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 온 에어-02 -->
저녁 6시 무렵.
석양빛 노을을 뚫고 군수송기 한 대가 용산 미군기지에 착륙했다.
수송기 문이 열리고 마크와 십여 명의 인력이 방송장비를 가지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전 세계적으로 괴수들이 덮친 상황이기에 일반 항공사의 비행기는 운행이 되지 않았다. 마크는 하는 수없이 CIA에 협조를 요청해서 군수송기 편으로 한국에 올 수 있었다.
십여 명의 인력 중에는 CIA요원과 미 국방부 소속의 극동아시아 정보 분석 요원이 함께하고 있었다. CIA나 미 국방부는 마크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안이 사안인 만큼 면밀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괴수를 맨손으로 때려잡는 사람이 있다?
그런 황당한 일이 실제로 존재할 리 없었다.
하지만, CNN 기자가 직접 두 눈으로 확인을 했다고 하니 마냥 거짓말로 치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CIA와 미 국방부가 동시에 나선 건 그만큼 사안이 중차대하다는 뜻이었다.
만에 하나 괴수를 맨손으로 때려잡았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미국 쪽으로 포섭할 생각이었다.
“국장님!”
1시간 전부터 용산 미군기지에서 기다리고 있던 제인이 비행장 쪽으로 달려왔다.
한데, 표정이 어딘가 이상했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움보다는 뭔가 당황한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의 머릿속에는 지금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미친놈 소리까지 들어가며 CIA와 미 국방부를 설득해서 겨우 군수송기를 타고 이역만리인 한국까지 왔는데, 설마 최동하란 사람의 존재가 사실이 아니었다는 말이 나오는 건 아닌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이봐, 제인. 여기 있는 이 사람들 보이지? 제인 때문에 왔다는 것만 알아 두라고.”
대놓고 협박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기운이 담겨 있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제인이 그 속에 담긴 뜻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제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국장님,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럼 뭐야?”
“당장 따라와 보세요.”
제인이 마크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어어.”
마크가 영문도 모른 채 제인에게 끌려간 곳은 텔레비전이 있는 대합실이었다.
그곳에는 수십 명의 미군들이 모여서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었다.
“저길 보세요.”
“응?”
마크는 무심코 텔레비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이내 두 눈을 크게 치뜨고 말았다.
그건 군수송기를 타고 같이 왔던 일행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 저게 뭐야?”
“대한민국 정부의 주도 하에 괴수들을 사냥하고 있어요.”
끼익!
마침 텔레비전 속에서 타이어의 격한 마찰음이 터져 나오며 자동차가 괴수를 사거리로 유인하고 있었다. 바퀴벌레를 닮은 괴수였다. 바퀴벌레 괴수가 사거리로 들어서는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십여 대의 자주포에서 일제히 불을 뿜었다.
그리고 포탄이 날아드는 장면들이 고스란히 카메라를 통해 방송이 되고 있었다. 마크에겐 결코 낯설지 않은 장면. 바로 그가 이라크 전쟁 때 종군 기자로 활약하며 라이브로 내보냈던 것과 너무나도 흡사했다.
하지만, 마크는 이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이가 없군. 고작 자주포 따위로 괴수들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대한민국 정부는 정말 한심 그 자체로군.”
“그렇지 않아요.”
“그게 무슨 말이야?”
“저걸 보세요.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괴수들의 몸을 보호하고 있던 보호막을 자주포가 깨뜨리고 있어요.”
“뭐, 뭐라고?”
마크가 잠시 자신의 귀를 의심하고 있을 때였다.
조준은 정확했고, 십여 개의 포탄이 일제히 바퀴벌레 괴수의 몸에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미사일에도 끄떡하지 않던 방어막이 우지끈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 나는 것이 아닌가?
“어억?”
마크는 물론이고 CIA요원과 미 국방부 정보 분석 요원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가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처음에는 자신들이 잘못 본 줄 알았다. 자주포 따위가 저런 위력을 낼 수 있을 리 없었다. 10발이든 20발이든 자주포의 숫자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건 누구보다 미 국방부 정보 분석 요원인 찰리가 더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이봐, 제인.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방송은 1시간 전부터 시작되었어요. 군인들이 자동차로 괴수들을 하나씩 유인하면 포병들이 자주포로 폭격을 가하는 단순한 방법이죠. 한데, 어떻게 된 일인지 괴수들의 방어막이 모두 깨지고 있어요.”
벌써 15마리 째였다.
처음에는 어설퍼 보이던 것이 지금은 상당히 능숙하게 괴수를 유인하고 포격을 가한 탓에 괴수를 죽이는 시간이 점점 단축되고 있었다.
“으음.”
마크가 새삼스러운 눈길로 텔레비전을 쳐다보았다.
그건 전쟁 영화를 방불케 하고 있었다.
포탄이 날아다니고 연이어 급박한 사태가 전개되고 있었다.
