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만물상점-136화 (136/167)

<-- 136화 : 던전-03 -->

[던전 관련 프로그램]

악성코드는 아니었다.

이는 란테가 지구로 통하는 공간을 활성화시킨 것이었다.

한번 파괴한 시스템은 복구가 되지 않기 때문에 지구와 관련된 공간만은 열어두어야만 했다.

하지만, 란테는 단순히 공간을 남겨둔 것이 아니었다.

차원의 공간을 폐쇄한 후 그 대신 던전으로 대체했다. 차원의 공간은 괴수들이 드나들 수 있는 일종의 게이트였다.

그에 반해 던전은 괴수들이 서식하고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넓은 의미에서 만물상점에서 테스터들을 시험했던 필드를 지구에 만들어 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달리 던전 관련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지금은 자동 모드로 던전이 운행되게 만들었지만, 나중에 원격 조종을 해서 던전을 임의로 운행할 수도 있었다.

란테는 이때를 본격적인 4차 침공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동하가 이전 생애에서 경험한 4차 침공과는 완전히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동하가 이런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는 막연하게 강시던전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만물상점에서는 필드라는 용어를 사용했었는데, 느닷없이 던전이란 용어가 등장한 것이다. 동하는 지금까지 강시던전 외에는 어디에서도 던전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일부러 강시던전만 복구하게끔 유도한 건가?”

그걸 확인하려면 던전 안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다.

동하는 필드를 개방했다.

동하가 복구한 강시던전은 타누스 박사가 괴수들의 심장에 결정체를 이식하기 전 단계였다.

피보나치수열의 공식으로 진행이 되며 강시던전과 미로 그리고 스켈레톤과 골렘까지… 필드 1관의 프로그램 그대로였다.

만약 강시던전이 악성코드에 감염이 되었다면 던전 안에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다.

아마 죽음의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 터.

던전에 들어서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하지만, 동하는 그런 것 따위엔 눈 한 번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실전이라고 생각하며 당당하게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고수는 꾸준히 실전을 쌓으며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데, 지구에서는 그럴 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동하는 각성한 능력은 많은데 그것들의 위력을 하나씩 확인할 방법도 마땅치 않아서 이래저래 고민하던 중이었다.

“여기까진 이상이 없군.”

동하는 강시들을 모두 죽이고 미로에 들어서는 데에는 몇 분 걸리지도 않았다.

필드 1관의 강시들은 동하의 옷자락 하나 어쩌지를 못 했다.

미로는 그때마다 리셋이 되어서 출구가 달라지긴 하지만, 이곳 역시 어려움 없이 출구를 찾아 나올 수 있었다.

이미 몇 번이나 경험한 것이기도 했지만, 그때보다 동하의 능력이 높아진 덕분에 시시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건 스켈레톤과 골렘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하가 마지막 골렘까지 모두 죽이고 출구를 빠져 나올 때까지 걸린 시간은 채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예전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때는 그토록 살 떨리게 무서웠던 강시던전이 이젠 가벼운 산책 하는 정도로 변한 것이다.

하나 어디에서도 돌발 상황은 없었고, 악성코드의 기운 역시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악성코드는 아닌 것 같은데?”

어쩌면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동하는 만물상점을 손에 넣고 통제 센터까지 복구했지만, 한편으로는 언제 어떤 식으로 란테가 수작을 부렸을지 몰라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 동하와 샤이언 종족 사이에 관계가 완전히 뒤바뀐 상태.

동하는 지키는 입장이 되었고, 샤이언 종족은 공격하는 입장이었다.

해킹도 충분히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해킹을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동하가 기계 골렘을 해킹한 것처럼 시스템에 침투한 방법이 있는가 하면 악성코드를 심어 놓고 사용자 몰래 정보를 빼내는 방법도 있다.

동하는 ‘던전 관련 프로그램’을 발견했을 때만 해도 악성코드라고 확신했다.

시스템이 악성코드에 감염이 되면 통제 센터를 해킹할 수 있을 뿐더러 원격으로 조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었다.

강시던전을 뛰고 온 동하는 생각지도 못한 수확을 얻은 기분이었다.

사실 동하는 필드를 일부 복구하긴 했지만, 필드로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까진 없었다.

만물상점을 테스터들에게 전면 개방하기에는 아직 시스템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샤이언 종족이 테스터로 위장해서 침투할 가능성이 있어서 보안 문제가 걸린다.

바로 그러던 차에 강시던전을 돌며 괜찮은 영감을 얻었다.

“필드를 개인 수련장으로 만들면 되겠어.”

샤이언 종족이 들으면 기절초풍할 소리였지만, 동하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레벨을 맞추면 이보다 더 효과적인 수련장이 없었다. 적어도 동하가 수련을 하고 실전 감각을 쌓으려면 말 그대로 ‘던전 관련 프로그램’이 있어야할 것 같았다.

☆ ☆ ☆

던전을 복구하는 것보다 레벨을 올리는 게 더 힘들었다.

