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화 : 어벤저스 프로젝트-01 -->
지수는 최후를 직감했다.
그녀는 차경철 등이 빠져 나가면서 장군처럼 생긴 놈에게 단신으로 달려든 꼴이었다.
그녀는 차경철의 배신에 치를 떨었다.
이대로 죽으면 억울해서 도저히 눈을 감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도저히 살아남을 방법이 없었다.
지수의 검이 장군처럼 생긴 놈의 어깨를 내려치고 있었지만, 놈은 지수의 검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방망이를 휘둘러 지수의 머리를 짓이겨 버리려 했다.
일종의 후발선제의 묘기와도 같았다.
먼저 공격한 쪽은 지수였지만, 장군처럼 생긴 놈은 그녀의 검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의 검이 놈의 몸을 먼저 찌른다 해도 별로 타격을 주지 못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뒤늦게 휘두른 놈의 방망이가 더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끝났어.’
피하는 건 너무 늦은 상태였다.
지수는 정파의 무공을 각성한 능력자였지만, 그 성취는 이제 겨우 30년 정도 체득한 수준에 불과했다.
허공에서 몸을 뒤집어 방향을 바꾼다든지, 휘두르던 검을 중간에 회수할 수 있는 절정의 수법은 펼칠 수 없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지수의 검이 난데없이 두 배 세 배 커지는 것이 아닌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수의 검은 일곱 배 이상 커져서 3미터에 달하는 놈의 몸까지 뒤덮을 지경이었다.
쐐애애애액!
지수의 검에서 엄청난 파공성이 흘러나왔다.
놀라기는 장군처럼 생긴 놈 역시 마찬가지였다.
놈은 가공할 살기를 느끼고 피하려고 했지만, 그때는 이미 지수의 검이 놈의 몸을 찌르고 난 뒤였다.
“크아아악!”
놈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흘러 나왔다.
거대하게 변한 지수의 검이 놈의 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두 갈래로 가르며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일검양단.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
단순히 검만 일곱 배 이상 커진 것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지수의 공력도 두 배 이상 증폭이 되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위력을 쏟아낼 수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지수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자신이 검을 휘두르고도 자신이 한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살아 있는 것도 믿기지 않았지만, 자신의 손으로 장군처럼 생긴 놈을 도륙했다는 건 무엇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았다.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일까?
지수는 자신의 볼을 꼬집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느새 그녀의 검은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고 온몸에 두 배 이상 증폭되어 넘쳐나던 힘도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녀의 발 앞에는 놈의 시신이 두 갈래로 잘려진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아!”
“끄응!”
딜러들은 다리에 힘이 풀린 나머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믿기지 않는 건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료들의 배신에 꼼짝없이 죽는 줄만 알았는데, 지옥에 갔다 온 기분이 이럴 것 같았다.
“부 마스터, 대단한 능력이었습니다.”
“한데, 방금 그건 뭐죠? 원래 검법 계열을 각성한 거 아니었습니까?”
“나, 나도 몰라요.”
“예?”
“나도 모르게 검이 커지고 힘이 증폭이 된 것이라…….”
지수는 말을 하다 말고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무심코 증폭이란 단어를 내뱉었다가 지수의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던 것이다.
“서, 설마?”
지수가 경악한 표정으로 동하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처음부터 동하에게 전혀 기대하지 않았었다.
애초부터 정부에서 청탁을 해서 들어온 터라 속에서 불신감만 들었던 지수였다.
하지만, 일곱 배 이상 커진 검과 두 배 이상 증폭된 공력.
이것이야 말로 동하가 말한 증폭 계열의 능력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이봐요.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지수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증폭 계열이 있다는 말도 금시초문이었지만, 능력자의 힘을 이렇게까지 증폭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이때만 해도 능력자가 나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등급이 세분화 되진 않았지만, 동하는 충분히 A급이나 S급을 받고도 남을 것 같았다.
“아까 부 마스터가 쿨 타임 같은 건 절대 신경 쓰지 말고 모든 능력을 다 쏟아내야 한다면서요?”
“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요?”
지수는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동하의 증폭 계열이 이렇게 무지막지한 능력인 줄 알았다면 적당히 도와줘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그전에 사전에 미리 귀띔이라도 해주었다면 놀라고 당황하는 일은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동하와 입씨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직 근딜 계열의 능력자들은 두 개의 얼음 병정의 공격을 힘겹게 막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지수가 다급한 목소리로 동하에게 소리쳤다.
