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 만물상점의 새로운 주인-03 -->
자신보다 강한 고수와의 싸움에서 가장 효율적인 전략을 꼽으라면 절대 빠지지 않는 게 차륜전이다.
차륜전.
이는 일종의 진법이라고 할 수 있다.
차륜전은 적과 싸우는 아군을 계속 바꿔주며 상대가 지치게 만드는 것으로, 고전적이면서도 단순하다.
하지만, 한 번 걸려들면 빠져나오기 힘들 만큼 치명적인 위력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체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체력이 빠지고 숨이 턱밑까지 차면 설령 하늘을 뒤엎는 능력이 있는 전사라도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펼칠 수 없다.
지금 삼십여 명의 차원의 관리자들이 그랬다.
그들은 동하와 기계 골렘들의 체력을 빼놓기 위해 차륜전을 펼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리가 없이 전개가 되는 듯 보였다.
공격과 수비는 물 흐르듯 펼쳐졌고, 각자 주어진 자리에서 동하를 강하게 압박해 들어갔다.
무려 삼십여 명 대 세 명의 대결이었다.
이건 차륜전에 걸려들면 무조건 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하나 이게 웬걸?
체력이 빠지고 점점 지쳐가는 건 차원의 관리자들이었다.
그에 반해 동하와 기계 골렘들은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고, 심지어 남궁혜 등은 옷자락 하나 상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때부터 차원의 관리자들은 멘붕에 빠졌다.
자신들이 파놓은 함정에 자신들이 빠진 격이었다.
이래서는 누가 차륜전을 펼치고 누가 함정에 걸려들었는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겨우 한 사람이 삼십여 명을 상대로 차륜전을 벌이고 있다면 누가 믿으려고 할까?
그들은 뒤늦게 자신들의 상황을 깨닫고 차륜전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차륜전은 한 번 걸려들면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맹점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가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어느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쪽도 와르르 무너진다.
방어력이 약한 신성 계열이 힐러가 빠지면 가장 일선에서 기계 골렘의 공격을 막고 있는 방어 계열의 자들이 전멸할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먼저 몸을 피하면 신성 계열의 힐러는 물론이고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약한 자들인 증폭 계열까지 죽을 게 뻔했다.
“다들 정신 차리지 못해?”
“이제부터 전략을 수정해서 장기전에 돌입한다.”
“증폭 계열은 뭣들 하고 있어. 방어 계열의 능력을 증폭시키는 데 집중한다.”
차원의 관리자들은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동하에게 체력으로 밀리면 그들의 목숨만 장담할 수 없는 게 아니었다.
어쩌면 만물상점의 운명까지도 위태로울 수 있었다.
이제 체력전으로 돌입한 이상 최대한 공격은 자제하고 방어에 치중하는 게 정답이었다.
하나 그게 치명적인 판단 미스라는 걸 깨닫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동하가 처음부터 원하던 전개 방향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적들이 수비에 집중하면 동하가 더 이상 기계 골렘들 옆에서 힐을 보내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는 건 동하의 움직임에 봉인이 해제되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스스슥!
동하는 즉시 공간이동을 사용해 적들의 대형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일고의 망설임도 없이 신성 계열의 힐러들을 공격했다.
신성 계열이 적들의 중심이자 핵이었다.
일단 신성 계열의 힐 능력만 봉인하면 적들의 전력을 절반가량 가까이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신성 계열은 공격 성향도 약하고 방어력 측면에서도 보잘 것이 없었다.
그들의 옆에는 방어 계열과 공격 계열의 능력자들이 지켜 주어야 하지만, 지금은 전부 기계 골렘들과 싸우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공격 계열은 당장 놈을 막아.”
“일단 검술로 놈의 발부터 묶어.”
“마나로 보조를 하고 염력으로 놈을 공격한다.”
공격 계열의 능력자들은 모두 10명이었다.
그들이 다급하게 소리를 지르며 동하를 향해 달려들었다.
“교활한 놈.”
“신성 계열의 능력자들에게 떨어지지 못할까?”
그들의 협력 플레이는 완벽했다.
가장 먼저 A급 아이템인 청풍명월검에 이기어검의 수법이 담겨 동하의 등짝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 뒤를 7서클 마법과 염력의 기운이 덮쳐왔다.
어느 하나를 피한다고 그들의 공격을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동하는 신성 계열의 능력자들을 공격하던 것을 포기했다.
