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화 : 군림-01 -->
마크와 국무장관은 동하의 행방을 좇고 있었다.
하루 종일 숨바꼭질의 연속이었다.
이건 뭐 홍길동도 아니고 동하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었다.
마크와 국무장관은 동하의 뒤를 쫓다가 지쳐서 나가떨어질 판이었다.
그들은 처음 인천 근방에서 동하의 핸드폰에 전원이 켜졌다는 보고를 접했을 때만 해도 금방 동하를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다.
한데, 이게 웬걸?
그들이 보고를 받은 지점에 갔을 때는 황당하게도 동하의 핸드폰 위치가 서울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 서울이라고?”
“그렇습니다, 장관님.”
“이보게, 대위. 이게 가능한 일인가?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인천에서 서울까지 갈 수 있단 말이야.”
“그, 그게 저희도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미군의 도청과 감청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그들은 마음만 먹는다면 청와대의 전화를 도청하고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죄다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이 지금 작정하고 동하의 위치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이는 부처님 손바닥 안에 오른 손오공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동하는 그들의 눈에서 벗어날 수 없어야 정상이었다.
“그래서 현재 위치는 어디인가?”
“그게…… 청와대로 나옵니다. 아무래도 대통령을 만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때가 바로 동하가 얼음 던전에 들어가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이번엔 확실한 거겠지?”
“틀림없습니다, 장관님. 용산기지에서도 확인한 일입니다.”
“좋아.”
마크와 국무장관은 최대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헬기를 타고 여의도로 날아갔다.
한국에 주둔한 주한미군 부대 전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동하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었다.
때문에 마크와 국무장관이 여의도에 도착했을 때는 용산기지에서 나온 통신여단 소속의 소령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스터 최는 아직도 청와대에 있겠지?”
“그, 그게……. 지금 수원에 있습니다.”
“뭐, 뭐라고?”
마크와 국무장관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해야 했다.
“정확한 위치는 얼음 던전입니다.”
“자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건가? 미스터 최가 청와대에 있다는 말을 듣고 여기까지 날아온 게 20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단 말일세.”
“저희도 기계가 잘못된 것 같아서 몇 번이나 체크를 했지만…….”
소령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아도 그 다음에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마크와 국무장관은 어이가 없었다.
인천에서 여의도까지 거리와 여의도에서 수원까지 거리는 대충 비슷한 편이었다.
외곽 순환고속도로를 타고 미친 듯이 속력을 밟았다고 해도 헬기를 타고 날아온 마크와 국무장관보다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없었다.
“도, 도대체 이건…….”
인천에 있던 동하가 갑자기 청와대에 있다고 했을 때부터 뭔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긴 했었지만, 그때는 그냥 실수인 줄만 알았었다.
하지만, 이쯤 되면 결코 실수라고 치부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마크 국장.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저와 제인이 미스터 최의 집 앞에서 한 달 남짓 잠복근무를 하며 감시를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지요.”
그건 이미 국무장관도 알고 있는 일이라 그리 특별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장관님도 미스터 최가 일본을 출시 국가 명단에서 제외하던 기자회견을 기억하고 계시겠죠?”
“그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날 국무장관도 참석을 했었고, 현장의 분위기가 어땠었는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일본 관계자들은 좌절과 절망을 그리고 다른 나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자회견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었다.
“저와 제인은 그 전날부터 계속 감시를 하고 있었는데, 미스터 최는 청와대에 있더군요.”
“으음.”
“그것뿐이 아닙니다. 사실은…….”
마크 국장은 가급적이면 벙커와 관련된 말은 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와 제인은 동하에게 부탁을 해서 자신들의 가족들이 벙커 안에 들어가 살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할 생각이었다.
이건 국무장관도 처음 듣는 소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하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서 그냥 마크 국장의 말을 듣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분명 미스터 최는 이런 일이 일어날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군.”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마크와 제인은 계속 동하를 감시하고 있었지만, 동하는 한 번도 벙커 근처에 간 적이 없었다. 지금은 던전이 생기는 대신 괴수들이 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괴수들이 극성을 부리고 사람들이 겁에 질려 지하실이나 밀실에 숨어서 살고 있을 때였다.
