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만물상점-135화 (135/167)

<-- 135화 : 던전-02 -->

“시얀 박사.”

“말씀하세요, 카일 대장.”

“10일 안에 지구에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이오?”

“끙.”

현재로는 기계 골렘보다 더 강한 괴수를 만들어낼 기술력이 없었다.

겨우 열흘 안에 기계 골렘보다 더 등급이 높은 괴수를 만들라는 건 원로들이 현장 상황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하물며 지구에는 기계 골렘보다 더 무서운 동하가 있었다.

열흘이 아니라 한 달이 지나도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였다.

“이보시오, 시얀 박사. 내내 궁금하던 것이 있었는데, 도대체 기계 골렘은 몇 성급 몬스터인 것이오?”

“타누스 박사님께서 나눈 등급에 따르면 5성급입니다.”

“그 말은 시얀 박사가 나눈 등급도 있다는 소리요?”

“그렇습니다. 이번에 금속 액체 능력을 추가했지만 5성급 S몬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카일은 할 말을 잃었다.

5성급 S몬이 그렇게 강할 수도 있던가?

카일은 스스로가 자신의 능력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6성급 수준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6성급 수준인 카일마저도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기계 골렘은 아주 강한 면모를 보였다.

“아마 기계 골렘의 복합능력 때문일 겁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기계 골렘에겐 네 가지 복합능력이 있지요. 그것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서 공격을 펼쳤기에 6성급 능력자인 카일 대장님도 상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최동하란 그놈의 능력은 어느 정도란 말이오?”

“그걸 저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타누스 박사가 일전에 동하의 능력을 7성급 이상이라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사실 그때만 해도 카일은 타누스 박사의 말을 믿지 않았었다.

하지만, 부딪친 결과가 이렇다 보니, 최악에는 동하를 9성급 능력자라고 가정하고 상대해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생길 것 같았다.

“허, 놈이 9성급이라…… 그렇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지금 우리 힘으로는 복수할 기회조차 없다는 소리로군.”

카일과 로이는 허탈해서 말이 다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 그건 단순히 가정일 뿐입니다. 놈이 완전히 각성한 상태가 아니라면 8성급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7성급에 머물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7성급 능력자가 그렇게 강할 리 있소?”

이건 무조건 8성급 이상이었다.

그래서 더 카일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놈이 완전히 각성하지 못하고 8성급 능력에 머물고 있다면 우리에게도 반격할 기회가 있다는 뜻입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조그만 빈틈이라도 있다면 어떻게든 뚫고 들어갈 여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그들에겐 이제 겨우 열흘이란 시간밖에 없었다.

시얀과 란테는 벌써부터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하나 카일은 목숨 따윈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전사에게 죽음은 언제 어디서든 찾아올 수 있는 것이기에 늘 대비하고 있었다. 오히려 명예롭지 못한 죽음이야 말로 전사에게 가장 치욕적인 것이었다. 동하에게 복수도 하지 못한 채 무능한 자로 낙인찍히는 것만큼 무섭고 두려운 것도 없었다.

“박사?”

“예, 대장님.”

“내 능력을 놈처럼 높일 수는 없는 것이오?”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미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하는 등 실험을 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지요.”

“그래도 6성급 능력을 얻지 않았소?”

“그게 마지막입니다. 지금도 너무 무리한 바가 없지 않은데, 여기서 더 높이려고 했다가는 틀림없이 육체가 견디지 못하고 폭발할 겁니다.”

“그놈은 어떻게 그런 막강한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단 말이오?”

“타누스 박사님에 따르면 미래에서 과거로 회귀했고, 우리가 만든 9성급 몬스터의 능력을 이어받았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나를 괴수로 만드시오.”

“예에?”

“내 몸을 이용해서 9성급 몬스터를 만들란 말이오.”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이미 그는 6성급 능력을 지니고 있으니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괴수가 된다는 건 한마디로 이지를 상실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카일은 동하에게 복수할 수만 있다면 자신은 어떻게 되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만큼 카일은 복수에 미쳐 있었다.

“대장님.”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로이가 대경실색했다.

“자네가 뭐라 하든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네. 지금 우리 기술력으로 놈을 어쩌지 못한다면 이렇게라도 해서 복수하면 그만 아닌가?”

“아, 아무리 그래도…….”

“시얀 박사. 내 몸을 이용하면 9성급 몬스터를 만들 수 있을지나 대답하시오.”

“그, 그건 좀 더 연구를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시얀은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머릿속에 한 줄기 빛이 생겨났다.

그동안 막혀 있던 부분이 펑 뚫렸던 것이다.

