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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종족의 능력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다.
동하는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어떤 식으로 지형과 지물이 바뀌든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매직 카메라와 예측 안경의 위력이었다. 여기에 매직 워치 능력까지 결합이 되면 정확한 시기와 시간까지도 알아낼 수 있었다.
솔직히 이것만으로도 동하는 충분히 사기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다.
동하가 마음만 먹는다면 사람의 인생을 알고 길융화복마저 예측할 수 있으니 천기누설이 동하의 손바닥 안에 있는 셈이었다.
하나 동하는 최대한 이런 능력은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었다.
지금만 해도 나비효과 때문에 얼마나 애를 먹고 있던가? 괜히 쓸데없는 아량을 베풀어 다른 사람의 인생에 개입했다가 어떤 식으로 나비효과가 불어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동하는 우연한 기회에 만능의 손을 얻고 난 이후부터 단순히 엿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무엇이든 복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만능의 손은 한 차례 업그레이드가 있었다. 터널용 포클레인과 만능의 로봇의 자동화 시스템을 한데 합치면서 만능의 손 능력이 대폭 높아진 것이다.
동하는 이제 천하에 복사하지 못하는 것이 없었고, 만들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하나 이건 어디까지나 하드웨어 분야일 뿐이지 소프트웨어는 전혀 달랐다. 메모리와 CPU등 반도체 분야를 완벽하게 고치려면 그 안에 설치되어 있는 프로그램을 흡수해서 복사를 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였다.
동하는 처음부터 통제 센터를 복구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통제 센터의 시스템은 인류의 문명과 과학보다 수백 배는 더 진보된 것들이었다. 작은 점보다 더 작은 메모리 하나에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건 물론이고 모든 시스템을 인공지능 시스템이 통제하고 있었다.
동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복구하는 게 특히 더 어려울 것 같았다.
이건 감히 대한민국 기술로는 범접할 수 없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SF영화에 나오는 것들보다 더 화려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동하가 정신을 집중하자 몸속에서 무언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동하의 망막 사이로 복잡한 도형과 기하학 무늬와 함께 숫자와 글자들이 떠올랐다.
“응?”
동하의 눈이 크게 치떠졌다.
처음에는 이것들이 지금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계 종족의 능력이 각성된 이후로 이런 현상은 처음이었다. 심지어 음양조화선의 능력으로 터널용 포클레인과 만능의 로봇의 자동화 시스템을 한데 섞는데 성공했을 때도 이런 적이 없었다.
스캔을 완료했습니다.
지금부터 계산을 시작합니다.
그동안 동하의 귓가에 울려왔던 괴음과는 달랐다.
지금 이 글자는 동하의 망막에 떠오른 것으로 마치 3D입체 영상을 보는 것 같았다.
필드가 닫혀 있습니다.
차원의 문이 닫혔습니다.
로그아웃을 하면 다시는 접속할 수 없습니다.
“뭐, 뭐지?”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에 동하는 눈이 아프고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동하가 당황하고 있을 때 그의 망막 사이로 또 다른 정보들이 떠올랐다.
인공지능 시스템 일부 복구 가능.
삭제된 파일 일부 복구 가능.
파괴된 필드를 일부 개방할 수 있음.
차단된 베타테스트 어플은 일부 복구할 수 있음.
만물상점에서 매매하는 아이템 제작 시스템은 복구 불가.
“으음.”
동하는 자신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다.
아무리 봐도 스스로 진단하고 해결책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운 동하였다. 이것의 주체가 괴음이 아닌 건 확실했다.
아무래도 좋다. 주체야 누가 되었건 그게 무슨 상관인가? 지금은 해결책을 찾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동하에겐 이렇게까지 극강의 기계 종족의 능력이 없었다. 망막 속에 떠오른 대로만 되면 란테가 파괴했던 것들 중 일부를 복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동하가 의문에 빠져 있을 때 문득 동하의 머릿속에 번쩍 하고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동하는 기계 골렘을 해킹하기 위해 기계 골렘의 능력을 모두 흡수했다가 다시 되돌려 준 적이 있었다. 기계 골렘의 핵심은 금속 액체이지만, 근간을 이루는 건 기계 종족의 능력이었다.
예전에 음양조화선을 복사하기 위해 잠깐 흡수했을 때도 그 능력들이 동하의 몸에 남아 있지 않았던가?
“그렇구나. 기계 골렘의 능력을 흡수해서 관련 능력들이 높아졌던 거야.”
쉽게 말하면 업그레이드가 된 것이었다.
