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 1차 침공-03 -->
“세, 세상에…….”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야말로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일에 유경과 혜주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고, 미현은 몇 번이나 자신의 볼을 꼬집어야 했다.
꿈이라면 이해라도 하지.
그렇게 무시무시하던 괴물이 별다른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죽어 나가는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사실 동하가 언제 자신들 앞에 나타났는지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동하는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았다. 마트 안에는 진열장이 쓰러지고 죽은 시신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어서 솔직히 안쪽 깊이 들어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면 어떤가?
지금 미현이나 유경 그리고 혜주 등은 믿을 사람이 동하 밖에 없었다.
그녀들은 동하를 보는 순간 괜히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뚝뚝 흘러 내렸다.
하지만, 아직은 완전히 마음을 놓을 단계가 아니었다.
마트 밖에는 여전히 괴수들이 활개를 치며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고 있었고, 한바탕 소란에 벌을 닮은 괴수가 빠른 속도로 동하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놈의 눈에는 동하에 대한 적개심이 가득했다. 놈은 몸통을 뒤집어 꼬리에 달린 침으로 동하의 몸을 찌르려고 했다.
“아악. 오빠!”
미현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차마 눈뜨고 지켜볼 수 없었다. 미현은 지금까지 벌을 닮은 괴수의 침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도망을 쳐도 부족할 판이었다.
하나 동하는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놈을 향해 마주 달려 나갔다.
그와 동시에 놈의 얼굴을 향해 몸통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린몬은 솔직히 약해도 너무 약했다.
1성급 몬스터?
그건 인류에게나 통하는 것이지 이미 모든 걸 초월한 동하에겐 가소로울 뿐이었다.
사람들 눈에나 놈이 날아오는 속도가 빠르게 보일까?
동하의 눈에는 느려도 너무 느렸다. 놈은 필드 1관의 몬스터보다 조금 강한 정도에 불과했다. 그나마 지구를 침공한 괴수들의 심장에 결정체가 심어져 있어서 인류에게는 더 위협적인 존재처럼 느껴지겠지만, 동하에겐 필드 1관의 몬스터나 지금 눈앞의 괴수나 똑같았다.
“꺼져버려라.”
쿵!
동하의 주먹이 너무도 쉽게 보호막을 짓이기고 안으로 뚫고 들어갔다.
무공을 펼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법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동하가 가지고 있던 힘만 사용했을 뿐이었다. 벌을 닮은 괴수는 본능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도망치려 했지만, 그걸 그냥 지켜볼 동하가 아니었다.
콰지직!
수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동하의 주먹이 벌을 닮은 괴수의 몸통을 으스러뜨려 버렸다.
“케에엑!”
놈이 날아오던 자세 그대로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단 한방에 불과했지만, 벌을 닮은 괴수는 몸통이 으스러져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위력이 아닐 수가 없다. 동하가 메뚜기와 벌을 닮은 괴수를 죽인 건 눈 한 번 깜빡할 시간조차 되지 않았다.
“저, 저게 우리 오빠라고?”
미현은 멍하니 넋을 잃고 동하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아는 자신의 오빠가 저럴 리 없었다.
태권도 도장 한번 가본 적이 없는 오빠였다.
하물며 저게 어디 사람이란 말인가? 4미터 크기의 괴수를 번쩍 들어 바닥에 패대기를 치질 않나, 주먹 한 방에 무시무시한 괴수를 날려 버리지를 않나. 차라리 영화 속에 나오는 슈퍼맨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그건 유경과 혜주 역시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그녀들은 동하가 무림 고수처럼 싸움을 엄청나게 잘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저건 너무 심했다. 지금 저 모습은 도저히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유, 유경아.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지?”
“아마 그럴 걸? 내 눈이 잘못 된 게 아니라면 말이야.”
“끙. 이젠 정말 동하 씨 손바닥에서 장풍이 나와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아.”
“나는 동하 씨가 해리포터처럼 마법을 펼친다고 해도 믿을 것 같아.”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대에 다니고 있는 유경과 혜주였지만, 지금은 한없이 멍해 보일 정도로 동하의 모습은 충격과 경악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했다.
거리에서 무차별적으로 인간들을 공격하던 괴수 중 한 마리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는지 무서운 눈빛을 하며 마트 안으로 들어섰다.
바로 가장 처음으로 공간을 열고 지구에 나타난 사마귀를 닮은 괴수였다.
놈은 본능적으로 동하의 몸에서 위협적인 기운을 느꼈는지 동하를 보고 기괴한 울음을 터뜨렸다.
