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만물상점-111화 (111/167)

<-- 111화 : 알아서 기어-03 -->

여론처럼 무서운 것도 없다.

미 정부는 국민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쳤다.

스미든 대사가 자리에서 물러났고, 주한미군사령관 톰슨 역시 옷을 벗어야 했다.

그래도 사태는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무기를 공급해 주겠다는 확답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미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시하며 한국 정부에 사과를 했다.

한국 정부는 부분적으로 미 대통령의 사과를 수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조건을 내걸었다.

먼저 소파와 관련된 내용의 전면 개정을 요구했다. 특히, 미국의 허락이 있어야 무기를 수출하고 군사작전 역시 미국의 승인 없이 불가능한 부분은 독소조항으로 꼽히는 것 중 하나였다.

예전에는 그렇게나 고압적인 자세로 들은 척도 하지 않았던 미 정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외에도 전투기와 미사일 분야 등 그동안 팔기만 해놓고 핵심 기술 이전에는 인색했던 부분에 대한 사과와 즉각적인 조치를 요구했다.

“으으, 해도 너무 하는군.”

한국 정부의 고압적인 자세에 미 대통령은 화가 치밀어 오르다 못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 누가 이렇게 굴욕적인 상황을 맞이한 적이 있던가?

당장이라도 한국 정부와의 협상을 틀어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보좌관들이 기를 쓰고 말렸다.

지금 미국의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었다.

자이언트 악어는 샌프란시스코를 넘어 LA까지 초토화 시켰고, 시간이 흐를수록 샤이언의 침략 공간이 늘어나고 그 안에서 괴수들이 계속 튀어 나왔다. 이제 괴수가 없는 안전지역을 찾는 게 어려울 정도로 미국 전역이 비상사태였다.

“일단은 한국 정부가 요구하는 것을 전부 들어줘야 합니다.”

“국무장관도 그리 생각하시오?”

“방법이 없습니다. 한국 정부에 무기를 공급 받은 나라들은 조금씩 상황이 좋아지고 있는데 반해 미국의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 역시 CNN을 통해 다른 나라의 상황이 중계되고 있다 보니 미국과 확연하게 비교가 되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니 여론이 악화일로를 치닫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국무장관은 리모컨을 눌러서 프레젠테이션을 켰다.

화면에는 동하의 얼굴이 띄워져 있었다.

“이름은 최동하. 실질적으로 한국 정부를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특별 기자회견에 나섰던 인물이로군.”

“미스터 최는 대한그룹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을뿐더러 한국 대통령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무장관. 그게 가능한 일이오?”

“저도 뭔가 석연치 않게 여기던 차에 CNN 측에서 제보가 있었습니다.”

“CNN의 제보라면 믿을 만하지.”

“제보에 따르면 미스터 최가 맨손으로 괴수들을 때려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CNN의 제보라고 해도 그렇지. 이건 너무 허황된 소리 아니오?”

“최초의 제보에 따라 마크 국장이 한국으로 날아간 것입니다.”

“그렇군.”

“미스터 최가 집안에 칩거하며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서 최종적으로 능력을 확인하는 건 실패했지만, 아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오?”

“미셜 화장품 뒤에 미스터 최가 있습니다. 각 나라의 첩보기관에서는 대한텔레스의 뒤에도 미스터 최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흐음.”

놀라운 일이었다.

대한텔레스에서 만들고 있는 자주포의 실질적인 주인이 동하라는 소리.

그렇다면 대한그룹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것도 그리고 한국 대통령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도 다 설명이 된다.

“무엇보다 미스터 최의 집 근처에만 괴수들이 없습니다. 인근 지역에만 해도 괴수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입니다.”

“확실히 신기한 일이군.”

미 대통령이 드디어 반응을 보였다.

요즘 세상에 어느 한곳에만 괴수들이 없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미스터 최는 지금 한국 정부에 어떤 대우를 받고 있나?”

“그것까지는 아직 파악을 하지 못했습니다.”

“자네가 한국으로 가서 미스터 최와 접촉을 해보게.”

“스카우트를 하려는 겁니까?”

미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스터 최가 어떤 조건을 제시하든 무조건 맞춰 주시오.”

미 대통령은 이번에 느낀 게 많았다.

인재 한 명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이렇게나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전에 나는 한국 정부에서 제시한 모든 요구 조건을 수용해서 최대한 성난 한국의 여론을 가라앉히는 데 노력하겠소.”