동하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기계 골렘은 시얀이 샤이언 종족의 모든 기술과 문명을 총집결해서 만든 것으로 어떤 면에서는 기계 종족의 능력보다 몇 배는 더 진보된 것들이 담겨 있었으니 말이다.
하나 단순히 기계 종족의 능력치만 높아진 게 아니었다.
동하가 사기 아이템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대부분 기계 종족과 관련이 있었다.
당연히 어느 하나의 능력치가 올라가면 연쇄반응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만능의 손의 능력은 물론이고 함께 연동이 되는 매직 카메라와 예측 안경 그리고 매직 워치까지 능력치가 동시에 올라가 동하는 자신도 모르게 또 다른 차원의 환골탈태를 경험하고 있었다.
☆ ☆ ☆
한편, 남궁혜와 닌자 종족의 사람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그들은 통제 센터가 파괴된 것이 아쉽긴 했지만, 만물상점을 손에 넣었다는 것에 상징적인 의미를 가졌다.
샤이언 종족은 그동안 만물상점의 기술과 아이템으로 테스터들을 유혹하고 자신들의 노예로 만들어 왔었다. 테스터들 역시 강해지고 싶은 욕구에 필드를 뛰며 포인트에 목숨을 걸었다. 한데, 이제 이 모든 것을 봉쇄한 것이다.
당장 남궁혜와 닌자 종족의 사람들만 해도 그랬다.
그들은 샤이언 종족에게 이용을 당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만물상점의 유혹을 버리지 못해 필드를 뛰고 포인트에 목숨을 걸지 않았던가? 이것으로 만물상점에 이어 테스터들의 통제권도 상당부분 상실할 것 같았다. 그건 곧 샤이언 종족에게 이중으로 굴욕과 패배를 안겨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남궁혜가 조심스럽게 동하를 향해 다가왔다.
“공자님, 뭐가 잘못된 건가요?”
“예?”
“아까부터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계셔서 무슨 문제가 생겼나 싶어서 계속 걱정이 되네요.”
동하의 표정도 진지해서 꼭 무슨 일이 생긴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동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후후. 어쩌면 통제 센터를 조금이나마 복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그게 정말인가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해봐야 알겠지만,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진 않군요.”
동하가 시간을 말하는 순간 다시금 망막 사이로 도형과 기하학 문양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로딩중이라는 표시가 나타났다. 로딩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동하의 망막 사이로 시스템을 복구하고 필드를 개방하는데 걸리는 시간들이 촤르륵 떠올랐다.
“반나절만 고생하면 될 것 같군요.”
정확하게는 12시간 하고도 31분이었다.
파괴된 것이나 삭제된 데이터의 양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빠른 시간이었다.
동하는 혀를 내둘렀다. 왠지 자신이 인공지능 컴퓨터가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남궁혜는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녀가 무림 종족이라 해서 기계와 전자에 대해 무지하다고 해도 파괴된 통제 센터를 복구하는 게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정말 이걸 반나절만에 고칠 수 있단 말인가요?”
“기계 골렘과 싸우면서 능력이 높아진 것 같습니다.”
동하는 말을 하다 말고 흠칫 했다.
망막 사이로 떠오르던 통제 센터의 정보가 이번에는 남궁혜의 신체 사이즈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신체 특징까지 스캔해서 정보를 알려주려는 것을 동하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벌써 그녀의 정보가 머릿속에 각인이 되고 난 뒤였다.
‘험험. 가슴이 풍만한 줄 알았지만, G컵이나 됐었어?’
자신도 모르게 남궁혜의 가슴을 곁눈질 하게 되는 동하였다.
☆ ☆ ☆
과학과 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샤이언 종족.
자동차가 날아다니고 거대한 배가 바다 위에 떠 다니며 도시가 하늘 위 구름 사이에 자리잡고 있었다. 투명한 보호막이 대기를 두르고 있어서 낮과 밤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건 물론이고 장마와 폭설도 프로그램에 따라 만들 수 있었다.
극도의 과학문명으로 인해 행성의 환경이 삭막할 것 같아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일상을 보내는 시민들과 휴가를 즐기는 자들까지. 외곽 지역에는 광활하게 펼쳐진 숲과 아름다운 바다와 해변가도 있었다. 한쪽에서는 판타지 종족의 코스프레를 하고 다니는 자도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전사 체험을 하는 어린 학생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번 여름 휴가는 소린 행성에서 즐겨보세요. 수천 만 년 전에 멸종되었다는 공룡을 직접 눈으로 보고 사냥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한달 우주 여행 코스를 놓치지 마세요. 기계 종족과 괴수 종족. 그리고 판타지 종족 등 100여 곳의 행성 중 열 개의 행성을 선택해서 여행도 하고 원주민들을 사냥도 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합니다. 이번에 무림 종족의 행성이 새롭게 추가되었습니다.
