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화 : 길드의 탄생-05 -->
“성공이다.”
동하에게 능력을 몽땅 흡수를 당한 로우피림과 하이피림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글쭈글하게 변해 있었다.
더 이상 잘려지고 부러진 팔과 다리가 회복되지 않았다.
불사지체는 물론이고 금속 액체 능력마저 완전히 놈들의 몸에서 사라진 것이다.
일종의 도박이 멋지게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죽은 건 아니었다.
놈들의 심장은 미약하지만, 여전히 뛰고 있었다.
동하에게 능력을 갈취당해 모든 힘을 잃었지만, 워낙 타고난 힘이 강한 탓에 겨우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로우피림과 하이피림은 눈빛에 생기를 잃고 잿빛으로 변했고, 죽은 듯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와는 반대로 동하의 몸속으로 엄청난 양의 기운이 밀려 들어왔다.
자고로 과유불급이라 했다. 넘치면 오히려 부족한 것만도 못하다는 말이다.
동하의 육체는 놈들의 기운을 주체하지 못하고 혈관이 툭툭 튀어나오고 온몸의 근육이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만에 하나 여기서 기존에 동하가 가진 능력들과 충돌이라도 생기면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었다.
하지만, 동하는 당황하지 않았다.
동하는 이미 이런 일을 몇 번 경험한 적이 있었다.
흡수가 가능하면 발출도 가능한 법.
로우피림과 하이피림의 능력을 밖으로 흘려보내면 주화입마의 위험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동하는 그보다 한 단계 더 멀리 내다보고 있었다.
음양조화선.
부족한 부분은 채워주고 넘치는 부분은 조절해서 세상의 기운을 조화롭게 맞춰주는 다섯 가지 원소 중에서 으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동하는 이내 음양조화선의 능력을 일으켜 원래 가진 능력과 이번에 새롭게 흡수한 능력들을 하나로 합치기 시작했다.
동하의 몸속에서 지진이 난 듯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로우피림과 하이피림에서 흡수한 능력들이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놈들의 몸에서 흡수한 능력의 양이 엄청난 수준이라 저항이 제법 만만하지 않지만, 음양조화선 역시 이미 한 번 괴음과 싸우면서 상당히 강해져 있었다.
띠링!
- 공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 마나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 불사지체가 1% 복구가 되어 91%가 되었습니다.
- 거인의 힘이 5% 복구가 되어 90%가 되었습니다.
- 염력이 80% 복구되었습니다.
- 닌자의 인술이 80% 복구되었습니다.
동하의 능력이 워낙 높은 탓인지 로우피림과 하이피림의 능력을 흡수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나마 염력과 닌자의 인술은 능력치가 약했던 탓에 대폭 상승한 것이 위안거리가 되었다.
‘역시.’
이제부터는 아이템을 흡수한다고 해서 능력이 높아지는 것엔 한계가 있었다.
동하는 예전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특별한 기연을 만나지 않고서는 공력처럼 12성에 올라서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동하는 그것을 다섯 가지 원소를 모두 모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들을 모두 얻으면 9성급 S몬의 능력도 모두 각성을 하고 자신이 가진 능력들이 100퍼센트 수치로 올라설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띠링!
- 투명화 능력이 생성되었습니다.
- 그림자 종족의 능력이 생성되었습니다.
“이, 이건 뭐지?”
동하는 처음 듣는 능력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는 시얀이 동하를 상대하기 위해 생각해낸 것으로 그야말로 궁극의 능력들이었다.
하지만, 로우피림과 하이피림은 6성급 몬스터.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어지간한 공격은 투명화 능력으로 통과시켜 버릴 수 있고, 그림자 종족의 능력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정상적이라면 그래야 한다.
한데, 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인 셈이었다.
그림자 종족은 사물의 그림자에 자신의 모습을 숨길 수 있는 건 물론이고 빛의 각도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몇 개로 나눌 수도 있었다. 또한 그림자가 있는 곳이라면 수백 수십 킬로미터 거리도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야행성이라 밤에는 무적 모드로 변하지만, 낮에는 한없이 약하다.
로우피림과 하이피림이 그림자 종족의 능력을 가지고도 전혀 사용하지 못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지구는 시차로 인해 어떤 곳은 밤이었고, 어떤 곳은 새벽이었지만, 대한민국은 대낮이었다. 그리고 이 시간에는 절대 그림자가 나올 수 없는 시간이었다.