“키키키킷!”
그와 동시에 지체하지 않고 놈이 동하를 향해 달려들었다. 3미터의 거대한 몸체를 지니고 있는 놈 치고는 상당히 빠른 속도였다.
“흥.”
동하는 사마귀 괴수를 향해 몸을 날렸다.
무릎을 직각으로 구부리고 놈의 얼굴을 강하게 찍었다. 그 힘이 얼마나 강했던지 놈의 얼굴이 뒤로 홱 젖혀졌다.
“케엑!”
놈은 달려오던 자세 그대로 뒤로 날아갔다.
머리가 박살이 나고 으스러진 것은 당연지사.
그에 더해 놈은 저 멀리 거리를 지나쳐 건너편에 있던 건물에 처박혀 꼴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다.
☆ ☆ ☆
“크아악!”
“으아악!”
거리에서는 여전히 끔찍한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후에도 공간이 몇 개 더 열리고 괴수들이 늘어났다.
괴수들이 늘어난 만큼 사람들이 피를 뿌리며 죽는 속도는 더 빨라졌다.
이런 모습은 이전 생애에서와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자세하게 기억이 나진 않았지만, 대충 1차 침공 첫날에는 일곱 개의 공간이 열리는 것으로 동하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노을이 짙은 지역일수록 하늘에 생겨나는 공간의 개수가 많았고, 그래서 더 많은 사상자 수와 피해가 발생했다.
대한민국 전체에 괴수들이 나타난 건 아니었다.
아까 어머니 성혜는 물론이고 미진에게 연락을 취했었는데, 그녀들은 괴수가 나타났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아직 인천에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건 이전 생애에서와 비슷했다.
그때도 침공 첫날에는 서울을 비롯해서 몇 개의 도시에만 괴수들이 나타났고, 점차 범위를 넓혀 전국을 휩쓸게 된다. 당장 서울만 해도 괴수가 나타난 곳이 있는가 하면 괴수가 나타나지 않은 곳도 있었다.
“으음.”
동하는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듯 짙은 신음을 내뱉었다.
지금 그의 눈앞에서 괴수들의 손에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동하 혼자서 저 많은 사람들을 모두 다 구해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동하에게는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지 않던가? 동하는 그녀들 곁에서 잠시도 떨어져 있을 수 없었다. 아무리 1성급 몬스터의 능력치가 동하에 비해 낮다고 해도 조금만 방심하면 괴수들의 손에 죽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래서 괴수들의 1차 침공이 있기 전에 최대한 많이 결정체를 확보하고 자신을 도울 각성자를 만들 생각이었던 것이다.
동하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1차 침공이 일어난 이상 피해가 발생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동하가 그들 모두를 괴수들의 손에서 구해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애초 계획대로 가족들이라도 구하는 게 맞다. 아직 벙커가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매 순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미현아, 어디 다친 데 없지?”
동하가 가까이 다가오며 물었다.
“응? 응. 나, 나는 괜찮아.”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동하가 미현의 머리를 만져 주었다.
신기하게도 겁에 질려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하는 미현의 마음에 조금씩 안정이 찾아왔다. 자신의 오빠가 이렇게 따듯한 사람인 줄 처음 알았다.
“유경 씨나 혜주 씨는 어때요?”
“저희도 괜찮아요.”
여전히 얼굴에 두려운 기색만 빼면 다들 멀쩡했다.
미현의 친구들 중에서 팔을 다치거나 다리를 삐끗한 아이들 외에는 크게 다친 사람들은 없었다.
“너희들 참을 수 있지?”
동하는 다친 아이들에게 물었다.
“예, 오빠.”
“좋아. 치료는 나중에 무사히 숨을 곳을 찾고 나서 하자. 다들 지금부터 이곳을 빠져 나갈 겁니다.”
“바, 밖으로 말인가요?”
“여기도 안전하지 않아요. 지금은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까 무조건 나를 따라 오세요.”
끄덕끄덕.
누구의 명이라고 거부할까.
지금 그녀들에겐 오직 동하가 곧 법이고 진리였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절대 내 곁에서 떨어지면 안 됩니다.”
“알았어요.”
유경은 물론이고 혜주도 동하의 팔에 바싹 매달렸다.
덕분에 두 여인의 가슴의 촉감이 뭉클 거리며 팔을 타고 고스란히 전해졌다.
남자라면 이런 상황이 결코 나쁘지 않다.
하나 미현이야 그렇다 쳐도 그녀의 친구들조차 동하에게 바싹 달라붙어서 여간 난감한 것이 아니었다.
