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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 만물상점-160화 (160/167)

<-- 160화 : 마지막 카운트다운-03 -->

수정은 아직도 광고 촬영 세트장에서의 화재 사건을 잊을 수 없었다.

그날 그녀는 믿기지 않는 모습을 보지 않았던가? 동하가 그녀를 안고 하늘을 날았었고, 격렬한 불길 속에서도 동하는 유유히 빠져나와 그녀를 구해주었다.

하지만, 그때는 너무 놀라서 헛것을 보았다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었는데, 초인적인 힘을 가진 신인류를 보고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분명 그날 그녀가 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까 동하를 처음 만났을 때도 여간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동하는 빈 공간에서 갑자기 가방을 끄집어내더니 그 속에서 커피를 꺼내고 다시금 가방을 허공 속에 집어넣었다.

바로 인벤토리였다.

그때의 충격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동하의 정체를 단단히 의심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그때 동하는 알약 ‘영업의 신’을 먹은 직후라, 동하가 하는 말을 수정은 그대로 믿었기 때문에 동하는 별 어려움 없이 수정의 의심을 돌릴 수 있었다.

동하의 임기응변과 영업의 신 알약의 위력이 합쳐진 결과였다.

하나 수정이 동하의 정체를 의심하기 시작한 이후 덩달아 그때의 기억까지 자연스럽게 떠오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요즘 저희 그룹을 은밀하게 조사하는 자들이 있어요.”

“강화 배터리를 제조하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서겠죠.”

“그것도 하나의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다른 이유가 더 있다는 말입니까?”

동하의 질문에 수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버지께 들은 말에 따르면 세계 곳곳의 첩보기관은 다온그룹과 신인류의 시초라 불리는 사람 사이에 모종의 커넥션이 있다고 여기는 것 같대요.”

한마디로 동하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해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수정 또한 동하의 정체를 다분히 의심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여러 나라의 첩보기관에서 다온그룹을 조사했지만, 딱히 동하에 대한 정보가 새어나간 것은 없었다. 하긴, 수정 외에는 다온그룹 내에서는 누구도 동하의 정체를 신인류의 시초라 불리는 사람과 연결 짓는 사람이 없었다.

당연히 각 정부의 첩보기관에서 깊게 파고들어봐야 건질 수 있는 게 있을 리 없었다.

결국 각 정부의 첩보기관은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채 미국 대통령의 행방으로 눈을 돌렸다.

미국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청와대에서 한국 대통령과 일정을 보내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각 정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각 정부에서 한국 주재 대사를 보내 만남을 요청했지만, 누구도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군.’

각 정부의 첩보기관이 여기까지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동하는 다른 나라의 움직임이 어떤지는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뭐?

자신의 정체를 밝혀낸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나?

떡 줄 사람을 생각도 않는데 괜히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었다.

어벤저스 프로젝트는 조기에 매진된 상태였다.

뒤늦게 자신의 정체를 알고 애걸복걸 한다고 끼워줄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나저나 수정이 이렇게까지 깊이 자신의 정체를 의심하고 있었는지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하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긴 했다. 언제까지 그녀에게 정체를 숨기고 살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지금은 왠지 장난기가 생겼다.

“수정 씨는 참,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네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밑도 끝도 없는 말로 사람 관심을 끌려는 거 말이에요.”

“이, 이게 왜 밑도 끝도 없는 말이에요? 나는 정말 확신하고 있단 말이에요.”

“쯧쯧, 요즘 내가 바빠서 수정 씨를 자주 만나지 못하긴 했죠. 그렇다고 욕구불만을 이런 식으로 풀면 안 되죠.”

“미, 미쳤어, 요……. 욕구불만이 왜 여기서 나오는 건데요?”

수정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항상 이랬다.

나이는 수정이 동하보다 더 많은데, 동화와 대화만 하면 결국 얼굴을 붉히고 말을 더듬게 되는 것 역시 수정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한수정 부사장, 오랜만이네.”

누군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수정이 그를 알아보고 빠르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붉어졌던 얼굴도 어느새 정상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어? 오빠가 여긴 어쩐 일이에요?”

