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만물상점-106화 (106/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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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용광로가 열 배 이상 커진 만큼 한 번에 녹일 수 있는 사체의 양도 열 배 이상 많아지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시간까지 열 배로 늘어난 건 아니었다.

오히려 평소에는 10분 정도 걸리던 것이 지금은 3분 내외로 /오히려/ 시간이 단축되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에 동하는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였다.

“A급 아이템 때문인가?”

그거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덕분에 동하는 마나의 소모를 대폭 줄일 수 있었다.

나름 기연이라면 기연인 셈이었다.

사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아무리 1서클 마법을 펼친다고 해도 매일 마법을 사용하다 보면 오래지 않아 마나가 바닥날 수밖에 없었다.

당분간은 마나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마나를 다시 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지 않으면 언제고 마나는 바닥이 나게 될 터였다.

“그나저나 색깔이 다른데?”

동하는 새로 만든 사체로 만든 액체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전에는 탁한 회색이었다면 지금은 물처럼 투명한 컬러다. /하지만/ 점성이 느껴질 정도로 농도가 진한 건 두 개 모두 똑같았다.

“뭐지?”

단순히 색깔만 변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런 건 또 그냥 지나칠 동하가 아니었다.

동하는 즉시 인벤토리에서 캔 커피 하나를 꺼냈다.

원래는 필드에 가서 마시려고 준비했던 것인데, 본의 아니게 며칠이나 인벤토리에 처박아둔 상태였다. 동하는 새로 만든 사체의 액체를 커피 캔에 바르고 검으로 내리 찍었다. 실험의 편의상 이전에 만든 사체의 액체로 강화한 검을 사용했다.

깡!

커피 캔은 잘려지지 않았다.

대신 동하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커피 캔이 잔뜩 찌그러졌다.

“괴, 굉장하군.”

오히려 검 날이 상해 있었다.

괴수의 사체로 강화한 검이 상할 정도면 도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

동하는 처음부터 어느 정도까지 기대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설마 이렇게까지 사체의 액체가 강화되었을 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이건 뭔가 조금 이상했다.

아무리 A급 아이템을 같이 넣고 마법의 용광로를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액체의 성능을 강화하기는 어려웠다.

기존보다 몇 배는 더 성능이 강화된 것 같았다. 그렇게 보면 시간이 10분에서 3분으로 단축된 것도 뭔가 석연치 않았다.

“흐음.”

동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지만, 딱히 번쩍 하고 떠오르는 건/실마리는/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이것이야말로 음양조화선의 능력 중 하나였다.

음양조화선은 태초의 비밀이 담겨 있는 지고무상의 기보였다.

당시 동하는 능력의 전이를 통해 음양조화선의 능력을 자신의 몸속으로 흡수했다가 A급 아이템으로 만든 짝퉁 음양조화선에 옮겨 놓았었다.

그 과정에서 잠시 동안 음양조화선의 능력이 동하의 몸속에 머물게 되었고, 그때 일정 부분이 동하의 몸속에 흡수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동하의 품속에는 야수종족의 기보인 생명의 나무의 열매가 있었다.

생명의 나무의 열매와 음양조화선은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궁극적으로는 태초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면에서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었다.

이 두 가지 기운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아이템의 능력을 증폭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 ☆ ☆

세계의 반응은 뜨거웠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부각되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괴수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는 나라였다.

다른 나라들이 괴수와의 전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을수록 대한민국 정부의 위상은 높아만 갔다. 괴수들은 각 나라의 도시를 점령해 나가고 있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만 갔다.

이제는 정부를 믿고 마냥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각자 알아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중요했다. 그나마 동하로부터 촉발된 생존 방법은 속보를 타고 외국에도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지하실이나 밀폐된 공간에 숨었고, 그 이후부터 급속도로 인명의 피해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했다.

안전지역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무능한 정부에 격분한 나머지 폭동이 일어나고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지만, 이미 각 나라의 정부에서는 그것들에 대처할 만한 병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국민들 사이에 벌어지는 혼란과 폭력은 괴수들의 침공과는 또 다른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에 반해 대한민국은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유령의 도시처럼 변했던 거리에 하나둘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피난을 떠났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한번 공간이 열리고 괴수들이 침공한 곳은 일정 시간이 흐르자 완전히 닫혀서 다시는 열리지 않았다.

이제 이곳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으로 변한 것이다.