그 말은 그 누구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한데, 누가 있어서 벙커를 완성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동하가 노스트라다무스처럼 미래를 예측하고 오래전부터 벙커를 지었다고 해도 분위기를 보면 최근에 마무리 작업을 끝낸 게 틀림없었다.
“분명 미스터 최가 마무리 작업을 한 것 같습니다.”
“제인과 마크 국장이 계속 잠복근무를 했는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어떻게 계속 미스터 최가 출입하는 것을 못 볼 수가 있소?”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왠지 지금 이 사태와 관련이 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요.”
“흐음.”
듣고 보니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능력을 각성한 신인류가 나타나고 있는 때였다.
그리고 그건 동하가 시간을 멈추는 능력을 갖고 있든가 아니면 공간을 이동해서 순식간에 이동한다고 해서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는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동하는 다른 능력자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역시 신인류의 시초는 무서운 것 같군.”
대개 신인류는 하나의 능력만 갖고 있는데 반해 동하는 지금까지 드러난 능력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것만으로도 동하를 미국으로 스카우트 할 충분한 이유였다.
“일단 수원에 가서 미스터 최를 만나보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얼음 던전에 갔다고 하니까 이번에는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번에도 허탕을 치고 말았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동하는 지수를 비롯해서 몇 명의 대원들을 포섭하고 만물상점으로 떠난 직후였다.
“으으.”
이젠 약이 오르다 못해 분통이 터져 나올 지경이었다.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몰랐다. 무슨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들은 하루 종일 개 고생한 것이 아까워서라도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만나고 말테다.”
그들은 전의를 불태웠다. 시간을 멈추는 능력이든 공간을 이동하는 능력이든 대한민국 땅덩어리가 그리 넓지 않으니 뛰어봐야 벼룩이라 생각했다.
“이보게 보좌관.”
“예, 장관님.”
“미스터 최의 현재 위치는?”
“그, 그게…….”
보좌관이 눈치를 살피며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방금 오산기지에서 연락 온 바에 따르면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마크와 국무장관은 괜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거 설마 제주도에 있다고 하는 거 아닌지 겁부터 들었다.
“이미 각오하고 있으니까 망설이지 말고 말해보게. 혹시 제주도에 있다던가?”
“그러면 차라리 좋겠는데……. 대한민국 내에서는 핸드폰의 위치를 찾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뭐, 뭐라고?”
“그 짧은 시간에 대한민국을 벗어났을 리는 없을 것 같다며 오산기지에서는 아무래도 미스터 최가 전화를 꺼놓은 것 같다고 합니다.”
“저, 전화기를 꺼놔?”
마크와 국무장관은 발작하기 일보직전이었다.
사람이 이러다 미칠 수도 있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이거 정말 똥개 훈련이라도 시키는 걸까?
모든 주한 미군기지에서 눈에 불을 켜고 동하의 행방을 찾았지만, 이미 차원이 다른 만물상점에 가 있는 동하를 찾아낼 리 없었다.
마크와 국무장관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었다.
그야말로 예측 불허의 행보였다.
동하는 열흘 만에 나타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얼음 던전에 가서 동료만 만들고 또 다시 종적을 감춘 것이다.
“이게 뭐지?”
망해가는 대한민국을 살려내려는 발악인가?
지금 세계는 얼마나 많은 능력자를 보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국력이 좌우되고 있었다.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왕따를 당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선택은 최대한 신인류를 많이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동하가 대통령을 만나고 얼음 던전에 온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 대목이었다.
하나 얼음 던전을 끝으로 사라져버린 동하의 행방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신인류를 많이 확보하려면 지금부터 계속 다른 던전을 돌아야 정상이었다.
더구나 대한민국 정부에서 길드장인 차경철의 죽음을 방조하고 몇 명의 신인류를 구속하기까지 했다. 이건 아무리 봐도 신인류를 많이 확보하기 위한 모습이 아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다니는 거야, 지금?”
왠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특히 마크는 한 달 남짓 동하를 감시해왔기 때문에 사소해 보이는 동하의 움직임에도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완패였다.
