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만물상점-145화 (145/167)

<-- 145화: 어벤저스 프로젝트-04 -->

‘혹시 내 정체를 알아본 건가?’

설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인피면구는 그 어떤 능력자라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교했다.

설명서에도 원하는 인물로 완벽하게 변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고, 성공할 확률은 99.9퍼센트였다. 실패할 확률은 고작 0.1퍼센트. 그건 곧 성공할 확률이 100퍼센트라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목소리는 물론이고 체형도 비슷하게 맞춰주는 기능도 있어서 기적의 변장 도구와도 같았다. 하긴, 만물상점에서 만든 아이템에 부족한 점이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동하의 능력이 워낙 대단하다 보니 가짜 퉁크는 쉽게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최악의 상황도 염두에 두어야만 했다. 그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 미소를 지으면서도 속으로는 선제공격을 가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무슨 일입니까?”

동하는 그를 보고 피식 웃었다.

“후후.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 유명한 수리공이라고 하더니 오히려 전투에 더 일가견이 있는 것 같군요.”

“그게 무슨 소린가?”

“그대의 두 팔이 묘하게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그 위치가 나를 향하고 있군요.”

가짜 퉁크는 흠칫 놀랐다. 그가 지금 취하고 있는 자세는 속공을 펼치기 위한 일종의 기수식이었다. 하지만, 기수식이라고 하기에는 평범한 동작이라 누구도 기수식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한데, 동하는 단지 자세만 보고도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정확하게 알아맞힌 것이다. 생각보다 더 무서운 자였다.

‘놈이 인피면구를 알아봤다.’

이쯤 되면 더 이상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드르륵!

가짜 퉁크의 팔에서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던 참이라 그의 행동은 빨라도 너무 빨랐다.

그의 두 팔이 화염 계열의 총으로 변했다. 한쪽 팔은 불이 나오는 화염방사기였고, 다른 한쪽 팔은 초고온의 열 폭탄 발사기였다.

액체 종족의 유일한 약점이 바로 뜨거운 열이었다.

가짜 퉁크는 만물상점의 아이템들 중에서 열과 관련된 것을 장착해 자신의 능력을 대폭 업그레이드 했다. 하지만, 어지간한 열기로는 통하지 않을 것 같아서 화염방사기와 열 폭탄 발사기를 동시에 사용했다.

“네놈은 끝났다.”

가짜 퉁크가 동하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촤아아아!

펑!

통제 센터의 온도가 가마솥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화염방사기만 해도 200미터 안에 있는 것은 바위나 나무 그리고 단단한 철판조차 순식간에 태워버릴 만큼 가공할 열기를 지니고 있었다. 더구나 열 폭탄 발사기는 주변의 에너지를 끌어모았다가 폭발을 일으키는 것이라 그 위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이 두 개의 열기가 그대로 동하를 직격했다.

쾅!

동하의 몸이 뜨거운 불길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크흐흐.”

가짜 퉁크가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기습 공격은 성공이었다. 제아무리 액체 능력이 무적이라 해도 이 정도의 열기를 만나면 녹아버릴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계속 방아쇠를 당겨 열기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짜 퉁크의 입가에 떠올랐던 미소가 조금씩 사라지며 두 눈이 크게 치떠지는 것이 아닌가?

그도 그럴 것이 동하의 몸을 뒤덮고 있던 열기가 천천히 밀려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동하의 모습이 가짜 퉁크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동하는 머리카락 하나. 옷자락 하나 상한 곳이 없었다. 하물며 불에 데거나 그슬린 흔적이 있을 리 없었다.

씨익!

동하가 그를 향해 웃었다.

“후후. 나름 준비를 했군. 불을 이용해 공격해올 줄은 몰랐어.”

아마 몇 시간 전이었다면 동하도 이렇게 쉽게 가짜 퉁크의 공격을 막아내진 못했을 것이었다.

그만큼 화염방사기와 열 폭탄 발사기의 열기는 가공 그 자체였다.

동하도 순간적으로 액체 능력이 파괴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가공할 열기가 액체 능력의 상극이라면 불은 물과 상극이었다. 그리고 동하의 수중에는 심해의 구슬이 있었다.

가짜 퉁크가 벼락같이 기습 공격을 펼쳤지만, 동하 역시 이미 만반의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그가 방아쇠를 당길 때, 동하는 그보다 한발 빠르게 심해의 구슬을 이용해 통제 센터에 있던 물을 끌어왔다. 아까 켄지가 심해의 구슬을 실험하기 위해 컵에 담아 두었던 물이 여전히 통제 센터 한쪽에 있었던 것이다.

