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화 : 신인류-03 -->
인간은 오래전부터 미지의 영역에 호기심을 느끼고 탐사를 하고 정복하려 한다.
산을 등반하고 신대륙을 발견하며 남극을 탐사하는 게 다 호기심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던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곳에 무엇이 있고, 어떤 세상이 펼쳐져 있는지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괴수들의 발에 짓밟히고 무너져 내린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인류였다.
처음에는 두려움을 느끼고 가까이 접근조차 하지 못했지만, 차츰 각 정부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신인류를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는 결정체가 필요했다.
하지만, 결정체를 품고 있는 괴수들은 이제 세상에 가끔 나타날 뿐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마냥 괴수들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가는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밀릴 것은 불을 보듯 당연한 일.
그래서 눈을 돌린 게 바로 던전이었다.
마굴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자고로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법이다.
각 정부에서는 이미 능력을 각성한 신인류를 최대한 모아 던전을 탐사하게 했고, 필요한 장비와 자금 등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던전을 하나 공략할 때마다 상상을 초월하는 수당과 지원금이 주어졌고, 결정체를 가져올 때마다 개수에 따라 보너스를 지급했다. 결정체를 많이 가져오면 그만큼 보너스도 많아진다.
설령 던전 공략에 실패를 해도 생명수당으로 막대한 돈이 지급이 되어서 한번 능력을 각성하면 돈방석에 앉는 건 시간문제였다.
각 정부의 지원 속에 던전이 하나둘 신인류의 손에 정복되어 갔다.
그들은 던전에서 얻은 결정체는 정부에게 돌려주었지만, 괴수의 사체는 자신들의 장비를 업그레이드하는데 사용했다. 가끔 괴수의 사체를 놓고 다툼을 벌이고 신인류 사이에 PK를 벌이는 일도 벌어졌다.
아직은 모든 것이 시행 초기였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
여기저기서 불협화음이 벌어지고, 신인류들이 던전에서 죽는 일도 생겼다.
그러자 각 정부에서 신인류만 전문으로 관리하는 협회를 창설했고, 던전에서 효과적으로 레이드할 수 있는 공략집도 만들었다.
각 정부는 여기에 사활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제 부국강병의 길은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무기의 현대화나 군사력이 아닌 신인류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도 던전을 공략하는 데 올인 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애초에 신인류가 적다보니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계속 뒤처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빈익빈 부익부 구조나 마찬가지였다.
신인류가 적었던 나라는 던전을 공략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고, 하나의 던전을 정복하는 데 며칠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신인류가 많았던 나라는 빠른 속도로 던전을 정복해 더 많은 신인류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은 상당히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처음부터 신인류의 숫자도 적었던 데다가 무기 강화에 초점을 맞춘다고 초기 대응이 다른 나라보다 늦었던 것이다.
그건 마치 스마트폰 대응에 늦어서 몰락한 노키아의 경우와 비슷했다.
비록 그 차이는 며칠에 불과했지만, 지금처럼 급변하는 상황에서 하루의 차이가 일 년이 될 수도 있었다.
“대통령님, 이제부터 무기 강화 사업을 계속 하십시오.”
“아니, 그럴 필요가 있겠나? 던전에서 무기를 사용하다 붕괴될 수 있어서 다른 나라들 모두 능력 업그레이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네.”
한마디로 무기 강화는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었다.
하나 동하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 말을 믿으세요. 머지않아 던전이 열리게 될 겁니다.”
“더, 던전이 열린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쉽게 말하면 세상이 곧 던전으로 변하게 될 거라는 뜻입니다.”
“마, 맙소사. 그게 정말인가?”
“제가 전에 말씀드렸던 외계 종족은 기억하고 계시겠지요?”
“그야 여부가 있겠나?”
당시 동하의 말이 너무 충격적이었던지라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차차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일단 무기 강화 사업을 계속 진행할 테니까 대통령님께서 저를 좀 도와주셔야 할 게 있습니다.”
“알겠네.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을 한다면 정부 차원에서 모든 편의를 제공해주겠네.”
대통령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잔뜩 지쳐 있던 눈빛에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동하가 나타난 것만으로 없던 힘이 솟은 대통령이었다.
세상이 던전으로 변한다는 동하의 말을 무조건 믿는 건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동하의 말에는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믿음과 신뢰가 담겨 있었다.
“참, 대통령님. 우리도 관리협회가 있습니까?”
