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신인류-01 -->
남궁혜 등이 한창 던전에서 수련을 하고 있을 때 동하는 지구로 돌아왔다.
만물상점에서 아직 몇 가지 문제를 더 처리할 게 남아 있긴 했지만, 그건 차차 해결할 생각이었다.
기계 골렘들은 인벤토리에 있었다.
벙커에 기계 골렘이 들어갈 수도 없지만, 가족들이 거대한 기계 골렘을 보면 기함을 할 듯 놀랄 게 뻔했다.
동하에겐 두 개의 인벤토리가 있었다.
인벤토리는 각각 3평과 10평이었는데, 사실 그것들에는 기계 골렘이 들어가지 않는다.
예전 같았다면 분명 골머리를 앓았을 테지만, 이제는 별로 문제될 것이 없었다.
만물상점의 아이템들이 모두 동하의 것이었다.
동하는 판타지 종족의 매장에 가서 인벤토리를 가장 큰 것으로 교체했다.
인벤토리의 공간은 넓었다.
기계 골렘을 두 대나 넣고도 몇 대는 더 집어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가격을 보니 5천 포인트가 넘었다. 인벤토리 가격으로만 따지면 엄청난 액수였다.
“이거 기분이 묘한데?”
동하는 포인트 걱정 없이 아무 아이템이나 그냥 가져올 수 있다니 출세를 해도 엄청나게 출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어디 인벤토리뿐이겠는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희귀한 물건들이 이제 모두 동하의 것이었다.
“어? 심안의 눈동자도 있었네.”
예측 안경이나 매직 카메라도 매장에 진열되어 있었다.
하늘을 나는 양탄자도 있고, 유니콘과 천리마도 있었다.
이제 동하에겐 더 이상 필요 없는 것들이었지만, 아마 이곳에 있는 아이템이 하나만이라도 밖으로 흘러나가면 세상이 발칵 뒤집어지고도 남을 터였다.
예전에는 이것들을 사기 위해 포인트 한 푼에 목숨을 걸었던 때를 떠올리면 새삼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츠츠츠츠.
동하는 벙커가 있는 곳에서 제법 떨어진 곳으로 차원 이동을 했다. 벙커 주변에 제인과 마크가 잠복해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언제 눈이 내렸는지 들판에는 새하얗게 뒤덮여 있었다.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와 동하의 온몸을 훑고 지나갔지만, 동하는 한서불침의 신체라서 추위나 더위를 타지 않았다.
“시원하군.”
동하는 오히려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더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체감으로는 열흘 정도 만물상점에서 머물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남궁세가에서 수련하기 위해 이틀 정도 머무른 건 지구의 시계와 비슷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만물상점에서 머문 시간은 아무리 길어봐야 현실에서는 하루도 채 되지 않았다.
동하가 현실에서 자리를 비운 시간은 모두 합쳐서 3일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원래 동하는 이렇게까지 길어질 지는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부모님들이 걱정하고 있을 게 뻔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남궁세가에 가기 전에 미현에게 미리 말을 해 두었으니 아마 적당한 말로 둘러댔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동하는 벙커에 들어가기 전에 인벤토리에 넣어 두었던 핸드폰을 꺼내 전원을 켰다.
“응?”
날짜가 이상했다.
동하가 남궁세가에 갔을 때가 12월 초였는데 지금 핸드폰에 나와 있는 날짜는 12월 15일이었다.
“뭐, 뭐야?”
10일 정도의 기간이 차이가 나고 있는 것이다.
동하의 생각에는 12월 5일쯤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날짜를 착각한 건 아닌가 싶은 생각에 몇 번이나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기억은 틀리지 않았다.
“혹시 핸드폰에 문제가 있나?”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당시에는 핸드폰 수신율을 안테나 모양으로 표시를 했는데, 비록 한 칸이긴 해도 정상적으로 수신이 되고 있었다.
부재중 전화가 수백 통 넘게 와 있었다.
이제는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가 되고 있어서 누구에게 전화가 왔었는지 바로 확인이 가능했다.
대통령에게 수십 통의 전화가 와 있었지만, 아마 무기 강화 때문인 것 같아서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유경과 서용훈 사장이 전화를 건 횟수만 해도 수십 통이 넘었다.