순서에 차이는 있지만 동하가 신성 계열의 능력자들을 죽인다면 동하 역시 고스란히 상대의 공격을 맨몸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동하는 음양조화선풍신무를 일으켜 한 손으로는 무공을 펼쳐 적들의 공격을 막았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염력을 일으켜 눈앞의 공간을 왜곡시켰다.
순간 밀려오던 7서클 마법이 왜곡된 공간으로 인해 다른 방향으로 튕겨져 나갔다.
그렇게 동하가 적들의 공격을 하나둘 파훼하고 무력화시킨 것은 눈 깜짝할 사이였다.
하지만, 어느새 동하는 열 명의 공격 계열의 능력자들에게 갇히고 말았다. 그들 뒤에는 신성 계열의 힐러들이 자세를 잡고 언제들 힐을 전해줄 태세였다.
“흐흐, 네놈은 우리들 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멍청한 놈. 이곳을 네놈의 무덤으로 만들어주마.”
이제 주도권은 그들의 손에 들어온 셈이었다. 신성 계열의 힐러들도 구하고 동하도 포위했으니 완벽한 그들의 승리였다.
☆ ☆ ☆
씨익!
동하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도저히 적들에게 갇힌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적들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렇다고 동하에게 딱히 묘안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네놈은 반드시 죽는다.”
“후후. 과연 그럴까?”
“무슨 헛소리냐?”
“저쪽 상황은 조금 다른 거 같은데?”
“응?”
그들 일곱 명이 무심코 동하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큭!”
“으윽!”
방어 계열의 능력자들 쪽에서 연이어 둔탁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지금 기계 골렘들에게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기계 골렘들의 파상공세였다.
기계 골렘들은 반격을 당할 걱정 없이 마음 놓고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쾅쾅!
총알과 유탄이 비 오듯 쏟아졌고, 견고하던 방패와 아이템들 사이에 쩍쩍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공격 계열의 능력자들이 간간히 반격을 해줄 때보다 온몸에 가해지는 데미지가 몇 배는 더 쌓이고 있었다.
그나마 증폭 계열의 능력자들이 계속 방어력을 증폭시켜 주어서 그럭저럭 버티고 있었지만, 정작 증폭 계열은 급속도로 체력이 빠져 나갔다.
공격 계열의 능력자들이 대열에서 이탈한 것이 화근이었다.
자고로 공격이 최상의 방어라는 말도 있다.
이따금씩 가해지는 반격이 지금까지 기계 골렘의 발목을 잡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사라지자 완전히 기계 골렘의 세상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서, 설마?”
그제야 적들은 동하의 속임수에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하의 목표는 신성 계열의 힐러를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
적들의 대열에 균열을 일으켜 힘을 분산시키는 것이 핵심이었다.
동하의 작전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적들은 뒤늦게 수습을 하려고 했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크아악!”
“으아악!”
만물상점에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가장 먼저 나가떨어진 건 방어 계열의 능력자들이었다.
그들이 피를 뿌리며 뒤로 튕겨져 나가자 기계 골렘들은 곧바로 증폭 계열의 능력자들을 공격하며 앞으로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증폭 계열은 그나마 공격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옆에서 다른 계열의 능력을 증폭시켜 주는 쪽에 특화되어 있다 보니 정작 자신의 공격 능력은 그리 높진 않았다.
“으으.”
판단 미스 하나가 결정타였다.
여기서 증폭 계열까지 무너지면 그때는 더 이상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공격 계열의 능력자들이 그들을 도우려고 움직였다.
동하는 그럴 줄 알고 재빨리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네놈들은 내 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미친 놈.”
“후후. 이곳을 네놈들의 무덤으로 만들어주마.”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였다.
이는 바로 그들이 동하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들은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었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더욱 초조해졌다.
어떻게든 동하의 손에서 벗어나 증폭 계열의 능력자들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동하가 전력을 당해 공격을 펼쳐대자 그들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열 명의 능력자들 중에서 동하의 손에서 벗어난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가슴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지금 다른 자들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정신을 집중하고 모든 능력을 쏟아내도 동하를 상대하기 버거웠던 것이다.
‘도대체 이놈의 몸에 몇 개의 복합능력이 있단 말인가?’
차원의 관리자들은 복합능력을 갖기 이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능력이 높아진 상태였다.