“그게 회장님께 보고할 것이 있어서 왔다가 네가 보이기에.”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바로 김선일이었다.

수정은 강화 배터리 사업 때문에 다온그룹으로 보직을 옮긴 상태였다.

그에 따라 공석이 된 다온텔레콤의 본부장 자리에 김선일이 추대 되었다.

예전부터 그토록 바라던 일이었지만, 김선일은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지금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핸드폰 사업은 거의 사양길이었다.

한마디로 김선일은 가라앉는 배의 선장으로 추대된 격이었다. 속에서 불같은 화가 치밀어 올랐고, 더욱 한 씨 일가에 이를 갈았다.

‘반드시 무너뜨려 버리겠다.’

하나 김선일은 하이에나 같은 인간이었다.

그는 절대 자신의 속내를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지 않았고, 수정과 한씨 일가를 대할 때면 시종일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나저나 분위기가 제법 좋아 보이던데 이 분은 누구……?”

김선일의 시선이 동하에게 향했다.

“참, 내 정신 좀 봐. 인사해요. 이쪽은 최동하 씨. 그리고 동하 씨? 여긴 사촌오빠면서 다온텔레콤의 새로운 본부장이 된 김선일 씨.”

“반갑습니다.”

김선일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먼저 악수를 청했다.

누가 봐도 호감이 느껴질만 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야비하게 웃었다.

‘왠지 이자인 것 같다.’

요즘 수정에게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고, 그 사람이 생각보다 상당히 나이가 어리다는 소문이 일가친척들 사이에서 화젯거리였다.

다만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신상내력에 대한 것은 전혀 알려진 것이 없었다. 여기에 더해 수정의 뒤에서 그녀에게 사업 아이템을 기획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런 애송이놈이 그런 어마어마한 사업을 기획했다고?’

동하의 나이가 너무 어려 보여서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하나 아무려면 어떤가.

이거야말로 일거양득.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었다.

김선일은 이미 한 번 수정을 죽이려다 실패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다온그룹을 무너뜨리려고 기회를 노렸지만, 괴수들의 침공으로 인해 모든 것이 그의 계획도 덩달아 엉망진창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러다 이번에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중국 쪽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김선일에게 손을 내밀고 은밀한 제안을 했다.

강화 배터리와 관련된 정보를 넘겨주면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고.

‘다온그룹이 무너지면 저 애송이놈의 날개도 꺾이고 말겠지.’

김선일이 본사에 온 것은 한 회장에게 보고할 것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건 구실에 불과했고, 강화 배터리 정보를 빼내 중국 측에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의 품에는 핵심 내용들을 촬영한 사진이 있었다.

‘이것으로 다온그룹도 끝이다.’

하나 김선일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동하의 시선이 그의 품속에 있는 사진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 ☆ ☆

그 시각 연합 길드는 필드에서 한창 훈련을 하고 있었다.

연합 길드의 첫 시작은 미약하게 출발했다.

대한민국과 미국의 능력자를 모두 합쳐 80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지수를 필두로 한 대한민국의 능력자가 20명이었고, 나머지가 제임스 무어가 이끄는 미국의 능력자들이었다.

훈련은 실전을 방불케 했다.

필드에서 부상을 입으면 현실에서도 부상을 입었고, 팔다리가 부러지면 현실에서도 고스란히 적용이 되었다.

심지어 괴수들의 손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서 사람들은 훈련을 할 때마다 엄청난 압박감에 사지가 덜덜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난이도가 상당한 편이었다.

생존 탈출 격퇴.

훈련 카테고리는 고작 세 개가 전부였지만, 난이도에 따라 하나의 카테고리에 몇 개의 훈련 프로그램이 들어 있었다.

가장 훈련 난이도가 약한 비기닝 프로그램조차 제대로 끝낸 사람이 없었다.

지수는 누구보다 악바리 근성으로 달려들었지만, 그녀 역시 번번이 마지막을 앞두고 실패하곤 했다.

분하고 억울했다.

훈련을 끝내고 나오면 온몸에 크고 작은 상처들로 가득했지만, 그렇다고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건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목숨을 걸 만큼 훈련은 어렵고 위험천만한 것이었지만, 신인류들은 누구도 두렵다고 도망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훈련을 마치고 나면 그들에게 돌아오는 보상이 만만치 않았다.