동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경과 서용훈 사장은 동하의 비밀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만물상점에 가기 전, 유경과 서 사장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며칠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무기 강화에 필요한 괴수의 액체를 전해주고 갔던 것이다.
“벌써 떨어졌나?”
넉넉하게 전해 주었기 때문에 이틀 정도 사용할 여유분이 남아 있어야 정상이었다.
“수정 씨에게도 연락이 왔었네?”
적어도 1백 통은 넘게 전화한 것처럼 보였다.
수정과 가끔 연락을 하기는 했지만, 최근에 이렇게 많이 연락이 온 적은 처음이었다.
동하는 본능적으로 수정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했다.
“다온그룹에 일이 터졌나?”
하지만 괴수들 때문에 모든 기업이 문을 닫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일이 생길 게 있나 싶기도 했다.
그래도 동하는 수정이 걱정이 되긴 했다.
동하가 가장 먼저 수정에게 연락을 하려고 통화버튼을 누르려는 순간이었다.
따르릉!
핸드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액정에 수정의 이름이 떠올랐다.
☆ ☆ ☆
“증시가 개장했다고요?”
“모든 기업이 그것 때문에 지금 난리도 아니에요.”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거의 모든 기업의 주가가 폭락했고, 군수업체나 의료계열 회사만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중에 특이한 게 있다면 미셜 화장품 정도였다.
미셜 화장품은 몇 번의 상한가를 치고도 계속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미셜 화장품 때문에 대한그룹 계열사의 주가도 덩달아 오르고 있었다.
예전에 상장 폐지가 나돌던 때가 불과 몇 개월 전이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의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온그룹의 주가는 연일 떨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M뱅크로 겨우 버티고 있긴 했지만, 특단의 조치를 내리지 않으면 그룹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수정은 다온그룹 문제 때문에 동하에게 도움을 구하려고 연락을 취했던 것인데, 하도 동하와 연락이 되지 않다 보니 불길한 마음만 들었다. 혹시 동하의 신변에 이상이라도 생긴 건 아닌가 싶어 요즘은 밤에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동안 동하 씨와 연락이 안 돼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미안해요. 수신이 안 되는 곳에 있어서 도통 전화 받을 형편이 아니었거든요.”
“쳇, 그렇다면 그렇다고 말이라도 해주던가.”
수정이 입술을 삐죽였다.
동하가 무사해서 다행이긴 한데, 괜히 동하 걱정에 밤잠을 설친 게 억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지금까지 계속 괴수들을 피해 밀폐된 곳에 숨어 있었던 거예요?”
수신이 안 되는 곳이라면 지하실이나 밀폐된 공간 외에는 생각되는 곳이 없었다. 당시 기술로는 지하실에서는 전화가 잘 터지지 않았다.
하긴, 괴수들을 피해 지하실이나 밀폐된 공간에 숨는 건 그리 어려운 광경이 아니었다.
“그, 그런 셈이죠.”
“그래도 너무 심했다. 사람이 어떻게 10일 넘게 숨어 있을 수가 있어요. 가끔 음식을 구하기 위해 밖으로 나오지 않나요?”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동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오랜만에 수정의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니까 새삼 현실에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그나저나 오늘이 며칠이죠?”
“15일이에요.”
“그, 그렇군요.”
역시 핸드폰에 나와 있던 날짜가 맞았다.
동하는 현실에서 3일 정도 시간이 흐른 줄 알았는데, 만물상점에서 보낸 시간이 고스란히 현실에 반영이 되었던 것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동하는 여간 당혹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란테가 통제 센터의 시스템을 파괴하면서 시간의 흐름이 정상적으로 변한 것 같았다.
‘아차.’
동하는 불현듯 서용훈 사장과 대통령이 건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가 떠올랐다.
무기를 강화할 사체의 액체를 넘겨주지 못했으니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어진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마 전 세계가 발칵 뒤집어 졌을 것이었다.
가족들도 크게 걱정하고 있을 것 같았다.
하긴, 이쯤 되면 동하의 목적지를 알고 있는 미현조차 걱정하고 있을 게 뻔했다.
일단 집으로 먼저 가서 가족들을 안심시켜 준 뒤 대통령을 만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걱정도 잠시, 동하는 문득 증시가 열렸다는 수정의 말이 떠올랐다.
상식적으로 동하가 무기를 강화할 수 있는 액체를 건네주지 않았는데, 증시가 열릴 수 있는 걸까?
