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만물상점-153화 (153/167)

<-- 153화 : 길드의 탄생-01 -->

쿵쿵!

지축이 흔들렸다.

뒤집혀진 자동차의 창문 사이로 괴수의 발이 보였다.

하지만, 일반적인 괴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리가 두 개였고, 발가락도 다섯 개였다. 괴수라고 하기보다는 인간에 가까웠다.

“으으.”

마크와 국무장관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안전벨트를 풀려고 했다.

그들은 다행히 안전벨트를 하고 있어서 크게 다친 건 아니었지만, 문제는 놈이 자동차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딸깍!

그들이 겨우 안전벨트를 풀었지만, 바로 그때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자동차 문짝이 뜯겨져 나갔다.

“으아악!”

운전을 하던 병사가 비명을 지르며 자동차 밖으로 끌려 나갔다.

그는 안전벨트를 하고 있었지만, 의자까지 덩달아 딸려 나가고 말았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괴력이었다.

“마, 맙소사.”

마크와 국무장관은 경악했다.

그들은 드디어 괴수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놈은 얼굴에 눈이 세 개 달린 5미터짜리 거인이었다.

거인 종족 중 하나로 로우피림이란 일족이었다. 로우피림은 5미터 정도였고, 하이피림은 10미터에 달한다.

서로 장단점이 있어서 어떤 종족이 더 좋은지는 쉽게 구분하기 어려웠다. 하이피림은 엄청난 괴력을 지닌 반면 로우피림은 놀라운 청력과 시력을 지니고 있었다.

사실 괴수의 모습만 보면 마크와 국무장관이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자이언트 악어와 익룡 등 15미터가 넘는 초대형 괴수에 비하면 5미터의 로우피림은 그야말로 상 꼬맹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다.

하나 로우피림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세상에 등장한 적이 없던 스타일의 괴수였다.

당연히 마크와 국무장관은 다른 괴수에 비해 키가 작고 덩치가 작다고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세상에…… 미스터 최의 말이 맞았어.’

‘가, 가슴.’

마크와 국무장관은 소름이 돋았다.

하루 안에 자신들이 괴수의 손에 죽을 것이라고 했던 동하의 예언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어떻게 죽는지에 대한 생각도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가슴을 보호하려 했다.

다행히 마크는 동하가 건네준 강화 티셔츠를 입고 있었지만, 국무장관은 그렇지 못했다.

그제야 국무장관은 다급한 표정으로 한쪽에 떨어져 있는 강화 티셔츠를 주워들었다.

원래는 버리려던 것이었다. 마크가 가지고 왔을 때에는 쳐다보지 않았던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것만이 자신의 목숨을 살려줄 수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바로 그때였다.

또 다시 문짝이 뜯겨져 나가며 이번엔 마크가 자동차 밖으로 딸려 나갔다.

“으헉?”

그야말로 불가항력이었다.

로우피림이 그를 번쩍 들고 노려보고 있었다.

마크는 마치 고층 아파트 난간에 올라선 것처럼 눈앞이 아찔했다.

5미터의 높이감이 실로 무시무시했다. 바닥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이 상태에서 로우피림이 바닥에 떨어뜨리기만 해도 마크는 즉사를 면치 못할 터였다.

그건 단순히 가슴만 보호한다고 살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으으, 아……안 돼!”

마크가 겁에 질려 발버둥을 쳤다.

그러고 보니 로우피림의 손에는 검이나 칼이 없었다. 이번만큼은 동하의 예언이 틀린 것 같았다.

한데 그때 로우피림의 눈동자에 붉은 광채가 어른거리는 가 싶더니 이내 붉은 빛이 흘러 나와 마크의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공상과학 영화에서 나오는 레이저 광선 무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붉은 빛이 사라지고 이내 로우피림의 몸이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마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로우피림의 얼굴에 세 개의 눈만 빼면 자신의 모습과 완전히 판박이였다.

“이, 이럴 수가…….”

정신적인 공황 상태였다.

죽음이 눈앞에 직면한 상황임에도 마크는 괴수가 모습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제야 마크는 로우피림이 지금까지 겪었던 괴수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동하가 말했던 멸망의 징조일지도 몰랐다.

그랬다.