주한 미군의 정보력을 모두 가동해서 추격을 했는데도 그들은 동하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그들이 아니었다.
여러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들은 더욱 집념을 가지고 달려들었다.
주한 미군기지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동하의 핸드폰 신호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그리고 다음 날 10시 무렵. 부평기지에서 마침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떴다.”
“드디어 핸드폰 신호가 잡혔다.”
“벙커 근처야. 빨리 국무장관님께 보고해.”
☆ ☆ ☆
거리에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졌다.
12월 16일.
크리스마스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구세군의 냄비도 보이지 않았고 대형 트리도 없었지만, 인류에겐 그 어느 때보다 더 특별한 크리스마스였다.
괴수들의 침공으로 멸망 직전까지 갔다가 기적적으로 얻은 평화였다.
거리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픔과 살아 있다는 행복이 공존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데이트를 즐기며 어린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거리를 걷는 엄마 아빠의 모습은 이제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소소한 일상이었다.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상처와 아픔을 극복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인류의 평화 뒤에 누군가 한 사람의 힘이 작용해서 겨우 지켜지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노아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방주를 만든다.
비가 온 지면을 덮는 그날에도 사람들은 시집을 가고 장가를 가며 일상을 즐겼다.
세상의 멸망을 알고 있던 사람은 오직 노아 한 명뿐이었다.
지금 동하가 바로 노아 같은 존재였다.
인류의 멸망이 눈앞에 직면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동하 한사람뿐이었다.
거리에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려오고 사람들이 소소한 일상을 즐기고 있지만, 이것이야 말로 폭풍전야나 다름없었다.
동하의 어깨에 인류의 운명이 걸려 있었다.
동하는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샤이언 종족과 인류 최후의 전투가 머지않았다는 것을…….
철저히 대비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운명도 그날로 끝장이 날 것이었다. 아마 그 날에도 사람들은 데이트를 즐기며 일상을 보내겠지.
그런 면에서 노아와 동하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완전히 달랐다.
노아는 가족들만 방주에 태웠다면 동하는 이제 자신의 가족들뿐만 아니라 인류를 지켜내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과 가족들을 살리는 길이기도 했다.
모든 인간이 죽고 가족들만 살아남는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동하가 처음 회귀했을 때만 해도 감히 꿈도 꿀 수 없던 일이었지만, 지금은 충분히 해 볼 만 한 일이었다. 이제 동하에겐 그럴 만한 힘이 있었고, 조금씩 세력도 만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아직 턱없이 부족했다.
그에겐 아직 찾지 못한 두 개의 원소도 있거니와 인류의 각성자들의 능력이 거의 바닥이라 할 정도로 약하기 때문이었다.
츠츠츠츠.
동하는 벙커가 있는 곳에서 제법 떨어진 곳으로 차원이동해서 람보르기니를 끌고 벙커로 이동했다.
다소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지만, 마크와 제인이 아직까지 주변에 매복해 있을 것 같아서 취한 조치였다.
“응?”
동하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의 차가 벙커 한쪽에 만들어둔 주차장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제인과 마크 그리고 국무장관까지 한꺼번에 튀어나와 그의 차를 가로막았던 것이다.
“드, 드디어 만났다.”
마크와 국무장관은 감격에 겨운 나머지 눈물이 앞을 가릴 지경이었다.
그들은 어제부터 벙커 앞에서 노숙을 하며 동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크와 국무장관이 동하의 뒤를 쫓고 있던 그 때에도 제인은 벙커 주변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동하의 신호를 찾아냈다는 부평기지의 연락에도 요지부동이었다.
하긴, 어제도 그러다 번번이 허탕만 치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동하를 놓칠 것 같아서 핸드폰 신호를 쫓지 않고 벙커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게 적중했던 것이다.
“아니, 다들 무슨 일입니까?”
“미스터 최, 이거 하나는 분명히 알아두십시오.”
“우린 그 뭐냐? 삼초고려? 아니, 삼고초려인가? 아무튼, 유비가 제갈량을 만나기 위해 했던 것보다 더 고생을 했단 것을 말이오.”
그러고 보니 다들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