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만물상점-121화 (121/167)

<-- 121화 : 사람 잘못 건드렸어-02 -->

끼이익!

시끄러운 타이어 마찰음이 주차장에 울려 퍼졌다.

어느새 속도계는 50킬로미터를 가리키고 있었다.

주차장에서는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속도였다.

대충 이 정도 달렸으면 동하를 떼어놓고도 남았을 터.

양 기사가 백미러를 힐끔 쳐다본 뒤 액셀에서 발을 떼고 속도를 줄이려는 순간이었다.

“헉?”

양 기사의 눈이 크게 치떠졌다.

그리 멀지 않은 앞쪽에서 동하가 길목을 가로막고 있었다.

동하는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수십 미터를 날았고, 순식간에 양 기사의 자동차를 앞질렀던 것이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처음엔 헛것을 본 줄 알았다.

분명 저 뒤에 있어야 할 동하가 언제 자신을 따라잡았는지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양 기사는 몇 번이고 눈을 깜빡거려 보았지만,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동하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미친.”

양 기사가 이를 악물었다.

브레이크를 밟고 차를 멈춰 세우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렇다고 핸들을 옆으로 꺾었다가는 주차되어 있는 차와 부딪쳐 오히려 자신이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았다.

“죽고 싶지 않으면 저리 비켜.”

부아앙!

양 기사는 발을 떼려던 액셀러레이터를 다시금 힘을 주어 밟았고, 자동차는 굉음을 내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쿵!

자동차가 그대로 동하를 들이 받았다.

시속 50킬로미터로 달리던 자동차는 이미 70킬로미터를 넘어섰다.

정상적이라면 동하의 몸이 튕겨져 나가야 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양 기사는 거대한 벽에 충돌한 것처럼 엄청난 충격이 전해졌다. 자동차가 멈춰 서는 동시에 뒷바퀴가 하늘 높이 들려 올라간 것이다.

“컥!”

양 기사는 온몸이 앞으로 홱 쏠리며 핸들에 가슴을 부딪쳤다.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우두둑하며 갈비뼈 몇 대가 나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자동차의 보닛이 찌그러지고 대시보드가 앞으로 밀려들어와 그의 다리와 배를 짓눌러 버렸다.

“으아악!”

설마 덤프 트럭하고 부딪친 걸까?

지금까지 전해진 충격이나 자동차의 상태로만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하나 지하주차장에 덤프트럭이 들어올 수 있을 리도 없지만, 양 기사는 동하를 들이박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우당탕탕탕!

자동차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수 차례나 주차장 바닥을 굴렀다.

☆ ☆ ☆

자동차는 완전히 폐차 상태로 변했지만, 정작 동하는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동하의 온몸이 무기와 같았다.

예전에도 동하는 몸에 실드를 친 후 달려들면 괴수들조차 버티지 못하고 튕겨져 나가곤 했었다. 하물며 지금은 서클과 거인의 힘이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져서 굳이 몸에 실드를 걸 필요도 없었다. 오직 거인의 힘만으로도 3성급 몬스터를 압도하는 마당에 중형 세단 정도 부딪히는 것은 애들 장난에 불과했다.

만약 양 기사가 핸들을 옆으로 꺾거나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면 충격은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양 기사는 마지막 순간 액셀러레이터를 더 힘주어 밟았고, 자동차의 속도를 높였다.

자업자득.

결국 그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양 기사 자신에게 되돌아갔다.

자동차가 몇 번 구르다 주차되어 있던 차와 부딪치고 나서야 가까스로 멈춰 섰지만, 그때는 이미 양 기사는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쿵쾅!

동하는 가볍게 차 문짝을 뜯어냈다.

그리고는 양 기사의 몸을 짓누르고 있던 대시보드도 뜯어 버리고 양 기사를 차 안에서 끄집어냈다.

차종호가 보기에는 동하의 힘이 도저히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양 기사는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어서 동하의 괴력을 보지 못했지만, 저 멀리서 차종호가 두 눈을 부릅뜬 채 동하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으으.”

차종호는 이가 덜덜 떨려왔다.

그는 아직도 방금 전 광경이 믿어지지 않았다.

동하가 가벼운 도약 한 번으로 수십 미터를 날아간 것이며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차와 정면으로 충돌을 했는데 동하는 멀쩡한 반면 자신의 중형 세단은 형편없이 찌그러져 바닥에 나뒹군 것 등.

하나같이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것들뿐이었다.

“저, 저런 걸 인간이 할 수 있을 리 없잖아?”

차종호는 혼백이 달아날 판이었다.