☆ ☆ ☆

타누스 박사는 결국 배신을 당하고 자신이 가진 권력 등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케이스였다.

오랫동안 백성들의 존경과 찬사를 받아왔던 그가 이제는 주위에 손가락질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교도소에 갇혀 있어 햇빛을 볼 수조차 없었다.

한번 권력에서 밀려난 자의 말로는 비참한 법이었다.

타누스의 얼굴은 예전에 비해 십년은 더 늙어 보였다.

하지만, 정작 그의 눈빛은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했다.

자신을 배신한 동료에 대한 미움이나 원망 같은 건 없었다.

타누스 박사는 이미 모든 걸 내려놓은 상태였다.

타누스 박사는 아직도 종족을 지키는 길은 전쟁을 포기하고 평화를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율리언트의 예언이 조금씩 실현이 되고 있는데도 누구 하나 심각하게 생각하는 자가 없었다. 우주 말살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가 무엇 때문인데. 이대로는 샤이언 종족의 파멸을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였다.

아마 그때로 다시 되돌아간다고 해도 타누스 박사는 똑같은 말로 원로들을 설득하려 했을 것이었다. 그렇게 타누스 박사가 한창 벽을 보고 상념에 젖어 있을 때였다.

“박사님?”

“응?”

타누스 박사는 익숙한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가 깜짝 놀랐다.

“아니, 자넨 시얀이 아닌가?”

“늦게 찾아뵈어서 죄송합니다. 박사님의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원로들의 뜻이 워낙 완고하셔서…….”

“허헛! 이게 어디 자네 탓인가?”

문득 타누스 박사의 눈빛에 공허한 기운이 떠올랐다.

감옥에 있다고 아예 세상과 차단된 건 아니었다.

타누스 박사는 이따금 소문을 들을 수 있었다.

타누스 박사가 실각되고 시얀이 가장 먼저 한 것은 타누스 박사의 것을 모두 뒤엎는 것이었다. 심지어 타누스 박사의 심복들마저 내치고 자신들의 사람들로 채웠던 것이다.

타누스 박사는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기분이었다.

시얀이 이렇게 야망이 강한 자였는지 전혀 몰랐던 일이었다.

“그나저나 지금 한창 바쁠 텐데 어찌 나를 찾아온 건가?”

“상의드릴 게 있습니다.”

“자네가 나에게 상의라……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을지 모르겠군.”

타누스 박사는 그리 모질지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독한 말을 쏟아 내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해 결국 완곡한 표현으로 거절의 뜻을 전했다.

시얀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박사님, 제가 금속 액체를 사용했습니다.”

“뭐, 뭐라고? 자네 지금 뭐라고 말했나?”

“놈을 죽이기 위해 금속 액체로 기계 골렘을 만들었습니다.”

“미쳤군. 자네 지금 제정신인가?”

타누스 박사가 불같이 노했다.

시얀은 이미 각오하고 찾아온 길이었기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타누스 박사가 자신을 뻔뻔하다고 욕해도 상관없었다.

기계 골렘을 만든 건 시얀이지만, 그 역시 불사지체로 완벽해진 기계 골렘을 파괴할 해법이 없어 답답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타누스 박사라면 자신과 달리 어떠한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타누스 박사는 순수한 과학자였다. 그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 정치를 하는 성격도 아니었고, 처세술에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시얀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해도 과학적인 부분에서 도움을 구하면 도와줄 사람인 것이다.

“자세히 말해보게. 금속 액체만 사용한 건가 아니면…….”

“불사지체와 함께 사용했습니다.”

“으음.”

타누스 박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제야 시얀이 찾아온 이유를 대충 알 것 같았다.

“기계 골렘에 문제가 생겼군. 혹시 통제력을 상실한 건가?”

“놈에게 해킹을 당했습니다.”

“뭐, 뭐라고?”

“그래서 박사님께 자문을 구하려고 찾아왔습니다.”

“자네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나? 기계 골렘이 해킹을 당했자면 이제 샤이언 종족에겐 끔찍한 재앙이 다가올 일만 남아 있단 말이네.”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9성급 몬스터를 만들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지금 현재 우리 기술로는 5성급 몬스터가 한계일세.”

“아니, 가능합니다. 박사님께서 도와만 주신다면 말이죠?”

시얀이 눈빛이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지구를 쓸어버리고 동하를 죽여 그동안 자신이 당했던 수모를 되갚을 수 있는 길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 ☆ ☆

- 만물상점의 주인이 바뀌었다.

- 복합능력을 지닌 지구 종족이 차원의 관리자들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소문은 일파만파로 퍼져 나갔다.

