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화 : 세 번째 원소-04 -->
만물상점에 먼저 접속한 사람은 남궁혜였다.
하지만, C블록에 도착해서 기다린 사람은 오히려 동하였다.
동하는 차원이동으로 곧장 C블록으로 날아왔던 것이다.
그에 반해 남궁혜는 만물상점에 접속하면 입구에서 인증절차를 거쳤고, A블록을 지나 C블록으로 걸어와야만 했다.
남궁혜는 평소에도 경계심이 많은 편이었지만, 오늘은 좀 더 신경을 써서 주변을 경계하고 살펴보았다.
“다행이네.”
만물상점의 분위기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특별히 의심이 가는 부분은 없었다.
블록과 블록이 만나는 지점에는 어김없이 차원의 관리자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고, 의심이 가는 테스터들을 상대로 인증절차를 거쳤다.
일전에 동하가 만물상점을 쑥대밭으로 만든 이후 경계가 조금 더 강화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남궁혜는 이 정도 수준의 경계라면 충분히 닌자 종족들과 접선을 갖고 원하는 정보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동하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동하는 곧장 C블록으로 날아왔기 때문에 만물상점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볼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하나 동하가 C블록을 잠시 돌아본 결과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내심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 분명 그날 이후 나를 잡겠다고 만물상점이 발칵 뒤집어질 줄 알았는데…….’
카일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만한 인물이다.
사실 만물상점이 리뉴얼을 하게 된 이유는 동하를 잡기 위해서였다.
만물상점의 경계가 한층 강화된 것도, 그리고 차원의 관리자들의 능력을 대폭 높아지게 된 이유도 결국엔 동하 때문이지 않던가?
동하는 뭔가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머릿속에 짚이는 것이 있는 건 아니었다.
“공자님.”
그때, 남궁혜가 미소를 지으며 동하에게 다가왔다.
동하는 다른 사람으로 변장을 하고 있었지만, 이미 남궁혜에게 변장할 사람의 얼굴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녀는 어렵지 않게 동하를 찾을 수 있었다.
“A블록이나 B블록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요.”
“흐음. 그렇군요.”
어쩌면 동하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해서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만사불여튼튼이라 했다.
매사에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동하는 야수종족의 감각을 극도로 끌어 올렸다.
동물적인 감각은 인간보다 수십배 발달해 있어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면 바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동하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는 12성까지 올라선 공력을 극한으로 끌어 올려 주변의 동정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그래도 별다른 이상이 없자 동하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혜 씨, 이제 F블록으로 이동하죠.”
☆ ☆ ☆
“란테, 어떻게 됐나?”
“대장님, 찾았습니다. 음성 분석 결과 우리가 찾고 있는 여자와 동일인물로 나왔습니다.”
란테는 샤이언 종족의 연구진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시얀의 명으로 음성 분석과 데이터를 관리하기 위해 차원의 관리자들 쪽에 파견을 나와 있었다.
“A블록을 지나 지금 C블록으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좋아, 놓치지 말고 잘 감시하게.”
“잠깐. 대장님. 그녀가 지금 누군가와 접촉을 했습니다.”
“당장 화면을 띄워보게.”
“예, 대장님.”
란테는 동작 모션으로 화면을 조작했고, 곧이어 C블록의 정경이 수십 개로 나뉘어져서 모니터에 띄워졌다.
“열두 번째 화면을 확대하겠습니다.”
곧이어 수십 개의 화면이 사라지고 열두 번째 화면만 모니터에 남아서 크게 확대되었다. 거기에는 남궁혜와 다른 얼굴로 변신한 동하가 있었다.
란테가 남궁혜를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저 여인입니다.”
“그 옆에 있는 남자는 누군가?”
“음성 분석 결과 처음 등록된 목소리입니다.”
“바로 그놈이다.”
카일은 본능적으로 동하의 변신한 모습을 보고 그 모습이 동하가 맞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무리 다른 사람으로 변신을 했어도 동하 특유의 눈빛은 바꿀 수 없었다.
“이제부터 음성 인식 장치만 빼고 모든 감시 시스템을 끄겠습니다.”
“카메라는 어떻게 할 건가?”
“위성으로 전환하겠습니다. 놈이 아무리 능력이 높아도 설마 위성의 움직임을 감지하진 못하겠지요.”
“좋아, 위성으로 전환하도록.”
통제 센터가 갑자기 분주하게 변했다.
