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화 : 세 번째 원소-03 -->
곤륜노자는 엄밀하게 말하면 동하에게 스승이나 마찬가지였다.
동하는 몸속에 각성한 능력은 많지만, 정작 그것들을 이해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상당히 취약한 편이었다. 그 능력들은 하나하나 대단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동하는 능력들 사이에 조화를 이루지 못해 효과를 극대화 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물과 불이 하나로 섞일 수 없듯 각각의 능력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성질이 서로 다르고 펼치는 방법도 다르며 기운을 몸안에 품고 몸 밖으로 발출하는 자세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이런 것들을 무시하고 무작정 여러 능력들을 하나로 합쳐서 조화를 이루려 한다면 오히려 몸이 폭발을 하거나 주화입마에 걸릴 수도 있었다.
그에 반해 곤륜노자는 동하보다 능력은 부족할지 몰라도 깨달음을 얻고 세상의 이치를 터득한 기인이었다.
깨달음 없이는 상승의 경지에 오를 수 없는 법.
곤륜노자는 능력들 사이에 조화를 이루는 건 깨달음이 수반되어야 가능하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동하는 곤륜노자의 가르침을 통해 부족한 점을 채워나갔다.
특히, 곤륜노자가 전수한 천지조화만상귀일심법은 서로 다른 기운을 하나로 모으고 조화롭게 만드는데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물론 무공과 공력에 한해서였다.
공력과 성질이 전혀 다른 염력이나 인술 그리고 마법 등에는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하지만, 동하는 무공만이라도 조화를 이루는 것도 나름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사실 동하의 몸에는 정파와 마도 그리고 사파 등 각기 다른 공력이 마구 뒤섞여 있지 않던가?
지난 몇 달 동안 꾸준히 천지조화만상귀일심법을 수련해서 지금은 그것들을 하나로 모으고 조화롭게 만드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이때만큼은 공력이 높아져 9성에서 10성으로 올라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동하는 꽤 오랫동안 9성에서 정체현상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 천지조화만상귀일심법으로 자신의 몸속에 있는 무공을 조화롭게 만드는데 성공을 했어도 몸속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동하는 실망스러운 결과에 맥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공력이 1성에서 9성까지 가는데는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듯 거침이 없었지만, 9성에서 10성 사이는 영원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곤륜노자는 성취가 높을수록 한단계 위로 올라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고수는 어느 순간에도 평정심을 가져야 하네. 마음이 조급하면 머릿속에 온갖 잡념이 생기고 그렇게 되면 결국 깨달음을 방해해서 상승의 경지에 오를 수 없게 되지.”
그야말로 금과 옥 같은 말이었다.
동하는 곤륜노자의 말대로 평정심을 가지려 노력했고, 조급했던 마음도 차츰 가라앉아 수련에 몰두하게 되었다.
곤륜노자는 적어도 동하가 2년 이상은 앞으로 꾸준히 수련을 해야 10성의 성취에 올라설 수 있을 거라고 내다보았다. 그것도 최대한 짧게 잡은 것이었다. 보통 고수들이 한단계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걸리는 게 다반사기 때문이었다.
9성에서 10성의 성취를 얻는 것도 이렇게 어렵고 힘이 드는데, 10성에서 11성은 또 얼마나 힘이 들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하물며 대성을 이루기까지는 평생이 걸려도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원래 상승 무공이 그런 법이다.
하나의 무공을 대성하는 것도 어렵거늘 동하는 지금 정사마의 수많은 무공을 가지고 있어서 어쩌면 평생 수련해도 극의를 깨닫고 대성을 이루지 못할지도 몰랐다.
그래서였다.
동하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한데, 곤륜노자의 가르침을 따라 음양조화선풍신무를 운기행공하고 있을 때였다.
단전에서 무언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패도적인 기운이 불쑥 일어나는가 싶더니 난데없이 부드러운 기운이 전신을 휘감았다. 그러다 또 다시 사이한 기운이 온몸을 엄습했고, 다시 장중한 기운이 도도한 강물처럼 전신 혈맥을 따라 흘렀다.
띠링!
-프로그램에 없는 무공이 감지되었습니다.
-운기행공의 중단하십시오.
-버그에 자동으로 반응을 시작합니다.
동하의 머릿속으로 쉴새없이 괴음이 들려왔다.
괴음은 음양조화선풍신무를 버그로 인식했다.
당연히 괴음은 버그에 잡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음양조화선풍신무는 가히 신의 무학이 아니었다. 샤이언 종족의 과학과 문명이 총 집결된 괴음에도 음양조화선풍신무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음양조화선풍신무 안에 숨겨진 조화능력이 발동이 되어 괴음을 자신 쪽으로 끌어오려 했다.