☆ ☆ ☆

전 세계에 무기를 공급하는 일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내수용과 수출용은 품질에 차이가 있었다. 아무래도 내수용에는 성능이 강한 사체를 녹인 액체를 사용한 반면 수출용에는 사체의 액을 물로 희석을 시켜서 다운그레이드 시켰던 것이다. 이건 선택의 여지가 없는 문제였다.

아무리 출시 국가를 일곱 개로 늘렸다고 해도 동하 혼자서 그 많은 양을 매일 만들어 내는 건 벅찬 일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내수용과 수출용에 차등을 두다 보니 대한민국에서는 적은 수량의 무기로도 괴수들을 죽일 수 있었지만, 외국에서는 그보다 몇 배나 많은 양을 쏟아 부어야만 가능했다.

물론 대한텔레스만 돈을 벌었다.

그리고 그중 상당한 액수가 동하에게 흘러들어갔다.

동하는 하루에 천만 달러 넘는 돈이 계좌로 들어올 때도 있었다.

대한민국의 방위산업체가 대한텔레스를 중심으로 인수 합병이 되면서 이제는 총알과 박격포 등 거의 모든 무기를 강화할 수 있었다. 그건 곧 더 많은 군대와 병력이 투입이 되고 효율적으로 괴수들을 사냥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게 차츰 대한민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는 서서히 안정을 되찾아갔다.

그리고 미국이 한국 정부가 요구한 모든 조건을 들어주면서 드디어 무기를 공급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다시없는 굴욕적인 일이었지만, 대한민국 정부에서 7차 출시 국에 포함시켜 준 것으로 급한 불을 끈 셈이었다.

이것으로 1차 침공은 대충 마무리를 지은 것 같았다.

이전 생애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진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샤이언 종족이 괴수들의 능력을 대폭 강화를 시켜 1차 침공을 일으켰다면 지구에는 동하가 있었다. 이전 생애에서는 2년이 넘어서도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동하는 채 한 달도 되지 않아서 해결한 것이다.

애초에 동하가 없었다면 인류는 파멸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었다.

아직 완벽하게 정리가 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전 세계는 괴수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지만, 1성급 몬스터는 그리 강하지 않아서 동하가 만든 강화 무기만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하도 풀어야할 숙제가 있었다.

그건 바로 마나였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고 아무리 1서클 마법이라 해도 매일 사용하다 보니 마나가 조금씩 줄어들었고, 이제는 거의 바닥이 드러나고 있었다.

결국 동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차원이동으로 만물상점에 들어갔다.

베타테스트 어플을 사용해서 접속한 것이 아니어서 누구도 동하의 접속을 알아차리지는 못했지만,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오랜만에 들어온 만물상점은 삭막한 기운이 감돌았다.

차원의 전사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루고 주변을 순찰했고, 곳곳에는 동하의 얼굴이 그려진 포스터가 붙여져 있었다. 각 블록마다 테스터들이 쇼핑을 하고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예전에 비해 경직된 분위기가 감돌았다.

동하는 오랫동안 만물상점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즉시 적당한 장소를 물색한 다음 차원의 전사들의 눈을 피해 마나심법을 운용했고, 마나가 채워지는 순간 곧장 자신의 집으로 되돌아왔다. 거실에는 어머니 김성혜 여사를 시작으로 식구들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오빠, 어서 텔레비전 좀 봐봐.”

“왜?”

“우리나라에 이상하게 생긴 괴수가 나타났어.”

10미터가 넘는 호랑이였다.

그 크기가 지금까지 나타났던 1성급 몬스터와는 차원이 달랐다.

놈의 입에는 두 개의 거대한 어금니가 달려 있었고, 두 발에는 1미터가 넘는 발톱이 있었다.

‘자이언트 검치 호랑이다.’

동하에겐 제법 익숙한 놈이었다.

필드 2관에서 놈과 사투를 벌이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번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필드 2관에서 겪었던 놈보다 두 배 가량 더 커져서 엄청난 위압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르르 쾅쾅!

몇 개의 부대가 달려들어 놈을 사냥하고 있었다.

저 멀리서 자주포를 날렸고, 근접 거리에는 건물에 숨어서 박격포를 쏘고 기관총을 난사했다.

가히 융단폭격이라 할 수 있었다.

펄쩍!

자이언트 검치 호랑이는 바닥을 박차고 하늘을 날아올랐다.

그 움직임이 어찌나 빠르고 날렵하던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놈을 가격하지 못했다.

