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화 : 만물상점의 새로운 주인-04 -->
완패였다.
카일은 자신이 이렇게 무능하게 느껴지긴 처음이었다.
완벽하게 덫을 놓고 동하를 함정에 빠뜨려 놓고서도 오히려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패한 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치욕스럽게 느끼고 있는지도 몰랐다.
카일은 샤이언 종족의 최고 전사였고, 실패를 모르는 사나이였다.
더구나 지금은 예전에 비해 열 배는 강해져 있었기 때문에 동하는 자신의 적수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데, 이 모든 것이 자만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는 백 명의 수하들을 투입했지만, 동하의 손에 죽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아야만 했다.
수하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몇 번이고 뛰쳐 나가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로이가 그를 붙잡았다.
“놈이 강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기계 골렘이 강할 뿐입니다.”
로이는 애써 동하의 능력을 깎아 내렸지만, 동하가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것은 누구보다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계 골렘이 없었다면 이렇게 일방적으로 밀리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동하와 기계 골렘 사이의 궁합은 상상을 초월했다. 기계 골렘을 파괴할 수 있는 확실한 비책이 없는 상태에서 동하와의 싸움은 단 1%의 승산도 없었다. 그건 이미 백 명의 수하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수십 번도 더 깨달은 일이었다.
카일은 이를 악물었다.
아무리 기계 골렘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동하와의 승부를 하지 못하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이보게 란테. 만물상점에 있는 아이템을 모두 이용해도 기계 골렘을 파괴할 수 없단 말인가?”
“현재로써는 기계 골렘에겐 약점이 없습니다. 기계 골렘을 만든 시얀 박사님 외에는 누구도 알 수 없을 겁니다.”
금속 액체가 강렬한 화기에 약한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불사지체를 만난 지금은 그마저도 확신할 수 없었다.
현재로써는 동하처럼 프로그램을 해킹하는 방법이 유일하지만, 그러자면 기계 골렘을 먼저 쓰러뜨려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대장님, 이제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란테가 다급한 표정으로 카일을 재촉했다.
지금 동하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조만간 D블록 마저 뚫리면 그때는 돌이킬 수 없을 터였다.
“그래서 지금 나보고 만물상점을 버리고 도망이라도 치란 말인가?”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늦으면 그때는 통제 센터의 시스템마저 놈에게 빼앗길지 모릅니다.”
란테는 과학자였다.
그는 통제 센터가 동하에게 넘어가는 것만큼은 무조건 막아야만 했다.
필드에 접속하고 괴수들의 능력을 조절하는 방법. 베타테스트 어플을 사용해서 테스터들을 접속하게 만드는 것. 차원과 차원을 넘나드는 방법 등 통제 센터에는 샤이언 종족의 기술과 문명의 집결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통제 센터의 시스템을 파괴하면 만물상점은 반쪽짜리로 전락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설령 동하에게 만물상점을 빼앗긴다 해도 샤이언 종족의 기술과 문명을 손에 넣는 건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거면 일단 안심할 수 있었다.
동하에게 만물상점을 빼앗기는 것보다 샤이언 종족이 수만년 동안 축적해온 기술과 문명을 빼앗기는 게 지금으로써는 더 큰 문제였다.
이제 무조건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시스템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관련 프로그램까지 모두 삭제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했다.
더구나 한 번 시스템을 파괴하면 샤이언 종족의 행성으로 갈 수 있는 길목이 차단이 되어서 그 이후에는 이곳에 들어올 수도 그렇다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하나 란테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있었다.
동하에게 예측 안경과 매직 카메라 그리고 만능의 손의 능력이 있어서 파괴된 환경을 복구할 수 있다는 것을.
“대장님.”
란테가 다시금 카일을 재촉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란테의 표정은 더욱 초조하게 변했지만, 카일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는 전사의 자부심이 대단한 자였다. 이대로 물러서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물며 숙명의 라이벌이라 생각했던 동하에게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싶을 리 없었다.
“대장님, 저도 란테와 같은 생각입니다.”
“자, 자네가?”
“시얀 박사에게 기계 골렘을 파괴할 수 있는 해법을 듣고 난 다음 놈에게 복수를 해도 늦지 않습니다.”