당연히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극심한 혼란을 겪어야 정상이었다.
아마 1차 침공 때보다 더한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여야 했다.
한데, 생각해보니 수정에게 먼저 연락이 왔고, 동하가 서울까지 공간이동으로 날아와 그녀와 만나고 있었다. 1차 침공 때부터 수정에게 연락이 온 적은 있어도 만나자는 말이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수정 씨, 혹시 지난 십 며칠 동안 세상에 무슨 변화가 생긴 겁니까?”
“맙소사. 동하 씨 생각보다 아주 단단히 숨어 계신 모양이네요. 괴수들이 거의 사라졌어요. 괴수들이 나타나던 공간이 없어졌다고요.”
“뭐, 뭐라고요?”
동하는 너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고 말았다.
“가끔 괴수들이 나타나긴 하는데, 능력자들이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정도에요.”
“능력자?”
“신비한 능력을 각성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동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전 생애에도 능력을 각성한 사람들이 나타나긴 했었지만, 동하가 자리를 비운 십 며칠 사이에 생겨났다니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대신 도심에 이상하게 생긴 동굴이 생겼어요. 사람들은 그걸 마굴이라고도 부르고 던전이라 부르는데, 아무튼 그 안에 괴수들이 있어서 정부에서 통제하고 있어요.”
“전 세계 모두 말인가요?”
“예.”
“끙!”
그제야 동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던전 관련 프로그램]
☆ ☆ ☆
인류는 거대한 변화와 맞닥뜨리고 있었다.
괴수들이 나타나는 공간이 사라지면서 전 세계는 빠른 속도로 안정을 되찾아갔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현상이 생겨났다.
그건 바로 능력을 각성한 자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디가 먼저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미국에서 괴수의 사체를 수거하던 군인이 우연히 결정체와 반응을 일으켜 각성한 것이 먼저라고 했고, 일각에서는 유럽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일각에서는 가장 먼저 중국의 청년이 각성했다고 했다.
판단을 내리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일이었고, 약간의 시차만 존재할 뿐이었다.
각성자의 능력은 제각각 달랐다. 미국의 능력자는 무공을 할 줄 알게 되었고, 유렵의 능력자는 엄청난 힘을 소유하게 되었다. 이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결정체의 성격에 따라 각성 상태가 결정된다.
아무튼, 그들은 이제 맨손으로 1성급 몬스터를 죽일 수 있었다.
괴수의 사체로 장비를 만들어 능력을 강화하면 2성급 몬스터와도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다. 여전히 3성급 몬스터는 어려웠지만, 각 정부 입장에서는 그것만으로도 고무적이었다. 능력을 각성한 자가 1명이면 어렵겠지만, 여러 명이 모이면 3성급 몬스터를 상대할 수도 있었다.
처음에는 미국이나 독일 그리고 중국 모두 일급비밀에 붙이고 정보를 독점하려 했었다.
이미 대한민국이 보여준 일이지만, 21세기는 괴수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나라가 진정한 강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정체와 반응해서 능력을 각성할 수 있는 확률이 극히 희박했다.
돈이 많다고 각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무조건 능력을 각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직 결정체와 반응을 보이는 사람만이 능력을 각성할 수 있었다.
정부에서는 각성자를 확보하려면 더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비밀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
더구나 결정체가 능력을 각성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 사람들은 결정체를 얻으려고 혈안이 되었다.
결국 각 정부는 정보를 독점하는 걸 포기했다.
그들은 정보를 오픈하는 대신 더 많은 각성자들을 보유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제 강대국을 논하는 관점이 달라졌다.
인류는 그렇게 새로운 패러다임에 들어선 상태였다.
‘아직 괴수의 사체에 엄청난 에너지가 숨어 있다는 것은 알려지지 않은 모양이군.’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난 십여 일 동안 세상이 이렇게까지 급변했을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동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사실 동하는 란테가 순순히 도망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 시스템을 복구하는 내내 돌발 사태에 대비하긴 했었다.
한데, 이런 식으로 접근해 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동하가 직접 두 눈으로 던전을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 던전이라면 필드의 연속성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건 좀 위험한데.’
지금 괴수들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고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오히려 세상이 던전으로 변하면 지옥보다 더한 참상이 벌어질 게 틀림없었다.
이건 이전 생애에서도 없던 것이라 동하는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