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화 : 길드의 탄생-02 -->
제인은 소름이 돋았다.
마크와 국무장관이 정말로 동하를 찾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의 행색을 보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바로 추론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저, 정말 괴수를 만난 모양이야.’
제인은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동하를 쳐다보았다.
한국 속담에 작두를 탔다는 말이 있다. 지금 동하가 딱 그 상황에 맞는 인물이었다.
세상에 이렇게까지 정확하게 사람의 운명을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이 있을 줄이야.
제인은 동하를 따라 벙커에 온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동하는 이미 예견하고 있던 일이기에 그리 놀라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마크와 국무장관은 자신을 배신하고 떠나간 사람들이었다. 여기서 그들을 외면하고 내쫓는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나 동하는 그들을 내치지 않고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사실 국무장관이 동하에게 화를 내고 자리를 박차고 떠났던 건 이런 상황을 좀 더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동하가 그렇게 몰아갔기 때문이었다.
“후후. 생각보다 일찍 오셨군요.”
“서, 설마 우리가 올 줄 알고 있었다고?”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두 분 모두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여서 다행이군요.”
“그, 그럴 리가…….”
마크와 국무장관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이쯤 되면 동하의 능력에 놀라움을 넘어 경외심이 들 지경이었다.
이게 과연 사람이란 말인가?
동하가 지금까지 했던 말들은 모두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오늘 안에 그들의 신상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것부터 그들이 가슴이 꿰뚫린 채 죽을 것이라는 것도 동하가 건네준 강하 티셔츠가 그들의 목숨을 살려줄 것이라는 것 모두 정확하게 일치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 일인데, 이젠 그들이 올 것을 정확히 예측했다니 머리카락오 곤두설 만큼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들이 제인을 쳐다보았다.
그 의도가 무언인지 모를 리 없는 제인이었다.
제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의 입에서 앓는 소리 같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으음.”
사실 그들이 로우피림의 손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첫 번째 기적은 바로 동하가 건네준 강화 티셔츠였다.
로우피림이 운전병을 죽일 때만 해도 검을 사용하지 않았었다.
로우피림은 5미터가 넘는 키를 이용해 운전병을 바닥에 떨어뜨려 죽였던 것이다.
하지만, 마크를 죽이려고 할 때는 검을 사용했다.
그것부터가 사실 믿기 힘든 일이었다.
결국 동하는 이런 상황이 일어날 줄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하나 더 놀라운 것은 마크의 몸에는 신인류들이 입는 조끼와 동하가 건네준 강화 티셔츠 두 개의 아이템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끼가 훨씬 더 안전하고 단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단단하게 느껴지던 조끼가 로우피림의 공격 한 번에 우지끈 찢겨져 나고 말았다.
그에 반해 동하가 건네준 강화 티셔츠는 몇 번이나 로우피림의 공격을 버텨냈다.
아마 동하가 건네준 강화 티셔츠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로우피림의 손에 열 번은 더 죽었을 것이었다.
그건 국무장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겁에 질린 상황에서도 티셔츠를 입어야 한다는 생각에 두툼한 겉옷 위로 껴입었다. 그의 모습이 코미디 프로에서나 나올 것처럼 우스꽝스럽게 변했지만, 목숨이 걸린 상황에 그런 건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두 번째 기적은 바로 군대와 신인류의 등장이었다.
로우피림은 자신의 검이 마크와 국무장관의 가슴을 꿰뚫지 못하자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록 자신의 신체인 팔을 검으로 바꾸어 만든 것이지만, 그 어떤 것보다 날카롭고 예리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로우피림은 공격 부위를 바꾸어 그들의 얼굴을 찌르려 했다.
바로 그때 군대와 신인류가 나타나 로우피림은 공격하고 시선을 돌렸던 것이다.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였다.
마크와 국무장관은 지옥에 한 발 걸쳤다가 극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하지만, 과연 이게 우연의 일치였을까?
동하는 분명 그들에게 강화 티셔츠를 건네주며 가슴만 보호하면 살 수 있다고 했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소름이 돋았다. 처음 한 번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연이 거듭되면 그건 결코 우연일 수 없었다.
“우리는 가까스로 탈출했지만…….”
마크와 국무장관의 몸이 살짝 부르르 떨렸다.