한데 10명이 달라붙었는데도 이 정도라니.
그들은 기계 골렘보다 동하가 더 무섭게 느껴졌다.
그렇게 동하의 손에 발이 묶여 옴짝달싹 하지 못할 때였다.
“케에엑!”
“크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만물상점의 하늘을 뒤흔들었다.
증폭 계열의 능력자들이 어느새 기계 골렘의 발에 짓밟히고 주먹에 온몸이 으스러져 죽어가고 있었다.
☆ ☆ ☆
F블록의 길목을 지키던 차원의 관리자들이 무너졌다.
삼십여 명 중에 살아남은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G블록 역시 얼마 버티지 못했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기계 골렘들은 샤이언 종족이 만든 거 아니었어?”
“한데, 왜 저것들이 차원의 관리자들을 죽이고 있는 거냐고?”
만물상점이 발칵 뒤집어졌다.
각 블록에서 쇼핑을 즐기던 테스터들은 엄청난 혼란에 빠졌다.
그들은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F블록에서 대항 세력들을 잡기 위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이미 통제 센터에서 알려줘서 알고 있는 일이었다.
원래 카일은 테스터들에게 샤이언 종족에게 대항하는 자들이 어떻게 되는지 경고하는 차원에서 똑똑히 보여줄 생각이었다.
때문에 F블록만 출입을 통제했을 뿐, 다른 블록에서는 여전히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연이은 폭음 소리와 지축을 뒤흔드는 격렬한 진동에 쇼핑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결국 그들은 쇼핑보다 F블록에서 벌어지는 전투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처음에는 싸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샤이언 종족이 필드에 있는 괴수보다 더 강력한 것들을 만들었다는데, 아무리 대항세력의 능력이 강해도 절대 상대가 될 리 없었다.
“금방 끝나겠군.”
속으로는 불쌍한 생각도 들었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행성을 잃고 가족과 친구들이 노예로 끌려갔으니 대항 세력을 응원하는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차원의 관리자들의 잔인한 행동을 떠올리면 보복이라도 당할까 두려워 감히 겉으로 내색하지 못할 뿐이었다.
한데, 결과는 그들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F블록에 이어 G블록이 박살이 났고 동하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이것으로 차원의 관리자들에게 비상이 생긴 건 확실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기계 골렘이었다.
동하를 죽이려고 만들었다는 기계 골렘이 되려 동하의 수족 노릇을 하고 있으니 두 눈을 의심할 판이었다.
“그나저나 저 청년이 소문의 복합능력자인가?”
“얼굴이 벽보에 붙여진 사진하고 똑같군 그래.”
“얼핏 듣기로는 카일이 저 청년을 잡기 위해 오랫동안 함정을 파놓고 덫을 놓았다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이건 왠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었다.
동하가 덫을 놓고 카일이 함정에 빠진 것 같았다.
자신들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그들은 차원의 관리자들이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린 걸 본 적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동하를 도와 차원의 관리자들에게 맞서고 싶었다. 아니 적극적으로 대항 세력을 돕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은 쉽게 마음을 결정하지 못했다.
아직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이 샤이언 종족의 손에 노예로 잡혀 있기 때문이었다.
☆ ☆ ☆
“G블록이 무너졌습니다.”
“E블록의 경계망은 붕괴 직전입니다.”
“이제 D블록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통제 센터의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E블록까지 무너지면 이제 통제 센터가 있는 중앙 광장은 사정거리 안에 들어온다고 보면 된다.
통제 센터는 만물상점과 관련된 온갖 기밀이 담겨 있는 곳으로 이곳마저 빼앗기면 샤이언 종족의 기술과 문명이 절반 넘게 동하의 손에 넘어가는 셈이었다.
그래서였다.
카일은 동하를 막기 위해 차원의 관리자를 100명이나 투입했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
그 결과가 바로 E블록의 붕괴였다.
오히려 동하의 손에 무너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만물상점이라 해도 S급이나 A급 아이템은 한계가 있었다.
처음 삼십여 명은 든든한 지원 속에 S급이나 A급 아이템으로 온몸을 도배할 수 있었지만, 그 다음부터는 한 단계 낮은 아이템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대장님, D블록도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젠장.”
카일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인생에서 이런 굴욕적인 패배는 처음이었다.
그의 손에 백 명도 넘는 수하가 있는데도 끝내 동하 한 명을 막지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