결국 괴음은 다급한 나머지 최후의 수단을 펼쳤다.
띠링!
-버그를 강제 종료를 실행합니다.
-강제 종료 실패. 주화입마에 걸릴 수 있습니다. 신체의 능력을 높입니다.
-다시 한 번 강제 종료를 실행합니다.
“윽!”
동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렇게 괴음과 음양조화선풍신무가 서로 싸우면 동하는 견딜 방법이 없었다.
온몸의 근육이 뒤틀리고 뼈마디가 우드득 거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건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여서 옆에서 동하의 상태를 지켜보던 곤륜노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는 주화입마에 가까운 현상이었다.
“이보게, 절대 정신을 잃어서는 안 되네. 그렇다고 음양조화선풍신무를 중단해서는 더더욱 안 되네.”
곤륜노자는 어찌된 일인지 몰라 그저 안타까운 마음에 발만 동동 굴렸다.
이젠 그가 어떻게 손을 써서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을 넘어선 상태였다.
동하는 이를 악물고 음양조화선풍신무를 운기했다. 곤륜노자의 말마따나 여기서 운기행공을 멈추면 오히려 음양조화선풍신무의 기운이 거대한 망치가 되어 그의 내부를 뒤흔들 게 뻔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괴음과 음양조화선풍신무가 서로 싸우게 놔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더 이상 곤륜노자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동하는 갑자기 단전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차가운 기운이 일어나 온몸이 얼음처럼 변해갔다. 거기에 정파와 사파 그리고 마도의 기운들이 한데 뒤섞여 동하의 몸은 크게 부풀어 올랐다. 괴음과 음양조화선풍신무의 대치가 극한으로 치닫고 있었다.
“으으.”
사람이 견디는데 한계가 있었다.
동하는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동하에게 거인의 힘과 불사의 능력이 없었다면 진작에 온몸이 터져 나갔을지도 몰랐다.
바로 그때였다.
쾅!
마치 폭죽터지는 소리와 함게 단전에서 일어난 뜨거운 기운과 차가운 기운이 강하게 충돌을 일으켰다.
띠링!
-버그를 해결했습니다.
-공력이 10성으로 올랐습니다.
-공력이 11성으로 올랐습니다.
-공력이 12성으로 올랐습니다.
☆ ☆ ☆
“이보게. 이제 정신이 드는가?”
곤륜노자가 걱정어린 표정으로 동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 저는 괜찮습니다.”
동하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하는 죽음에서 되돌아온 기분이었다.
풍선처럼 크게 부풀어 올랐던 몸도 어느새 정상으로 되돌아 온 상태였다.
동하는 세상이 완전히 달라진 것 같았다. 온몸에 힘이 충만하다 못해 넘쳐 흘렀고, 몸은 깃털처럼 가벼워서 아예 없는 것 같았다. 이건 마치 구름위에 둥실 떠 있는 것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았다. 왠지 세상이 자신의 발밑에 놓인 것처럼 동하는 자신감이 넘쳤다.
마법 7서클
내공 12성
불사지체 90% 복구
거인의 힘 85% 복구
염력 60% 복구
닌자의 인술 60% 복구
‘그렇구나.’
다른 능력들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유독 불사지체와 거인의 힘의 능력이 높아져 있었다.
동하는 정신이 까마득한 상황에서도 괴음의 목소리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음양조화선풍신무에 대항하기 위해 괴음 스스로 동하의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불사지체와 거인의 힘을 높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음양조화선풍신무와 제 몸속에 있던 프로그램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는 바람에 잠시 통제불능 상태가 되었습니다.”
“정말 다행일세. 난 자네가 주화입마에 걸려 온몸이 폭발하는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었는지 모르네.”
곤륜노자는 그 잠깐 사이에 십년은 더 늙은 것 같았다.
괜히 동하에게 음양조화선풍신무를 전해준 것은 아닌지 후회가 밀려왔고, 심지어 자학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나저나 자네, 기연이 있었군.”
“바로 이렇습니다.”
동하가 다짜고짜 곤륜노자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억?”
곤륜노자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동하의 주먹은 천천히 날아와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바로 음양조화선풍신무의 무공 중 하나였다.
하지만, 곤륜노자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동하의 주먹 하나에 곤륜노자는 모든 공간을 선점당한 건 물론이고 무서운 살기마저 느껴야만 했다. 독사 앞에 선 개구리처럼 곤륜노자는 감히 움직일 엄두마저 나지 않았다.
“정말 무서운 수법이군. 음양조화선풍신무인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수법 같은데 도대체 이게 무슨 조화인가?”
“정사마의 권법을 동시에 펼쳐 보았습니다.”
“그, 그게 가능하다고?”