로우피림은 6성급 몬스터에 버금가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시얀은 9성급 몬스터를 만들기 전에 몇 가지 테스트를 해야 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낮은 등급의 몬스터를 제작해서 버그를 찾아내고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로우피림이 등장했다는 것은 9성급 몬스터의 제작에도 머지않았다는 뜻이었다.

드르르륵!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로우피림의 팔이 날카로운 검으로 변했다.

놈은 마크를 바닥에 패대기쳤다. 마크는 충격에 정신이 아찔했지만, 꿈틀 거리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로우피림이 마크의 뒤를 쫓아와 그의 가슴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 ☆ ☆

십여일 만의 귀환이었다.

평소였다면 아무렇지 않았을 일이었겠지만, 지금은 세상이 뒤숭숭한 시대였다.

벙커에는 그 흔한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한 대가 없었다.

동하가 시간에 쫓겨 벙커의 안전에만 초점을 맞추었을 뿐, 문화생활 쪽은 완전히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동하의 가족들은 세상과 거의 차단된 상태였다.

괴수들이 사라지고 던전이 만들어 진 것이며 신인류가 등장하고 길드가 만들어진 것까지.

가족들은 세상이 얼마나 급변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도, 동하야.”

김성혜 여사는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것처럼 동하를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동하는 괜히 미안한 마음에 머리를 긁적였다.

처음에는 미현이 대충 둘러대서 며칠 동안은 그럭저럭 버티긴 했지만, 그 이후부터는 미현도 더 이상 핑계를 댈 것이 없었다.

더구나 동하에게 연락조차 되지 않다 보니 미현 역시도 크게 걱정하던 참이었다.

“정부 차원에서 비밀리에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CNN의 협조가 있어야 하는 거라 연락할 틈이 없었어.”

“CNN?”

가족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마디로 미국 정부와 협력해야 하는 일이라는 뜻이지.”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비록 오늘부터 시작한 일이긴 했지만, 미국을 스카우트하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건 CNN의 협조가 있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동하가 자신의 옆에 서 있던 제인을 소개시켜 주었다.

“다들 제인 알지?”

“응? 응.”

모두의 시선이 제인에게 쏠렸다.

전에도 동하를 취재하기 위해 아파트에 온 적이 있어서 가족들 모두 제인이 CNN 기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빠, 제인은 왜 데리고 온 거야?”

“아직 일이 다 안 끝났어. 정리할 게 남아 있거든.”

“우, 우리가요?”

제인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동하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대한민국 정부와 비밀 프로젝트를 한 기억이 없었다. 더구나 그녀는 지금까지 벙커 주변만 감시했을 뿐, 기사다운 기사를 내보낸 적도 없었다.

“도, 동하 씨.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우리가 언제 비밀 프로젝트를…….”

-일단 맞장구 좀 쳐주지. 지금 밖으로 쫓겨나고 싶지 않으면 말이죠.

복화술이었다.

동하의 입술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의 목소리가 제인의 귓가에만 선명하게 들려왔다.

제인은 신기한 듯 멍하니 동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복화술을 알고 있을 리 없었다.

그녀는 볼수록 놀라울 따름이었다.

동하에겐 불가능한 일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헤헤. 내 정신 좀 봐. 동하 씨하고 며칠 밤을 새우며 고생을 했더니 정신이 하나도 없네. 내 이름도 제대로 기억이 안 나지 뭐야.”

제인은 자신이 생각해도 바보 같았다.

횡설수설 하는 건 기본이고 웃음소리도 영락없는 바보였다.

하나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동하의 성격에 밖으로 쫓아낼 것 같았다.

어떻게 해서 들어온 벙커인데.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만 해도 동하와 벙커에 들어올 때는 드디어 자신의 유혹이 통했다고만 생각했다. 아무리 고고한 척 해도 결국 동양인 남자는 어쩔 수 없는 법.

푸른색 눈동자에 금발의 쭉쭉 빵빵 미녀는 돌부처도 돌아보게 만드는 법이다.

하지만, 이게 웬걸?

동하는 처음부터 가족들을 안심시켜 주기 위해 그녀를 이용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끝내 미모가 통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속에서 분통이 터졌다.

하나 지금 주도권을 잡고 있는 쪽은 동하였다.