괴수들의 공격으로 건물이 무너지고 거리는 쑥대밭이 되어 있었지만, 사람들은 이런 전쟁 통 같은 환경에서도 조금씩 적응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전국 곳곳에서는 여전히 포성이 들리고 괴수들과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안전 지역으로 변한 곳은 장사도 하고 식당도 문을 여는 등 차츰 일상을 되찾아갔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공간이 열리고 괴수들이 튀어 나올지 예측할 수 없었다.

괴수들의 1차 침공 첫날에는 몇몇 곳에만 열렸던 공간이 3일째 되는 날엔 두 배로 늘어났고, 6일째 되는 날엔 세 배로 늘어나 지금은 대한민국 전역에 괴수들이 나타난 상태였다. 그나마 정부에서 만반의 준비를 한 탓에 피해는 최소한으로 막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가 문제였다.

무엇보다 괴수를 죽일 수 있는 강화 무기가 턱없이 부족했다. 매일 소모되는 자주포의 양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만 가는데 동하가 대한텔레스에 전해주는 액체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은 벌써부터 걱정이었다.

지금까지 패턴을 보면 3일 단위로 새로운 지역에 공간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9일째 되는 날 새로운 지역에 공간이 생겨난다는 뜻.

침공 첫날보다 네 배가 넘는 공간이 늘어날 게 뻔했다.

세계 각국에서 병력을 파병해 달라는 요구가 빗발쳤고, 자주포를 살 수 없냐는 문의 전화도 끊임없이 걸려 왔다. 경제 강국인 미국과 중국은 물론이고 앙숙과도 같은 일본에서도 대한민국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대통령은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어떤 나라에서 도움을 요청해도 지금으로써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특히 미국은 필사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워낙 자이언트 악어의 파괴력이 무시무시하다 보니 샌프란시스코에 이어 지금은 그 인근 지역 모두가 초토화된 상태였다.

지금으로서는 대한민국 정부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

스미든 미국 대사와 주한미군사령관이 대통령을 찾아와 무기 지원을 요구하는 건 물론이고 기술이전을 요구했다.

“무기 지원은 그렇다고 해도 기술 이전이라니요?”

“원래 무기를 구매하면 기술 이전은 당연히 따라오는 것 아닙니까?”

한마디로 날로 먹겠다는 심보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천문학적인 금액을 들여 전투기를 사려고 해도 정작 미국의 눈치를 보며 물건을 사야하는 형편이었다. 세상 천지에 손님이 주인 눈치 보며 물건을 사는 경우는 없다.

기술이 전?

대통령은 코웃음이 나올 번한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부에서 전투기며 무기를 수없이 구매했지만, 제대로 된 기술 이전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정중하게 부탁을 해도 들어줄까 말까한 상황이거늘 스미든 대사와 톰슨 주한미군사령관의 표정이나 말투는 너무 고압적이었다. 대통령은 기분이 불쾌했지만, 그동안 한미관계를 생각하면 마냥 겉으로 내색할 수는 없었다.

“유감이지만, 두 가지 요구 모두 들어줄 수 없습니다.”

“뭐라구요?”

“우선 기술은 정부의 것이 아니라 대한텔레스의 것입니다.”

처음에는 서용훈 사장과 동하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웠지만, 지금은 차라리 동하가 정부와 계약을 하지 않고 대한텔레스와 계약을 한 것이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대한민국도 지금 무기 수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물량에 대한 것이라면 우리도 오래전부터 원하던 것이죠. 이 역시도 대한텔레스와 협상을 하셔야 할 것 같군요.”

미국이 무섭다고 대한민국 국민을 희생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통령의 반응에 스미든 대사와 톰슨 주한미군사령관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솔직히 놀랍군요. 대통령님께서 우리의 요구를 모두 거절할 줄은 몰랐습니다.”

“대통령님께서 미국과 오랜 동맹관계임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톰슨 사령관.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건 미국과의 동맹을 깨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렇다면 미군이 더 이상 한국에 주둔할 이유가 없지요.”

“지금 안보를 가지고 협박을 하는 겁니까?”

“그렇게 들렸다면 유감이로군요.”

“으으.”

대통령의 얼굴에 심한 경련이 일었다.

주한미군이 갑자기 빠져 나가면 안보에 공백이 생기고 국민들이 무척이나 불안하게 생각할 것이었다.

☆ ☆ ☆

원래 전쟁이 나면 모든 경제 산업은 무너져도 무기를 만드는 방위산업체는 승승장구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대한텔레스는 동하가 독점 사업자로 선정을 해준 바람에 강화 무기를 정부에 독점으로 납품하고 있었다.

