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 완전체를 향하여-03 -->
“9성급 S몬이 전지전능한 신이라고 했었나?”
“그렇습니다, 어르신.”
“그렇다면 음양조화선은 자네와 깊은 연관이 있는 것 같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무림 종족의 태초와 관련된 신화에는 우주를 이루는 네 가지 원소가 나오네. 창조신이 우주를 만들며 곳곳에 자신의 힘을 상징하는 것을 다섯 개로 나누어서 숨겨 놓았지.”
“혹시 그게 흙, 물, 불, 공기 아닙니까?”
“그렇지. 그리고 여기에 초월적인 힘을 가진 존재가 있네. 이것을 더하면 만물의 근원은 다섯 가지가 되는 셈일세.”
사람들의 생각인 비슷한 것일까?
현대에는 이 초월적인 존재를 에테르라 부르는데, 무림 종족에도 이런 신화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흔히 우주만물은 다섯 가지 원소에 이루어지고 다섯 가지 원소에 유지가 된다고 하지.”
“그건 저도 학교 시간에 배운 내용입니다.”
“하지만, 무림 종족의 신화에는 조금 다르게 나오네.”
[달을 지나고 별을 건너 다섯 개의 힘을 취하는 자가 진정한 신이 되리라.]
“지금까지는 달을 지나고 별을 건넌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네. 그냥 허무맹랑한 말인 줄로만 알고 깊게 생각하지 않았었지.”
“그렇군요. 이건 차원과 차원을 지나라는 뜻입니다.”
“그런 것 같네. 그걸 알고 나서야 창세신화 속에 담긴 비밀도 자연스럽게 풀리더군.”
결국 우주의 기원은 하나고, 창세신 역시 하나라는 뜻이었다.
동하는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무림 종족의 창세신화 속에 우주의 비밀이 담겨 있다면 어쩌면 야수종족에도 있을지도 몰랐다.
동하는 즉시 타오와 야이에게 창세신화에 대해 물었고, 야수 종족에게도 이런 것과 비슷한 신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정말 어르신의 말씀이 맞을지도 모르겠군요.”
동하는 왠지 소름이 돋았다.
곤륜노자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노부의 생각에는 말일세. 어쩌면 야수 종족의 생명의 나무 열매는 다섯 가지 원소 중에 흙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 싶네.”
“흐음.”
황당한 생각도 들었지만, 왠지 그럴 듯하기도 했다.
“그래서 말일세. 야수 종족의 생명의 나무 열매가 흙이라고 한다면 음양조화선은 초월적인 힘일 것이네.”
“그걸 어떻게 확신을 하십니까?”
“바로 이걸세.”
곤륜노자가 가볍게 음양조화선을 휘둘렀다.
순간 부채에서 살랑대는 미풍이 흘러나왔다.
“어?”
동하는 물론이고 남궁혜와 방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라 외쳤다.
단순한 미풍이 아니었다.
어느새 거대한 장풍이 되어 도저히 항거할 수 없게 변해 있었다.
동하는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나서야 겨우 중심을 잡을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남궁혜의 신형이 주르륵 뒤로 밀려났다. 왕세기와 제갈소연은 중심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었고, 타오와 야이는 저 멀리 날아갔다.
이것으로 서로의 능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혹시 무공을 회복하신 겁니까?”
“파괴된 단전이 회복된 것일세. 음양조화선은 천지간에 틀어진 부분이 있다면 바로 잡아주는 능력이 있네.”
상처를 치료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전이 파괴된 건 결코 정상적인 일이 아니었다.
이는 음양의 이치에서 볼 때는 비정상적인 일이었고, 음양조화선은 부족한 점은 채워주고 넘치는 부분은 바로잡아 주었다.
중용의 이치라고 할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하는 것이 음양조화선의 능력이었다.
미풍이 거대한 장풍으로 변한 것도 같은 이치였다.
주변에 한줄기 바람만 있다면 음양조화선으로 수십 배 강한 바람으로 만들 수 있었다. 물론 반대로 엄청난 강풍을 잔잔한 미풍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물론 공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곤륜노자가 회복한 공력은 겨우 1성에 불과했지만, 음양조화선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자네가 진정한 완전체로 나아가려면 다섯 개의 원소를 모두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네.”
“이미 두 개는 모은 셈이군요.”
“그렇지.”
관건은 나머지 세 개였다.
물론 다섯 개를 모두 찾는다 해도 과연 동하가 진정한 9성급 S몬의 완전체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하나 곤륜노자는 확신을 하고 있었고, 동하 역시 상당히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머지 세 개의 원소들이 어느 종족에 숨어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전 생애에서 샤이언 종족은 다섯 개의 원소를 모두 모아 9성급 S몬을 만든 게 틀림없네. 그리고 넘치고 부족한 부분은 음양조화선이 중심을 잡아주었을 테고.”
어쩌면 그럴지도.
