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화 : 기계 골렘-01 -->
동하는 자신들이 감시를 당하고 있다는 걸 간파했다.
어떻게 자신들의 정체가 발각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처음부터 적이 파놓은 함정에 빠졌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래도 카일이 자신을 잡기 위해 치밀하게 덫을 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남궁혜와 만났을 때나 닌자 종족과 접선을 가졌을 때도 적들은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었다. 그렇다는 건 자신을 잡는 것과 심해의 구슬에 대한 행방을 찾는 것.
카일의 의도는 두 가지 모두인 것 같았다.
“모두 조심하십시오.”
“공자님, 무슨 일이에요?”
“아무래도 함정에 빠진 것 같습니다.”
“예에?”
모두가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려보았다.
수상한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긴장의 끈을 풀지는 않았다.
카일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동하의 능력은 이미 충분히 인정하고 있는 바였다.
하나 음성 주파수를 감지하고 감시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대단하군. 정말 놀라운 감각이다.”
적이지만 이때만큼은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심해의 구슬에 대한 단서를 알아내기 직전에 동하가 켄지의 입을 막은 건 못내 아쉬운 일이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단서는 알아낸 셈이니 아예 헛수고한 것만은 아니었다.
“란테, 지금 당장 시스템을 가동하게.”
“예, 대장님.”
“켄지라는 늙은이만 살려두고 나머지는 모두 죽여도 좋다.”
카일은 켄지에게 자백 포션을 사용해서 심해의 구슬을 알아낼 생각이었다.
그렇게 카일의 입에서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란테는 기다렸다는 듯 시스템을 가동했다. 꺼져 있던 화면에 다시금 불이 들어오고 동하 일행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하늘이 일렁거리며 거대한 공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만물상점에 번개가 치고 천둥이 들려왔다.
쇼핑을 즐기던 테스터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건 남궁혜 등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보는 순간 공간 안에서 10미터가 넘는 거대한 골렘이 떨어져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쿠쿵!
동하 일행은 재빨리 옆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바닥이 푹 주저앉고 땅이 들썩거렸다.
기계 골렘이야말로 시얀이 만든 첫 번째 작품이었다.
놈은 단순히 키가 크고 덩치만 엄청난 골렘이 아니었다.
온몸이 은빛 강철인 미스릴로 되어 있었고, 기계 종족의 능력을 이식해서 두 팔을 원하는 무기로 바꿀 수도 있었다.
칼과 기관총, 망치와 대포 등 그 종류도 다양했다.
게다가 거인의 힘과 불사지체까지…….
처음으로 세 가지 이상의 복합능력을 소유한 몬스터이기도 했다.
“맙소사.”
“세상에…….”
남궁혜와 닌자 종족의 사람들은 기계 골렘의 압도적인 위용에 할 말을 잃었다. 기계 골렘은 지금까지 그들이 필드에서 경험했던 괴수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온몸이 기계로 된 괴수는 그야말로 처음 접하는 미지의 세계였던 것이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기계 골렘의 온몸을 감싸고 있는 은빛 강철인 미스릴은 무림 종족과 닌자 종족에겐 생소한 것이었다. 이는 판타지 종족에만 있는 전설적인 광물로 철보다 훨씬 단단한 최상위 광물이었다.
“이, 이건……?”
놀라기는 동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계 골렘은 이전 생애에서 4차 침공 때에나 등장하는 5성급 몬스터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에는 동하도 무기 공장에 취직을 해서 한창 무기를 만들고 있을 때였다. 때문에 괴수들의 특성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동하의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미스릴로 만들어진 몸체는 그 어떤 방어막보다 더 강하고 단단했고, 각종 무기로 변신하는 두 팔은 치가 떨리도록 무서운 것이었다.
“거인의 힘도 지녔었지, 아마.”
당시 기계 골렘은 그 두 가지 만으로도 인류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수많은 능력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동하는 이마저도 확신하지 못했다.
이전 생애와는 다르게 너무 빠르게 앞서가는 샤이언 종족의 기술력에 동하는 일말의 두려움마저 들었다.
☆ ☆ ☆
란테는 기계 골렘의 머릿속에 프로그램을 전송하고 타깃을 설정했다.
순간 기계 골렘의 두 눈에서 붉은 빛이 번쩍 떠오르며 동하와 남궁혜 등을 노려보며 스캔하기 시작했다.