카메라가 초점을 잃고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그건 종군기자들처럼 카메라 기자가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와 더불어 남자 기자가 마이크를 잡고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마크가 한국말을 알아들을 리 없었다.
대신 옆에서 제인이 통역을 해주었다.
“대한텔레스에서 개발한 무기가 괴수의 방어막을 깨뜨릴 수 있었고, 대한민국 군대가 세계 최초로 괴수들을 죽이는 쾌거를 올렸다고 말하고 있어요.”
“대한텔레스?”
“대한그룹 계열사로 자주포를 생산하고 있는 방위산업체에요.”
그렇게 말한다 해서 마크가 대한그룹이 어떤 곳인지 알 리 없었다.
대한그룹이 글로벌 100위 안에 드는 기업도 아닌데다가 대한민국은 조그마한 분단국가에 불과해서 국제적인 영향력이 그리 큰 것도 아니고, 관심을 갖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이었다.
그래서 더 놀라운 일이었다. 미국이나 일본, 하다못해 중국이나 러시아도 하지 못한 일을 조그마한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해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 ☆ ☆
드디어 동하가 살고 있는 동네에도 공간이 열리고 괴수들이 나타났다.
놈들은 닥치는 대로 건물을 부수고 사람들을 죽였지만, 인명 피해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때는 이미 지하실이나 밀폐된 공간을 찾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난을 떠난 직후였기 때문이었다.
그건 아파트 단지에도 마찬가지였다.
놀이터며 주차장이며 사람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수백 가구 중에서 아파트에 남이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정적에 휩싸인 거리에는 오직 괴수들만이 활개를 치고 다녔다. 놈들은 도시를 파괴하며 인간의 흔적을 찾아 아파트 단지까지 들어왔지만, 불행히도 그곳에는 동하가 있었다.
처음에는 메가 앤트 3마리가 멋모르고 들어왔다가 목이 잘려 죽었고, 그 다음에는 벌을 닮은 괴수가 하늘을 날아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왔다가 동하가 휘두른 백보신권에 온몸이 으스러져 죽었다.
그렇게 시작된 일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벌어졌다.
동하의 기감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지 오래된 일이었다.
그는 식구들과 거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가도 괴수들의 기운이 느껴지면 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곧장 공간이동을 펼쳐 밖으로 빠져 나갔다.
상대가 1성급 몬스터이다 보니 놈들을 죽이고 돌아오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놈들의 사체는 고스란히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강화 액체로 만들었다.
촤아악!
변기 물을 내리고 화장실을 나오면 가장 먼저 미현이 다가와 물었다.
“괴수들을 죽이고 오는 거야?”
“어떻게 알았어?”
“괴수들의 비명 소리가 들리더라고.”
“다음부터는 좀 더 조심해야겠군.”
“헤헤. 오빠, 파이팅.”
매번 그런 식이었다.
동하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미현 밖에 없다 보니 두 사람은 다른 사람 몰래 쑥덕거리는 시간이 많았고, 미진은 매번 그런 모습을 수상하게 생각했다.
“오빠하고 무슨 얘길 그렇게 비밀스럽게 하는 거니?”
“아무것도 아니야. 화장실에 들어가야 하는데, 혹시 냄새가 나는지 물어본 것뿐이야.”
“이상하네. 방금 뭐라고 하면서 파이팅 한 것 같은데?”
“헤헤. 언니가 잘못 들었겠지. 응가를 하면서 파이팅이라고 말할 리 없잖아.”
미현은 시치미를 딱 뗐다.
하지만, 미진은 좀처럼 의심의 표정을 지우지 않았다.
사실 요즘 미현이 이상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먼저 괴수들의 울음소리만 해도 그랬다.
“키키키킷!”
괴수들의 울음소리는 기괴하기 짝이 없어서 가만히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고 공포심이 마구 밀려들어왔다.
창문을 꼭 닫고 있었는데도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건 괴수들이 아주 가까운 곳이 있다는 뜻.
김성혜 여사는 물론이고 미진과 성미 등은 안색이 하얗게 질리고 심장이 콩알 만해졌다. 금방이라도 괴수들이 아파트 안으로 들어올 것 같아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하지만, 유독 미현만 느긋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는 피곤하면 자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심심하면 책을 읽기도 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그 평범한 일상이 도저히 가능하지 않아서 문제였다.
“미현이 넌 무섭지도 않아? 어떻게 그렇게 태평할 수가 있어?”
“태평하긴 뭘. 나도 무서워서 이렇게 떨고 있는데, 억지로 참고 있을 뿐이야.”
“어딜 떨고 있다고? 아무리 봐도 전혀 떨고 있지 않은데.”
“그러니까 억지로 참고 있다니까. 언니도 잠을 좀 자봐. 아니면 배속이 든든하다 보면 지금보다는 조금 나아질 수도 있어.”
“누군 그러고 싶지 않아서 이러는 줄 알아? 잠이 와야 잠을 자지.”