“며칠 전에 만들긴 했지만, 아직 국회에 관련법이 계류 중이네.”
대통령의 목소리가 편치 못했다.
모든 것이 대통령의 부덕의 소치였다. 다른 나라들은 벌써 관련법이 통과되어 모든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도 가능한 빠르게 법을 처리하고 싶었지만, 이제 겨우 임시국회 일정이 잡힌 상태였다.
“상당히 늦은 편이군요.”
“그런 셈일세. 정부 차원에서 제대로 지원이 안 되다 보니 신인류들도 무척 동요하고 있네.”
불만을 품은 자들도 많았다. 이제 더 이상 애국을 앞세우는 시대는 아니었다.
서서히 인터넷이 발달하고 있는 중이었다. 다른 나라의 신인류와 비교 글이 올라오며 신인류 중 몇몇은 다른 나라로 스카우트 되어 떠났다.
“그럼 던전 공략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지금은 신인류들이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의기투합해서 길드를 만들고 던전을 공략하고 있네. 협회에는 보고만 하는 형식일세.”
“그렇군요.”
이전 생애와는 완전히 정 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전에는 관리협회의 통제가 싫어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막공이 만들어졌는데, 지금은 관리협회가 유명무실해서 길드가 만들어진 셈이었다. 그러고 보니 길드와 막공. 용어까지 달라져 있었다.
“지금 그들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 ☆ ☆
로열 길드는 몇 개 되지 않는 길드 중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이었다.
본격적으로 레이드가 시작된 게 얼마 되지 않았지만, 로열 길드는 벌써 15번이나 던전을 공략했다. 어떤 날은 하루에 두 번이나 레이드를 뛰기도 했고, 어떤 날은 연거푸 세 번을 공략에 도전하기도 했다.
공략에 실패하고 나오면 진열을 재정비해서 곧바로 다시 도전했고, 또 실패하고 나오면 진열을 재정비해서 도전하는 식이었다. 이게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던전 공략에 성공하면 던전이 초기화가 되지만, 실패한다고 페널티가 있는 게 아니었다.
귀환석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들어왔던 입구로 다시 되돌아오면 그만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괴수들은 입구를 빠져나오지 못했지만, 인간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출입이 가능했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던전 깊숙이 들어갔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었다.
던전의 중심으로 갈수록 괴수들이 많아졌고, 레벨이 높은 상위 포식자들도 늘어나서 던전을 공략하기는커녕 입구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로열 길드가 15번이나 던전을 공략해서 성공한 건 두 번 밖에 되지 않았다.
성공률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다.
다른 나라의 길드와 비교해도 차이가 많았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전 던전 공략에 성공한 곳이 로열 길드였다.
당연히 두 번이나 던전을 공략한 곳도 로열 길드가 유일했다.
로열 길드는 나름 자부심이 높았다.
처음에는 인원이 부족해서 아무나 대원으로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꼼꼼하게 인터뷰를 하고 능력의 계열도 확인했다.
정지수는 로열 길드의 부 마스터였다.
그녀는 지금 지금 짜증이 많이 나 있는 상태였다. 눈앞의 얼음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사흘째 매달리고 있는데 성공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늘만 해도 벌써 두 번째 실패였고, 세 번째 도전하기 위해 다시금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데, 갑자기 신인류 관리협회에서 연락이 와서 사람을 한 명만 받아 달라고 하는데 짜증이 안 날 수가 없었다.
“보나마나 높은 사람 친인척이겠지.”
능력?
그런 건 볼 필요도 없었다.
분명 하위 등급일 게 뻔했다.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뭐가 아쉬워 청탁을 해올까.
지수는 이런 곳에도 청탁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던전은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단 한 번의 실수에도 대원들이 전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신인류가 많이 등장하게 될수록 길드는 무수히 많이 생겨나게 될 것이었다.
무한 경쟁 속에서 로열 길드가 살아남는 방법은 유능한 인재만 받아들여 질적으로 성장하는 것이었다.
지수는 마음 같아서는 냉정하게 거절해야 하는데, 길드 마스터인 차경철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정부 차원에서 요구하는 청탁을 마냥 거절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길드를 지금보다 더 크게 키우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정부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부 마스터가 빨리 적응할 수 있게 옆에서 잘 케어해 주세요.”