도심 건물의 전광판에는 온갖 광고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샤이언 종족은 어지간한 일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무너뜨린 행성을 관광 코스로 만들고 그곳의 원주민들의 삶을 체험하고 사냥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잡은 상태였다.
샤이언 종족의 행성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앞으로 일어날 범죄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도심 곳곳에 설치된 인증 시스템이 분주하고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하나 행성의 수도인 샤이온은 발칵 뒤집어진 상태였다.
특히 샤이온의 행정 기구인 율라이는 비상사태나 마찬가지였다.
율라이는 대 예언가인 율리언트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특히, 수십개의 운동장을 합친 것보다 더 큰 규모의 건물임에도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이 압권이었다. 따로 출입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증 절차를 거쳐 공간이동으로 건물 안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카일. 정말 하심하구나! 네가 그러고도 샤이언 종족의 최고 전사라고 할 수 있느냐?”
“면목 없습니다.”
원로들의 역성이 율라이 의회 건물을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이건 사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미개한 지구인 따위에게 만물상점을 빼앗기도 돌아올 수 있단 말이냐?”
“네가 샤이언 종족의 명예에 먹칠을 했다.”
“어떤 문책도 달게 받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카일과 로이는 죄인의 심정으로 원로들의 심판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원로들의 회의는 강력한 법적 구속력이 있어서 이곳에서 판결이 나오면 곧바로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때문에 로이의 얼굴은 거의 사색으로 변해 있었다. 원로들의 표정이 생각보다 더욱 좋지 않았던 것이다.
하긴, 누군들 지금 이 상황을 달갑게 받아들일까?
지금까지 샤이언 종족은 수많은 행성을 침입했지만, 별다른 어려움 없이 정복해 왔다.
당연히 지금이 샤이언 종족의 역사상 처음 겪는 실패인데다 그 상대가 미개인 정도로 취급하고 있는 지구인이라니 충격도 이런 충격이 없었다. 당장 이 사실이 뉴스를 통해 국민들에게 알려지기라도 하는 날엔 원로원 역시 무사하기 어려웠다.
“이보게, 시얀. 자네가 말해보게.”
“어떻게 해야 기계 골렘이 해킹을 당할 수 있는 건가?”
“그, 그건...”
문책을 받는 건 시얀과 란테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시얀은 기계 골렘을 만든 총 책임자이니 그 책임이 누구보다 더 무거웠다. 시얀은 흐르는 땀을 닦으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놈에게 기계 종족의 능력까지 있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렇다고 해킹을 당해?”
이건 명백히 시얀의 실수였다.
그는 해킹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 점은 충분히 보완을 할 수 있습니다.”
“기계 골렘은 어찌할 건가? 금속 액체가 불사지체와 만나면 완전체가 된다는 건 이미 타누스 박사가 논문으로도 발표했던 거야.”
그래서 원로원도 처음엔 승인을 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하지만, 시얀이 적극적으로 청원을 하자 끝내 원로원에서도 금속 액체의 위험성을 무시하고 승인해 주었던 것이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막고는 있지만, 만물상점을 빼앗긴 사실은 알려지게 될 게야.”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론이 극도로 악화될 것도 알고 있겠군.”
“죄, 죄송합니다.”
시얀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것으로 그의 경력은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셈이었다.
타누스 박사를 대신해서 연구 총책으로 올라서면 탄탄대로만 펼쳐질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그의 성공가도는 시작도 하기 전에 동하에 의해 꺾여져 나간 것이다.
그때 원로들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 전에 지구에 복수를 하면 말이 달라지겠지.”
“정확히 10일의 시간을 주겠네. 그 안에 기계 골렘을 파괴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내지 못하면 자네는 물론이고 자네의 가족들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게야.”
“며, 명심하겠습니다.”
“카일과 로이. 자네들도 나가보게.”
“예.”
구사일생나 다름없었다.
시얀과 란테 그리고 카일과 로이는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시한부 인생과도 같아서 해법을 찾지 못하면 그들의 목숨은 물론이고 가족들까지 위험했다.
시얀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이게 다 동하 때문이었다. 자신의 명예를 걸고서라도 지구를 우주에서 없애버리지 않고는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건 카일과 로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당한 수모와 치욕은 시얀보다 백배는 더 크고 강렬한 것이었다.
동하와 지구에 복수하지 않고는 죽어서도 곱게 눈을 감지 못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