설령 귀신을 보았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제야 차종호는 뭔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처음부터 동하에게 인간 같지도 않은 무지막지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 자신이 먼저 이런 식으로 건드리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차종호의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심하게 떨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마냥 앉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는 동하가 멀리 있는 이때, 도망칠 절호의 기회였다.

“응?”

하지만, 이상하게 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정신은 멀쩡한데 어떻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바로 무림 종족의 절기 중 하나인 점혈수법이었다.

동하의 능력은 이제 허공을 격하고도 상대의 점혈을 찍고 몸을 마비시킬 수 있는 수준에 올라 있었다.

지구의 지극히 평범한 인간인 차종호가 점혈수법에 대해 알고 있을 리 없었다.

그는 갑자기 자신의 몸이 마비된 것을 느끼고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덜컥 겁이 나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바로 그때 동하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양 기사의 다리를 잡고 질질 끌고 왔다. 동하는 사람도 아닌 짐승 같은 놈을 인간으로 대접해 줄 이유가 없었다.

동하 딴에는 양 기사를 자동차에서 꺼내준 것만으로도 최대한 자비를 베풀어준 셈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묘하게도 차종호의 공포심을 배가 시켰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아왔던 차종호였지만, 양 기사를 하나의 고깃덩어리처럼 다루는 동하가 악마보다 더 무섭게 느껴졌다.

“네, 네놈의 정체가 뭐냐?”

“확실히 내가 좀 남다른 구석이 있는 편이지.”

차종호에게 자신의 능력 일부를 보인 셈이었다.

어찌 보면 대통령과 했던 비밀 유지 서약을 어긴 것이지만, 그렇다고 동하는 차종호가 입을 나불거리고 다니게 놔둘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나? 나를 건드리려면 네놈의 정치 인생을 걸어야 할 거라고 말이야.”

동하가 천천히 다가오자 차종호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온몸이 마비가 되어 마음만 급할 뿐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다, 다가오지 마라.”

“일본의 사주를 받고 일을 벌인 걸 알고 있다. 죽고 싶지 않으면 정확하게 누가 사주해서 벌인 일인지 말해라.”

차종호는 속으로 깜짝 놀랐지만, 그는 정치 9단의 노련한 인간이었다.

순간적으로 당황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속내를 드러내진 않았다.

“미친 놈.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난 데 없이 일본이라니. 그리고 난 그냥 우연히 이곳에 왔을…….”

짝!

동하가 가볍게 차종호의 뺨을 후려갈겼다.

하나 그것만으로도 차종호의 고개가 홱 돌아갈 정도로 엄청난 충격이 전해졌다. 차종호는 입술이 터지고 이빨 몇 개가 부러졌다.

“혼자서 모든 걸 뒤집어쓰시겠다! 이미 조폭들이 다 고백했으니까 또 한 번 거짓말하면 그땐 정말 죽인다.”

“나, 나는 인천 시장이다. 나를 죽이면 네놈이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후후. 나에겐 면책특권이 있어서 어떤 짓을 하든 정부에서 죄를 묻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은 몸이거든.”

씨익!

동하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차종호는 이를 악물었다. 정부에서 면책특권을 부여했다는 말을 액면그대로 믿기도 어려웠지만, 설령 동하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차종호 역시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차종호는 야권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다. 아무리 동하에게 면책특권이 있어도 차종호를 죽이면 그 파장은 실로 만만치 않을 것이었다. 야권에서 정치공세라며 몰아붙이면 그건 지금 정부에 직격탄으로 되돌아갈 것이 뻔했다.

“너는 나를 절대 죽일 수 없어.”

“그건 두고보면 알 일이고.”

동하의 표정은 확신에 차 있었다.

차종호는 왠지 모를 두려움에 소름이 돋아 온몸을 부르르 떨어야만 했다.

☆ ☆ ☆

주르륵!

해가 지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차가운 기온이 비가 오면서 더 떨어졌다.

“콜록! 콜록!”

제인은 차 안에서 덜덜 떨며 동하의 방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까 동하를 놓치고 최대한 빨리 인천에 내려왔지만, 그때는 이미 모든 일이 끝나고 난 뒤였다. 제인은 주차장이 엉망으로 변해 있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짐작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더 오기가 생기는 것인지도 몰랐다.

특종을 잡을 수도 있는 기회를 눈앞에서 놓쳤다고 생각하니 분하고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제인은 기름이 아까워서 히터를 틀지도 못한 채 마냥 추위에 떨고 있는 중이었다. 기름이 금값인 시대였다.