투명화 능력도 그랬다.
원래 투명화 능력은 레이스 종족이라 불리는 언 데드 계열의 유령이었다.
그들은 일반 물리력으로는 절대 타격을 입힐 수 없고, 오직 판타지 계열의 마나에만 반응을 한다.
그래서였다.
동하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상극이라 할 수 있는 판타지 종족의 마법으로 공격했던 것이 주효했다. 고 서클 마법 공격 몇 번에 로우피림과 하이피림의 몸속에 있던 투명화 능력이 와장창 깨지고 사용불가 상태로 변했던 것이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9성급 S몬의 능력과 새로운 능력들의 각성.
전설을 넘어 새로운 신화의 탄생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 ☆ ☆
연구실은 충격에 휩싸였다.
1분 51초.
로우피림과 하이피림이 동하의 손에서 버텨낸 시간은 불과 2분도 되지 않았다.
시얀은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동하의 능력은 생각한 이상으로 강했고, 눈으로 보고서도 믿기지 않을 만큼 동하는 압도적이었다.
동하가 9성급 몬스터의 능력을 모두 각성하지 못했다고 좋아한 게 불과 2분 전의 일이었다.
시얀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이피림이 가세만 하면 당장 동하의 모든 능력들을 탈탈 털어 버릴 줄 알았건만 이게 웬걸?
오히려 탈탈 털려버린 건 바로 시얀 쪽이었다.
‘으으, 이런 미친…….’
시얀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동하가 10미터 넘는 크기로 변할 줄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고, 로우피림과 하이피림을 압도하는 속도와 힘으로 순식간에 제압해 버릴 줄은 더더욱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동하가 계속 그런 쪽으로 한 번도 능력을 사용하지 않아서 아직 각성하지 못한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동하가 금속 액체의 능력을 가공할 화기로 녹이지 않고도 간단하게 깨뜨려 버렸을 때에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능력의 흡수.
이게 이렇게까지 강한 능력이었던가?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이건 능력이라 할 수도 없었다.
시얀이 타누스 박사와 우주 멸망 프로젝트를 설계할 때는 크게 비중을 두지 않았고, 이렇게까지 강력하게 상대의 능력을 흡수할 수도 없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상대의 능력을 함부로 흡수하면 육체가 버티지 못하고 폭발하기 때문이었다.
복합 능력이 그래서 어려웠다.
최고의 문명을 가진 샤이언 종족도 복합 능력이란 난제를 쉽게 해결하지 못해서 계속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 아니던가?
결국 버그인 셈이었다.
하지만, 능력을 흡수하고도 어떻게 동하의 육체가 폭발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인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결국 버그 하나가 타누스 박사와 시얀이 만든 모든 능력을 집어삼킨 꼴이었다.
기가 막히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이, 이렇게 되면 기계 골렘의 금속 액체 능력도……?’
당시에는 능력의 흡수라는 생각은 감히 할 수도 없었다.
더구나 그때에는 동하가 기계 골렘의 능력을 흡수했다가 프로그램만 해킹한 뒤 다시 기계 골렘에게 능력을 흘려 보내주었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 이쯤 되면 최악의 상황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다.
만에 하나 금속 액체 능력이 동하에게 흘러 들어갔다면 상황이 여간 복잡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여기에 투명화 능력과 그림자 종족의 능력도 있었다. 이것들 모두 동하가 얻지 못했던 궁극의 능력들이었다.
‘젠장.’
시얀의 얼굴이 핼쑥하게 변했다.
동하의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시작한 일이 오히려 동하에게 새로운 능력들을 퍼주게 된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동하가 9성급 능력을 모두 각성하지 않았다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동하가 모든 능력을 각성하면 9성급 몬스터를 뛰어넘는 괴물이 탄생할 게 틀림없었다.
이렇게 되면 9성급 몬스터의 능력과 동하의 능력을 비교해서 연구를 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었다.
“당장 모든 로우피림과 하이피림을 철수시키게.”
“예? 갑자기 그게 무슨…….”
“자네들도 방금 보지 않았나? 놈이 능력을 흡수하는 모습을.”
이대로는 동하에게 좋을 일만 시켜주는 셈이었다.
아마 투명화 능력과 그림자 종족의 능력이 동하의 손에 넘어갔을 가능성이 컸다.
