애초에 서 있던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세, 세상에.’
강룡은 자신의 처지도 잊고 입을 쩍 벌렸다.
그만한 거리에서 염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전무후무한 동하의 능력에 강룡은 기가 질렸다.
도저히 동하가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동하에겐 부운술 따위는 어린애 장난일 뿐이었다.
처음부터 이런 능력이 있으니 굳이 그의 뒤를 쫓아올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동하가 잡고 있던 강룡의 뒷덜미를 살짝 끌어당겼다.
동하의 기준에는 살짝이었지만, 강룡에게는 항거불능의 무지막지한 힘이었다.
“으으.”
강룡은 안간힘을 쓰며 버티려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그의 몸이 질질 끌려갔다.
‘아, 안 돼.’
☆ ☆ ☆
구사일생이란 말로도 부족했다.
어떻게 보면 기행의 연속이었다.
수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강룡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강룡의 말을 알아듣진 못했지만, 대충 그가 염력의 능력자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대개 염력을 사용하는 각성자들은 팔을 살짝 움직여 사물을 움직이거나 조종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강룡이 팔을 움직일 때 드디어 염력을 사용한다는 것을 깨닫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이게 웬걸?
죽어도 몇 번은 더 죽어야 할 그녀와 동하는 멀쩡하고 강룡은 무엇엔가 놀라 도망치는 것이었다.
왜?
강룡이 도망칠 이유가 뭐지?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한데, 더 황당한 것은 까마득하게 도망쳤던 강룡이 질질 끌려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제야 수정은 무언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그녀가 멍하니 동하를 쳐다보았다.
분명 동하가 손을 쓴 것 같긴 한데 동하에게서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염력 사용자라면 팔을 움직여야 했고, 무공을 각성한 능력자라면 하다못해 내공을 사용하기 위한 모션을 취해야 했다.
“저, 정말 동하 씨가 신인류의 시초라는 사람이 맞는군요.”
“갑자기 그게 말입니까?”
“시치미 떼지 말아요. 저 사람이 질질 끌려오는 게 동하 씨가 능력을 사용해서 그렇다는 거 다 알고 있어요.”
이쯤 되면 바보라도 알 수 있을 터였다.
하물며 수정은 예전부터 계속 동하를 의심하고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동하는 계속 시치미를 뗐다.
사실 자신의 입으로 ‘내가 그런 사람이다’라고 인정하는 것도 민망한 일이었고, 수정이 발끈하고 약이 올라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글쎄, 나는 아니라니까요. 그나저나 저 인간은 왜 갑자기 도망을 치다가 질질 끌려오는 거지?”
“우와! 대박. 동하 씨, 계속 이럴 거예요?”
☆ ☆ ☆
실험과 연구는 막바지에 다다랐다.
9성급 몬스터 연구는 어느새 8부 능선을 넘은 상태였다.
금방이라도 9성급 몬스터가 완성이 될 것 같았지만, 시얀은 쉽게 마지막 남은 벽 하나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젠장.”
시얀은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졌다.
지금까지는 카일의 능력을 녹여 괴수들의 능력과 조합해서 거침없이 연구를 진행해 나갈 수 있었지만, 마지막 단계에 와서는 시얀 역시 다섯 개의 원소가 필요했다.
하지만 상황이 그리 녹녹지 않았다.
시얀은 단 한 개의 원소도 얻지 못했다. 그에 반해 동하는 이미 몇 개의 원소를 손에 넣고 상당히 강해져 있었다.
시얀이 볼 때는 적어도 세 개 이상이었다.
이대로 가면 설령 시얀이 9성급 몬스터 개발에 성공해도 문제였다.
동하가 다섯 개의 원소를 모두 얻으면 지금보다 더 강해질 건 불을 보듯 뻔했다.
시얀은 9성급 몬스터의 완성을 위해 원소들이 필요했지만, 동하의 힘이 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나머지 원소들을 손에 넣어야만 했다.
“불과 공기. 놈이 얻지 못한 원소는 불과 공기일 것이다.”
특히, 동하가 로우피림과 싸울 때 여러 가지 능력을 사용했지만, 로우피림에게 가장 효과적인 불의 기운을 사용하지 않았었다.
그때 시얀은 깨달은 것이다. 동하가 다섯 가지 원소 중 불의 기운은 얻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공기의 원소는 얻고 싶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이건 어디에나 있지만 특별한 상황이 주어졌을 때에만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였다.
동하보다 먼저 불의 기운을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동하가 완벽하게 각성해서 완전체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더구나 시얀은 막힌 벽을 넘고 9성급 몬스터를 완성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였다.
“불의 기운이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샤이언 종족 역시 불의 기운과 관련해서는 그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한 상태였다.
시얀은 실험과 연구를 계속 진행하면서도 란테에게 불의 원소를 찾는 임무를 맡겼다. 제법 중요한 임무였다.
어쩌면 여기에 샤이언 종족의 운명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과학자인 란테가 맡을 일은 아니었다.
좌천.
란테는 동하에게 기계 골렘을 빼앗기고 연구직에서 관리직으로 좌천되었고, 지금처럼 몸을 쓰는 일을 하고 있었다.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었다.
란테는 샤이언 종족의 과학자들 중 단연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브레인이었다.
동하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이 없었다면 진작에 혀를 깨물고 죽었을 것이었다.
란테의 집념과 원한은 무서울 정도였다.
그는 모든 종족의 신화와 전설을 조사해서 끝내 단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샤이언 종족이 다른 종족을 정복하면 그들의 능력을 연구하기 위해 모든 서적을 빼앗아 와서 도서관에 보관해 두었다.