동하는 이미 환골탈태를 하기 직전 아이템의 폭주를 경험한 적이 있어서 무섭게 날뛰는 기운을 바로잡아줄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럼 혹시?’
동하는 문득 자신의 몸속에 음양조화선의 능력이 깃들어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요즘 자신이 가진 것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때가 있었다.
특히, 아이템과 관련된 것에서는 동하조차 깜짝깜짝 놀라곤 했었다.
이건 확실히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
어쩌면 능력의 전이를 펼쳐서 음양조화선의 능력을 몸속에 담아두었을 때 일부분이 남은 것인지도 몰랐다.
☆ ☆ ☆
무림 종족에는 울트라 베타테스트의 1차 1기에 뽑힌 사람이 없었다.
남궁혜는 결국 만물상점에 접속을 해서야 겨우 실마리를 알아낼 수 있었다.
“이번에 판타지 종족과 무림 종족은 제외가 되었다고 해요.”
“흐음.”
공교로운 일이었다.
하필이면 동하가 사용했던 판타지 종족과 무림 종족이 모두 제외가 된 것은 결코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샤이언 종족이 동하의 존재를 의식한 나머지 동하와 관련된 것은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제외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1차 2기에서도 제외될 가능성이 높겠군.’
샤이언 종족 입장에서는 함정을 만들고 동하를 끌어 들이고도 제거하는데 실패했으니 이젠 처음부터 아예 제외시키려고 한 것 같았다. 동하가 아무리 차원이동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필드에 숨어 들어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필드를 다녀온 테스터들에 따르면 필드 2관에서 시작했대요.”
“그렇습니까?”
“하지만, 예전하고 다른 게 있다면 이번에는 4, 5명씩 파티를 만들고 괴수들과 싸웠다고 하네요.”
동하는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혹시 괴수들의 몸체가 예전에 비해 커졌다고 하지 않습니까?”
“맞아요. 어떤 건 2배 이상 커진 것도 있고, 테스터들의 능력이 잘 통하지 않아서 파티가 전혀 소용이 없었다고 해요.”
역시.
샌프란시스코에 나타난 자이언트 악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이건 동하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다.
이전 생애에서 자이언트 악어를 비롯한 필드 2관의 포식자들을 블랙몬이라고 불렀다.
원래는 3차 침공 시기부터 나왔어야 할 놈이었지만, 이번에는 1차 침공에 끼어 있어서 이상하게 생각했던 동하였다.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패치 업데이트가 되어 1성급 S몬의 지구 침공이 시작되면 블랙 몬 위주로 전개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3차 침공이 이렇게 빨리 앞당겨 지는 것인가?
동하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전 생애와 비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괴수들의 레벨이 올라가고 있었다.
☆ ☆ ☆
“박사님. 뭔가 느낌이 이상합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어느 한 곳에서 괴수들의 생존 확률이 급속도로 떨어집니다.”
“어디 보세.”
타누스 박사가 시선을 돌렸다.
전면에 펼쳐진 거대한 모니터에는 지구의 대륙별 구분 지도가 있었고, 빨간색 점으로 괴수들의 분포도가 표시되어 있었다. 한데, 시얀의 말마따나 유독 한 곳에서만 괴수들의 생존율이 비정상적으로 떨어졌다.
“확실히 이상하군.”
“아무래도 대응방법을 찾아낸 것 같습니다.”
“현재 지구의 기술과 문명으로는 결정체의 방어막을 파괴할 수 없다고 자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이론상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베타테스트를 한 결과 괴수들의 사체를 이용해서 무기를 강화하면 방어막을 뚫을 수 있었습니다.”
“버그로군.”
“그것만이 아닙니다. 괴수의 심장 속에 이식한 결정체를 이용하면 괴수의 능력을 흡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만 명 중에 한두 명 정도가 그러한 능력을 각성하는 수준입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우주 말살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인 타누스 박사도 예상하지 못한 버그가 두 개나 생겨난 셈이었다.
하지만, 천하의 샤이언 종족이라 해도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었다.
이런 버그를 찾아내고 수정하기 위해 베타테스트를 운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나 아무리 그래도 버그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결국은 괴수를 죽이고 사체를 얻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저곳이 어디인가?”
“대한민국이라는 곳으로 주변 나라에 비해 과학기술은 그리 발전한 곳이 아닙니다.”
“그럴 리가……?”
사전에 알아낸 지구의 정보에 따르면 과학 기술이 가장 많이 발전한 나라가 있는 반면 그렇지 못 한 후진 국가도 있었다.
물론 샤이언 종족에 비하면 지구의 모든 나라가 수천 년이나 문명이 뒤떨어진 후진적인 나라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도 특히 더 과학 기술이 뒤처진 나라에서 괴수들의 생존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인증오류가 나서 감시자를 보낸 곳도 저곳이 아니었나?”
“아. 박사님 말씀을 듣고 보니 생각이 나는군요. 그때 지역이 어디였더라…….”