분하기는 로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샤이언 종족이 수많은 행성을 침입하고 무너뜨렸지만, 겨우 동하 한 사람 때문에 도망치듯 후퇴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치욕도 이런 치욕이 없었다.
아마 행성에 돌아가면 질책이 쏟아지겠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동하에게 복수만 할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아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다.
“이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하진 마라.”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카일과 로이의 복수는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었다.
☆ ☆ ☆
시간이 점점 단축되고 있었다.
동하는 그야말로 파죽지세의 기세로 통제 센터까지 단숨에 밀고들어왔다.
처음 F블록에서 차원의 관리자들과 싸울 때만 해도 상당히 오랜시간 차륜전을 벌였고, 동하의 속임수에 빠진 적들이 스스로 대열을 무너뜨리면서 동하는 겨우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G블록에서는 그 시간을 절반 가까이나 줄였고, E블록에서는 다시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들어서 처음과 비교했을 때 3분에 1로 시간이 대폭 단축된 셈이었다.
적들은 점점 약해지는데 반해 동하는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F블록에서 싸울 때만 해도 남궁혜 등은 동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가만히 있는 게 동하를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건 남궁혜 등도 알고 있어서 그들은 최대한 동하의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 몸을 사려야만 했다.
하나 지금은 다르다.
그들은 동하의 지휘아래 적극적으로 파티 플레이를 펼쳐 나가고 있었다.
인원은 동하와 기계 골렘들까지 일곱 명 밖에 되지 않았지만, 갖출 건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동하는 신성 계열의 힐러 역할을 자처했고, 기계 골렘들은 방어 계열의 능력자처럼 적들의 공격을 맨몸으로 받았다. 그리고 남궁혜와 닌자 종족의 세 명의 사람들이 공격 계열의 딜러가 되어 적들에게 원거리 공격을 펼쳤다.
남궁혜 등은 모두 그들의 종족 내에서는 상당한 고수에 속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파티 플레이는 결코 익숙하지 않았다.
그들은 손발이 맞지 않아서 몇 번이나 삐걱 댔다. 공격이 겹쳐서 오히려 위력이 반감이 되기 일쑤였고, 어쩔 때는 서로 공격할 줄 알고 가만히 있다가 위기에 빠질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동하가 나서서 해결했지만, 지금까지 그들이 익혔던 무공과는 차원이 전혀 다르다 보니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동하는 그들에게 파티 플레이를 하는 방법을 하나둘 가르쳐 주었다. 동하가 무공도 할 줄 알고 닌자의 인술 능력도 뛰어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샤이언 종족이 만든 필드는 1인 훈련체제였다.
파티 플레이를 허락하지 않았고, 가령 운이 좋아 파티를 맺는다 해도 같은 종족에 한해서였다. 지금처럼 동하와 기계 골렘 그리고 무림 종족과 닌자 종족이 한데 뒤섞여 파티 플레이를 한다는 건 차원의 관리자들 외에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들은 동하의 지휘아래 조금씩 적응해 나갔다. 그리고 몇 차례 격전을 치르자 그들은 제법 능숙하게 파티 플레이를 펼쳤다. 동하의 지시가 없어도 각자 알아서 자리를 잡고 때가 되면 공격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동하는 나중엔 자신의 개입을 최소화 했고, 남궁혜 등에게 맡겼다.
모든 시작은 적들이 온몸에 도배하듯 착용했던 아이템이었다.
동하는 차원의 관리자들을 죽이고 아이템을 모두 수거했는데, 이건 완전 전리품 개념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그렇게 얻은 아이템들이 상당했다.
그 중에는 희귀한 것들도 많아서 만물상점에 팔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동하는 그것들 중 일부를 남궁혜 등에게 주고 그들의 능력을 업그레이드 시켜 주었던 것이다.
남궁혜는 새삼 장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온몸에 S급 장비와 A급 아이템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바로 차원의 관리자들이 온몸에 도배를 하듯 착용했던 아이템들이었다.
동하는 그들을 죽이고 아이템을 빼앗았다. 한 마디로 전리품이라 할 수 있었다. 남궁혜는 복합능력자가 아니어서 아무 아이템이고 착용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동하의 손에 죽은 차원의 관리자들은 백 명이나 되었고, 그들 중에 무림 종족의 능력을 이어받은 자들이 몇 명이나 있었던 것이다.