“이봐요, 다시 한 번 내 힘을 증폭시켜 줘요.”
지수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금방이라도 근딜 사이에 뛰어들 태세였다.
하나 동하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딜러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볼 차례였다.
지수를 도와 근딜 사이에 뛰어들 수도 있지만, 차경철처럼 도망칠 수도 있었다.
“유감이네요. 나는 한 번 힘을 쓰고 나면 텀이 약간 길어요.”
“끙!”
지수는 한숨을 쉬며 딜러들을 쳐다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들에게 도와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차경철도 동료들을 버리고 도망친 마당에 그들에게 강요할 순 없었다.
지수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근딜 사이로 뛰어들었다.
“조금만 더 버텨요.”
대단한 의기였다.
딜러들은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갈등했다.
하지만, 고민은 잠시였다. 차경철의 배신행위에 치를 떨었던 그들이었다.
그 짧은 사이에 차경철과 원딜을 얼마나 욕을 하며 저주를 했던가?
한데, 이제 입장이 바뀌었다고 그들이 동료를 버리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
“까짓 거 죽으면 죽는 거지.”
“으라차차. 우리가 간다.”
그들이 힘겹게 몸을 일으켜 지수의 뒤를 따라 근딜 사이로 뛰어들었다.
☆ ☆ ☆
차경철과 다섯 명의 원딜은 공범이었다.
그들은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있었지만, 그래도 던전을 나와서는 슬픈 기색을 지어 보였다.
“어? 차경철 마스터.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게 된 겁니까?”
관리협회 팀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원래 던전 입구에는 관리협회 직원이 상주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팀장이 직접 남아 있었던 것이다.
차경철이 슬픈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다섯 명의 원딜 역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 팀장은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다.
“서, 설마 그들 모두 죽었단 말인가?”
“도저히 항거불거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만 살아 나오는 것이 아닌데…….”
차경철과 다섯 명의 원딜은 최대한 슬픈 기색으로 말했고, 팀장의 얼굴은 사색으로 변했다.
가장 먼저 동하의 얼굴이 떠올랐다.
상부에서 직접 지시를 할 정도로 동하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한데, 던전에 들어가자마자 죽었으니 이를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던전은 기회의 땅이면서도 죽음이 도사리는 위험천만한 곳이기도 했다.
정부는 물론이고 신인류 역시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레이드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한꺼번에 많은 대원들이 죽은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동하와 지수를 합하면 모두 16명이 던전에 들어갔는데, 살아 돌아온 사람은 차경철과 다섯 명의 원딜이 전부였다. 결국 11명의 신인류가 동시에 죽은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불행한 일이었지만,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국력의 손실이라 할 수 있었다.
“차경철 마스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최동하 씨만큼은 구해서 왔어야지.”
“팀장님, 그게 지금 대원들을 잃고 나온 사람에게 할 말입니까? 나에겐 대원들 한명 한명이 모두 소중합니다.”
아차.
팀장이 뜨끔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그걸 누가 모르나? 그래도 정부의 입장도 있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대원들을 잃고 잠시 예민해진 모양입니다.”
차경철은 가증스럽게 연기를 하고 있었고, 옆에 있던 다섯 명의 원들 역시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된 건가? 지난 삼일 동안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잖아?”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던전의 난이도가 갑자기 높아졌습니다. 몬스터의 무기도 달라지고 파워도 더 강해졌더군요.”
“던전 공략에 성공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난이도가 높아질 수 있단 말인가?”
팀장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차경철이 기다렸다는 듯 품속에서 결정체를 하나 꺼내서 보여주었다.
“이, 이건……?”
“얼음 병정의 가슴에서 나온 겁니다.”
“확실히 예전 것들과는 크기나 디자인이 다르군.”
“이 정도 크기면 이전에 얻은 결정체보다 등급이 더 높을 것 같습니다.”
“흐음. 그럴 것 같군.”
팀장은 이렇게 되면 차경철의 말을 완전히 믿을 수밖에 없었다.
동하가 죽은 건 애석한 일이었다.
