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 만물상점의 새로운 주인-01 -->
프로그램 해킹.
동하가 생각한 것은 기계 골렘을 지배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해킹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기계 골렘들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동하는 천군만마를 얻게 될 터였다.
이전 생애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기계 골렘들은 7성급 몬스터에 비해 많이 약하다.
하지만, 기계 골렘들은 자신들의 신체를 액체로 변형시켜서 도저히 파괴가 되지 않는다.
이는 이전 생애에 어떤 괴수들도 갖지 못한 것으로 불사지체와는 또 다른 능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동하가 가장 주목한 것이 바로 액체 능력이었다.
자신도 기계 골렘들을 쉽게 죽이지 못한다면 샤이언 종족들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그건 앞으로 샤이언 종족이 만들어 내는 괴수들 역시 마찬가지일 터.
무조건 기계 골렘들의 프로그램을 해킹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이유였다.
과연 그게 가능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일이었다. 동하에겐 복사 능력이 있기에 기계 골렘들의 프로그램 전체를 복사한 다음 명령체계만 살짝 바꾸어 놓으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동하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두 개의 기계 골렘을 상대하면 아무래도 프로그램을 해킹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다행히 다크 기계 골렘이 타깃 설정을 자신이 아닌 남궁혜 등으로 바꾸었고, 동하는 은빛 기계 골렘 하나만 상대할 수 있게 된 상태였다.
하지만, 남궁혜 일행이 문제였다.
동하가 프로그램을 해킹하기 전까지는 남궁혜 일행을 도와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였다.
동하는 자신이 강화한 무기를 그들에게 건네준 건 어떻게든 스스로 살아남으라는 무언의 표현이었던 것이었다.
“다들 3분만 버텨 주십시오.”
동하는 남궁혜 등을 사지로 밀어 넣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하나 남궁혜 등은 결연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우린 걱정하지 마세요.”
“3분이 아니라 30분도 버틸 수 있습니다.”
호기롭게 대답하긴 했지만, 사실 1분이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단순히 도망 다니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기계 골렘들의 움직임이 빨라서 오히려 남궁혜 일행을 압도하는 형국이었다.
어쩌면 10초도 버티지 못하고 모두 전멸할 수 있었다.
켄지는 고심 끝에 타쿠마를 향해 말했다.
“내가 먼저 놈의 시선을 끌고 최대한 먼 곳으로 유인을 할 테니까 그 다음에는 자네가 맡게.”
켄지는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이미 살만큼 산 켄지였다.
목숨에 미련 같은 건 없었다.
3분을 버티려면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만 했다.
켄지는 자신의 희생으로 동하가 대업을 완성할 수 있다면 몇 번이라도 더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 장로님…….”
미처 타쿠마의 대답이 나오기도 전이었다.
츠츠츠.
켄지가 가벼운 주문과 함께 분신술을 펼쳤다.
순간 그의 신형은 열두 개로 늘어나는 것이 아닌가?
닌자 종족의 능력 중 하나인 분신술은 극상승 절기였다.
분신술은 익히는 것도 어렵지만, 엄청난 정신력도 필요하기 때문에 대성하기도 힘든 절기였다.
닌자 종족 중에서 열두 개의 신형을 만들어 내는 건 켄지가 유일했다.
열두 개의 신형이 빠른 속도로 움직여 다크 기계 골렘을 에워쌌다.
모두 똑같이 생겨서 누가 진짜 켄지이고 어떤게 가짜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차앗!”
열두 개의 신형이 일제히 다크 기계 골렘을 향해 암기를 던졌다.
결코 환영이나 착각이 아니었다.
켄지는 한 명이고 나머지 열 한 개의 신형은 모두 분신이었지만, 그들이 던진 암기는 모두 진짜였다.
그것이 진정한 분신술의 무서운 위력이었다.
단순히 분신으로 생각하고 방심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콰콰쾅!
수많은 암기들이 다크 기계 골렘을 폭격했다.
동하가 건네준 암기였기에 아까 켄지가 자신의 암기로 공격했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다크 기계 골렘의 거대한 몸이 살짝 흔들렸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놈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켄지의 분신들을 쳐다보았다.
일단 켄지의 의도대로 다크 기계 골렘의 시선을 끈 것은 성공이었다.
켄지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놈을 멀리 유인하려고 했다.
하지만, 놈은 어떤 게 진짜 켄지이고, 어떤 게 분신인지 굳이 확인하려 들지 않았다.
드르륵!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놈의 두 팔이 총으로 변했다.