[타깃 설정]
F블록에 있는 수많은 테스터들이 있었지만, 놈의 눈에는 오직 동하와 남궁혜 등의 모습만 보였다. 덕분에 다른 테스터들은 비명을 지르며 모두 다른 곳으로 도망을 치거나 달아난 상태였고, 심지어 매장의 직원들까지 보이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F블록에는 동하와 남궁혜 일행만 남아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기계 골렘이 거대한 발을 들고 동하 일행이 있는 곳을 짓밟았다.
고작 발 한 짝에 불과했지만, 놈의 워낙 발이 크다 보니 동하 일행을 모두가 기계 골렘의 발아래 들어온 꼴이었다.
“헉?”
남궁혜와 닌자 종족의 사람들은 모두 일신에 비범한 능력을 지닌 테스터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이 튀어 나오고 말았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10미터가 넘는 거대한 체구를 지닌 기계 골렘은 믿기지 않을 만큼 엄청난 속도로 발을 움직여 동하 일행을 공격했던 것이다.
쿵!
남궁혜와 닌자 종족의 사람들은 바닥을 굴러 가까스로 놈의 발을 피했다.
바닥에 또 다시 충격이 전해지고 지진이 일어난 듯 들썩거렸다.
동하는 어렵지 않게 놈의 발을 피했지만, 반격은 하지 않았다. 일단 놈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기계 골렘은 동하가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놈의 머릿속에는 오직 전투와 살육 그리고 파괴와 관련된 프로그램이 깔려 있어서 동하가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드르륵!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어느새 놈의 주먹이 거대한 망치로 변해 있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놈은 망치로 변한 팔을 하늘 높이 치켜 올렸다가 동하를 향해 강하게 내리 찍었다.
쐐애액!
망치가 다가오기도 전에 세찬 바람이 무시무시한 살기로 변해 동하를 향해 밀려들어왔다. 바람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져 나갈 것 같았다.
대단한 위력이었다.
이게 과연 이전 생애에서 5성급 몬스터였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동하는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그는 두 팔에 실드를 걸고 기계 골렘의 망치를 막아갔다.
쾅!
동하의 팔과 기계 골렘의 망치가 부딪치는 순간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으윽!”
강한 충격에 동하의 한쪽 무릎이 구부러졌다.
동하의 실드는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탁월한 능력이 있었지만, 기계 골렘의 힘은 무지막지했다. 동하는 놈의 망치에서 전해지는 충격에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다.
하지만, 동하는 잠시도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드르륵!
또 다시 톱니바퀴가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기계 골렘의 다른 쪽 팔이 단단한 주먹으로 변해 있었다.
휘익!
세찬 바람과 함께 기계 골렘의 주먹이 동하를 향해 밀려들어왔다.
그건 거친 파도와도 같았다.
거대한 유조선조차도 한 번에 뒤집는 파도처럼 기계 골렘의 주먹은 무시무시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동하는 거인의 힘을 최대한 끌어 올리고 자신의 몸에 실드까지 걸었다.
펑!
주르륵!
동하의 몸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미끄러졌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지만, 그때는 이미 열 발 이상 뒤로 물러난 상태였다.
그에 반해 기계 골렘의 몸은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선 게 전부였다.
하나 그것만으로도 기계 골렘은 잔뜩 화가 치밀었다.
새빨갛던 놈의 눈빛이 더욱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씩씩 거리며 동하에게 다가와 오른쪽 발을 치켜 올렸다. 그것으로 동하를 잔인하게 짓밟아 죽일 작정이었다.
“공자님.”
“위험해요.”
남궁혜와 닌자 종족의 사람들이 일제히 기계 골렘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남궁혜의 검에서 검기가 뿜어져 나왔고, 닌자 종족의 사람들은 각종 암기를 퍼부었다.
기계 골렘에게 타격을 주지는 못해도 약간은 시간을 끌어 동하가 몸을 피할 수 있는 시간은 벌어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게 웬걸?
기계 골렘은 그들을 향해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건 다른 게 아니라 처음부터 란테는 제1의 타깃으로 동하를 설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였다.
기계 골렘은 첫 번째 공격으로 남궁혜 등을 동하와 떨어뜨려놓은 다음 재빨리 두 번째 세 번째 공격을 이어갔던 것이다. 무조건 동하를 죽여야 다음 타깃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과연 남궁혜의 검기와 닌자 종족의 각종 암기들은 기계 골렘의 몸에 부딪쳤지만,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와 때를 같이 해서 기계 골렘의 발이 사나운 기세로 동하를 짓밟았다.