하지만, 던전의 난이도가 상승하고 몬스터의 능력이 높아졌다는데, 살아나온 사람이 몇 명이라도 있다는 게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먹먹했던 가슴이 조금은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상부에 보고하는 것도 한결 편해졌다. 팀장의 상관들 역시 처음에 동하가 죽었다는 말만 들었을 때는 불같이 화를 냈지만, 막상 던전의 난이도가 올라가고 결정체의 등급이 높아졌다는 말에 거짓말처럼 입을 닫고 말았다.
동하가 죽었다는 보고는 대통령에게까지 올라갔다.
청와대가 발칵 뒤집어지고 상황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지만, 차경철과 다섯 명의 원딜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자신이 있기에 시작한 일이었다.
정부 차원에서 의문을 느끼고 진상조사를 벌인다 해도 책임소재를 규명할 수는 없을 터였다.
던전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능력을 각성한 신인류들뿐이고, 설령 대책반을 꾸려서 던전 안에 들어갔을 때에는 과연 시신이 온전히 남아 있을지 미지수였다.
그야말로 완전범죄였다.
이제 그들은 적당히 동료들의 죽음을 슬퍼하다 정부와 협상을 다시 해서 엄청난 수익을 올리기만을 기다리면 끝이었다.
행복한 상상이 뭉게구름이 되어 하늘 높이 올라가고 있을 때였다.
던전 입구가 열리며 사람들이 걸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바로 동하와 지수 일행이었다. 동하를 제외하면 하나같이 낭패한 몰골을 하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죽은 사람 없이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어억?”
차경철은 무심코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두 눈을 크게 치떴다.
☆ ☆ ☆
“으으.”
혼비백산이란 말이 이럴까.
귀신을 봐도 이렇게 놀라지는 않을 것 같았다.
차경철과 다섯 명의 원딜은 사시나무 떨리듯 온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안색은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자신들만 살아남겠다고 동료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도망쳐온 그들이었다. 대통령에게까지 보고가 올라간 상황이라 지금이라도 수습을 하고 싶어도 그게 불가능한 상태였다.
‘분명 던전에서 죽었어야 하는데 어떻게 살아나올 수 있었던 거지?’
‘이제 우린 끝났어.’
차라리 악몽이었으면.
그들의 악행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건 이제 시간문제였다.
동하는 그들을 보고 속으로 조소했다.
던전에서 그들이 동료들을 배신하고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도 가만히 놔두었을 때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동하는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
한꺼번에 열 명도 넘는 신인류가 죽었는데, 상부에 보고가 안 될 리가 없었다. 더구나 동하까지 끼어 있다면 두말할 나위도 없을 터.
청와대는 물론이고 대통령까지 순식간에 보고가 올라갈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쓰레기들을 너무 쉽게 죽일 생각이 없었다.
동하는 결코 성인군자가 아니었고, 이런 쪽으로는 누구보다 머리가 빠삭하게 돌아가는 편이었다.
과연 동하의 생각대로 모든 일이 순식간에 진행이 되었다.
차경철과 다섯 명의 원딜은 이제 빼도 박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들은 자신들 입으로 자신들의 악행을 떠벌리고 다닌 셈이었다.
“부 마스터.”
“예?”
“복수하고 싶습니까?”
“할 수만 있다면요.”
지수가 차경철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이번 일을 끝으로 차경철 등은 대한민국에서 완전히 매장을 당하겠지만, 지수는 그것만으로도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럼 준비하세요. 기회는 딱 한 번입니다.”
“고, 고마워요.”
지수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고 천천히 차경철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능력 면에서는 차경철이 지수보다 조금 우위에 있었다. 그녀의 능력으로는 차경철을 죽일 수 없었지만, 그녀는 동하의 증폭 능력을 믿고 있었다.
“저, 정지수 부 마스터. 아무래도 우리들 사이에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개소리 하지 마라.”
쇄애액!
그녀가 번개처럼 검을 휘둘렀다.
처음에는 평범하게 보이던 검이 갑자기 두 배 세 배로 커지더니 순식간에 일곱 배 이상 증폭이 되었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차경철의 입에서 헛바람이 터져 나왔다.
이건 마치 거대한 하늘이 덮쳐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의 키보다 더 커져버린 검 앞에 압도당한 나머지 손가락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크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하늘을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