총알 하나가 어지간한 포탄보다 크기가 더 컸다.
다크 기계 골렘이 총을 난사하자 분신들이 하나둘 연기를 내뿜으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분신들이 몸을 날려 피해 보았지만, 놈의 움직임은 더 빨랐다.
오래지 않아 모든 분신이 사라지고 마지막 하나의 신형만이 남아 있었다.
그것이 진짜 켄지였다. 그야말로 눈 깜짝 할 사이였다. 켄지는 분신술을 펼치면 적어도 1분 정도는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겨우 10초가 한계라니.
이건 황당하다 못해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닌자 종족의 상승 절기라는 분신술이 이토록 허무하게 깨질 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이래서는 놈을 먼 곳으로 유인할 수조차 없었다.
다크 기계 골렘은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계획은 실패였다. 어쩌면 3분을 버티기는커녕 30초 안에 모두 전멸할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켄지가 두 눈을 감았다.
이젠 피하고 싶어도 놈의 조준을 피할 수 없었다.
그렇게 다크 기계 골렘이 과녁을 조준하고 켄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이었다.
남궁혜가 재빨리 뛰어 들어 다크 기계 골렘의 다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사사삭!
세찬 검풍과 함께 남궁혜의 손끝에서 남궁세가의 절초들이 연이어 펼쳐지기 시작했다.
동하가 건네준 검은 천하의 그 어떤 명검이나 보검보다 날카로웠다. 남궁혜는 평소보다 더 남궁세가의 절초들 안에 힘이 실려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똑같은 초식을 펼쳐도 어떤 검을 들고 있느냐에 따라 그 위력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는 법이다.
‘이 검이라면 어쩌면 놈의 다리를 벨 수 있을지도…….’
지금 같아서는 하늘이라도 벨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을 믿고 더욱 과감하게 검을 휘두른 남궁혜였다.
슈걱!
과연 그녀의 검이 다크 기계 골렘의 다리를 깊게 파고들었다.
목숨을 도외시한 채 검을 휘두른 효과는 탁월했다.
놈의 신형이 크게 휘청거렸고, 그 순간 총구에서 불꽃이 뿜어졌다.
타탕!
“큭!”
켄지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의 팔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놈이 쏜 총에 켄지는 어깨서부터 싹둑 잘려져 나갔던 것이다.
하지만, 그야말로 천운이라 따랐다고 할 수 있었다.
남궁혜가 조금만 늦게 뛰어들었다면 날아간 것은 켄지의 팔이 아니라 그의 심장이었을 것이었다.
“크아앙!”
놈이 무섭게 포효했다.
켄지를 죽이지 못한 것보다 남궁혜의 검에 자신의 다리가 길게 베어졌다는 것에 더 분노하고 있었다.
촤아악!
놈이 다리를 들고 남궁혜를 짓밟으려 했다.
하나 이번엔 타쿠마가 목숨을 도외시한 채 놈의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다크 기계 골렘을 공격했고 가까스로 남궁혜를 향해 있던 놈의 시선을 자신에게 옮기는 데 성공했다.
“아악!”
남궁혜는 놈의 발길질에 뒤로 튕겨져 나갔지만, 다행히 검을 바싹 끌어당겨 막는 바람에 중상을 입는 건 막을 수 있었다.
울컥!
그녀의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지만, 아직 쓰러질 때는 아니었다.
이제 겨우 20초 정도가 지났을 뿐이었다.
그녀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자 이번엔 타쿠마가 피를 뿌리며 나가떨어졌다.
대신 타쿠마가 서 있던 반대쪽 방향에 미오가 서 있었다.
그녀도 오래지 않아 부상을 당했지만, 시기적절한 타이밍에 켄지가 뛰어드는 바람에 죽음을 모면할 수 있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남궁혜와 켄지, 그리고 타쿠마와 미오는 개개인의 능력으로는 다크 기계 골렘의 손에 10초 이상 버티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도외시한 채 달려들자 30초가 50초가 되었고, 다시 1분에서 2분으로 변했다. 그 사이에 남궁혜 등은 몇 번이나 더 몸에 상처를 입었고, 온몸이 피로 얼룩진 상태였다.
몇 번은 더 쓰러지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나 그들은 서로가 목숨을 걸고 도와주는 바람에 기적 같은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 ☆ ☆
남궁혜 등이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이고 있는 그 시각.
동하는 프로그램 해킹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동하는 주어진 시간이 3분밖에 없다는 생각에 처음부터 공력을 극성으로 끌어 올려 최대한 빨리 은빛 기계 골렘을 쓰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두 팔과 두 다리를 잘라내 놈을 무력화시켰다.