동하는 세 배 이상의 시간을 쏟아 부어서야 간신히 강시던전의 레벨을 올렸지만, 강시의 몸체가 약간 커지고 피부가 조금 단단해진 정도였다.

겨우 이 정도 수준으로는 개인적으로 수련하기조차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남궁혜 등에게는 적당할 것 같았다.

동하는 이번에 만물상점을 빼앗는 과정에서 느낀 것이지만, 샤이언 종족과 일전을 치르기 위해서는 동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자신만 강해진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지금 남궁혜 등은 개개인이 차원의 관리자들에 미치지 못했다.

더구나 차원의 관리자들은 여러 계열의 능력자들이 완벽하게 파티를 이뤄서 그 능력을 극대화 시킬 수도 있었다.

애초에 싸움이 될 수 없었다. 동하에게 기계 골렘이 있어서 그나마 균형의 추를 맞추고 있을 뿐이지만, 이마저도 샤이언 종족이 대비를 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차원의 관리자들과 맞서려면 자신들 역시 파티를 이뤄서 싸우는 방법을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물론 개개인의 능력을 끌어 올리고 차원의 관리자들과 맞설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 올리는 것도 중요했다.

성녀와 엘프, 그리고 야수 종족과 무림 종족, 그리고 닌자 종족까지…….

동하의 곁에는 이제 제법 여러 종족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그래도 완벽하게 파티를 구성할 정도는 아니었다.

만물상점에는 많은 종족의 테스터들이 있었지만, 동하는 원칙적으로 자신이 겪어보고 신뢰하지 않는 자들은 마음속에서 배제해 버렸다.

하긴, 동하는 지금 당장 만물상점을 개방할 것도 아니었다.

이 문제는 천천히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아무튼, 동하는 남궁세가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만물상점에 데려왔다.

그 안에는 곤륜노자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는 지금까지 노예로만 생활해서 만물상점은 처음이었다.

당연히 던전이나 필드는 말로만 들었을 뿐, 직접 경험한 적은 없었다.

타오와 야이는 신기한 눈으로 강시던전을 둘러보았고, 닌자 종족의 사람들 역시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어둠 속을 응시했다.

사람들 사이에 잠시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특히 닌자 종족의 사람들은 대부분 오늘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동하를 중심으로 모여 있는 상태. 어색한 기운은 이내 지워 버렸다.

곤륜노자를 비롯해서 켄지와 대부분 사람들이 동하보다 나이가 많았고 자신들의 종족에서 최고의 명망을 얻고 있었지만, 그들의 실질적인 리더는 동하였다.

“일단 성녀와 엘가나를 중심으로 두 개조로 나누어 던전을 클리어 해보죠.”

성녀는 신성 계열의 힐러로 사람들의 체력을 지원하고 엘가나는 증폭 계열로 사람들의 화력을 지원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 다음으로 무림 종족과 닌자 종족 그리고 야수 종족을 적당히 나누어서 두 개 조를 만들었다.

남궁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자님,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요?”

예전이라면 모를까.

남궁혜 역시 능력이 많이 높아진 상태였다.

강시던전이라면 그녀 혼자서도 충분히 클리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후후. 아마 쉽지 않을 겁니다.”

동하는 사람들에게 준 아이템을 모두 회수했다.

지금은 파티를 이뤄서 조직적으로 싸우는 게 중요하지 개인의 능력을 앞세워 던전을 클리어 하는 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이템이 없어도 강시던전은 자신 있어요.”

남궁혜의 자신 있는 목소리에 엘가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판타지 종족이라 강시던전에 들어온 적은 없지만, 좀비던전과 비슷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글쎄요. 겪어보기 전에 자신하는 건 이르다는 말을 하고 싶군요. 그나저나 뭔가 달라진 게 없습니까?”

“아! 그러고 보니 강시의 몸체가 커진 것 같아요.”

남궁혜는 저 멀리 어둠속에서 다가오고 있는 강시를 보며 두 눈을 크게 치떴다.

“움직임도 예전보다 빨라졌을 걸요?”

“그, 그런 것 같네요.”

콩콩!

강시 한 구가 빠른 속도로 남궁혜를 향해 뛰어 오고 있었다.

남궁혜는 검기를 날려 강시의 목을 공격했다. 강시의 움직임이 아무리 빨라봐야 검기를 피할 순 없었다.

하지만, 이게 웬걸?

강시가 팔을 들어 검기를 막는 것이 아닌가?

깡!

쇠를 긁는 듯한 거북한 소리가 던전 안에 가득 울려 퍼졌다.

그르르릉!

남궁혜의 두 눈이 크게 치떠졌다.

강시가 남궁혜를 향해 괴성을 지르며 폴짝 뛰어 올랐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놀랐다.

하지만, 무엇보다 강시가 팔로 그녀의 검기를 막아냈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예전에 경험했던 강시던전의 강시는 이렇게까지 피부가 단단하지 않았었다.

