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만물상점-141화 (141/167)

<-- 141화 : 얼음 던전-02 -->

첫 번째 통로는 30분 정도 걸렸다.

로얄 길드는 전투를 치를수록 자신감이 넘쳐났다.

처음 만난 얼음 병정만 해치우는 데 애를 먹었지 다음부터는 순탄하게 레이드를 시작했다.

경험은 무시할 수 없었다.

로얄 길드는 얼음 병정과 싸울수록 점점 시간이 단축되었고, 차경철이 화염 계열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었다.

“그 다음은 두 개의 얼음 병정인가?”

“마스터, 그 전에 광장이 나오고 바닥 곳곳에 함정이 나옵니다.”

“그렇군.”

처음에는 얼음 병정의 능력이 강해져서 당황했지만, 던전의 패턴은 로열 길드가 며칠 동안 도전했던 것과 똑같았다.

과연 광장이 나왔고 곳곳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들이 순식간에 그곳을 빠져 나오자 다시금 좁은 통로가 나타났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두 번째 통로가 시작되는 셈이었다. 두 개의 얼음 병정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로열 길드는 각자 자리를 잡고 대형을 유지했다.

이 역시 이전과 똑같은 패턴이었기에 로열 길드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놈들을 하나씩 유인해서 해치울 수 있었다.

‘이번 던전 공략은 완전 대박인데?’

로얄 길드의 대원들 눈빛은 기대와 희망으로 부풀어 있었다.

던전 공략에 성공한 것이 아닌데도 난이도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만으로도 엄청난 성과였다. 전 세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물며 몬스터의 능력도 다르고 그것들이 품고 있는 결정체 역시 달랐다.

정부와 협상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것 같았다.

이 한 번의 레이드로 그들은 엄청난 돈을 손에 거머쥘 수 있을 터였다.

“자자, 다들 기운들 내시고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이제부터는 한 번도 가지 못했던 길이었다.

정신이 바짝 들었지만, 두 번째 통로도 충분히 공략 가능해 보였다.

“정수지 부 마스터.”

“예, 마스터?”

“지금부터 전개할 공략집을 상세히 기록하세요.”

“알고 있습니다.”

“그럼, 시작할까요?”

차경철의 외침에 그들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갔고, 얼음 병정들이 나타나면 하나씩 유인하는 전법으로 해치워 나갔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더 걸어 나가자 광장이 나타났다.

첫 번째 통로와 두 번째 통로를 연결해주던 광장에는 함정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세 개의 얼음 병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놈들은 다음 통로의 입구를 가로막고 있다가 로열 길드 대원들이 다가오자 사나운 눈빛으로 쏘아보기 시작했다.

“응?”

로열 길드 대원들이 약속이나 한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가운데 있는 얼음 병정은 좌우에 있는 놈들과 약간 달랐다.

키도 얼굴 하나 정도는 더 컸고, 투구와 갑옷의 디자인도 확연하게 달랐다.

“설마 이놈들의 상관인가?”

딱 봐도 장군처럼 느껴졌다.

로열 길드 대원들의 얼굴에 긴장의 빛이 떠올랐다.

뭔가 보스 몹을 마주했을 때의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이유가 없었다.

이것이 두 번째 통로의 마지막인 것 같았다.

여기만 공략하면 얼음 던전도 절반 이상 공략법을 알아내는 것이고, 무엇보다 두 개의 얼음 병정들도 쉽게 해치웠으니 세 개의 얼음 병정이라고 딱히 어려울 것 같진 않았다.

“마스터, 어떻게 할까요?”

“이번에도 전략은 같습니다. 우선 놈들을 하나씩 유인한 다음 각개격파로 해치우죠.”

“알겠습니다.”

자신감이 붙은 로열 길드는 잠시 호흡을 고른 다음 천천히 놈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엔 놈들이 쉽게 로열 길드의 유인 작전에 딸려 나오지 않았다.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오히려 놈들이 파티 플레이를 펼쳐오기 시작했다.

두 개의 얼음 병정이 근접 공격을 시도하고 장군처럼 생긴 놈이 원거리 공격을 펼쳤다.

촤아아악!

장군처럼 생긴 놈이 입을 벌리는 순간 가공할 빙기가 흘러 나왔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가뜩이나 추운 던전의 공기가 더욱 싸늘하게 변해갔다.

“위험해.”

“모두 피해.”

근딜은 그나마 방패가 있어서 자신들의 몸을 보호할 수 있었지만, 딜러들 중 몇 명이 냉기에 맞고 온몸이 얼음으로 변했다.

“으으.”

“빌어먹을.”

동료들이 또 죽는 모습을 보며 저마다 분개했지만, 그렇다고 방금처럼 쉽게 공격해 들어갈 수 없었다.

그나마 장군처럼 생긴 놈은 쿨 타임이 있는 듯 한번 냉기를 발사한 다음 숨을 고르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두 개의 얼음 병정이 놈을 보호하기라도 하듯 좌우에서 딱 달라붙어 쉽사리 딸려 나오지 않았다.