물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동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동하는 자신의 몸에 실드를 걸었고, 그 위에 물로 둘러서 또 하나의 방벽을 만들었다. 가짜 퉁크도 뒤늦게 동하의 몸 위로 물방울이 결계를 두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대경실색했다. 그는 벌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이제 죽을 각오는 되었느냐?”

“으으, 하나만 묻자. 내 정체를 어떻게 그리 쉽게 알았느냐?”

“시력이 조금 더 좋다고 하지. 인피면구가 제법 정교하다 하나 내 눈을 속이지는 못하거든.”

“그, 그렇군.”

가짜 퉁크는 이를 악물었다.

샤이언 종족 내에서는 열 손 가락 안에 드는 무서운 강자였지만, 지금은 맹수 앞에 선 피식자처럼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그의 팔과 다리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두려움을 떨쳐 버리기라도 하듯 두 팔을 변형시켜 동하를 공격하려 했다. 그의 움직임은 군더더기가 없고 무척이나 빨랐다.

하나 동하의 눈에는 슬로비디오를 보듯 느리게 보였다.

동하는 염력을 이용해 가짜 퉁크를 천장까지 들어 올렸다가 강하게 바닥에 패대기쳤다.

가짜 퉁크는 힘없는 짚단 마냥 속절없이 동하의 염력에 끌려 다녔다. 온몸에 힘을 주고 대항해 보았지만, 그야말로 불가항력이었다.

쿵!

“크윽!”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가짜 퉁크의 몸이 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머리가 깨지고 피가 흘러 내렸다. 그나마 그는 거인의 힘을 가진 복합 능력자라 중상을 당하진 않았다.

하지만, 가짜 퉁크의 집념도 대단한 것이었다.

그는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서도 재빨리 두 팔에 변형을 가했다.

드르륵!

이번엔 레이저 건이었다.

무엇이든 자르고 가를 수 있다는 무림 종족의 명검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레이저였다. 레이저 건 앞에 천하에 자르지 못하는 것은 없었다. 하나 한 번 쏘고 나면 1초 정도 쿨타임이 생긴다는 단점이 있었다.

지금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레이저 건 밖에 없었다.

액체 능력을 소유한 동하를 가르고 자른다 해도 죽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통제 센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잠깐의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 터였다.

‘으으, 어디서 저런 괴물이 튀어 나왔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기가 막힐 일이었다.

샤이언 종족 내에서 10위 안에 드는 강자인 그조차 어린 아이 다루듯 하는 동하의 능력에 소름이 돋았다.

하나 이번에도 동하가 한 발 빨랐다.

그는 밀종의 대수인을 펼쳐 자신의 주먹을 수십 배 증폭시켰다.

쾅!

“으아악!”

가짜 퉁크가 피를 뿌리며 뒤로 튕겨져 나갔다.

단단하기 그지없던 레이저 건이 찌그러졌고, 가짜 퉁크의 얼굴은 처참하게 뭉개져 있었다. 기식은 엄엄했지만, 여전히 가짜 퉁크는 살아 있었다. 거인의 힘이 그나마 그의 목숨을 지켜주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동하가 아니었다.

동하는 이번엔 격공섭물의 절기로 가짜 퉁크의 몸을 끌어당겼다. 가짜 퉁크는 발버둥을 치며 버텼지만, 어느새 동하의 손아귀에 목덜미가 쥐어진 뒤였다.

“컥!”

☆ ☆ ☆

그건 충격을 넘어 공포에 가까웠다.

세상에 저렇게 강한 자가 있단 말인가?

그것도 차원의 관리자가 아니라 테스터 중 한 명이라는 게 더 충격적인 일이었다.

테이커는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기계 종족의 전사로 원로 중 한 명이었다. 방금 가짜 퉁크의 두 팔은 A급 아이템이 장착된 것이 틀림없었다. 두 팔이 다른 무기로 변할 때 약간의 텀도 생기지 않고 눈 깜짝할 사이에 변신했다.

당연히 화력과 위력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이 정도면 분명 차원의 관리자들 중에서도 상급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한데도 가짜 퉁크는 맥 한번 써보지 못하고 동하의 손에 일방적으로 당하다 끝난 것이다.

동하가 사용한 능력만 해도 그랬다. 가짜 퉁크를 상대하는 데 몇 개의 능력을 사용했는지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적어도 세 개 이상이다.’