혹시라도 필드를 클리어하거나 임무를 완성했을 때는 대박을 터뜨렸다.

지수는 처음 만물상점에 갔을 때 느꼈던 놀라움과 경이로웠던 마음을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이곳이 지구가 아니라는 건 그녀에겐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괴수가 나타나고 던전이 생겼을 때 이미 외계인의 존재를 예상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동하가 사전에 대충 설명해 준 것도 있었다.

- 만물상점은 아이템 백화점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원하는 모든 것들이 다 있죠. 다들 쇼핑을 하듯 가볍게 둘러보되 훈련은 진지하게 임해야 할 겁니다.

그때는 동하가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아이템 백화점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두 눈으로 만물상점의 모습을 보는 순간 벌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동하의 말은 수박 겉핥기식에 불과했다. 겨우 아이템 백화점이란 말로 만물상점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목숨을 걸고 던전을 클리어 했을 때 떨어지는 아이템보다 만물상점에 있는 아이템이 훨씬 더 능력치가 높았다. 지수가 그것을 깨달았을 때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이건 아미구음신공이네.”

지수는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아미파는 여인들의 문파로 모든 무공과 심법이 오직 여인들에게 특화되어 있었다.

아미구음신공만 해도 그랬다.

공력이 약한 지수에겐 아미구음신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었다.

“아마 10년만 꾸준히 수련하면 절정의 공력을 얻을 수 있게 되겠지.”

욕심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터.

아미구음신공은 몇 번이나 던전을 클리어해도 절대 얻을 수 없는 레어급 아이템이었다.

한데, 이게 웬걸?

지수는 문득 옆에 진열되어 있는 환단을 보고 두 눈을 크게 치떠야만 했다.

“맙소사.”

10년짜리 내공의 환단이었다.

단지 복용하는 것만으로도 10년의 내공이 생긴다는 사실에 지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미구음신공이 레어급 아이템인 줄 알았는데, 10년짜리 내공 환단은 그 무엇으로도 설명이 불가했다.

하나 그건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했다.

20년짜리 내공 환단에 30년짜리 내공 환단.

거기에 한 번만 복용해도 일 갑자의 공력이 생기는 영약까지.

이건 신세계가 따로 없었다. 아니 설령 천국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황홀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세, 세상에.”

꿀꺽!

지수는 목구멍을 타고 침이 넘어갔다.

저것들 중 하나만 복용해도 그녀는 순식간에 절정의 고수로 올라설 수 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욕심이 생겨나지 않으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목석일 것이었다.

어디 내공 환단이나 영약뿐인가?

수많은 문파들의 무공비급이 만물상점에 아무렇지 않게 진열되어 있었다. 정파와 마도. 그리고 사파의 무공까지. 무림 종족의 능력을 얻은 사람이라면 꿈속에서조차 간절하게 바라던 것들이었다.

“대장님이 강했던 이유는 예전부터 이곳을 이용했기 때문이구나.”

지수는 동하를 대장이라고 불렀다.

연합 길드의 진정한 주인이 동하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요.”

누군가 그녀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예?”

지수가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풍만한 가슴에 환상적인 허리라인. 그리고 하늘에서 선녀가 하강한 듯 눈이 번쩍 떠질 만큼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무림 종족의 남궁혜라고 해요.”

“무, 무림 종족?”

“공자님께 이야기는 들었어요. 정지수 소저죠?”

“아!”

지수는 무협 영화에서나 들을 법한 말에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수가 바싹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도 대장님께 말씀을 들었어요. 저를 지도해 주실 분이시죠?”

“맞아요.”

남궁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동하는 남궁혜에게 만물상점을 부탁하기도 했지만, 신인류의 능력을 단숨에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옆에서 밀착 마크하며 세심하게 지도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무림 종족의 능력을 각성한 지수에겐 남궁혜가 제격이었던 것이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80명 모두 각자 각성한 능력에 따라 가장 적당한 이계 종족의 능력자들이 일대일 마크해서 지도해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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