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 알아서 기어-01 -->
미국만 빼고 모든 나라에 무기를 공급해 준다?
동하의 말은 한마디로 미국을 ‘왕따’시키겠다는 뜻이었다.
대통령은 거대한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감히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미국에게는 수많은 우방 국가들이 있고, 경제적인 규모로 보나 군사적인 규모로 보나 대한민국은 미국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미국이 금리만 살짝 인상해도 한국 경제가 들썩거리는 정도였으니 두말할 나위도 없다.
더구나 왕따라는 것도 그렇다.
원래 힘이 강한 아이가 힘이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것이 왕따이지, 힘이 약한 아이가 힘이 강한 아이를 괴롭힐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괜히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나중에 무슨 보복을 당할지 몰랐다. 막말로 미국과 전쟁이라도 벌어지게 되면 대한민국은 감당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외교 문제는 괴수들과의 전쟁하고는 또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그래서였다.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미국에서 무기를 사면서도 제대로 목소리 한 번 높여보지 못하고 철저한 을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괴수를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무기를 대한민국이 보유하고 있었고, 국제 사회에서 충분히 미국을 고립시킬 수 있었다.
“좋아, 어디 해 보세.”
“후후. 잘 생각하셨습니다. 주도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언제까지 호구 취급당하며 살아갈 필요는 없죠.”
“한데, 무슨 수로 전 세계에 무기를 공급해줄 수 있는 건가?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원료가 필요할 것 같은데.”
“그것도 따로 생각해둔 것이 있습니다.”
“호오? 그런가?”
대통령의 표정이 밝아졌다.
미국을 고립시키려면 아무래도 다른 나라에 차질 없이 무기를 공급해 주는 것이 키 포인트였다.
☆ ☆ ☆
기자들 앞으로 대통령이 자주포 수출과 공급과 관련해서 특별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문자가 발송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 동하는 오랜만에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기자회견이 끝나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긴 하겠지만, 그 전에 실컷 방구석에 처박혀서 뒹굴 거릴 생각이었다.
따르릉!
“여보세요?”
-최동하 씨?
“누구시죠?”
-저는 프랑스의 디폰 화장품의 한국지사 사장입니다.
“흐음. 그런데요?”
-미셜 화장품의 ‘퀸’과 관련해서 긴히 만나 뵙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글로벌 화장품 업체 쪽에서 동하에게 연락을 해왔지만, 동하는 딱히 관심이 없었다.
“죄송하지만 전화 끊겠습니다.”
“최동하 씨, 잠시만 제 말을 좀 들어주시면…….
뚝!
이렇게 확실하게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었으니 다신 연락을 하진 않겠지.
잠시 누워서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는 음악을 듣고 있을 때였다.
따르릉!
동하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최동하 씨?
아까하고 목소리가 달랐다.
“누구시죠?”
-반갑습니다. 저는 미국의 슈티컬 제약회사의 한국지사 부사장이라 합니다.”
“제약회사요?”
-미셜 화장품의 ‘퀸’이 보여준 놀라운 성능에 저희 회사는 예전부터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하아.”
동하는 한숨부터 나왔다.
편히 쉬는 건 물 건너 간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동하는 이미 강혜련 여사에게 들은 것들이 있었다.
글로벌 화장품 업체와 제약회사들 쪽에서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건 알고 있던 참이었다.
-잠시 시간을 주시면 만나 뵙고 드릴 말씀이 있는데…….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까 끊겠습니다.”
-자, 잠시 만요. 저희 슈티컬 제약회사는 최동하 씨가 들으면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을 준비해서…….
뚝!
동하는 그냥 전화를 끊어 버렸다.
하지만, 그것이 시작이었다.
디폰 화장품과 슈티컬 제약회사를 시작으로 거의 모든 화장품 업체와 제약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나중에는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 거릴 정도였다.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한 업체도 많았고 그 중에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내민 곳도 있었지만, 동하는 이제 돈이 아쉬운 상황이 아니었다.
이전 생애에서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동하는 전혀 감동적이지 않았다. 그들이 이대로 쉽게 물러날 것 같진 않았다.
글로벌 화장품 업체나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회사의 운명이 달린 일이니 쉽게 포기하진 않을 것이었다.
하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화장품 업체와 제약회사에서 동하의 존재를 알고 있다면 대한민국에서 암약으로 활약하고 있는 각 나라의 첩보요원들은 어떨까?