1개 소대와 10여 명의 신인류가 로우피림의 손에 1분도 버티지 못하고 전멸하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이다.
☆ ☆ ☆
그건 공포 그 자체였다.
로우피림에게는 그 어떤 강화 무기도 통하지 않았다.
또한 신인류를 고양이 쥐 다루듯 하며 죽이는 모습에 치가 떨렸다.
처음엔 당연히 군대와 신인류가 이길 거라고 생각했다.
괴수는 겨우 하나에 불과했고, 군대는 강화 무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더구나 신인류가 10여 명이나 더 있었으니 그 정도면 던전을 공략해도 충분한 전력이었다.
한데 이게 웬걸?
로우피림은 다시금 5미터의 거인으로 변해 군대와 신인류를 무차별적으로 죽여 나갔다.
상대가 되지 않았다. 마치 세 살 먹은 어린아이들이 어른을 향해 우르르 덤벼든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제야 마크와 국무장관은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로우피림은 지금까지 나타난 괴수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때 다시 동하의 말이 떠올랐다.
-인류는 멸망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제야 결코 동하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마크와 국무장관은 로우피림이야말로 인류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릴 마물이라 생각했다.
덜컥 겁이 나면서도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인류의 능력으로는 로우피림을 막아 낼 힘이 없었다. 그들이 죽으면 인류에게 종말이 다가왔다는 것을 말해줄 사람들 역시 사라지는 셈이었다.
퍼뜩.
그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군대와 신인류는 전멸한 상태였다.
그들은 뒤늦게 신인류들이 타고왔던 자동차를 타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로우피림은 다시금 마크로 모습을 바꾸고 가공할 속도로 그들의 뒤를 쫓아왔다. 액셀을 밟고 자동차의 속력을 10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려도 로우피림을 떨쳐내지 못했다. 오히려 로우피림은 가공할 속도로 내달리며 조금씩 그들을 따라잡고 있었다.
“으으.”
마크와 국무장관이 겁에 질려 치를 떨고 있을 때였다.
쇄애액!
로우피림이 장풍을 날려 자동차를 공격했다.
놈은 단순히 변신을 하고 신체의 일부를 무기로 만드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는 9성급 몬스터로 가기 위한 전초전이라 할 수 있었다.
당연히 로우피림의 몸속에는 수많은 능력들이 들어 있었다.
펑!
엄청난 굉음이 터졌다.
포탄에 맞은 것처럼 자동차의 뒷바퀴가 하늘높이 붕 솟구쳐 올랐다가 바닥에 쿵 떨어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중심을 이기지 못하고 자동차가 몇 번이나 뒤집혔다가 겨우 멈춰 설 수 있었다.
대형 사고였다.
갈비뼈가 부서지고 팔이 꺾여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마크와 국무장관은 머리가 찌르르 울리고 다리에 타박상을 입었을 뿐 몸에 별 다른 문제는 없었다.
이 역시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거의 모든 충격을 동하가 건네준 강화 티셔츠가 막아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나 더 이상 도망갈 길이 없었다. 이제는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이번에는 정말 동하의 예언이 틀렸다고 생각할 때였다.
“그때 반대편 차선에서 달려오든 차들이 우릴 피하려고 급브레이크를 밟았는데, 하필이면 모습을 마크로 변신한 괴수를 덮쳤다네.”
로우피림을 덮친 자동차 범퍼가 박살이 나고 도로 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마크와 국무장관은 그 틈을 이용해 자동차 밖을 빠져나와 미친 듯이 도망쳤던 것이다.
그들이 갈 곳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으로 돌아간다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마크와 국무장관은 동하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철석같이 믿을 판이었다.
☆ ☆ ☆
“흐음. 정말 괴수가 모습을 바꾸었단 말입니까?”
“그건 사실일세. 팔이 검으로도 변하고 레이저 건으로도 변하더군.”
레이저 건에 맞은 신인류의 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장면은 아직도 마크와 국무장관에겐 잊히지 않는 악몽과도 같은 기억이었다.
“미스터 최의 말이 맞았습니다.”
“우리가 어리석었소. 부디 우리를 용서하십시오.”
동하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그리고 아마 그 괴수는 9성급 몬스터를 위한 실험에 불과할 겁니다.”