여기까지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아무리 놈이 탁월한 재생능력을 발휘해서 잘려져 나간 두 팔과 두 다리가 정상으로 돌아온다 해도 동하는 그때마다 계속 놈의 팔과 다리를 잘라버렸다.
놈은 자신의 시스템을 장악하고 프로그램을 해킹하려는 동하를 막을 수 없었다.
문제는 란테가 뒤늦게 동하의 의도를 눈치 채고 재빨리 방어벽의 보안 프로그램을 강화했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부터 전쟁의 시작이었다.
란테는 끊임없이 동하의 침입을 막으려고 방어벽의 등급을 높였고, 동하는 새롭게 설정된 비밀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공격해 들어갔다.
긴박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방어벽을 뚫고 은빛 기계 골렘의 시스템을 장악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동하는 매직카메라와 예측 안경. 그리고 만능의 손과 음양조화선의 능력까지…….
모든 능력을 동원해 은빛 기계 골렘의 구조와 설계를 파악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기계 골렘은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였고, 오래지 않아 동하의 머릿속으로 모든 구조와 설계가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젠 기계 골렘을 만든 시얀보다 더 정확한 놈들을 꿰뚫게 된 동하였다.
아마 시간이 좀 더 있다면 동하는 여유 있게 놈의 시스템을 장악하고 프로그램을 해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 시간이 없었다.
어느새 시간은 2분을 넘어가고 있었고, 남궁혜 일행은 만신창이로 변한 상태였다.
“으음.”
동하는 최후의 방법으로 모험을 걸 수밖에 없었다.
동하는 은빛 기계 골렘의 능력을 자신의 몸 안으로 흡수했다.
자칫 잘못하면 은빛 기계 골렘의 프로그램이 동하의 몸속으로 흘러들어올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란테가 동하의 몸속에 있는 프로그램을 해킹하려 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남궁혜 등이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이는데 동하라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거대한 기계 골렘의 몸 안에서 능력을 빼오는 것만도 시간이 만만치 않았지만, 순식간에 동하의 몸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란테는 이런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이게 뭐지?”
갑자기 기계 골렘의 프로그램이 외부로 빠져나가 다른 곳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란테는 혹시 동하가 자신을 유인하려고 술수를 부리는 건 아닌지 착각마저 들었다.
란테는 일단 대응을 멈추고 잠시 추이를 지켜보았다.
하나 그게 엄청난 실수였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계 골렘의 프로그램이 빠져나간 곳은 외부 공격이 시작되고 있는 동하의 몸속이기 때문이었다.
“저, 저놈이 설마 기계 골렘의 프로그램을 흡수할 수도 있었단 말인가?”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무슨 놈의 인간이 저럴 수가 있단 말인가.
설마 거기에서 은빛 기계 골렘의 능력을 몽땅 흡수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란테는 뒤늦게 기계 골렘의 프로그램을 추적해서 동하의 몸속으로 파고들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동하가 은빛 기계 골렘의 능력을 모두 흡수하고 프로그램을 장악하고 난 뒤였다.
“으으.”
란테는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이젠 상황이 반대로 변했다.
동하가 방어벽을 치고 해킹해 들어오려는 란테의 공격을 막았다.
그와 동시에 동하는 명령체계를 바꾸는데 성공을 해서 기계 골렘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제 동하에게 충실하면서도 믿음직스러운 수하가 생긴 것이다.
“좋아, 이제부터 네놈들 차례다.”
받은 대로 돌려준다.
동하는 은빛 기계 골렘 안으로 빼앗았던 능력을 되돌려 주었다.
☆ ☆ ☆
“이런, 젠장.”
란테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완패도 이런 완패가 없었다. 란테는 도저히 자신의 패배를 인정할 수 없었다.
한편, 아까부터 옆에서 란테를 지켜보던 카일과 로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인가?”
“난데없이 방어벽의 등급을 왜 높이는 건가?”
“그, 그게…… 놈에게 그만 기계 골렘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뭐, 뭐라고?”
“놈이 기계 골렘을 해킹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이런 멍청한 놈. 그런 중요한 사안을 왜 지금에야 이야기를 하는 것이냐?”
카일은 화가 치민 나머지 막말이 쏟아냈다.
란테가 미리 말을 했다면 그들이 현장에 나가서 동하의 행동을 방해했을 것이었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허무하게 기계 골렘을 동하에게 빼앗기는 일은 없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