조심에 또 조심을 하고 있어서 조금이라도 동하가 의심할 수 있는 행동은 원천적으로 봉쇄한 상태였다.
그래서일까?
동하가 감각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주변의 동정을 살펴보았지만, 아무런 수상한 기운도 발견할 수 없었다.
“흐흐.”
카일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젠 동하를 잡는 데 완벽하게 성공한 것 같았다.
사실 이중 삼중으로 함정을 파놓고 동하를 기다렸지만, 솔직히 동하가 만물상점에 나타날지 예측할 수 없어서 오히려 초조했던 카일이다.
“이보게, 로이.”
“예, 대장님.”
“시얀 박사가 보내준 것을 준비하게.
“드디어 놈에게 지옥의 맛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군요.”
“하지만, 놈들이 닌자 종족과 만나서 생명의 씨앗과 관련된 정보를 얻기 전까지 절대 경거망동해서는 안 되네.”
동하를 잡는 데까지 9부 능선을 넘은 상태.
이젠 생명의 씨앗의 정보만 알아내면 이번 작전은 끝이었다.
☆ ☆ ☆
F블록은 기계 종족과 관련된 곳이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테스터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닌자 종족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F블록을 이용하는 테스터들은 대부분 온몸이 기계로 만들어진 기계 종족들이었다.
가끔 판타지 종족이나 무림 종족들 등 이종족의 모습도 보였는데, 서로 복장이 확연히 달라서 원하는 사람을 찾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미오 님.”
“기다리고 있었어요.”
닌자 종족 쪽에서는 젊은 여인 한 명과 노인 한 명 그리고 중년으로 보이는 남자까지… 세 명이 나와 있었다.
이번 접선을 기획한 사람이 바로 남궁혜와 미오였다.
그녀들은 쇼핑을 하다 몇 번 얼굴을 마주친 적이 전부였을 뿐 실제적으로 친분은 없었다.
그러던 중 열흘쯤 전에 남궁혜가 닌자 종족의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용기를 내고 미오에게 다가가 생명의 씨앗에 대해 물어본 것이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미오는 처음엔 남궁혜의 저의를 의심하고 경계했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샤이언 종족도 생명의 씨앗을 찾기 위해 닌자 종족의 행성을 이 잡듯이 뒤지고 수색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남궁혜가 미오의 의심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건 미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안이었다.
미오는 고심 끝에 남궁혜의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한 가닥 의심을 품고 있었다.
미오가 먼저 자신들의 일행을 소개시켜 주었다.
“이분은 전대 장로님이세요. 닌자 종족에서 전대 장로님으로는 유일하게 생존해 계신 분이기도 하시죠.”
중년 남성은 현재 닌자 종족의 족장 중 하나였다.
닌자 종족은 수십 개의 부족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중년 남성은 미오가 속한 부족의 족장이었다.
“이 분은 제가 말한 공자님이세요.”
이번에는 남궁혜가 동하를 소개시켜주었다.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동하에게 향했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동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정말 그대가 닌자 종족의 인술을 펼칠 수 있단 말인가요?”
남궁혜가 미오에게 제안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닌자 종족이 아니면서도 인술을 펼칠 수 있는 것.
복합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남궁혜는 다소 모험을 걸 수밖에 없었다.
동하의 존재는 절대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비밀이었다.
하지만, 동하의 정체만큼이나 닌자 종족에겐 생명의 씨앗도 중요한 존재였다.
때문에 닌자 종족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그와 대등한 것을 교환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과연 미오는 남궁혜의 말을 듣는 순간 호기심이 일었다.
차원의 관리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는 자가 복합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다.
그녀 역시도 만물상점이 발칵 뒤집어질 때마다 복합능력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샤이언 종족의 노예로 전락한 닌자 종족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복합능력자의 도움이 필요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들은 오래전부터 복합능력자를 만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해 왔었다.
하지만, 샤이언 종족조차도 고전을 면치 못할 정도로 동하는 그야말로 신출귀몰했다.
당연히 닌자 종족의 능력으로는 동하의 정체를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남궁혜가 뜻밖의 제안을 해왔으니 반갑다 못해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때 동하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인술을 펼쳐서 증명을 하면 생명의 씨앗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는 겁니까?”
“그건 내 명예를 걸고 약속하네.”
전대 장로인 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는 몇 번이나 동하를 살펴보았지만, 절대로 닌자 종족이 아니었다.