“자, 잠깐.”
동하는 그녀들을 진정시켰다.
그녀들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다.
1차 침공 첫날이었다.
더구나 지구에서 능력을 각성한 사람은 오직 동하 한 명뿐이었다.
그녀들은 본능적으로 동하 옆에서 떨어지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열 명이나 되는 여인들이 이렇게 달라붙어서는 괴수들이 나타났을 때 제대로 싸울 수가 없었다.
“다들 조금 떨어져서 따라와도 괜찮습니다.”
동하는 겨우 그녀들을 진정시켜 놓고서야 떨어뜨릴 수 있었다.
마침 마트 한쪽에는 물품 창고로 들어가는 문이 있었다.
지금은 외부인이 들어가지 못하게 안쪽에서 잠겨 있었는데, 동하는 가볍게 문짝을 뜯어 버렸다.
괴력도 이런 괴력이 없었다.
하나 미현이나 유경 등은 이제 동하의 그런 괴력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조금 걸어 나가자 골목이 나왔다.
동하가 한 발 앞으로 내딛는 순간이었다.
쇄애애액!
벌을 닮은 괴수가 하늘을 날다가 동하를 발견하고는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동하는 곧바로 한손에 화살 하나를 만들었다. 바로 매직 애로우였다. 비록 매직 애로우가 1서클 하위 마법에 불과하지만, 7서클 상위 마나를 가진 동하의 손에 펼쳐진 매직 애로우는 차원이 달랐다.
콰직!
화살이 벌을 닮은 괴수의 방어막을 사정없이 뚫고 들어가 몸통을 관통했다.
그 자리에서 즉사였다. 벌 괴수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는 형체를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여인들은 벌 괴수가 죽은 것보다 동하의 손에서 화살이 날아간 것이 더 충격적이었다. 아무리 봐도 저건 판타지 영화에서나 볼 법한 마법이기 때문이었다.
“맙소사.”
“소, 손에서 화살이 날아갔어.”
“도대체 동하 씨 정체가……. 으악!”
유경이 말을 하다 말고 비명을 질렀다.
골목 저쪽에서 무서운 기세로 바퀴벌레를 닮은 괴수가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놈은 달려오던 자동차도 뒤집어엎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어딜?”
동하는 놈을 향해 장풍을 날렸다.
그저 가볍게 손을 휙 내저었을 뿐이지만, 그의 손바닥에서 강력한 강기가 날아갔다.
쇄애액!
쿵!
“케에엑!”
그토록 단단하고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던 바퀴벌레를 닮은 벌레가 형체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부서지고 으스러진 모습으로 저 멀리 날아가고 말았다.
“바, 방금 손바닥에서 나간 거 무협 영화에서나 보던 장풍 아니에요?”
“글쎄요.”
“세상에. 어떻게 사람의 손에서 장풍이 나올 수가…….”
“뭐는 말이 되니? 화살이 날아간 건 또 어떻고?”
이제 놀라는 것도 지쳤는지 여인들은 무엇을 보든 그리 놀라울 것 같지 않았다.
그때, 미현이 동하의 팔을 잡아끌었다.
“근데, 오빠?”
“응?”
“오빠, 사실대로 말해 봐.”
“또 뭘?”
“방금 저 괴물들을 때려잡은 거 말이야.”
“그게 왜?”
“시치미 뗄 생각 하지 마. 이번에도 설마 미국에서 배웠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지?”
“맞아. 미국에서 무술 사부님을 만나서…….”
“오빠.”
미현이 소리를 빽 하고 질렀다.
“으이구, 제발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해. 화살이 튀어 나오고 손에서 장풍이 나오는데 뭐가 어쩌고 어째?”
☆ ☆ ☆
-속보입니다. 미국에 정체불명의 괴물들이 나타나 도시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영국입니다. 런던에 거대한 괴물이 나타나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중국은 군대가 나섰지만, 괴물들을 막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일본의 자위대도 괴물을 죽이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렇게 전 세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괴수들에 의해 건물이 무너지고 도시가 파괴되었다.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잔인하게 죽어 있었고, 괴수들에 의해 파괴된 장갑차와 탱크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각 나라에서는 처음엔 경찰이 출동해 괴수들을 상대했지만, 총알이 통하지 않아서 오히려 희생자만 더 늘어났다.
결국 각 국가에서는 대규모의 군대가 출동했다.
전투기가 날아오르고 장갑차와 탱크가 도심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인류가 가진 재래식 무기로는 결정체가 만들어 내는 방어막을 뚫을 수 없었다.