그녀는 잔뜩 약이 올랐지만, 벙커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꾹 참는 수밖에 없었다.

벙커의 위용은 실로 대단했다.

밖에서 보았을 때는 이렇게까지 넓을 줄은 몰랐었다.

엄청나게 넓은 실내와 단단한 철문을 보는 순간 그녀는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역시 그녀와 마크의 생각이 맞았다. 이곳은 노아의 방주와 같았다.

그리고 동하가 이곳을 가장 안전한 피난처로 생각하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여기에 있으면 결코 죽을 것 같지 않아.’

제인은 그녀의 가족에게도 생각이 미쳤다.

그녀의 가족들은 며칠 전에 한국에 들어와 호텔에 머물고 있었는데, 괜히 마크의 말을 따라서 가족들만 고생시키는 것이 아닌지 걱정했었는데 지금 처음으로 현명한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헤! 동하 씨 방은 어디에요? 구경할 수 있죠?”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생각보다 쉬웠다.

제인은 이제 자연스럽게 바보 같은 웃음과 행동이 흘러 나왔다.

그래도 그녀가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

가족들은 동하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정부의 비밀 프로젝트라는 말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 ☆ ☆

동하는 강태공이 된 기분으로 때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끼를 던졌으니 이제 낚는 일만 남은 셈이었다.

물고기 이야기가 아니었다.

마크와 국무장관은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동하는 자신의 방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가족들은 오랜만에 온 동하를 위해 밥을 하고 음식을 만든다고 정신이 없었다.

제인은 그런 떠들썩한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이런 것이 한국적인 정서라는 것을 1년 넘게 지내면서 겪었던 것이다.

벙커에는 몇 개월 먹을 식량이 갖춰져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환기 시설이나 식수 문제도 생각보다 훌륭해서 제인은 몇 번이나 놀라야 했다.

“근데, 동하 씨. 아까 한 말이 정말 진심인가요?”

“어떤 거 말입니까?”

“미국을 스카우트 하겠다는 거 말이에요. 아까 보니까 장관님이 단단히 화가 난 것 같던데 이대로 괜찮겠어요?”

미국으로 돌아가면 한미 관계가 지금보다 더 악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후후. 미국으로 돌아가지 못할 겁니다. 아마 조만간에 이곳으로 나를 찾아올 걸요?”

“서, 설마요.”

제인은 아까 완고하던 국무장관의 얼굴이 떠올랐다.

명색이 미국의 국무장관인데 그렇게 쉽게 마음이 변할 리 없었다.

더구나 그녀가 알고 있는 국무장관은 신념이 강해서 한번 결정한 사안은 중간에 번복하는 일이 없었다.

‘이번에는 아무래도 틀린 것 같아.’

제인은 동하가 만든 벙커의 안전성은 확실히 인정했다.

그 옛날 노아의 방주도 이렇게까지 안전하지는 못했을 것 같았다.

하나 과연 오늘 안에 국무장관의 안위에 문제가 생길 거라는 동하의 예언은 조금 믿기 어려웠다. 그것 때문에 겁에 질려 동하를 따라 나선 제인이었지만, 이제야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온 것이다.

하긴, 노스트라다무스라고 모든 예언이 다 맞는 건 아니지 않던가?

그녀의 생각에는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최악의 상황을 막는 게 먼저인 것 같았다.

하지만, 동하는 태연했다.

그는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대화도 나누었다.

심지어 차를 마시면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때에는 황당해서 말이 다 나오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동하는 엄청난 일을 저지른 사람으로 생각하기 어려웠다.

제인은 도저히 동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마음이 초조해서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정작 당사자는 평화로운데 왜 자신이 이렇게 초조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누군가 철문을 요란하게 두드리는 것이 아닌가?

동하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제인도 동하의 뒤를 따라 나섰다.

끼이익!

동하가 문을 열자 낭패한 모습을 한 사람이 두 명이 서 있었다.

그들 모두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었다.

신발은 벗겨지고 양말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외투는 반쯤 찢어져 있었고, 머리는 온통 산발이었다. 게다가 온몸이 흙먼지로 가득해서 이건 거지나 다름없었다.

“맙소사.”

제인은 그들의 모습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은 바로 마크와 국무장관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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