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만물상점-140화 (140/167)

<-- 140화 : 얼음 던전-01 -->

서울 근교의 아파트 공사 현장.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된 지 몇 개월이 지나 이제는 흉물이 되어버린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던전까지 생겨서 인근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모두 대피했고,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 유령 마을로 변해 있었다.

“다들 말 안 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겠죠?”

“예, 마스터.”

“각자 위치만 지키시면 됩니다. 3분의 1 정도 공략 법을 알아냈으니 어려울 건 없어요. 그렇다고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됩니다. 한 사람의 실수가 대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걸 명심하세요.”

차경철은 대원들을 모아놓고 간략하게 주의를 당부했다. 길드가 생긴 지 열흘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쌓인 노하우는 몇 개월은 되고도 남았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이제 얼음 던전 공략도 머지않은 상태였다.

차경철은 물론이고 대원들의 눈빛에도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

던전을 클리어 하면 가끔 랜덤 형식으로 아이템이 주어지곤 했다.

지금까지 로열 길드는 두 번이나 공략에 성공했고, 그때마다 아이템을 얻을 수 있었다.

오히려 던전을 공략해서 얻는 결정체와 정부에서 주는 성공보수보다 아이템을 팔아서 버는 돈이 더 많을 정도였다.

하물며 얼음 던전은 지금까지 그들이 도전한 곳보다 한 단계 더 난이도가 높았다.

분명 이곳을 공략하고 나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엄청난 아이템이 주어질 게 틀림없었다.

동하의 신고식은 지수가 소개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끝났다.

평소 같으면 신입이 들어왔다고 장난을 걸어왔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다들 얼굴에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어제 2명이 죽고 오늘은 3명이 중상을 입은 상태. 조금만 방심해도 자신이 죽거나 다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차경철은 동하의 능력이 증폭 계열이란 말을 듣고 약간 흥미를 느꼈지만, 그렇다고 크게 기대하는 건 아니었다.

“최동하 씨는 한두 사람 정도 능력을 증폭시켜 줄 수는 있죠?”

“예, 마스터.”

“쿨 타임은 얼마나 되죠?”

“그게 좀…….”

지금 동하에겐 쿨 타임이란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다.

동하도 예전에 닌자의 인술을 각성했을 때 쿨 타임이 있긴 했지만, 그대로 말해도 왠지 능력치 밸런스가 맞지 않을 것 같았다.

차경철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알았습니다. 최동하 씨는 일단 부 마스터 옆에 있다가 가장 위급한 순간이 되면 그때만 도와주시면 됩니다.”

한마디로 거추장스러우니까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창피해서 얼굴을 붉혔을 상황이지만, 동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더 기가 막힌 차경철이었다.

아무리 정부의 청탁을 받고 뽑았다고 해도 이건 너무 뻔뻔해도 너무 뻔뻔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동하는 신입처럼 패기 넘치는 모습을 하며 대원들 속에 섞여 있었다.

동하의 애초 목적은 대원들 뒤로 빠진 상태에서 로열 길드가 던전을 공략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일종의 옥석가리기라 할 수 있었다.

이전 생애에서 한때 언더커버 보스라는 프로가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동하의 행동이 그것과 닮아 있었다.

사장이 직원으로 위장 취업한 느낌이랄까?

동하는 자신을 도와 샤이언 종족과 싸울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만물상점에서 수련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다.

샤이언 종족이 지구에 던전을 만든 것을 보면 앞으로 더 강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뜻일 터.

그들의 침공에 맞서 지구를 지키려면 시간이 없었다.

무엇보다 지구에는 사업적인 파트너는 있지만, 능력을 각성한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지 않던가?

자격 조건은 간단했다.

능력은 뛰어나지만, 인성이 쓰레기면 안 되고, 반대로 능력은 쥐뿔도 없지만, 인성만 마냥 좋다고 되는 것도 아니었다.

‘위기에 처했을 때 보면 알 수 있겠지.’

☆ ☆ ☆

-테스터들이 얼음 던전에 입장했습니다.

공간이 일렁거린다고 느낀 순간 동하 일행은 동굴 안에 서 있었다.

주변이 온통 새하얀 얼음이었다. 동굴 벽과 천장도 얼음이었고, 심지어 바닥도 반짝반짝 빛나는 얼음으로 되어 있었다. 걸을 때 미끄럽고 중심을 잡기 어려워서 처음에는 로열 길드 모두가 들어서기 무섭게 도망치듯 나와야 했다.

두 번째는 신발에 체인을 감고 입장했지만, 여전히 움직임에 제약이 많았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스파이크 운동화에 체인까지 감아서 최대한 미끄러지지 않게 단단히 준비한 상태였다.

