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만물상점-117화 (117/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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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버지!”

“동하 왔느냐?”

아버지 성진이 거실에 앉아서 뉴스를 보고 있었다.

감옥에 수감 된지 10개월 만의 일이었다.

성진의 얼굴은 수척해져 있었지만, 표정은 밝아 보였다.

한편으로는 어리둥절한 마음도 들었다. 갑작스럽게 특별사면이 되었다는 말에 출소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원래 대통령은 동하에게 한달 정도 시간을 달라고 했었는데, 예정보다 기간을 좀 더 단축했던 것이다. 특별사면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여러 행정적인 절차가 있었지만, 대통령은 동하에게 잘보이기 위해 불도저처럼 밀어 붙였다. 더 웃긴 건 대통령은 평소 이렇게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어쨌든 평소였다면 여러 잡음이 일어날 수도 있었겠지만, 전시보다 더 혼란한 상황이 유리하게 작용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제가 뭘요.”

“네 엄마에게 이야기 다 들었다. 이 아파트도 네가 돈을 벌어 샀다고.”

성진이 대견한 듯 동하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아무리 봐도 믿기지 않았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성진의 사업 실패로 그들의 가족에겐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한데, 이렇게 빨리 집이 생기고 자리가 잡힐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더구나 다른 사람도 아닌 철부지 아들이 집안을 일으켰다는 사실이 못내 믿기지 않았다.

동하는 왠지 울컥 거렸다. 회귀를 하고 두어번 정도 면회를 가서 아버지 얼굴을 보긴 했었지만, 이렇게 집안에서 마주하고 대화하는 것은 17년 만에 처음이었다.

동하는 왠지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이전 생애에서는 출소를 하고 나온 성진을 벼랑끝으로 내몰아 자살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그것이 못내 괴로워 평생을 죄책감 속에 살아왔던 동하였다.

이것으로 마지막 남은 퍼즐 하나까지 모두 완성한 기분이었다.

처음 선하의 자살을 막은 것을 시작으로 두 명의 여동생. 그리고 어머니 성혜와 아버지 성진까지.

그동안 동하는 왠지 모를 사명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이전 생애에서 자신 때문에 불행해지고 심지어는 자살하거나 죽음에 이르는 일을 바로잡는 것이 하늘이 두 번째 인생을 살게 해준 은혜를 갚는 것이었다.

“출소하고 나오는데 대통령님이 찾아오셨다. 네가 큰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뭐가 어떻게 된 일이냐?”

갑자기 특별사면으로 출소하게 된 것도 놀라운데 거기에다 대통령이 직접 찾아왔으니 성진은 놀랍고도 당황스러워서 어쩔 줄 몰랐다.

하지만, 대통령은 시종일관 정중하게 성진을 대했다.

그것이 못내 이상했던 성진이었다. 대통령이 경제사범으로 수감된 자신을 이렇게까지 정중하게 대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동하는 성진의 말을 듣고 속으로 피식 웃었다.

역시 사람은 출세하고 볼 일이었다. 대통령이 얼마나 동하를 어려워 했으면 이 험한 시국에 직접 성진을 마중갔을까 싶었다.

“큰일까지는 아니고 운이 좋아서 대한텔레스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헛헛!”

성진은 자세한 내막까진 알 수 없어도 대충 대한텔레스란 말에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감옥에 있어도 괴수들의 침공이니 대한텔레스에서 엄청난 무기를 발명했다느니 하는 말들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대한텔레스에서 힘을 써준 모양이구나.”

성진은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건 다른 식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일하게 동하의 비밀을 알고 있는 미현은 속으로 웃었다.

‘아이고, 답답해. 그건 오빠가 힘을 쓴 거라구요.’

이럴 때면 입이 근질거려서 견디기 어려운 미현이었다.

☆ ☆ ☆

3성급 몬스터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불과 며칠 만에 수많은 도시가 파괴되었고, 조그만 나라는 지도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참변이 생기기도 했다.

그렇다고 도시를 파괴하고 나라를 괴멸시키는데 많은 괴수들이 필요 하지 않았다.