지금쯤이면 충분히 동하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래저래 귀찮은 일만 생기는군.”
정체를 숨길 수 있다면 끝까지 조용히 살고 싶은 것이 동하의 바람이었다.
하지만, 미래가 바뀌고 시간이 급속도로 앞당겨지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정체를 숨기고 살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 ☆ ☆
그로부터 이틀 뒤.
세계의 시선이 대한민국에 쏠리고 있었다.
시차로 인해 각 나라마다 시간은 제각각 달랐지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텔레비전 앞에 모인 건 매한가지였다.
세계인의 시선이 대한민국에 쏠린 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특히, 대한민국 국민들은 세계인들의 반응을 챙겨보며 뿌듯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벌써부터 방송과 신문에서는 이번 특별기자회견에 대한 뉴스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괴수와의 전쟁이 모든 방송과 기사를 장악한 상황에서 기현상이 벌어진 셈이었다.
“전 세계가 괴수들로 인해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신이 노해서 인간을 심판하기 위해서 괴수를 내보낸 것인지 아니면 외계인이 침공을 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인류의 미래도 없다는 것입니다.”
청와대의 춘추관에서 대통령이 특별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한국의 방송국과 언론사의 기자들은 물론이고 CNN과 로이터 통신. AP통신 등 세계 글로벌 언론사는 물론이고 다른 나라의 언론사들이 대거 모여 있었다.
찰칵! 찰칵!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지는 가운데 대통령이 담담한 표정으로 특별 기자회견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었다.
“수많은 나라에서 지원을 요청했고, 이에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고심 끝에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지원 요청을 수락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오오.”
“그게 정말입니까?”
기자들이 술렁거렸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부는 물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매번 지원요청을 거절해 왔었기 때문이었다. 물량이 부족한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건 대한민국조차도 무기 수급이 원활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혹시 기술 제휴는 해당사항이 없는 겁니까?”
어떤 기자가 돌발적으로 질문을 했다.
그를 시작으로 수십 명의 기자들이 궁금하던 것들을 일제히 묻기 시작했다.
순간 비서실장이 급히 마이크를 잡고 나섰다.
“아아. 질문은 나중에 받기로 하고 지금은 계속 대통령님께서 말씀을 하시겠습니다.”
그제야 춘추관이 조용하게 변했다.
대통령은 감회가 새로웠다. CNN과 로이터 통신 그리고 AP 통신 등 글로벌 언론사를 앞에 두고 기자회견을 한 건 대한민국 대통령 중에서는 아마 자신이 처음일 것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한없는 영광인 동시에 국가의 격이 올라가고 대한민국이란 브랜드 파워도 높아지는 계기가 되고 있었다.
“이번에 대한텔레스에서 무기 생산을 대폭 늘릴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순간 춘추관은 정적에 휩싸였다.
카메라 플래시가 더욱 요란하게 번쩍 거렸다.
“여전히 전 세계의 수요를 채우기에는 물량이 턱없이 부족한 형편입니다. 해서 부득이하게 출시국을 7개에서 10개 조로 나눌 생각입니다. 그렇게 되면 7일에서 10일에 한 번 꼴로 무기를 공급받겠지만 인류의 미래가 달려 있는 일이니 다들 따라 주리라 믿습니다.”
또 다시 기자들이 웅성거렸다.
무기 생산이 늘어나는 건 누구나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무기 공급을 7일에서 10일에 한 번 한다는 것은 텀이 너무 길었다.
이래서는 어느 한 지역을 커버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렇다고 누구하나 불평을 늘어놓지 못했다. 솔직히 지금은 이것도 감지덕지였다.
오히려 다른 나라들은 1차 출시 대상 국가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로비라도 벌여야 할 판이었다.
“출시국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대한텔레스 쪽의 관계자가 나와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뚜벅뚜벅.
단상 앞으로 걸어 나온 사람은 동하였다.
그건 너무 의외의 일이었다. 대통령과 비서실장 그리고 한쪽에 앉아 있는 서용훈 사장을 제외하면 누구도 동하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기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누구지?”
“처음 보는 사람인데.”
“대한텔레스를 대표하기에는 너무 젊잖아?”
웅성웅성!
기자들의 중얼거리는 소리에 춘추관이 어수선하게 변했다.
비서실장이 장내를 진정시켰을 때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 ☆ ☆
동하는 처음엔 전면에 나설 생각까진 없었다.