띠링!

-던전의 주인이 잠에서 깨어나 테스터들을 맞이할 준비를 시작합니다.

동하의 귓가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필드에서 자주 들었던 것과 동일한 음성이었다.

이것으로 동하는 한 가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던전은 만물상점의 필드와 비슷한 플랫폼으로 작동한다는 뜻일 터였다.

“이래서 얼음 던전이군요.”

“뭐가요?”

“방금 목소리가…….”

“예?”

지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동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설마 방금 그 음성이 나에게만 들렸던 건가?’

어쩌면 동하의 능력이 높아서 그럴지도 몰랐다.

동하는 재빨리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띠링!

-자동 운행 모드가 작동합니다.

-던전의 난이도가 상승합니다.

“응?”

동하는 잠시 멈칫 거렸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예전에 필드를 뛸 때도 난이도 상승은 없었다. 비슷한 플랫폼으로 갈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혹시 내가 나타나서 그런가?’

하긴, 동하와 다른 대원들 간의 레벨은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자동 운행 모드가 무엇인지 확실하진 않았지만, 이래서는 무작정 구경만 하고 있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이봐요, 신입. 아까부터 계속 멍 때리고 뭐하고 있어요?”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 참. 정신 바짝 차리지 못해요? 아까도 말했지만 멍청하게 넋놓고 있다가는 죽을 수 있다고요.”

지수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 나왔다.

사실 대부분 능력자들이 던전에 처음 들어서면 긴장한 나머지 발걸음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곤 한다.

지금 동하도 그런 것일 테지.

‘쯧쯧.’

이럴 거면 굳이 청탁까지 하면서 위험한 던전에 들어올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 ☆ ☆

휘류륭!

던전에 들어서는 순간 매서운 칼바람이 온몸을 덮쳐왔다.

로얄 길드의 대원들은 정부에서 지급한 방한복과 장갑 등으로 무장했지만, 던전의 칼바람은 방한복을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으으, 추워.”

“젠장! 이놈의 추위는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군.”

“남극도 이렇게까지 춥진 않을 거야.”

“자자, 모두 잡담 그만. 대원들은 각자 위치를 잡고 전투 준비를 취하세요.”

차경철의 말에 대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진영은 순식간에 갖춰졌다. 가장 앞에는 근딜 계열의 능력자 두 명이 커다란 방패를 앞세워 위치를 잡았다. 근육이 울근불근한 것을 보면 거인의 힘을 얻은 능력자들 같았다.

방패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단한 철로 만들어 엄청나게 무거웠다. 평범한 사람은 들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그들은 거인의 힘을 지니고 있어서 가볍게 들 수 있었다.

여기에 방패의 겉면을 괴수의 가죽을 덮어서 어지간한 타격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중간에는 검과 창을 든 공격수 여섯 명이 있었다.

그들 역시 괴수의 뼈로 만든 검을 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뒤쪽에는 활과 암기를 든 원딜 계열의 능력자 다섯 명이 있었다.

차경철은 화염 계열의 능력자였다.

얼음 던전과는 상극이라 그의 능력이 어느 때보다 위력을 발하고 있지만, 쿨 타임이 제법 길다는 게 문제였다.

그는 진영이 가운데에 서서 레이드를 이끌었다.

모두 열네 명이었다.

죽거나 다친 사람들이 다섯 명이 있었고, 지수가 동하 때문에 레이드를 하지 못한다는 것을 가정하면 처음에는 20명으로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조합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첨병이 없는 것이 옥에 티라고 할 수 있었다.

“그쪽도 자세를 잡아요. 조금만 가면 얼음 병정이 나타날 거예요.”

동하와 지수는 원딜 계열의 능력자들 뒤쪽에 있었다.

신입들은 처음엔 이런 식으로 경험치를 쌓고 서서히 팀원들과 손발을 맞춰가야 실수를 줄일 수 있다는 노하우가 생긴 것이다.

이미 몇 번이나 왔던 곳이라 지수는 빠삭하게 꿰고 있었다.

하지만, 결코 긴장의 끈을 풀지 않았다.

정신을 집중하고 있어야 돌발 사태에 언제든 대비할 수 있었다.

좋은 자세였다.

지수가 이전 생애에서 운이 좋아 상위 클래스에 올라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쿵쿵!

지수의 말처럼 조금 걸어가자 2미터 크기의 얼음 병정이 나타났다.

덩치가 크고 험악하게 생긴 얼굴이 영락없는 오우거였지만, 얼음으로 된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고 있는 특징이었다.

“응?”

방패를 앞세우고 걷던 근딜 계열의 능력자들이 잠시 주춤했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

“그러게. 지금까지는 창을 들고 있었는데, 이번엔 방망이를 들고 있네.”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무기가 창에서 방망이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일단 가보자고.”