“서, 설마 그렇게 가공할 능력을 가진 괴수보다 더 센 놈이 있다는 겁니까?”
“충분히요.”
동하는 마크와 국무장관의 말을 통해 몇 가지를 추론했다.
우선 팔이 변한다는 건 기계 종족의 능력을 갖췄다는 것.
그리고 장풍을 날리고 모습을 자유자재로 변신 할 수 있다는 건 이전 생애에서 거의 9성급 몬스터에 근접하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끝내 마크와 국무장관을 죽이지 못한 건 아직 로우피림의 능력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증거였다.
그래서였다.
동하는 로우피림이 9성급 몬스터를 만들기 위한 일종의 베타테스트라는 것을 직감했다.
지금까지는 이계 종족들을 상대로 베타테스트를 진행했지만, 동하 때문에 그것이 막히자 과감히 방향을 돌려 지구를 베타테스트 장소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으로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해진 셈이었다.
‘역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불길한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동하는 속으로 자신의 생각이 틀리기를 수없이 빌고 기도했지만, 결국 샤이언 종족은 9성급 몬스터를 완성 직전인 상태였다.
더구나 로우피림이 몇 성급 몬스터인지 알 수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이전 생애 9성급 몬스터에 근접한 괴물이 지금 6, 7성급 몬스터로 전락을 했다면 과연 이번 생애에서 9성급 몬스터는 얼마나 강할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젠장.’
그에 비해 동하는 아직 완벽하게 9성급 몬스터의 힘을 각성하지 못했다.
설령 완벽하게 힘을 각성한다 해도 힘에서 확연하게 밀릴 것 같았다. 적은 자신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데 동하는 적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전혀 없었다. 하물며 지금처럼 불완전한 상태라면 백이면 백 무조건 질 수밖에 없었다.
‘무조건 두 개의 원소를 찾는 데 초점을 맞춰야겠구나!’
동하가 원소를 하나씩 얻을 때마다 동하의 힘과 능력도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또한 몸속에 녹아 있던 능력들 사이에 시너지 효과가 생겨나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능력들까지 생겨났다.
다섯 개의 원소가 전부 모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동하도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곤륜노자는 다섯 개의 원소가 모두 모여야 이전 생에서 9성급 S몬의 능력을 모두 각성할 수 있다고 했었고, 그때는 동하도 그렇게 믿었었다.
하지만, 지금 동하의 생각은 조금 변했다.
9성급 S몬의 능력을 모두 각성하는 건 물론이고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동하는 그것을 10성급 몬스터라고 지칭했다.
원래 10성급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샤이언 종족이 만든 궁극의 괴수가 9성급 S몬이 마지막이기 때문이었다.
피조물이 조물주의 능력을 뛰어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나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동하는 지금 그 불가능한 영역을 뛰어넘으려 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전 생애에서 샤이언 종족이 9성급 S몬을 만들 때 다섯 개의 원소를 사용하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하긴 지금도 다섯 개의 원소 없이도 9성급 몬스터를 만들고 있지 않던가?
아무튼, 지금 상황에서는 동하가 믿을 수 있는 건 다섯 개의 원소를 모두 손에 넣고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능력을 얻는 것이었다.
‘불사 종족은 불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들의 공격 루트 중 하나가 입에서 불을 토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불사 종족은 생명의 씨앗이니 하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과는 전혀 관련이 없을 수도 있었다.
동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곤륜노자에게 부탁했다.
무림 종족에도 불과 관련된 신화와 전설이 많았지만, 음양조화선 말고 또 다른 원소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곤륜노자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현자 중 한 명이었다.
비록 무림 종족과 불사 종족 간에는 전혀 다른 문화의 벽으로 가로막혀 있지만, 곤륜노자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을 터였다.
남은 건 공기와 관련된 원소였다.
그리고 다섯 번째 원소인 공기가 가장 까다로웠다.
그 어떤 종족도 공기 없이는 살 수 없다.
그건 곧 공기야말로 모든 종족들과 관련이 있다는 뜻이었다.
원래는 지구에서 할 일을 모두 끝내면 알아볼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시간을 조금 앞당겨야 할 것 같았다.
동하가 국무장관을 쳐다보며 말했다.
“장관님. 아까 하던 이야기를 계속해 볼까요? 어떻게…… 이제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