“다행히 공력이 극성에 올랐습니다. 정사마의 무공들이 조화를 이루어 마치 하나의 무공처럼 느껴지는군요.”
“오오!”
곤륜노자는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동하를 쳐다보았다.
정사마의 무공은 물과 기름처럼 절대 섞일 수 없는 것이었다.
하긴, 정파의 무공들조차 제각각 특성이 다 달라서 하나가 될 수 없었다. 하물며 정사마의 무공들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지금까지 무림종족의 고수들 중에서 누구도 정사마의 무공을 하나로 만든 사람이 없었다.
그건 음양조화선풍신무를 익힌 곤륜노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제아무리 음양조화선풍신무를 배웠다 해도 제각각 특성이 다른 정사마의 무공을 하나로 만드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넨 정말 인간이 아니군.”
이쯤 되면 신이라 불러도 될 것 같았다.
☆ ☆ ☆
동하가 모든 수련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자 남궁혜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새 시간은 오전 11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만물상점에서 닌자 종족을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서두르면 약속 시간까지 늦진 않고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자님, 일단 만물상점부터 갈까요?”
“그게 좋겠습니다. 그럼, C블록에서 만나죠.”
닌자 종족을 만나기로 한 곳은 E블록이었지만, 동하는 중간에 남궁혜와 만나서 같이 E블록으로 이동하기로 했던 것이다.
동하와 남궁혜는 각자 다른 방법을 이용해 만물상점으로 날아갔다.
남궁혜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로그인을 했고, 동하는 차원이동으로 넘어갔다.
한편, 그 시각 카일은 팔짱을 낀 채 힐끔 시간을 보았다. 그의 옆에는 부대장 로이가 있었고, 연구진에서 파견한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음성 분석을 통해 만물상점에 있는 테스터들의 성향을 분석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보게, 로이. 시얀 박사에게 연락은 있었나?”
“그렇지 않아도 방금 기대해도 좋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좋아, 시얀 박사의 첫 작품을 우리가 가장 먼저 사용하게 되는군.”
“그래도 대장님. 시얀 박사가 괴수들의 능력이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 시켰다고는 하지만, 과연 그것으로 놈을 잡을 수 있을까요?”
“시얀 박사는 야망이 있는 자다. 결코 허언을 하는 성격이 아니야.”
그런면에서 카일은 우유부단한 타누스 박사보다는 차라리 야망이 있는 시얀이 더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라도 시얀은 동하를 잡으려고 사력을 다할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카일이 괴수들만 믿고 있는 건 아니었다.
이게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동하가 절대 빠져나갈 수 없도록 카일은 차원의 관리자들을 모두 대기시켜놓은 상태였다.
“이번 만큼은 절대 네놈은 빠져나갈 수 없다.”
카일은 이를 갈았다.
드디어 오늘이었다.
그동안 카일은 동하를 잡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계속 실패를 거듭하기만 했고, 동하를 잡을 마땅한 계책은 떠오르지 않았다.
바로 그 무렵 시얀에게 흥미로운 제안이 들어왔다.
그건 다름 아닌 만물상점의 테스터들의 음성을 모두 도청해서 일일이 확인하고 분석하는 것이었다. 매일 매순간 테스터들의 음성을 도청해서 확인하고 분석하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니다. 하지만, 시얀은 거기에 특화된 장치를 만들었고, 만물상점 매장 곳곳에 안테나만 설치하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난 며칠 동안은 계속 허탕만 쳤었다.
테스터들은 필드와 레이드 그리고 만물상점의 아이템에 관한 이야기만 할 뿐, 별다른 수상한 행적을 보이는 자는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카일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테스터들의 음성을 도청하고 분석했다.
그리고 그의 집념은 어느 순간 적중하기 시작했다. 남궁혜가 생명의 씨앗을 알아보기 위해 가끔 만물상점에 접속을 하는 걸 찾아냈던 것이다. 카일은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손뼉을 마주치고 말았다. 남궁혜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만물상점에 들어왔지만, 분명 자신들이 찾고 있는 동하와 어떤 식으로든 접점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오늘 만나기로 한 닌자 종족은 어떻게 되었나?”
“이미 E블록에 들어와 있습니다.”
“흐흐. 이제 놈이 오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건가?”
생명의 씨앗은 샤이언 종족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동하도 잡고 생명의 씨앗도 얻을 수 있다면 일석이조나 마찬가지였다.
“이놈. 어서 와라.”
카일의 눈은 복수심에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동하를 맞을 만반의 준비를 끝냈고, 이중 삼중으로 함정을 파놓았기 때문에 동하는 절대 빠져나갈 수 없었다.
오늘 이곳이 동하의 무덤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