쇄애애액!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남궁혜와 거리를 좁힌 강시가 그녀를 향해 기다란 손톱을 그어갔다.

손톱 사이에 독이 있어서 살짝 긁히기만 해도 중독이 되어 죽을 수도 있었다.

동하는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위험요소를 전혀 없애지 않았다.

남궁혜도 뒤늦게 그것을 깨닫고 검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안일하게 먹었던 마음을 털어냈다. 여긴 생사를 장담하기 어려웠든 예전의 그 필드와 똑같았다.

그녀는 옆에 동하가 있다는 생각도 지웠다. 자신의 위험에 처했다고 도움을 받을 생각 따윈 깨끗이 지워버린 것이다.

“차앗!”

남궁혜가 가볍게 바닥을 박차고 미끄러지듯 강시의 뒤로 돌아갔다.

그녀의 신형은 한 마리 고고한 학처럼 신묘하고 표홀한 자태로 강시의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바로 남궁세가에서 자랑하는 창궁미리보란 보법이었다.

콱!

남궁혜가 강시의 뒷목에 검을 찔러 넣었다.

제법 힘을 주어 찔렀건만 황당하게도 살짝 피부를 뚫고 들어간 것이 전부였다.

그르르릉!

강시가 괴성을 지르며 몸을 홱 돌렸다.

그와 동시에 독이 묻은 손톱을 사납게 세우고 남궁혜의 몸을 찔렀다.

찌익!

강시의 손톱이 남궁혜의 소맷자락을 찢고 지나갔다.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였다.

남궁혜는 가슴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속도와 힘, 그리고 피부의 단단함까지……. 예전 강시던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남궁혜는 더 이상 방심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창궁미리보법을 최대한 활용해 속도 면에서 강시를 압도해 나갔다.

콱콱!

연이어 남궁혜의 검이 강시의 뒷목을 찔렀다.

그렇게 일곱 번을 공격하고 나서야 강시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하아.”

남궁혜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겨우 강시 한 구와 싸웠을 뿐인데도 그녀의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헉헉!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혜 씨도 필드 2관의 괴수들을 기억하고 있겠죠? 자이언트 악어의 단단한 피부를 강시에게 이식했습니다.”

“아.”

어쩐지.

강시의 피부가 금강불괴처럼 단단하더라니.

결국 남궁혜는 자이언트 악어와 싸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 ☆

처음 던전을 들어가서 첫 번째 공간에서는 한 구의 강시들이 나타난다.

그러다 세 번째부터는 2구씩 등장했으며, 그 다음에는 3구의 강시들이 동시에 나타났다.

그렇게 다섯 번째 공간에는 5구의 강시가 나타났다.

이때까지도 사람들은 최적의 조합을 찾기 위해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바꾸는 데 여념이 없었다. 피보나치수열에 의하면 다음에는 8구의 강시들이 등장할 차례다.

강시가 한구씩 늘어날수록 사람들이 받는 압박감은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대적해야 할 강시가 8구로 늘어나기 전에 어떻게든 가장 효율적으로 강시를 물리치는 데 최적의 조합을 찾고 싶었다.

“아무래도 강시들의 어그로를 끄는 건 남궁 소저의 창궁미리보법이 가장 효과적인 거 같습니다.”

“내 생각도 그게 좋을 거 같아요.”

“위험한 역할은 내가 맡아야 하는데, 강시의 시선을 끄는 게 생각보다 어렵네요.”

야이는 말을 하다 말고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까 5구 때 그가 강시들의 어그로를 끌다가 실수를 하는 바람에 모두가 위험에 빠질 뻔했다. 그때 가까스로 남궁혜가 놈들의 주의를 잡아끄는 데 성공해서 가까스로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대신 야이는 가까이 접근해서 강시의 목을 비트는 건 나보다 잘하잖아요.”

“그건 그런 거 같습니다. 미오님이 은둔술로 보조를 맞춰 주면 야이의 위력이 더 효과를 발휘하는 것 같더군요.”

왕세기는 무당파의 수제자로 천검이라 불릴 정도로 검법의 기재였다.

야이와 미오가 강시 근처로 접근해 근딜을 시도하면 왕세기와 타쿠마는 원딜을 사용해서 그들을 지원했다.

역시 몸으로 직접 부딪치며 최적의 조합을 찾아낸 보람이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8구의 강시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오히려 5구의 강시를 상대할 때보다 훨씬 수월하게 해치울 수 있었다.

“다음은 13구인가요?”

“아마 그럴 겁니다.”

“좋아요.”

남궁혜는 지금까지 싸웠던 과정을 자세하게 기록했다.

그것은 일종의 파티 공략집이었다.

앞으로 샤이언과 싸우기 위해서는 동료들이 더 필요해질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 동하는 남궁혜 무리에게 과제를 주었던 것이다.

동료들이 늘어나게 되면 남궁혜 등이 테스트해 본 후 작성한 파티 공략집으로 그들을 교육한 후 가장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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