“능력이 뭔지는 테스트 해보고 결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부 마스터, 우리 어렵게 가지 맙시다. 우리가 이번에 정부의 부탁을 들어 주었으니 나중에 정부에서 우리 부탁을 거절하지 못할 거 아닙니까?”
“아무리 그래도 대원들은 알고 있어야죠.”
“굳이 말해서 분란을 만들 필요 있겠습니까? 다행히 인원이 몇 명 부족한 참이니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 겁니다.”
“마스터, 꼭 이래야 하나요?”
“외국의 사례를 보면 정부의 지원에 따라 길드의 성패가 갈릴 수도 있더군요. 우린 아직 관련 법규가 국회에 계류 중이라서 피부로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확실히 알게될 겁니다.”
차경철은 누구보다 셈이 빨랐다.
그는 제법 야망이 있어서 길드에만 집중하지 않고 정치적으로도 인맥을 충실히 쌓아가고 있었다.
‘휴우.’
지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도 작은 실수로 대원이 두 명이나 죽었고, 오늘도 벌써 세 명이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얼음 던전의 난이도는 상당한 편이었다.
그동안 로열 길드가 공략한 던전 중에서도 가장 높은 편이라 할 수 있었다.
아직 모든 것이 초기 상황이라 던전의 레벨을 측정할 수 있는 도구나 기구가 없었다.
그저 몸으로 부딪쳐 보고 던전의 난이도를 평가하는 게 전부였다.
대원들 사이에서 얼음 던전을 포기하고 철수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볼멘소리가 하나둘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나 지수는 이대로 물러서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지난 며칠 동안 고생한 덕분에 던전의 3분의 1 정도는 공략 방법을 알아낸 상태였다.
더구나 지금까지 대원들의 희생이 아까워서라도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 ☆ ☆
동하가 신인류 관리협회 팀장의 안내로 지수를 만난 건 그로부터 30분 뒤였다.
동하와 지수는 서로 낯이 익었다.
우선 지수는 이전 생애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능력자 중 하나였다.
근성도 좋고 독기도 있어서 어지간해서는 중간에 포기하는 게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9성급 S몬의 손에 동하가 죽던 그 날 지수도 무기 공장에 있었다.
‘이때는 부 마스터였군.’
나비효과로 많은 부분이 틀어져 있어서 과연 이전 생애에서도 지수가 부 마스터로 시작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한편 지수는 텔레비전에서 동하가 출시 국가 명단을 발표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어쩐지 정부에서 청탁을 해오더라니.
지수는 동하의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차갑게 물었다.
“어떤 계열의 능력을 각성했죠?”
“증폭 계열입니다.”
“즈, 증폭?”
아직 초기 단계였다.
다양한 능력을 각성한 신인류가 등장하지 못한 상태였다.
신성 계열의 힐러는 몇 명 되지 않아 무척 희귀했고, 증폭 계열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아서 그 개념도 모르고 있을 때였다.
“쉽게 말하면 다른 사람들의 능력을 증폭시켜 주는 겁니다.”
동하는 전면에 나서고 싶지 않았다.
던전을 돌아보면서도 현재의 길드가 어떤 실력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동하는 철저하게 뒤에 빠져 있었다.
신성 계열의 힐러는 주목을 많이 받을 것 같고, 증폭 계열이 적당했다.
지수가 놀란 눈으로 동하를 쳐다보았다.
동하의 말만 들으면 이건 완전 사기 캐릭터였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런 능력자가 무엇이 아쉬워 굳이 청탁을 한 것인지 의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에 짚이는 것이 있었다.
증폭 계열.
말은 그럴 듯해도 정작 능력치가 낮으면 사람들의 능력을 증폭시켜봐야 거기서 거기일 것이었다. 만에 하나 쿨 타임까지 길면 그때는 있으나 마나인 것이다.
‘그렇겠지.’
대충 동하의 능력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동하가 청탁을 해온 이유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증폭 계열은 혼자서는 싸울 수 없으니 더더욱 로열 길드에 들어오고 싶었을 것이었다.
그래도 나름 동하의 능력이 희소가치가 있어서 처음보다는 기분이 많이 풀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녀는 꿈에도 알지 못했다.
동하는 모든 계열의 능력이 가능하다는 것을.
지수는 동하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자세히 확인하고 싶었지만, 대원들의 재정비가 모두 끝나고 던전에 입장할 차례였다.
“일단 그쪽은 내 옆에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