놈들은 1성급 몬스터에 비해 몇 배는 진화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단 한 마리만으로도 인류는 전전긍긍 해야만 했다. 하물며 두 마리가 나타나고 세 마리가 동시에 나타날 경우는 도저히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전세계는 도탄에 잠겼고, 절망에 신음했다.

3성급 몬스터의 공격이 10일만 더 지속 되었다면 인류의 절반이 죽었을 것이고, 한달이 지속되면 인류가 멸명했을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만큼 3성급 몬스터들은 강했고, 인류의 운명은 바람 앞에 촛불처럼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성능이 업그레이드 된 무기 개발에 성공하면서 상황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 들었다.

이번에도 대한텔레스의 작품이었다.

대한텔레스는 새로운 무기를 ‘고질라’로 불렀다.

괴수를 잡는 괴수라는 뜻이었다.

위력은 확실했다. 인류가 만든 그 어떤 무기도 통하지 않던 무적의 괴수들이 고질라 앞에 맥을 추지 못했다. 놈들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오직 ‘고질라’ 뿐이었다.

첫 번째 침공에서부터 시작된 대한텔레스의 비상은 2차 침공 때 절정을 찍었다.

대한텔레스의 기술력은 이제 세계적인 수준을 넘어 독보적인 상황이었다. 미국의 수많은 군수업체나 유럽의 기술력으로도 아직까지 이렇다할 대응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전세계가 대한민국을 주시했고, 대한텔레스에 찬사를 보냈다.

하나 이번에는 1차 침공 때보다 물량 수급이 더 원활하지 못했다.

그건 괴수들의 숫자와 관련이 있었다.

3성급 몬스터는 샤이언 종족에서 결정체 제작에 차질이 생겨 많은 개체를 양산해 내지 못했다.

모든 게 동하 때문이었다. 타누스 박사와 시얀은 동하를 상대하기 위해 서둘러 연구를 하다 보니 아무래도 여기저기 오류가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오류들은 일단 베타테스트를 거쳐 수정을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결정체의 능력을 높여주는 아이템을 동하에게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런 저런 이유들로 3성급 몬스터는 능력은 비약적으로 높아지긴 했지만, 대량 생산을 하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동하가 대한민국에서 얻을 수 있는 놈들의 사체는 한계가 있었다.

더 많은 사체를 얻으려면 외국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건 대통령과 대한민국 정부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동하의 선택은 이번에도 출시국을 나누는 것이었다.

1차 침공 때에는 출시 대상 국가를 7단계로 나누었는데, 이번엔 그에 두 배가 넘는 15단계로 나누었다.

예전에도 전세계 모든 나라들이 1차 출시국 안에 들어가기 위해 엄청난 로비를 벌였었다. 하물며 15단계로 텀이 두 배 이상 길어진 지금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누군가는 고작 하루 차이라고 할지 몰라도 여기에 나라의 운명이 걸려 있었다. 1차와 2차 출시국의 체감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만큼 거리가 있었다.

당연히 1차와 15차 출시국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일본의 불만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차 침공 때에도 일본은 7차 출시국이었다.

말이 좋아 7차 출시국이지 완전 꼴찌였다.

그때 국민 여론이 악화되는 걸 진화한다고 일본 정부는 진땀을 흘렸었다. 가뜩이나 지지율이 좋지 않아 차기 정권 창출에 적신호가 켜진 상황에서 가장 꼴찌로 무기 공급을 받는 무능함까지 노출했으니 국민의 불신과 원망이 극에 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당연히 두 번의 실수는 용납하기 어려웠다.

일본 정부는 이번 2차 침공 때에는 무조건 앞 순위에 배정받기 위해 모든 채널을 동원해서 로비를 벌였다. 다행히 대한민국 정재계에는 친일 인사들이 많았다. 사회 각 분야에 두루 퍼져 있었다. 그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여론을 형성해 주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일에 일본의 우익세력들은 절대 빠지는 법이 없었다.

일본 내각 역시 일본의 우익세력들이 장악을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들은 대한민국 정재계를 가리지 않고 막대한 로비를 벌였다. 거액의 돈이 오가고 엄청난 특혜를 약속 했다. 그렇게 결전의 날이 오고 또 다시 대한민국 정부는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전세계에 출시국 명단을 발표했다.

그야말로 엄청난 열기였다.