자주포는 빗나갔고, 박격포는 옆 건물에 떨어졌다.

펑!

콰르릉!

연이은 오발에 지축이 흔들리고 건물이 부서져 나갔다.

그나마 기관총이 자이언트 검치 호랑이에 적중했지만, 강력한 보호막이 놈의 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어어?”

“모, 모두 피해.”

여기저기서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들보다 자이언트 검치 호랑이가 더 빨랐다.

놈은 번개처럼 움직여 건물 뒤에 숨어 있던 박격포 부대를 처참하게 짓이겨 버렸고, 그 다음엔 기관총을 난사하는 자들을 찾아내 이빨로 물어뜯고 발톱으로 갈기갈기 베어 버렸다. 순식간에 수십 명의 군인이 처참하게 죽었다.

그 모습이 카메라를 통해 여과 없이 방송으로 송출되고 있었다.

국민들은 패닉에 빠졌다. 백전백승. 강화한 무기를 사용한 이후 이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이번에도 무난히 승리할 줄 낙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이가 없군.’

덩치가 두 배로 커졌으면 행동이 느려져야 정상인데 오히려 놈은 예전보다 더 민첩하고 날렵해진 것 같았다.

“다들 정신 차려.”

“빨리 좌표를 다시 설정해.”

전열을 정비한 자주포 부대가 놈을 향해 일제히 포격을 가했다.

쾅쾅쾅!

이번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십여 개의 포탄이 놈의 몸에 떨어졌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자욱한 연기가 일대를 집어 삼켰다.

“성공이다.”

군인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텔레비전으로 시청을 하고 있던 국민들 역시 서로를 끌어안고 환호성을 터뜨렸다.

하나 그것도 잠시.

연기가 서서히 걷히며 자이언트 검치호랑이 모습이 드러났다.

놈이 크르릉 거리며 전방을 노려보았다.

바로 자주포가 날아온 곳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럴 수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자이언트 검치 호랑이는 십여 개의 포탄을 맞고서도 상처 하나 없었다.

상처는커녕 털에 그을린 자국 하나 없었다.

“크아아앙!”

놈이 사납게 포효를 하고 단번에 수십 미터를 도약해서 자주포 부대를 덮쳤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자주포 부대원들이 재빨리 놈을 향해 포격을 가했지만, 놈은 자신에게 쏟아져 내리는 포탄에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크아악!”

“으아악!”

자이언트 검치 호랑이가 포병부대 안으로 뛰어들고 잔인하게 군인들을 학살했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겨우 단 한 마리에 의해 여러 개의 부대가 초토화가 되었다.

더 이상 실시간 중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방송 기자들 역시 자이언트 검치 호랑이의 손에 모두 죽었던 것이다.

하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놈은 전형적인 블랙 몬.

3성급 이상의 몬스터였다.

동하가 만든 무기는 1성급 몬스터의 사체를 마법의 용광로의 힘을 빌려 만들어 2성급 몬스터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2성급 몬스터까지는 어떻게든 상대할 수는 있어도 3성급 이상부터는 통하지 않는다.

‘으음. 설마 1차 패치 업데이트를 3성급 몬스터로 만들었단 건가?’

확실히 이전 생애에서 블랙몬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3차 침공 때였다.

샌프란시스코에 자이언트 악어가 나타났을 때부터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긴 했었는데, 대한민국에 자이언트 검치 호랑이까지 나타난 것을 보면 확실했다.

동하는 혹시 하는 생각에 채널을 돌려보았다.

-속보입니다. 모스크바에 30미터 크기의 공룡이 나타났습니다.

-중국은 15미터 크기의 익룡이 나타나 베이징이 불바다로 변했습니다.

-일본에는 20미터 크기의 바다의 괴물 크라켄이 나타나…….

‘역시.’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패치 업데이트가 진행이 되었고, 초대형 괴수들이 나타나 도시를 파괴했다. 놈들의 보호막은 1성급 몬스터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고, 동하가 만든 강화 무기들이 통하지도 않았다.

겨우 1차 패치 업데이트의 위력이 이 정도라면 천하의 동하도 바싹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1차 침공이 이렇게 강해졌다면 다음 2차 침공은 얼마나 더 강해질까?

이전 생애에서는 3차 침공 때부터 6차 침공 때까지. 인류는 근근이 괴수들을 막아 내며 버텼지만, 지금은 시작부터 종말을 고해야할 판이었다.

‘그렇게는 안 되지.’

동하가 공간이동을 하러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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