시얀은 잠시 기록을 검색하더니 깜짝 놀랐다.
“박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때와 지금 기록이 정확히 일치하고 있습니다.”
“역시…… 그곳에 무언가 있는 게 틀림없군.”
이쯤 되면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없다.
자신들을 시종일관 비웃고 유유히 도망쳤던 자의 종적을 드디어 찾은 것 같았다.
“박사님, 카일 대장에게 말을 해야 할까요?”
시얀의 목소리가 크게 들떠 있었다.
누구보다 동하에게 이를 갈고 복수를 꿈꾸고 있는 사람이 카일이다.
몇 번이나 허탕을 친 덕분에 카일의 자존심은 바닥에 떨어진 상태였다.
“잠깐.”
하지만, 타누스 박사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직은 확실한 게 아니니 좀 더 범위를 좁혀보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놈이 도망칠 틈을 주지 못하게 괴수들의 능력치를 높이란 말일세. 그러다 보면 놈도 결국엔 완전히 정체를 드러낼 테지.”
또 다른 함정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건 이전 생애보다 몇 년이나 앞당겨져서 괴수들의 침공이 일어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 ☆ ☆
동하가 현실로 돌아온 것은 2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아직 곤륜노자와 상의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다음 기회로 미루고 현실로 돌아온 동하였다.
곤륜노자가 음양조화선의 비밀을 모두 푼 것이 아니었다.
음양조화선의 능력에 어떤 것들이 더 있는지는 좀 더 조사를 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전이 파괴되어 노예로 전락한 무림 종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음양조화선이 필요했다.
남궁혜는 어떤 종족에게 생명의 나무와 관련된 전설이나 고사가 있는지 정보를 모으러 다닐 참이었다.
이런 쪽으로는 남궁혜의 능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지금 현재는 만물상점을 무사히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이 남궁혜 한 명 밖에 없었다.
누구 한 사람 각자 주어진 임무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샤이언 종족과의 전쟁이 시작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응?”
동하가 남궁세가에 가 있는 동안 핸드폰에 부재중 전화가 폭주해 있었다. 서용훈 사장은 물론이고 대통령에게도 여러 차례 전화가 와 있었다.
누가 봐도 중요한 일이 생겼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동하는 식구들이 먼저였다.
동하는 일단 집에 들러 식구들이 무사한지 살펴본 다음 다시 밖으로 나왔다. 어머니인 성혜가 동하를 따라 나오면서 이제 곧 날이 어두워지는데 밖에 나가도 괜찮으냐고 걱정했지만 옆에서 미현이 오빠는 걱정할 필요 없다며 엄마를 안심시켜 주었다. 미현이 살짝 동하의 귓가에 대고 귓속말로 속삭였다.
“오빠, 많이 늦어?”
“글쎄. 대통령과 서용훈 사장님께서 급한 일이 있는 듯 지금 찾으시는데?”
“여긴 걱정하지 마, 오빠.”
“너만 믿고 가마.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하고. 3초 안에는 무조건 온다.”
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오빠와 떨어져 있으면 무서운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동하에게는 공간이동이 있어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3초 안에 달려올 수 있었다.
동하도 자신의 공간이동을 믿고 있기 때문에 잠시 볼일을 보러 외출을 할 수 있는 것이었고, 미현 역시 마음을 단단히 먹을 수 있었다.
미진은 아무리 봐도 미현의 행동이 수상했다.
언제부터인가 동하와 미현이 귓속말로 속삭이는 빈도가 높아졌다. 분명 뭔가 있긴 있는데, 두 사람 다 시치미를 딱 떼고 있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 ☆ ☆
대통령이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한두 시간도 아니고 무려 3시간째였다.
하지만,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했던가?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려면 무기를 지금보다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건 전적으로 동하의 허락을 구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대통령은 동하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다.
“그래서 말일세, 동하 군. 미국 쪽에 무기를 주면 안 되겠나?”
“글쎄요. 미국이 아직 상황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군요.”
“그게 무슨 소린가?”
“미국 쪽에서 정말 무기를 주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빼겠다고 했습니까?”
“면목이 없네.”
“그렇다면 빼라고 하십시오.”
“이보게, 동하 군.”
대통령이 화들짝 놀라 동하를 쳐다보았지만, 동하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것들이 아직까지 타성에 젖어서 자신들이 초강대국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참에 무엇이 똥이고 무엇이 된장인지 확실히 가르쳐 줘야죠.”
대통령은 어이가 없어서 입을 떡 벌린 채 다물 생각조차 못했다.
“사, 상대는 미국일세. 그게 가능할 리가…….”
“가능합니다. 이제 괴수들의 시대가 열린 겁니다. 그까짓 주한미군은 하등 필요가 없어졌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는다네.”
“글쎄요. 누가 이기나 어디 한번 해보죠. 내일부터 미국만 빼고 모든 나라에 무기를 수출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