샤이언 종족은 그 모든 서적들을 디지털화 해서 서버에 저장해 두었다.
때문에 원하는 부분만 얼마든지 찾아서 읽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한 사람이 조사하기에는 엄청난 양이었다.
“응?”
많은 종족에게 불의 기운과 관련된 자료가 있었지만, 그중 유독 란테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어느 날 하늘 위에 다섯 개의 태양이 동시에 떠올랐다. 태양의 기세가 사뭇 흉흉하니 천하가 도탄에 빠졌다. 그때 붕조가 한 번의 날갯짓으로 동서남북을 가르며 네 개의 태양을 집어 삼키니 이에 만물이 소생하고 모든 생명이 조화를 이루었다.]
바로 괴수 종족의 창조신화였다.
네 개의 태양을 집어 삼킨 붕조는 전설 속의 새였다.
아무리 괴수 종족이라 해도 붕조의 존재는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창조신화에 따르면 붕조는 네 개의 태양을 집어 삼킨 지 오래지 않아 몸이 폭발했고, 엄청난 열기가 흘러나와 지금의 괴수 종족들이 불사의 신체를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고 되어 있었다.
“바로 이것이다.”
신화라는 것은 은유와 상징의 조합이었다.
다섯 개의 태양이 동시에 떠오른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하물며 다섯 개의 태양이 뿜어내는 열기가 얼마나 강할까. 아마 모든 것들이 다 녹아 내려야 정상이었다.
헌데, 단순히 태양의 기세가 사뭇 흉흉하다는 표현 하나로 끝냈으니 이건 진짜 태양이 아닐 가능성이 컸다.
“생명의 씨앗이다.”
이로 인해 만물이 소생하고 생명의 조화가 이루어진다고 했고, 괴수 종족이 강한 양강지기를 가지고 있으니 모든 조건이 부합했다.
네 개의 태양을 삼켰다는 붕조.
그것이 바로 생명의 씨앗이었다.
붕조가 정말 존재하는 것인지. 그리고 네 개의 태양은 어떤 것을 상징하는 것인지. 붕조가 네 개의 태양을 삼키고 어디로 종적을 감추었는지 모든 것들이 다 미스테리였다. 그것을 알지 못하면 설령 단서를 찾았다고 해도 불의 기운을 얻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란테가 아니었다.
“반드시 찾는다.”
란테는 괴수 종족의 신화와 전설은 모두 조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작은 지방에 떠도는 민간 설화까지 연구했다. 그 양이 실로 어마어마했지만, 란테는 샤이언 종족 내에서도 알아주는 브레인이었다.
“현재는 여기가 가장 가능성이 있겠군.”
밤을 새고 연구를 거듭한 효과가 있었다.
란테는 몇 가지 민간 설화와 신화 등을 비교한 끝에 가장 유력한 단서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우드득! 기다리고 있어라.”
란테가 동하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불의 기운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모든 상황을 한 번에 역전 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동하 때문에 당한 굴욕도 모두 되갚을 수 있을 터였다.
란테는 곧장 시얀에게 달려가 지금까지 조사한 것을 보고했다.
1시간 후.
십여 명의 차원의 관리자들이 차원이동을 통해 괴수 종족의 행성으로 건너갔다.
그들은 샤이언 종족 내에서 최정예 전사들이었다.
☆ ☆ ☆
김선일이 주도한 중국과의 산업스파이 사건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동하가 촬영할 동영상이 마크와 제인의 기사로 CNN에서 단독으로 보도가 되었고, 중국은 사면초가에 빠졌다.
동하가 어플을 이용해 동영상을 편집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내용은 쏙 뺀 채 강룡과 비서관의 악랄한 모습을 크게 증폭시켰기 때문에 그 여파가 더 컸다.
고립무원.
전 세계가 중국을 비난했고, 여기저기서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중단하기 시작했다.
그건 도미노 현상과도 같았다.
처음에는 한두 나라에서 시작된 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너도나도 경제 협력을 중단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중국이다.
그 어떤 나라도 중국의 시장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각 정부는 아무런 미련 없이 중국이란 거대 시장을 포기했다.
각 정부의 결정 뒤에는 대한민국 정부에 화해의 손짓을 내미는 일종의 제스처였다.
사실 이 같은 배경이 아니었다면 산업스파이 사건이 이렇게까지 이슈가 되고 중국이 벼랑 끝까지 몰릴 일은 아니었다.
아무튼, 각 정부에서는 은근히 뒤가 켕기던 상황이었다.
대한민국 정부의 행보와 미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던 때에 대한그룹과 다온그룹에서 연이어 놀라운 물건들이 출시되지 않았던가?
더구나 대한민국에 신인류의 시초라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대한그룹과 다온그룹에서 생산하는 물건들이 모두 신인류의 시초라는 사람과 관련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면 각 정부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었다.
그들은 지금이라도 대한민국 정부와 화해를 하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계기가 없었다.
한데, 바로 그럴 때쯤 산업스파이 사건이 터졌으니 각 정부는 중국이 고마워서 절이라도 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중국은 졸지에 왕따로 전락했다.
중국 정부에서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주한대사를 소환하고 관련자를 징계했다.
하지만, 한번 떠난 민심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가뜩이나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이었다.
중국은 유독 춥고 외로운 겨울을 보내야 했다.
김선일은 죄질이 무거워 종신형에 처해졌다.
또한 그의 가족들은 사람들의 온갖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다온그룹과 모든 인연이 끊어진 건 당연한 일.
김선일의 가족들은 평생을 사람들 눈을 피해 숨어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