동하가 철저히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대한텔레스가 전 세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강화 무기를 생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대한그룹보다 대한텔레스가 더 세계적인 기업으로 각광을 받고 있었다.

수많은 나라에서 기술제휴 요청이 들어온 것은 당연지사.

물밑 경쟁과 함께 치열한 로비가 펼쳐졌다. 콧대 높던 방위산업체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들어왔다. 어떤 곳은 백지수표를 내밀었고, 어떤 곳에서는 엄청난 돈에 원하는 기술까지 전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조건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변해갔다.

하지만, 서용훈 사장은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가끔 뿌리치기 힘든 조건을 제시한 곳도 있었지만, 이건 서용훈 사장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무기를 강화하는 방법은 서용훈 사장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서용훈 사장은 혹시나 싶어서 동하가 건네준 액체를 분석했지만, 전혀 알 수 없는 성분들로만 되어 있었다. 성분 분석을 하기는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괴수의 사체가 지구의 것이 아니다 보니 제대로 성분 분석이 이루어질 리 없었다.

서용훈 사장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지만, 대통령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결국 대통령과 서용훈 사장은 성분 분석을 하고 난 이후 더욱 동하에게 의존하는 결과만 낳고 말았다.

-잠시 상의할 일이 있는데, 자네 지금 시간 되나?

서용훈 사장에게 연락이 온 것은 동하가 막 실험을 끝내고 주변을 치우고 있을 때였다. 마침 동하도 서용훈 사장에게 볼일이 있던 차였기에 곧바로 대한텔레스 사무실로 공간이동으로 넘어갔다.

“동하 씨.”

가장 먼저 반겨준 사람은 바로 유경이었다.

그녀는 요즘 대한텔레스에서 서용훈 사장을 돕고 있었다.

의외의 선택이었다. 여자인 그녀에겐 미셜화장품이 더 어울릴 것 같았는데, 유경은 남자들 위주인 대한텔레스에서 제법 당차게 일을 하고 있었다.

하나 유경이 대한텔레스에서 일을 하고 있는 건 나라를 생각하고 걱정하는 그런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이렇게 해야 동하를 매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동하가 미셜화장품에는 한 달에 한 번 사용할 원료를 넘겨주는데 반해, 대한텔레스는 매일 원료를 넘겨주기 때문에 하루에 한 번은 꼭 동하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서용훈 사장은 유경의 마음을 알고도 일부러 모른 척 했다.

막말로 동하를 사위로 맞아들일 수만 있다면 대한그룹은 천군만마를 얻게 될 것이었다.

동하는 처음에는 서용훈 사장이 상의할 일이 있다고 해서 액체의 양을 늘려달라는 부탁인 줄 알았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기술제휴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자네 생각에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다들 매력적인 조건이긴 하군요.”

“그렇지. 특히나 아랍에미리트의 왕가에서 유전 하나를 넘겨주겠다고 제안을 했네.”

“예?”

동하는 혀를 내둘렀다.

이건 뭐, 통이 큰 것을 넘어 압도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무리 아랍에미리트 왕가의 재산이 1천조 원을 넘는다 해도 유전을 통째로 넘겨준다는 건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다.

“자네도 들어봤을 거네. 압둘라라고 세상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지.”

역시.

동하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랍에미리트라고 했을 때부터 압둘라를 떠올렸던 동하였다.

이전 생애에서 압둘라의 하녀 연봉이 2억 원이라는 사실을 들었을 때 처음으로 하녀가 부럽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압둘라가 유전을 넘겨주겠다고 했으니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서용훈 사장은 꽤나 흥미가 동하는 눈치였다.

막말로 대한민국은 자원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라인데, 유전이 생기면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가치를 갖게 될 것이었다.

“아랍에미리트도 괴수들 때문에 꽤나 어려운 상황인 것 같더군.”

“그렇겠지요.”

“유전을 가지고 있으면 뭐하나? 괴수들 때문에 모두 무용지물로 변할 판인데.”

조금만 더 협상을 끌면 유전 그 이상의 것도 얻어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동하는 딱히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유전은 예전에나 중요한 것이지 괴수의 사체가 신 에너지원으로 부각되면서 석유의 가치는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모두 거절하세요.”

유전 하나를 통째로 넘겨주겠다는 압둘라도 대단하지만, 그걸 가차 없이 거절하는 동하도 보통 강심장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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