얼음 병정은 힘은 세지만, 단순했다.

들고 있던 창을 휘두르기만 할 뿐 그다지 창의력이 없었다.

때문에 방패로 놈의 공격을 막고 적당히 시선을 끌었을 때 뒤에 있던 딜러 계열의 능력자가 검과 창으로 다리를 찌르고 원딜이 멀리서 화살과 암기를 날리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얼음 병정은 온몸이 부셔서 버렸다.

쾅쾅!

얼음 병정이 방망이를 휘둘렀다.

근딜 계열의 능력자들이 일제히 방패를 들고 놈의 방망이를 막았다.

전법은 이전과 동일했다. 바로 뒤에 있던 딜러 계열의 능력자들이 무기를 쥐고 있던 팔에 힘을 주고 곧장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데, 이게 웬걸?

근딜 계열의 능력자들이 얼음 병정 방망이 한방에 휘청거리며 뒤로 밀려나는 것이 아닌가?

“윽!”

“뭐, 뭐야 이거?”

그들의 입에서 둔탁한 신음이 흘러 나왔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얼음 병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그들은 하마터면 방패를 놓칠뻔 했지만, 겨우 중심을 잡고 버텨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이 채 숨을 돌리기도 전에 또 다시 얼음 병정의 방망이가 밀려들어왔다.

쐐애액!

귀청을 찢어발길 듯한 소리가 동굴에 가득 울려 퍼졌다.

근딜 계열의 능력자 두 명이 이빨을 악다물고 온힘을 다해 방패를 쥐었다.

쾅쾅!

방패를 타고 엄청난 타격이 전해졌지만, 이번에는 뒤로 밀려나지 않고 어떻게든 버텨냈다.

그 사이에 딜러 계열의 능력자 6명이 재빨리 달려들어 얼음 병사의 하체를 공격했고, 멀리서 원딜이 화살과 암기를 날렸다.

화살이 얼음 병정의 얼굴을 관통하고 암기가 놈의 가슴에 다다닥 박혔다. 밑에서는 여섯 명의 딜러들이 쉴 새 없이 얼음 병정의 하체를 공격했다. 다들 평범한 공격이 아니었다. 능력을 각성한 상태에서 내쏟는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잠시 후 얼음 병정은 산산조각이 난 채 부셔지고 말았다.

놈의 몸에서 손가락 크기만 한 수정이 떨어졌다. 오색 창연한 빛을 내뿜고 있는 수정이 바로 결정체였다.

“결정체 디자인이 약간 다른거 같던데.”

“예전 것들보다 왠지 더 빛을 내뿜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건 차경철이 보기에도 그랬다.

똑같은 던전과 똑같은 얼음 병정이었다.

한데, 결정체 디자인이 다를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그나저나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방금 아주 위험했어요.”

차경철이 결정체를 수거하고 근딜 계열의 능력자들 앞으로 다가갔다.

“우리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얼음 병정과는 파워 면에서 너무 달랐습니다. 처음부터 방망이를 들고 있던 것도 이상하구요.”

“흐음.”

차경철이 얼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결정체부터 얼음 병정의 능력까지.

전체적으로 난이도가 상승한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직 공략이 되지도 않은 던전의 난이도가 상승할 수가 있나?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았다.

설령 공략이 되고 던전이 리셋 된다고 해서 난이도가 상승했다는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도 아직 보고되지 않은 일이었다.

“다시 진열을 정비하세요. 앞으로 나가겠습니다.”

차경철의 말에 지수가 태클을 걸었다.

“마스터, 던전이 이상합니다. 아무래도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말입니까?”

“일단 첨병을 보내서 탐색이나 정찰을 하는 것이 좋을 거 같아요.”

지수가 처음 동하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지적했다.

하지만 차경철은 단박에 거절했다.

“그것도 좋은 생각이군요. 하지만, 우린 오늘 3번째 도전하는 겁니다. 다들 지쳐 있는 상황에서 첨병을 보내서 언제 던전을 공략하자는 겁니까?”

나름 일리는 있었다.

기다리다 지친다는 말도 있다.

이대로 가다간 오늘도 얼음 던전 공략에 실패할 것 같았다.

얼음 병정의 파워가 강해진 건 차경철도 인정하는 부분이었지만, 지수가 이렇게 치고 나오는 게 탐탁지 않은 차경철이었다.

“그 부분은 조금 더 이동한 다음 결정을 하죠.”

“알겠어요.”

이쯤 되면 지수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

그녀가 물러서자 대원들 역시 각자 위치를 잡고 조금씩 앞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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