춘추관에는 전세계 기자들 뿐만 아니라 로비를 벌이기 위해 모여든 각 나라의 외교관과 유력 정치인들로 발디딜 틈도 없었다. 심지어 미국까지도 국무장관을 보냈을 정도이니 다른 나라는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1차 침공 때와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모든 나라들이 이번 일에 사활을 걸었기 때문에 특별기자회견의 열기는 뜨겁게 변했고, 그래서 더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졌다.

일본의 우익 세력들은 잔뜩 기대를 하고 특별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었다.

“1차 출시국 명단을 발표하겠습니다.”

이번에도 명단을 발표하는 사람은 동하였다.

동하의 입에서 하나씩 나라가 발표될 때마다 각 나라의 관계자들과 기자들의 얼굴에 희비가 엇갈렸다.

텔레비전을 지켜보던 젊은 여성들은 동하의 준수하고 잘생긴 외모에 꺄악 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요즘 동하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의 당당한 모습은 전세계 여성들 사이에선 백마탄 왕자가 따로 없었다. 정치에 별 관심이 없는 젊은 여성들이 특별기자회견을 할 때면 누구보다 바짝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가네무라 회장은 동하의 발표를 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으음.”

그는 일본을 대표하는 우익세력이면서 재계의 거물이었다.

집안으로 놓고 봐도 상당히 유서가 깊었다. 가네무라 회장의 할아버지는 A급 전범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자위대법 개정을 하기 위해 앞장섰던 인물일 만큼 집안 자체가 대대로 극우보수세력이었다.

그런 가네무라 회장이 대한민국 정부에 잘보이기 위해 로비를 하는 것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영원히 일본의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대한민국 정부에 로비를 펼치는 것이 기분 좋을 리 없었다.

그래도 차기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서라도 로비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자존심을 접어가며 로비를 했으니 이번에는 반드시 1차 출시국 안에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1차 출시국에 들지 못한 것은 경쟁률이 그만큼 치열해서 그렇다고 해도 2차 출시국에도 없더니 3차 출시국 명단에도 들어 있지 않았다.

가네무라 회장의 얼굴은 점점 푸르뎅뎅하게 썪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참을 수 없어서 자리를 박차고 말았다.

“으으, 이런 개 같은...”

일본은 15차 출시국 명단에서 가장 마지막에 호명이 된 것이다.

이건 대놓고 모욕을 당한 것보다 더 기분 나쁜 일이었다.

똑같은 꼴찌지만 7차와 15차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때와는 괴수들의 등급 자체가 달라서 15일 동안 기다리고 있으라는 건 괴수들의 손에 일본 열도가 망하라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 정부에서 고의로 일본을 제외시키고 있다는 의혹이 들었다.

☆ ☆ ☆

부아아앙!

람보르기니 한 대가 아파트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동하의 공식 일정은 매일 대한텔레스에 가서 서용훈 사장을 만나 원료를 전해주는 것과 가끔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전혀 이상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 그 자체였다.

그 외의 시간은 집안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내고 있었다.

제인은 지난 며칠 동안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아파트 근처에 잠복해서 동하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했다.

모든 게 특종을 잡기 위해서였다.

지금만 해도 그녀는 동하의 뒤를 미행해서 대한텔레스까지 갔다고 오는 길이었다.

이게 벌써 며칠 째인지 몰랐다.

이제 제인은 동하의 사생팬이 된 기분이었다.

하늘을 찌를 것 같던 자신감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녀는 자이언트 검치 호랑이가 하루 아침에 증발한 사건 뒤에는 분명 동하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다 보면 언제고 동하가 괴수를 맨손으로 때려잡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녀는 딱히 동하의 행동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심지어 꼬투리 삼을 만한 것도 없었다. 어찌보면 동하의 행동은 너무 완벽해서 찜찜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하다 못해 이 근처에는 괴수들도 나타나지 않으니 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덕분에 그녀가 아무 탈 없이 무사히 잠복근무를 서고 있는 것이긴 한데, 대신 동하의 능력을 카메라에 담을 수가 없었다.

분명 뭐가 있는 건 확실했다.

군대가 동원된 것도 아니었다.

한데, 인근 지역에는 1성급 몬스터들이 바글바글 거리는데 이곳에만 없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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