온갖 기연을 만난 기분이 이럴까?
단순히 능력이 몇 단계 업그레이드 된 정도가 아니었다.
남궁혜는 구름 위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토록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차원의 관리자들도 그리 무섭지 않았다. 설령 환골탈태를 했어도 이렇게까지 능력이 높아질 것 같지 않았다.
그건 닌자 종족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몸에도 S급 장비와 A급 아이템로 넘쳐났다.
그들은 처음엔 흥분해서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아이템 하나에 십만 포인트가 훌쩍 넘어가는 엄청나가 고가의 것들이었다. 평소에는 감히 쳐다볼 수도 없었는데, 지금은 온몸에 도배를 하듯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다는 것이 꿈처럼 느껴지지고 있었다.
☆ ☆ ☆
“크아악!”
“으아악!”
D블록에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
적들의 저항은 끈질기게 이어졌지만, 누구도 동하의 앞을 가로막지 못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차원의 관리자들을 죽이고 동하는 광장까지 밀고들어와 순식간에 통제 센터를 장악했다.
동하는 물론이고 남궁혜 등도 머릿속에 온갖 상념이 떠올랐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그들의 손으로 우주 말살 프로젝트에 비수를 꼽는 순간이었다.
만물상점이야말로 우주 말살 프로젝트의 근간이라 할 수 있었다. 단순히 만물상점을 손에 넣은 것이 아니라 샤이언 종족의 야욕을 꺾었다는 점에서 그들은 더 큰 보람을 느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반격의 시작이었다.
만물상점을 손에 넣었으니 샤이언 종족의 문명도 덩달아 손에 넣은 격.
최소한 놈들과 맞서 싸울 수 있는 방법은 해결이 된 셈이었다.
하지만, 아직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었다. 만물상점은 샤이언 종족의 거점 중 하나에 불과하니 말이다.
“아!”
“으음.”
동하 일행은 통제 센터에 들어갔다가 석고상처럼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통제 센터는 텅텅 비어 있었다. 카일과 로이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란테가 이미 통제 센터의 시스템을 파괴하고 중요한 기밀을 복구 불능으로 만들어 놓고 도망친 뒤였기에 난장판으로 변해 있었다.
동하는 한발 늦었다는 생각에 입맛을 다셔야 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던 일이었지만, 이 정도면 천재공학도가 와도 어디가 얼마나 파괴되었는지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카일을 죽이지 못한 것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시스템이 파괴된 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았다.
“과연 복구가 가능할까?”
동하는 한번 해보자는 마음에 매직 카메라와 예측 안경의 능력을 일으켜 통제 센터를 스캔했다.
스스스스.
난장판으로 변한 통제 센터의 모습 위로 조금씩 다른 영상이 겹쳐지기 시작했다.
매직 카메라와 예측 안경의 능력이야 말로 동하가 인정하는 사기 아이템이라 할 수 있었다.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접점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과연 동하의 머릿속에 통제 센터의 이전 모습이 생생하게 밀려 들어왔다.
“샤이언 종족의 행성으로 가는 길목을 차단했군.”
단순히 길목만 차단한 것이 아니었다. 필드로 가는 공간도 사라진 상태였고, 베타테스트 시스템도 무용지물로 변해 있었다. 이젠 한 번만 로그아웃을 하면 두 번 다시 만물상점에 접속할 수 없었다.
역시 쉽지 않았다.
그것들 모두 만물상점을 움직이는 핵심요소들이었다.
이것들 중 하나라도 빠지면 만물상점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나 더 중요한 것은 전부 소프트웨어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었다.
파괴된 외관이나 모니터 등 통제 센터의 모습은 모두 만능의 손으로 복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전부 통제 센터의 겉모습에 불과했다. 매직 카메라와 예측 안경은 외관의 달라진 모습만 보여줄 뿐 소프트웨어 쪽은 전혀 읽어내지 못한다.
동하는 좀 더 집중력을 끌어 올렸다.
혹시 능력을 높이다 보면 소프트웨어 부분도 볼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동하의 눈이 크게 치떠졌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