서용훈 사장은 몇 번이나 동하에게 대한텔레스를 맡기려 했지만, 그때마다 동하가 거절했다. 동하는 예전부터 전면에 나서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눈에 자주 띄다보면 결국 동하의 특별한 능력이 알려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화장품 업체와 제약회사의 전화를 받고 마음을 바꾸었다.
더구나 미국과의 전쟁을 선포한 건 동하였다.
한데, 자신만 뒤에 숨고 모든 걸 대통령과 서용훈 사장이 총대를 메게 한다는 것도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동하가 전면에 나서는 걸 반대했다.
가급적 동하의 정체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무렵 각 나라의 첩보요원들이 동하의 존재를 서서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미 화장품 업계와 제약회사 쪽에서는 동하는 신화적인 인물이었다. 숨긴다고 언제까지 숨겨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인류는 지금 커다란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괴수들이 어디서 왔는지 누구도 설명할 수 없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단언할 수 있습니다. 괴수들은 그 어떤 무기로는 죽일 수 없고, 오직 대한텔레스에서 만든 무기만이 가능합니다.”
어떻게 보면 거만해 보이는 말투였지만, 누구도 동하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대한텔레스는 인류의 생존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는 대한민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후로 방위산업체와 정부의 조직을 통합하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이후로 자주포뿐만이 아니라 다른 무기들도 생산해서 괴수들을 죽이는데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언뜻 보면 대한텔레스가 엄청 양보를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대부분의 방위산업체를 흡수한 것이었다.
물론 이에 반발한 업체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남으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전쟁과 같은 전시상황이 발생을 했는데도 방위산업체는 도산하기 일보직전이었다.
일반적인 무기는 통하지 않고 오로지 대한텔레스의 자주포의 수요만 급증하는 상황에서 달리 방법이 없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지금까지는 대한텔레스에서 생산하는 무기가 자주포 밖에 없어서 아쉬움이 컸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제는 총이나 미사일 등 전 분야에서 생산이 가능하다고 하니 더 많은 병력을 동원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효과적으로 괴수들을 상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1차 출시국부터 발표하겠습니다.”
동하의 말에 모든 기자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침을 꼴깍 삼켰다. 서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나라가 1차 출시국에 포함되길 기대하고 있었다.
☆ ☆ ☆
동하는 출시 대상 국가를 7단계로 나뉘었다.
그렇다는 건 7일에 한 번 꼴로 무기를 공급받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어느 나라이건 괴수들의 공격에 다급하긴 마찬가지였다.
하루라도 먼저 배정을 받는 게 여러모로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였다. 앞쪽에 배정을 받은 나라의 기자들은 얼굴이 환해진 반면 뒤쪽에 배정을 받은 기자들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겨우 하루 차이일 뿐인데도 희비가 엇갈릴 정도였다.
하지만, 7차 출시 국가의 리스트가 모두 발표되었음에도 미국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CNN 기자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착오가 있는 거겠지.
미국의 영향력과 그동안 한국과의 관계를 고려하면 1차 출시 대상 국가에 당당히 이름이 있었어야 정상이었다.
잠시 기다리다 보면 정정 발표가 있을 터라 처음에는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하나 시간이 흘러도 동하는 좀처럼 정정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국장님, 이게 어떻게 된 걸까요?”
“글쎄. 혹시 미국은 당연히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빼놓은 거 아닐까?”
마크와 제인은 황당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춘추관 모임에는 스미든 미국 대사와 톰슨 주한미군사령관도 참석했다.
그들은 사실 이런 기자회견 자체가 불쾌한 상황이었다.
감히 미국을 다른 나라들과 똑같이 출시 대상 국가 안에 포함시킨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나라들은 1차 출시 대상 국가 안에 들어간 걸 기뻐했지만, 그들은 결코 이런 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무조건 특별대우를 원했다.
각종 혜택은 물론이고 기술 이전도 원했다.
한데 이게 웬걸?
미국의 이름은 1차 출시 대상 국가에 들어 있지도 않았을 뿐더러 7차 출시 국가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때, 마크가 손을 들고 동하에게 물었다.
“CNN의 마크 국장이라 합니다. 미국의 이름이 출시 국가에 완전히 빠져 있는데 뭔가 착오가 있는 것 아닙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우린 미국에게 그 어떤 무기도 공급하지 않을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