인근에 있는 주유소가 대부분 파괴되고 부서져서 당장 기름 넣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설령 주유소가 멀쩡하다 해도 장시간 은행이 문을 열지 않은 관계로 수중에 가진 돈이 그리 많지 않았다. 제인은 반드시 특종을 잡겠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참고 있긴 했지만, 이대로 며칠만 더 있다간 곱디고운 발에 동상이라도 걸릴 것 같았다.

한데도 제인은 악착같이 참고 버티고 있었다.

“반드시 동하 씨 비밀을 카메라에 담고 말겠어.”

제인은 기자 특유의 인내와 끈기. 그리고 독기와 오기가 발동하는 순간이었다.

“으으.”

마크는 옷을 잔뜩 껴입고 있었지만, 밀려오는 추위에 온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유독 추위에 약한 마크는 체감 온도로는 시베리아 한복판에 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종군기자로 활약하며 수많은 전쟁터를 누빈 마크였다. 그의 사전에 고난은 있어도 포기란 없었다.

하긴, 제인과 마크는 공동 운명체였다.

CNN 본사는 물론이고 백악관에도 동하의 정체가 알려져서 이젠 무조건 특종을 잡지 않으면 그들의 목이 잘려나갈 판이었다.

“이거 보드카라도 한 병 있었으면 좋겠군.”

생각만 하는데도 벌써 입가에 침이 고였다.

추위를 녹이는데 술만한 것이 또 있을까?

그러고 보니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잠복근무를 하다 보면 끼니를 거르는 건 다반사였다.

그야말로 삼재였다.

춥고 배고픈데 졸리기까지 했다.

“지금 보드카가 문제에요? 동하 씨 주변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단 말이에요.”

“그러지 말고 제인. 자네가 한 번 올라가 보는 게 어때?”

“언제는 약속을 잡고 밖으로 끌어내라면서요? 지금 찾아가면 우리가 여기서 감시하고 있다는 걸 광고하는 셈이라고요.”

제인은 동하를 만나도 우연을 가장해서 만날 생각이었다.

아까 일만 해도 그랬다. 동하가 속도를 높인 건 자신이 미행하고 있는 걸 눈치 챈 것 보다는 집안에 무슨 문제가 생겨서 서두르다 그런 것 같았다. 그러니 아직 특종을 잡을 기회는 남아 있었다.

“어렵게 생각할 거 뭐 있나? 그냥 취재가 있어서 찾아왔다고 하면 되지.”

동하의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하긴 마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원래 부평의 미군기지에 있다가 제인에게 연락을 받고 황급히 동하의 아파트로 넘어 왔다. 그때는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난 뒤라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었지만, 난장판으로 변한 주차장을 보고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있었다.

‘이건 결코 괴수들의 소행은 아니야.’

마크 역시 특종감을 놓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크는 제인을 보고 은근한 눈빛으로 말했다.

“미인계라도 펼쳐 봐. 동양인들은 말이야. 제인같은 금발의 미녀에게 환상을 품고 있다고.”

“쳇, 그건 국장님이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동하라면 충분히 모른 척 하고도 남았다.

예전에 자신의 미모만 믿고 동하를 유혹해 보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동하는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았었다.

“좋아, 알았다고. 제인의 뜻이 정 그렇다면 잠시 시동이라도 걸고 히터를 틀어 놓자고.”

“그것도 안 돼요. 아실만한 분이 계속 왜 이러세요? 이러다 특종 놓치면 국장님이 책임지실 거예요?”

“히터 하나 틀었다고 특종을 놓친다는 게 말이 돼?”

“무조건 안 돼요. 국장님, 예전에 종군기자로 활약하신 분이잖아요.”

“끙. 제인도 나이를 먹어 봐.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사무실에서 너무 오래 지낸 모양이었다.

에취.

마크는 기침과 동시에 콧물이 흘러 나왔다.

☆ ☆ ☆

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인 셈이었다.

동하는 영종도 사건으로 인해 차종호와 깊은 악연이 만들어진 상태였다.

지금이야 차종호도 차기 대권에 도전하기 위해 최대한 은신을 하고 있었지만, 대통령에 당선이 되고 나면 분명 그때의 일을 문제 삼아 보복해 올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그걸 두려워할 동하는 아니었다.

그는 이미 만반의 준비도 갖춰 놓은 뒤였다.

한데, 차종호가 일본의 우익과 연결이 되어 먼저 움직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이렇게 되면 일본의 우익들과도 피할 수 없는 한판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하긴, 차종호를 건드리면 일본의 우익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아서 동하도 모든 준비를 갖춰 놓고도 선뜻 먼저 움직이지 못했었다.

어쩌면 이것도 하늘이 주신 절호의 기회인지도 몰랐다.

잘만 하면 눈엣가시였던 차종호도 없애고, 일본의 우익들 역시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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