쐐애액!
“흥.”
한 번 당하지 두 번은 안 당한다.
동하는 이번엔 공력으로 맞서갔다. 기계 골렘은 본래 가진 힘이 엄청난 상태에서 거인의 힘까지 가지고 있어서 도저히 거인의 힘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텅!
기계 골렘의 발이 동하의 팔에 막혀 머리 바로 위에서 뚝 멈춰졌다.
기연을 통해 12성으로 대성한 공력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토록 무시무시했던 기계 골렘의 힘도 공력 앞에서만큼은 통하지 않았다.
동하가 두 손으로 기계 골렘의 발을 잡고 번쩍 들어 올렸다.
순간 백 톤도 더 나갈 것 같던 기계 골렘의 몸을 서서히 들려 올리는 것이 아닌가?
놈이 허우적거리며 동하를 잡으려고 했지만, 어림없는 수작이었다.
동하는 이내 기계 골렘의 다리를 잡고 있던 팔에 힘을 주고 허공에 빙글빙글 돌렸다.
거대한 기계 골렘의 몸이 허공에 휙휙 돌아가는 모습은 장관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동하는 기계 골렘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쾅! 콰르릉!
엄청난 충격이 바닥을 타고 F블록 전체로 퍼져 나갔다.
기계 골렘의 머리와 상체가 땅 속 깊이 처박혔고, 두 다리는 하늘 높이 쳐들려져서 꼴사나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 ☆ ☆
“세상에.”
“말도 안 돼.”
닌자 종족의 사람들은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동하의 저 모습이 어디 인간이란 말인가?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자신들의 공격은 귀찮은 파리 정도로도 생각하지 않던 기계 골렘이 동하의 공격 한 번에 나가떨어진 건 충격 그 이상이었다.
놀라기는 남궁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이미 동하의 능력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힘에서조차 기계 골렘에게 거의 밀리지 않을 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카일은 잠시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건 강해도 너무 강하지 않은가?
아니, 어쩌면 시얀이 만든 기계 골렘이 보기보다 너무 약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수는 없었다.
“어이, 란테. 설마 이게 전부는 아닐 테지.”
카일의 목소리가 그리 좋지 않았다.
란테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시얀 박사님께서 보내주신 기계 골렘은 한 구가 더 있습니다. 그리고 기계 골렘은 불사지체를 가지고 있어서 결코 쉽게 죽지 않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시얀이 동하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이 문제였다.
시얀은 기계 골렘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동하를 죽일 수 있을 줄 알았다.
기계 골렘은 현존하는 샤이언 종족 문명의 결정체라 할 수 있었다.
그만큼 시얀은 자신이 만든 기계 골렘의 능력이나 성능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란테는 즉시 마지막 하나의 공간마저 열었다.
하늘에서 또 하나의 기계 골렘이 떨어져 내렸다. 이번엔 온몸이 검은색으로 된 기계 골렘이었다.
놈은 먼저 기계 골렘이 그랬던 것처럼 붉은 눈동자로 동하 일행을 쏘아보며 스캔을 했고, 타깃을 설정했다.
남궁혜와 닌자 종족의 사람들은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산 너머 산이라더니 또 하나의 기계 골렘이 나타날 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드르륵!
땅 속 깊이 처박혀 있던 기계 골렘에서 특유의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 곁눈질로 그쪽을 쳐다보는 순간이었다.
다리 사이에 머리가 생기더니 번쩍 하고 빨간색 눈동자가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하늘 높이 치켜 올라갔던 두 다리가 어느새 팔로 변해 있었고, 땅속 깊이 처박혀 있던 두 팔과 상체는 다리와 하체로 변했다.
놈은 눈 깜짝할 사이에 상체와 하체의 위치를 바꾸었던 것이다.
기계 골렘이 두 팔로 바닥을 짚고 땅 속에 처박혀 있던 다리와 하체를 끄집어내고 땅위로 올라섰다.
‘그렇군.’
동하는 이제야 확실히 알 것 같았다.
놈들은 이전 생애에 비해 불사지체의 능력까지 가지고 있었다.
확실히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어느새 동하 일행은 은빛 강철의 기계 골렘과 다크 강철의 기계 골렘에게 포위된 형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