시얀은 이제 더 이상 베타테스트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 ☆ ☆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던 로우피림과 하이피림이 갑자기 증발해 버렸다.
그들이 나타난 지 불과 2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전 세계는 쑥대밭으로 변했다.
멀쩡한 곳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 며칠만 더 로우피림과 하이피림의 공격이 계속되었다면 인류는 망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전 세계의 공통적인 견해였다.
그동안 달콤한 꿈에 취해있던 인류는 경각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미국의 분위기는 더욱 심각했다.
이번 로우피림과 하이피림의 공격에 백악관과 펜타곤은 심각하게 부서진 상태였다.
펜타곤은 3분의 2가량이 날아갔고, 백악관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무너졌다.
멀쩡한 건물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대통령과 참모들은 백악관 내에 있는 지하 벙커로 몸을 숨겨 크게 다친 곳은 없었지만, 이마저도 로우피림과 하이피림의 공격이 몇 분만 더 지속이 되었다면 버티지 못하고 붕괴되었을지도 몰랐다.
사실 지하 벙커는 핵미사일의 공격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가 되어 있지만, 로우피림과 하이피림의 위력은 핵미사일의 위력을 몇 배 뛰어넘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인류는 지금 종말에 직면해 있습니다.”
지하 벙커 안이었다.
대통령을 시작으로 수많은 참모진들이 모인 가운데 국무장관이 회의를 주도하고 있었다.
여기에 마크 국장이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동하가 로우피림과 하이피림이 나타날 것을 예언한 것.
그리고 국무장관과 마크 국장이 놈들의 손에 가슴이 꿰뚫려 죽게 될 것을 예언하고 그것들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 동하가 준 티셔츠를 입고 간신히 살아난 것, 마지막으로 동하가 압도적인 능력으로 놈들을 죽인 것까지…….
국무장관의 말이 계속 이어질수록 벙커 안은 깊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대통령과 참모진들에겐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말이 어지간해야 선뜻 믿기라도 하지.
국무장관의 말은 하나같이 허황된 것뿐이었다.
이건 뭐, 오래된 신화나 전설에나 등장할 법한 소리들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국무장관의 말을 외면할 수 없었다.
마크 국장도 국무장관과 똑같은 일을 겪은 데다 그들은 동하에게 받은 강하 티셔츠를 가져와 대통령과 참모들 앞에서 직접 그 위력을 테스트했던 것이다.
탕탕!
평범해 보이는 티셔츠가 총알에도 뚫리지 않았다.
칼로 북북 그어 보아도 찢어지지 않았고, 몇 명이 잡아 당겼지만 조금도 늘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불을 붙였는데도 티셔츠는 그을음 하나 생기지 않았다.
“대, 대단하군.”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확실히 동하가 제작한 강화 티셔츠는 지금 신인류들이 사용하는 아이템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 티셔츠 한 장이 지하 벙커보다 더 단단하다면 누가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것은 모두 사실이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오래된 신화나 전설에 등장할 법한 동하의 미담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국무장관, 이번에 나타난 괴수가 끝이 아니라고 했소?”
“그렇습니다. 만약 이게 마지막이었다면 미스터 최가 인류의 멸망을 운운하거나 벙커를 만들지도 않았겠지요.”
“으음.”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로우피림과 하이피림은 신인류의 어떤 능력도 통하지 않을 만큼 극강의 능력을 지닌 괴수들이었다.
겨우 2시간 만에 놈들의 손에 전 세계가 쑥대밭으로 변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한데, 놈들보다 더 강한 괴수가 온다면 과연 인류에게 희망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대통령을 비롯해서 모든 참모진들이 고개를 흔들었다.
NEVER.
인류의 역사는 그날로 끝이었다.
“그래서 미스터 최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오?”
“무조건 미스터 최의 말에 따라주는 것입니다.”
“끙!”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21세기 최강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이 겨우 허수아비처럼 대한민국의 명령을 따른다는 게 우스운 일이었다.
하물며 지금 대한민국은 전 세계의 왕따를 당하고 있는 상황 아니던가?
하나 종말의 기로에 선 지금 남들의 시선이 중요할까?
하지만 이건 생존의 문제다. 그리고 동하가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다음 날 미국이 전격적으로 중대 발표를 했고, 그것을 시작으로 동하는 이계 종족과 지구의 신인류를 아우르는 연합 길드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