피곤해서 머리가 아플 정도가 되어도 미진은 막상 괴수들의 울음소리만 들으면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당연히 한 줄기 남아 있던 식욕마저 사라져서 원치 않게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요즘이었다.
“언니, 마음을 편하게 먹어. 걱정한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건 없잖아.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고. 그러니까 다들 마음 편히 가져봐.”
“이게 어디 즐길 일이니?”
미진은 이제 미현이 존경스러워질 정도였다.
도무지 미진이 평소 알고 있던 미현의 모습이 아니었다.
☆ ☆ ☆
동하는 여전히 식구들과 함께 지내며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아파트 단지에 들어온 괴수들을 죽이고 식구들을 지켜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과라면 다른 하나는 서용훈 사장에게 강화 액체를 건네주는 것이었다.
지금은 괴수들과의 전면전을 선포한 상태였다. 전국에 출몰한 괴수들을 모두 상대하려면 그만큼 많은 수의 자주포를 강화해야 했다.
하지만, 수요가 많은데 반해 동하는 현실에서 마나를 많이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복사 능력을 이용해서 마법의 용광로의 용량을 높이는 것이었다.
예전에 아이템을 복사하는 것은 성공한 적이 있지만, 지금처럼 용량을 높이는 건 처음이었다.
동하는 길거리에 부서져 있는 자동차 차체를 뜯어왔다.
여기에 차원의 관리자들을 죽이고 얻은 A급 아이템을 같이 넣고 마법의 용광로에 녹였다.
그리고 매직 카메라의 능력을 일으켜 머릿속으로 지금보다 열 배는 큰 마법의 용광로를 떠올렸다.
츠츠츠츠!
마법의 용광로가 들썩거렸다.
순간 안에서 기포가 발생하고 새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와 더불어 안에 들어 있던 액체가 흘러나오며 마법의 용광로를 덮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동하가 매직 카메라의 능력으로 그렸던 열 배나 큰 마법의 용광로가 지금 동하의 눈앞에 놓여 있었다.
일단 겉모습은 성공적이었다.
낡고 볼품없어 보이는 모습은 예전의 것이나 용량이 대폭 커진 지금이나 똑같았다.
성능은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A급 아이템을 넣고 용량을 높였으니 예전보다 성능이 업그레이드되었으면 되었지 다운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좋아, 어디 한번 시험해 볼까?”
동하는 마법의 용광로에 손을 얹고 1서클 마법인 파이어를 일으켰다.
☆ ☆ ☆
-여기는 강릉입니다. 어두운 밤인데도 자주포의 포성이 환하게 불꽃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대전은 이틀째 포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괴수들과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고 거리에는 괴수들의 시체가 쌓여가고 있습니다.
-부산은 드디어 전차와 장갑차를 앞세운 군대가 시내로 입성하고 있습니다.
방송국들 사이에서는 치열한 자리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괴수들이 많고 위험한 곳일수록 극적 긴장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곳일수록 볼거리도 많고 시청률도 많이 나왔다.
하지만, 그런 곳일수록 경쟁이 치열했다. 방송국들은 조금 더 유리한 곳을 선점하고 방송에 내보내기 위해 또 다른 차원의 전쟁을 벌였다.
그런 면에서 CNN은 엄청나게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들은 원래 동하를 취재하기 위해 대규모 인력을 한국에 파견했다가 대한민국 정부가 괴수들과의 전쟁을 선포한 첫날 운이 좋게 얻어 걸렸기 때문이었다.
마크는 예전의 경험을 되살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찾아가 대한민국 방송국들과 치열한 보도 전쟁을 벌였다.
그는 목숨이 위험해서 안 된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현장 깊숙이까지 들어가서 괴수들의 방어막이 부서지고 파괴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런 생생한 장면들은 고스란히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말도 안 돼.”
“코리아의 군대가 저렇게 강했어?”
“괴수들을 너무 쉽게 죽이는데, 이건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일이야.”
“근데, 코리아가 어디에 있는 나라지? 나는 지금까지 코리아라는 나라가 있는지도 몰랐다고.”
“아시아 국가라는데 누구 알고 있는 사람 없나?”
“아시아라면 중국이나 일본은 알아도 코리아는 모르겠는데?”
“쩝! 결국 듣도 보도 못한 조그만 나라에서 제대로 사고를 쳤다는 소리군.”
“이러다 코리아는 괴수들을 모조리 소탕하는 건 아닌지 몰라.”
“도대체 미국은 자칭 세계 최강국이라고 하면서 아직까지 저런 무기를 만들지 못하는 거야?”
“러시아는 어떻고.”
“영국 군대는 전혀 도움이 안 돼. 국민들이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무기를 만들 능력이 안 되면 차라리 코리아에서 무기를 수입해 오라고. 전 국민이 괴수들 손에 다 죽고 나서야 대책을 세울래?”
확실히 CNN 방송은 충격 그 자체였다.
방송을 시청한 각 나라의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도 자국의 정부에 온갖 불만을 쏟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