차원의 관리자들도 복합 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두 개 이상 능력을 가진 자는 없었다.

결국 동하는 그들보다 훨씬 우월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동하의 소문은 귀가 따갑게 들어왔다.

그때마다 소문이 너무 과장되어서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오히려 소문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네의 말처럼 정말 괴물이로군.”

“그렇다면 이제 마음을 정했나?”

“흐음.”

테이커는 잠시 침묵했다.

속으로 갈등하고 있는 중이었다.

샤이언 종족의 힘이 약화된 지금 모든 테스터들이 단합을 하면 지금보다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을 것이었다.

하나 모든 사람의 마음이 다 같을 수 없었다.

행성을 재건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노예로 전락한 가족들 걱정까지. 테스터들은 무작정 샤이언 종족에 맞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였다.

켄지는 테이커를 찾아가 동하를 도와달라는 뜻을 전했지만, 테이커는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원래 켄지가 늦게 온 건 테이커를 설득하지 못해서였다. 하지만, 그걸 액면 그대로 동하에게 말할 수 없어서 돌려 말했던 것이었다.

테이커는 매사에 신중한 성격이었다.

샤이언 종족이 만물상점을 빼앗기고 예전의 막강했던 모습을 잃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잘못된 선택 하나로 기계 종족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내몰 수도 있기에 쉽게 켄지의 부탁에 응해줄 수 없었다.

하긴, 그럴 법도 하다.

선뜻 동하를 도와 샤이언 종족에 대항했다가 전투에서 지기라도 하는 날엔 테스터들에겐 엄청난 재앙이 도래할 것이 뻔했다. 동하의 소문만 무성했지 실제 만나본 적이 없어서 더더욱 갈등이 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말게.”

테이커가 가짜 퉁크의 정체를 알면서도 동하를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데려온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가짜 퉁크가 먼저 동하를 돕겠다고 나서자 테이커는 걱정이 되어 따라나섰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동하를 돕겠다는 생각까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짜 퉁크의 행동을 막으려는 생각이 더 컸다.

테이커는 가짜 퉁크의 정체에 다른 누구보다 놀랐다. 가짜 퉁크의 말투나 체형이 비슷해서 감쪽같이 속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만, 상황이 애매하게 흐르고 있었다.

“나는 자네를 믿네. 하지만, 동하 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네. 어쩌면 자네와 가짜 퉁크를 한통속이라 생각할지도 모르지.”

켄지는 강하게 밀고나갔다.

비록 테이커와 우정을 나누고 있는 사이이긴 하지만, 이견이 갈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굳이 선택을 하라면 켄지는 우정보다 동하에 대한 충성이었고, 샤이언 종족과의 항전이었다.

테이커는 기계 종족의 원로였다. 당연히 그의 입김이 기계 종족 내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 이보게. 하……한통속이라니. 나도 정말 모르는 일이었네.”

“자네가 아무리 결백을 주장해도 결국 상황이 이렇게 되었네. 한데, 끝까지 동하 님을 돕지 못하겠다면 우리는 자네를 의심할 수밖에 없네.”

“자, 자네 지금 나를 협박하는 건가?”

“자네는 이게 협박처럼 들리나? 오히려 자네와 기계 종족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네.”

켄지는 볼 때마다 놀라곤 하지만, 동하의 능력은 이미 모든 걸 초월한 상태였다.

한 개 행성과 종족이 전부 달려들어도 결코 동하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기계 종족의 전투력은 상당한 편이었다.

수많은 종족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이 전부 달려든다 해도 과연 동하를 당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건 테이커도 같은 생각이었다.

동하와 일전을 치르려면 종족의 운명을 걸어야할 판이었다.

내심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기계 종족은 전투력 면에서도 과학 문명과 기술적인 면에서도 우주에 산재한 그 어떤 종족보다 우수했다.

한데, 지금 기계 종족은 동하 한 명의 손에 멸망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현실에 놓여 있었다.

“으음.”

결국 동하를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샤이언 종족을 선택할 것인지 둘 중 하나를 무조건 정해야만 했다.

“자네도 정말 잔인하군.”

“미안하네. 결코 자네에게 유감이 있어서 이러는 건 아닐세.”

“휴우, 어찌 자네의 마음을 모르겠나?”

테이커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샤이언 종족이 문제가 아니었다. 동하를 돕지 않겠다고 하면 지금 당장 기계 종족의 운명이 끝장날 판이었다.

“자네 뜻대로 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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