그때가 가장 좋은 기회였다.

차경철은 놈들을 떨어뜨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장군처럼 생긴 놈이 쿨 타임이 끝나 냉기를 발사하면 재빨리 뒤로 도망쳤다.

그렇게 10분 정도 지루한 공방전을 벌이는 동안 로열 길드는 체력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 ☆ ☆

“마스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해요?”

“젠장, 30초만 더 놈들의 발을 묶어 줘요.”

한쪽에서는 방패를 든 근딜이 두 개의 얼음 병정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딜러와 원딜이 무차별적으로 장군처럼 생긴 놈을 공격하고 있었다.

기회가 지금밖에 없었다. 그동안 몇 차례 경험으로 깨달은 것은 놈이 한 번 냉기를 발사할 때마다 쿨 타임이 조금씩 길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체력이 떨어진 그들이 오히려 놈의 손에 몰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근딜은 체력이 방전되기 전에 팔이 부서져 나갈 것 같았다.

그들은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겨우 30초만 버티면 되는데, 그 시간이 영원처럼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여기서 그들이 뚫리고 두 개의 얼음 병정의 발을 묶는데 실패하면 로열 길드 전원이 죽을 수 있는 것이다.

차경철은 쿨 타임을 생각하지 않고 화염구체를 쏘아댔다.

확실히 화염 계열은 얼음 던전과 상극이었다. 화염구체가 장군처럼 생긴 놈의 얼굴에 맞을 때마다 놈의 얼굴이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건 곧 놈의 능력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소리.

원딜이 쏘아낸 화살이 장군처럼 생긴 놈의 얼굴을 관통하고 암기가 놈의 가슴에 박혔다.

밑에서는 딜러들이 쉴 새 없이 얼음 병정의 하체를 공격했다.

“이제 조금만 더…….”

공격에 속도를 높였다.

하지만, 이미 놈의 냉기에 몇 명의 딜러들이 죽고 난 이후였다.

그들의 공격이 처음처럼 그렇게 강력하지 못했고, 놈에게 가하는 타격도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동하는 한쪽에 서서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동하는 던전의 난이도가 상승하면서 놈들에게 어느 정도 지능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했다.

지금처럼 놈들을 유인해서 하나씩 각개격파 하는 건 괜찮은 전략 같지만, 저래서는 근딜에게 과부하가 걸려서 오래 버티기 어려웠다.

‘어렵겠는데?’

유인 작전이 먹히지 않았다면 차라리 어그로를 끌어줄 사람을 내세웠어야 했다.

지금까지는 근딜이 얼음 병정의 공격을 막으며 어그로도 동시에 끌었지만, 사실 차경철의 화염구체가 놈들의 어그로를 끌기에는 더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차경철은 자칫 죽을 수도 있는 위험부담을 안으려 하지 않았다. 길드의 마스터로는 실격이었다.

‘이제 곧 놈의 쿨 타임이 끝날 시간이군.’

아직 10초도 안 된 상황이었다.

그전에 장군처럼 생긴 놈이 힘을 회복해해 대대적인 반격을 가해올 게 틀림없었다.

그때는 로얄 길드가 위험해진다.

아마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전멸할 수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들 지쳐 있는 상황에서 놈의 공격을 피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더 차경철 등이 이를 악물고 공격을 퍼부었지만, 장군처럼 생긴 놈은 좀처럼 쓰러질 기미가 없었다.

동하는 여전히 도와줄 생각이 없었다.

처음에는 자신을 증폭 계열이라 소개를 해서 약간의 능력을 사용해서 도와줄까도 싶었다.

하지만 아직 놈이 반격을 가해오기에는 시간이 남아 있었고,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긴, 지금 동하가 도와주면 힘들게 로열 길드에 합류해서 던전에 들어온 의미가 없어진다.

동하는 철저히 언더커버 보스의 마음이 되어 사람들을 평가하고 있는 중이었다.

원래 사람은 어려울 때 진심을 알 수 있는 법이다.

평소에는 좋은 사람인 것 같다가도 막상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 표정이 180도 돌변하는 사람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샤이언 종족에 맞서는 일이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건 기본이고 동하의 비밀에 굳게 입을 닫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며 그에 따른 엄청난 혜택이 주어질 것이었다.

어쩌면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동하의 사람이 된다는 건 만물상점에서 수련할 수 있는 기회와 단시간에 강해질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질 테니 말이다.

한편, 동하의 옆에는 초조한 표정의 지수가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녀는 동하를 보호하는 한편 공략집을 만들기 위해 레이드에서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자세히 흐름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녀 역시 장군처럼 생긴 놈의 쿨 타임이 먼저 끝나면 대원들이 위험하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어려워.’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설령 장군처럼 생긴 자의 쿨 타임이 끝나고 놈의 공격을 막아낸다 해도 근딜이 과부하가 걸린 지금은 얼음 병정을 상대할 방법이 없었다.

지수는 동하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봐요, 그대의 증폭 능력이 조금이라도 효과가 있는 거 맞죠?”