물론 지금은 동하가 다른 얼굴로 변신을 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지금 동하가 변신을 푼다고 해도 닌자 종족일 리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능력을 증명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동하의 인술 능력은 60퍼센트 수준이었다.
동하가 가진 수많은 능력 중 가장 능력치가 부족한 편이지만, 닌자 종족 중에서는 가히 손에 꼽을 정도로 상당한 성취였다.
당장 닌자 종족의 족장인 타쿠마조차도 동하의 적수가 되지 못할 정도였다.
스스슥!
동하는 닌자의 인술 중 은둔술을 펼쳤다.
순간 동하의 몸이 투명하게 변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어억?”
미오는 물론이고 켄지와 타쿠마조차 놀라운 표정으로 탄성을 터뜨렸다.
단순히 동하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동하의 기도와 감각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동하가 은둔술을 풀고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새 동하는 그들의 등 뒤로 돌아가 있었다.
그들은 다시 한 번 놀라야 했다.
닌자 종족이 아닌 사람이 이렇게 절정의 은둔술을 펼친 것만도 대단한 일이거늘 누구도 동하가 움직이는 기척을 감지한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은둔술은 말 그대로 적으로부터 자신의 기척을 숨겨서 보호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면 은둔술이 풀어지기 마련이었다.
“이제 됐습니까?”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네.”
그들은 모든 의심을 거두어들였다.
하나만 봐도 열을 알 수 있는 법이다.
그들은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동하를 쳐다보았다.
이제 겨우 약관의 청년이 그토록 무서운 능력을 지닌 차원의 관리자들을 긴장하게 만든 장본인이라니.
은둔술을 직접 자신들의 눈으로 접하지 않았다면 절대 믿지 않았을 일이었다.
“좋네. 이제 우리가 약속을 지킬 차례로군.”
생명의 씨앗에 관해서는 닌자 종족 내에서도 알고 있는 사람이 극히 적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전대 장로였던 켄지였다. 그리고 그건 그가 직접 동하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것이기도 했다.
“닌자 종족의 생명의 씨앗은 물의 특성을 지니고 있네. 우린 그걸 ‘심해의 구슬’이라 부른다네.”
“역시.”
곤륜노자의 말처럼 생명의 씨앗은 다섯 가지 원소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동하는 이미 음양조화선의 기운을 흡수했고, 흙과 관련된 야수 종족의 구슬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 야수 종족의 구슬에 담긴 비밀을 풀진 못했다.
하지남, 곤륜노자는 나머지 원소를 모두 찾은 다음 음양조화선의 기운을 이용하면 알아낼 수 있을 거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동하는 일단 그것들의 비밀을 풀기보다는 다섯 개의 원소를 모두 모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심해의 구슬은 닌자 종족의 보물이네. 하지만, 자네가 필요하다면 심해의 구슬을 건네 줄 용의도 있네.”
“그게 정말입니까?”
“하지만, 우리도 조건이 있네.”
“흐음. 말씀해 보십시오.”
“닌자 종족을 구해주게. 자네만이 샤이언 종족의 손에서 우릴 구해줄 수 있네.”
“약속은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같은 배를 탄 입장이니 최선을 다해 닌자 종족을 돕겠습니다.”
“그것으로 됐네.”
동하와 켄지가 손을 마주 잡았다.
닌자 종족들의 특성은 복종 아니면 항쟁이었다.
그들에겐 적당한 타협이 없었다.
때문에 종족이 샤이언 종족에게 항복을 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을 이어나갔다가 종족이 거의 전멸할 위기에 처했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항복을 했지만, 그때는 이미 남아 있는 종족이 얼마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그들이 동하와 손을 잡게 된 것이다.
동하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든든하게 느껴졌다.
“심해의 구슬은…….”
“잠깐.”
켄지가 입을 열어 말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동하가 갑자기 손을 들어 켄지의 입을 막았다.
모두가 이상한 시선으로 동하를 쳐다보았지만, 동하는 아랑곳 하지 않고 정신을 집중해서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문득 주변에서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었다.
바로 공기의 파동이었다.
아주 미세한 변화라서 인간의 감각으로는 절대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동하는 아까부터 공기의 파동을 감지하고 계속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공기의 파동 안에 별다른 살기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뭔가 일정한 움직임이 아무리 봐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 같았다.
동하는 공력을 일으켜 주변의 소리를 차단했다.
한데도 공기의 파동이 묘하게 동하가 일으킨 공력을 뚫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동하는 무언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이제 그만 정체를 드러내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