테스터들은 발칵 뒤집어졌고, 극도의 흥분에 휩싸여 있었다.

싸움을 직접 지켜본 테스터들도 있지만, 만물상점이 워낙 넓어서 보지 못한 자들도 많았다.

때문에 소문의 진위 여부를 놓고 열띤 공방이 벌어졌지만, 결과는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만물상점에 차원의 관리자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각 매장을 지키던 직원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각 블록에 배치되어 있던 안내 직원들마저 없었기 때문에 만물상점은 텅 비어 있는 상태였다.

자고로 견물생심이라 했던가?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막상 매장에 아무도 없는 것을 알았으니 아이템을 훔쳐가고 싶다는 욕망이 생길 수도 있었다.

만약 누구 한 명이 용기를 내서 매장에 있는 아이템들을 가져간다면 너도나도 따라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동하는 만물상점을 통제하는 센터를 장악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매장의 문을 닫는 것이었다.

다행히 아이템을 무단으로 가지고 나가면 경고음이 들리고 추적이 되기 때문에 아직까지 아이템을 도둑질한 테스터들은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거 진짜라는 소리 아냐?”

“어, 어떻게 테스터가 차원의 관리자들을 이길 수가 있는 거지?”

그건 충격과 공포나 다름이 없었다.

그들에게 차원의 관리자들은 저승사자보다 더 무섭고 두려운 존재들이었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테스터들은 모두 차원의 관리자들의 손에 행성을 빼앗기고 가족과 친구들이 노예로 전락했기 때문이었다. 한데, 그들이 한두 명도 아니고 무려 백 명이나 동하의 손에 죽고 만물상점을 빼앗긴 것이니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퉤. 꼴좋다.”

“아주 쌤통이다. 놈들이 죽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로군.”

“예끼, 이보게들. 말조심하게. 샤이언 종족이 자네 말을 듣고 있는지 또 어떻게 아나?”

“만물상점의 주인이 바뀌었다는데 놈들이 어떻게 이곳의 동정을 안단 말인가?”

“샤이언 종족의 능력은 무궁무진해서 그 끝을 모르네. 지금은 놈들이 순순히 물러났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가만히 있을 리는 없지 않나?”

“그야 그렇기는 하지만…….”

백인백색.

모두가 다 똑같을 순 없었다.

그건 만물상점의 주인이 바뀐 일을 바라보는 것만 해도 그랬다.

차원의 관리자들이 죽었다는 말에 통쾌하게 생각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나중에 샤이언 종족에게 보복을 당하는 건 아닌지 벌써부터 두려워하는 자들도 있었다.

☆ ☆ ☆

“휴우.”

동하가 긴 한숨을 내쉬며 허리를 세웠다.

그의 얼굴에서는 구슬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공력이 극에 이른 동하이기에 땀이 나는 건 그리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만큼 정신을 집중하고 과도하게 심력을 쏟아 부었다는 뜻이었다.

“드디어 다 끝난 건가?”

동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나절 동안 조금도 쉬지 않고 분주하게 뛰어다닌 덕분에 파괴되었던 통제 센터는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상태였다.

어느새 해가 지고 하늘에는 달이 떠 있었다.

동하는 정신을 집중한 나머지 시간이 이렇게까지 지났는지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도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

통제 센터의 외관은 파괴되기 전과 똑같았다. 만능의 손이 톡톡히 능력을 발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나마 필드를 복구해서 다행이다.”

복구한 필드는 강시 던전 한 곳 밖에 되지 않았고, 레벨도 1 단계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건 차츰 수정해 나갈 수 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처음 동하의 망막 사이로 떠오른 정보는 한 치의 오차 없이 모두 정확하게 일치했다. 인공지능 시스템은 일부 복구가 되었고, 삭제된 파일 역시 일부 복구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건 뭐지?”

던전 관련 프로그램.

동하는 인공지능 시스템과 필드를 연결하는 부분에서 낯선 프로그램을 하나 발견했다.

이건 정상적인 프로그램이 아니어서 망막 사이로 떠오른 정보에 없던 것이었다.

그래서 동하가 다른 모든 것을 모두 복구한 다음에야 뒤늦게 발견이 되었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니겠지, 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던전 관련 프로그램이니 필드와 관련된 것인 줄 알았었다.

하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정상적인 파일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보안 시스템이 철통같아서 동하는 접근할 수가 없었는데, 한 술 더 떠서 복구한 인공지능 시스템조차 접근할 수 없었다.

“설마 이거 악성코드는 아니겠지?”

란테가 시스템을 파괴하는 과정에서 혹시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악성코드를 심어 넣었을지도 몰랐기에 동하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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