“그렇습니다만 그건 왜 묻는 겁니까?”

“그쪽은 아직 경험이 없어서 모를 수도 있는데, 상황이 결코 좋지 않아요.”

지수는 동하에게 길게 설명해 줄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손에 잡고 있는 검에 힘을 주었다.

금방이라도 레이드가 벌어지고 있는 곳에 뛰어들 태세였다.

하지만, 그녀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게 있었다.

장군처럼 생긴 놈이 연이어 발사한 빙기에 던전의 공기는 처음보다 두 배는 더 추워진 상태였다. 정파의 공력과 검법 계열을 각성한 지수조차도 추워서 이빨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동하는 추위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쿨 타임 같은 건 절대 신경 쓰지 말고 모든 능력을 다 쏟아 내야 해요. 알겠죠?”

지수가 못미더운 표정으로 동하에게 다시금 강조하듯 말했다.

동하는 속으로 나직하게 감탄을 터뜨렸다.

이런 상황에서 지수처럼 행동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것으로 그녀는 동료가 어려울 때 배신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게 확실해진 셈이었다.

왠지 마스터와 부 마스터가 바뀐 것 같았다.

차경철은 능력은 강할지 몰라도 속이 좁고 옹졸해서 대성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에 비해 지수는 이전 생애에서처럼 그 성정이 대한민국 최고의 각성자다웠고, 마치 여장부를 보는 듯했다.

☆ ☆ ☆

“차앗!”

지수가 검을 휘두르며 장군처럼 생긴 놈을 레이드 하고 있는 곳에 뛰어 들었다.

그녀는 다른 대원들에 비해 힘이 넘치고 있었다.

그녀의 가세는 상황을 반전시키지는 못해도 큰 힘이 되는 건 분명했다.

일단 30초 정도만 시간을 끄는 것에 초점을 맞춘 지수였다.

장군처럼 생긴 놈도 그걸 모를 리 없었다.

놈이 지수를 경계하기 위해 정신을 분산시키는 순간이었다.

차경철이 난데없이 레이드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속에서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나마 놈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차경철의 화염구가 얼음 던전과 상극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장군처럼 생긴 놈은 강해도 너무 강했다.

지수가 들어온다 해도 놈이 쿨 타임을 회복하는 걸 막지는 못할 것 같았다.

세상에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건 없는 법이다.

사실 차경철은 진작부터 도망치고 싶었지만, 장군처럼 생긴 놈에겐 단순히 빙기를 쏟아내는 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손에는 방망이도 들고 있어서 잘못 도망쳤다가는 오히려 놈의 반격에 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지수가 뛰어들고 놈의 시선이 그쪽으로 분산이 되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도 없었다.

고생해서 로열 길드를 만들었지만, 차경철은 조금의 아쉬움도 없었다.

길드야 또 다시 대원들을 모집해서 만들면 그만이고 일단은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먼저였다.

던전이 위험한 건 세상이 다 아는 일.

정부에는 그럴 듯한 말로 설명하면 충분히 대원들의 몰살에 대해 의문을 갖진 않을 것이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다른 사람들이 멘붕에 빠졌다.

“마스터? 갑자기 말도 없이 빠지면 어떻게 해요?”

처음에는 쿨 타임이 걸려서 체력을 회복하려는 것인 줄 알았다.

한데 이게 웬걸?

미련 없이 왔던 곳으로 도망치듯 사라지는 것을 보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와 동시에 원거리에서 활과 암기를 날리며 딜러들을 지원했던 원딜들도 잠시 갈등을 하더니 이내 차경철을 따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싸우던 딜러들과 방금 레이드에 뛰어든 지수는 직격탄이었다.

‘역시.’

동하는 어느 정도 차경철의 행동을 예상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계속 초조하게 주변을 살펴보는 모습이 심상치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래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는 것 같았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마스터가 자기 혼자 살겠다고 대원들을 사지에 몰아넣고 내뺄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동하는 굳이 차경철이 도망치는 걸 막지 않았다.

애초에 언더커버 보스의 마음으로 자격을 심사하기 위해 참가한 레이드였다.

동하는 처음부터 옥석을 가리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고, 차경철보다는 지수에게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던 참이었다.

차경철은 도망치다 말고 동하를 힐끔 쳐다보았고 동하와 잠시 눈이 마주쳤다.

동하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단단히 얼어붙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동하를 구해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오늘 자신의 행동이 알려지면 그는 세상에 서 있을 곳이 없어진다.

때문에 자신과 뜻을 함께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곳에 매장시켜서 다시는 던전에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원거리 딜러들은 자신처럼 도망가는 것을 택했으니 어쨌든 공범 아닌가?

하지만, 그는 이내 동하에게 시선을 거두고 저 멀리 사라져갔다.

이곳에서 도망치지 않으면 자신이 굳이 손을 쓸 필요도 없이 장군처럼 생긴 놈의 손에 죽을 게 뻔했다.

‘놈들은 절대 이곳에서 살아나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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